136화 동맹 (5)
“도련님, 아직 늦지 않았어. 당신의 명령 한마디면 저놈들을 전부 쓸어버릴 수 있단 말이야!”
백련은 플루톤이 이륙하는 그 순간까지도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아크는 직접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크는 기계병단의 무서움을, 사막여우의 기술력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사막여우를 살려 보내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아크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백련은 그의 뒤를 따라 함실로 향했다.
함실 앞에 도착하자, 그때껏 아크를 호위하던 지휘관들이 제각기 자신의 부대로 돌아간다.
그렇게 들어선 함실 내에는 아크와 백련, 그리고 횃대 위에 앉은 독수리 두 마리뿐이었다.
“백련.”
함실에 들어온 아크가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자, 백련은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아크의 목소리에서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진 않지만, 그는 분명 분노하고 있었다.
“내가 말했죠, 당신을 왜 곁에 두었는지.”
악랄함과 탐욕스러움.
바로 그런 면모 때문에 아크는 백련을 지원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겁먹은 똥강아지처럼 보이는군요.”
“도련님, 나는…….”
백련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목숨을 쥐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누구의 손을 붙잡아야 하는가.
아크에게마저 버림받는다면 모든 게 끝이다.
“당신은 생각 따위 하지 마세요. 당신은 물라면 물고…….”
푸드덕!
독수리 두 마리가 커다란 날개를 펴더니, 아크의 양옆으로 날아오른다.
“짖으라면 짖으세요.”
“…….”
곧이어 아크를 중심으로 미세한 돌개바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
어지럽게 피어오르는 돌개바람 속 독수리의 모습이 양복 차림의 쌍둥이 남매로 변했다.
황금빛 머리칼에 투명한 피부, 바토리 족이다.
만약 아크의 명령이 떨어진다면, 쌍둥이는 당장 이 자리에서 백련을 갈가리 찢어발길 것이다.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던 백련이 한 발자국 물러서며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명심하지.”
아크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돌개바람 역시 멎었고, 쌍둥이의 모습이 다시금 독수리로 변했다.
그사이, 독수리 두 마리는 제각기 횃대로 날아가 백련을 뚫어지게 관찰했다.
‘건방진 참새 놈들…….’
백련은 그런 독수리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아크는 피곤함을 느낀 듯 한숨을 내쉬며 탁자 앞으로 다가가더니, 와인을 꺼내 들었다.
“한잔할래요?”
마치 방금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잔을 들어 백련 쪽으로 내민다.
“기꺼이…….”
애써 미소를 꾸민 백련이 아크가 내민 잔을 받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 함실 내 통신기가 울렸다.
아크는 통신기를 바라보며 가만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아쉽지만 나중에 하죠.”
“그럼 이만 나가 보도록 하죠, 도련님.”
백련은 도리어 방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듯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도망치듯 함실에서 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에서 불만과 분노가 느껴졌지만, 아크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이미 백련 따위는 아크의 관심에서 완전히 멀어진 뒤였다.
― 따르르릉!!
백련이 방을 나간 뒤에도 아크는 얼마간 울리는 통신기를 그저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불길한 느낌이 드는 탓이었다.
근래에 계속해서 일이 꼬이는 바람에 민감한 것이리라.
아크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홀로그램을 통해 후드를 쓴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홀로그램을 통해 떠오른 남자의 모습을 본 아크가 잔과 와인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대체… 그게 무슨 꼴이지?”
아크의 얼굴이 불길하게 움찔거렸다.
홀로그램에 나타난 남자의 한쪽 팔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였고, 옷은 곳곳이 찢긴 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얼굴 역시 멍투성이다.
한눈에 보아도 전투에서 패배한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더구나 연락을 취해 온 이는 일을 맡긴 클라이드가 아니라 그의 부하였다.
“클라이드는 어디 갔지?”
“아크 님…….”
“대답해.”
“클라이드가… 배신했습니다.”
아크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고, 그런 분노에 반응한 듯 독수리들의 고개가 아크 쪽으로 돌아갔다.
“알마티는?”
“LAPD가 항복했고, 지하 도시 반군이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
아크는 아무 말 없이 보고를 전해 온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알마티 LAPD의 무장 수준으로 어떻게 지하 도시 거지들 따위에게 밀릴 수 있단 말인가.
남자는 얼어붙은 아크를 살피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놈들의 교란작전에 당했습니다. 게다가 지하 도시의 메타휴먼들이… 합류했습니다.”
남자가 전하는 말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경찰 서장이 메타휴먼들에게 살해당했고, 리치 타운 역시 파괴되었습니다.”
쨍그랑!!
아크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탁자 위에 잔을 땅바닥에 냅다 집어 던졌다.
“서장, 이 멍청한 작자가! 그래 봐야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 가던 폐품들이잖아!”
서장의 어리석음에 차마 말을 이을 수조차 없었다.
미리 지하 도시의 반란을 예고해 주었고, 무장까지 추가 지원했건만,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단 말인가.
“클라이드는 어째서 배신한 거지?”
“그게… 동생을 만났다고 합니다.”
“뭐? 클라이드의 동생… 보니가 거기에 있었다고?!”
잠든 그녀의 캡슐을 인형 병동에 숨겨 둔 게 바로 아크였다. 그러나 코카서스 놈들의 테러 행위로 인해 캡슐을 잃어버렸고, 지금껏 그 사실을 클라이드에게 숨겨 왔다.
당시 사라진 보니가 갑자기 알마티에 나타난 것이다.
마치 장난 같은 이야기에 아크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아크는 깊이 한숨을 내쉰 뒤, 가만히 물었다.
“루키우스 베르코프는?”
클라이드를 파견하면서 단단히 당부한 것은 루키우스의 살해였다.
설사 알마티가 무너지더라도 루키우스라는 리더를 잃는다면 수습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
“죽였겠지? 아니, 너희가 아니더라도 그 아들놈이 없앴을 거야. 그렇겠지?”
“…죄송합니다.”
“설마……!”
“목숨에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
살아 있다. 루키우스가 죽지 않았다.
반란은 성공했고, 그 와중에 루키우스까지 생존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산산이 부서진 잔을 바라보던 아크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의 개입이 도리어 최악의 결과를 불러온 걸까?
방심 따위 하지 않았다.
이미 루키우스가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를 살해하기 위해 자신이 데리고 있는 최고의 팀을 파견했다.
센트럴 오더의 발령에 방해가 될 변수를 없애기 위해 지하 도시에 먼저 공격을 가했고, 경찰 서장에게도 미리 경고까지 해 두었다.
그런데도 알마티가 지하 쓰레기장의 거지들에 의해 무너졌고, 루키우스는 기어코 살아남았다.
“혹시 그곳에 강력한 능력자가 있던가?”
“예. 그게… 번개를 다루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크가 가만히 주먹을 움켜쥐었다.
신태일, 이번에도 그 남자가 끼어들면서 일이 꼬였다.
“뱀이 나타났습니다.”
“뱀?”
뜬금없는 말에 아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뒤쪽에서 다른 남자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마치 불독을 닮은 남자가 아크를 보고는 허겁지겁 고개를 숙였다.
아크는 대화에 갑자기 제삼자가 난입하자 얼굴을 찌푸렸다.
직속 팀과의 통신에 다른 누군가가 참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사실을 부하 역시 모를 리 없었다.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는 만큼 직속 팀에서의 허가가 아니라면 남자의 개입은 불가능하다.
아크는 남자를 개입하도록 한 부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아크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었다. 아마 제 나름대로 목숨을 건지기 위한 방책으로 다른 누군가를 참여시킨 것일 터였다.
아크는 작전에 실패한 부하를 절대 살려 두지 않으니까.
물론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크는 곧 평정심을 되찾은 뒤, 홀로그램에 떠오른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쪽은?”
과거, 알마티에 갔을 때 본 적이 있는 듯 낯익은 얼굴이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몇 번인가 뵈었는데 다시 인사드립니다. ‘마틴 벨로’입니다.”
벨로 통신사의 사장. 알마티의 의원이자, 캐피탈 클럽에도 속해 있는 후원자.
그제야 기억을 떠올린 아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에도 없는 위로를 건넸다.
“험한 일을 겪으셨을 텐데…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마틴 님.”
“감사합니다, 아크 님.”
“…저에게 말씀하실 게 있다고요?”
“장 베르코프, 그놈이 능력자였습니다.”
불독을 닮은 마틴은 턱을 떨면서 열변을 토했다.
“놈이 리치 타운의 캐피탈 클럽 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심지어 제 아비마저 죽이려 했습니다.”
마틴이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잇는 사이, 아크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죽이게 놔뒀어야지.’
마틴이 들려준 정보 중 쓸모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런데 루키우스 씨는 살아남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맞습니다. 웬 번개를 쓰는 남자가 난입해서 그 친구를 구해 냈습니다.”
“…다행이군요.”
아크의 불편한 심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마틴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당시, 장을 뒤에서 조종하던 여자가 있었습니다. 비서로 숨어 있던 여자이지요.”
“…….”
아크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 숙인 검은후드를 바라보았다.
대단찮은 일로 제삼자를 개입시킨 그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나 이어진 마틴의 말에 태일의 사고가 멈추었다.
“그 여자가 장을 뱀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능력이 대륙 전쟁 당시 바토리 일족의…….”
“설마!”
아크가 가만히 중얼거리자, 검은후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르문간드’입니다.”
마틴이 순간 멍청한 얼굴로 아크와 검은 후드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아크와 검은후드의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대륙민들에게 메데이아와 요르문간드는 잊혀진 이름이니까.
그러나 센트럴의 통치자들은 그 이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메데이아는 요르문간드를 부리며 수많은 제국을 없애 버렸고, 이후 바토리 반란 당시 센트럴의 병력을 홀로 절반 이상 괴멸시켰다.
센트럴에서 의도적으로 지워 버린 존재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메데이아는 바토리 일족을 다시 규합할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갖고 있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충분히 위협적인 괴물이었다.
“클라이드가 놈과 처음부터 손잡았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클라이드는 알마티의 반란이 터지기 직전, 동료들을 살해하고 동생과 떠났습니다.”
“…….”
아크가 입술을 깨물며 이마를 매만졌다.
그 와중에 마틴이 다급히 말했다.
“저, 아크님. 지금 알마티의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메타휴먼 놈들과 지하 도시에서 올라온 놈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건 센트럴 정부에 말씀하셔야 할 사안일 텐데요.”
“무, 물론 그래야겠지만, 통신선과 외부 정보망을 모조리 빼앗겼습니다. 이렇게 아크 님의 비상망을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비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하다못해 이곳의 상황을 전달해 주십시오. 곧 지상 주민들에 대한 대학살이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군을 투입해서라도 이곳의 상황을 진정시켜야 합니다.”
아크는 그런 마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알마티 하원의원 신분을 가진 남자다. 그의 존재는 제법 유용할 수 있었다.
아크는 검은후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
“예, 어르신.”
“마틴 님을 경호하면서 반드시 지켜라. 그리고 알마티의 상황을 내게 보고해.”
검은후드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아크 님.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으흐흑…….”
“무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통신을 마친 아크는 의자에 걸터앉아 한쪽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피로감이 밀려온다.
알마티가 무너졌고, 50구역은 연합을 이루었으며, 49구역 기계병단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와중에 겁쟁이 의원들은 센트럴 오더를 취소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들은 반란군과의 협상을 총한 ‘평화적’ 해결을 떠들어 댔다.
한편, 캐피탈 클럽과 청년당은 이번 기회에 의회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엉망이군.”
마음을 굳힌 아크는 탁상 위 통신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 뚜… 뚜…….
“네.”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계획을 조금 앞당겨야겠어.”
아크의 말을 들은 상대편이 잠시간 침묵했다.
“오더 전에 시행할 생각이십니까?”
“그래.”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통신이 끊어진 뒤, 아크는 이번에야말로 와인을 남은 잔에 따랐다.
그 와중에 아크는 과거 태일이 한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센트럴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이었던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강력한 힘.
그 외에 그 무엇도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