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21화 (122/220)

121화 혁명의 시작 (3)

장 베르코프가 어릴 적, 알마티는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땅이자 포용적인 도시로 알려져 있었다.

대륙 각지의 예술가와 기술자들이 알마티로 몰려들었고, 센트럴의 억압적인 분위기와 달리 자유분방한 문화가 싹텄다.

예술가들은 거리 곳곳에서 아름다운 조각상과 벽화를 남겼고, 기술자들은 신기한 기계들을 제작했다. 멋과 낭만이 도시를 채웠고, 미학과 철학이 가득했다.

전쟁 직후이기에 모두가 가난했지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창의성을 꽃피우며 찬란한 미래를 상상했다.

당시의 희망들을 간직한 공간이 바로 알마티의 기계 공원이었다.

통금이 한참 지난 시간이건만, 장미꽃 모양의 조명들이 공원 곳곳을 밝히고 있다.

장은 때때로 통금 시간이 훨씬 지난 야밤에 기계 공원을 찾아 거닐곤 했다.

공원 정중앙에서는 자이로스코프가 24시간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고 있다.

공원 주변 철로를 따라 황금빛 자기부상열차가 무인으로 움직이고, 기계 새와 기계 나비가 공원 곳곳을 자유롭게 날아다녔다.

“회장님, 들어가셔야 합니다. 지금 바깥은 위험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불길이 피어오르는 가운데, 고함 소리가 공원까지 들려왔다.

그 소란을 들으며 장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웃기는군.”

쾅!!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온다.

LAPD 본부 쪽이었다.

“센트럴을 적으로 돌리라는 게 아니에요. 그저 무모한 명령을 발동시킬 경우, 그만한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신호만 주면 충분해요.”

제인의 발언은 얼마나 순진했던가.

“나도 참… 어리석었군. 그런 헛소리에 잠시라도 휘둘렸으니…….”

한번 폭발해 버린 민중은 알마티 전체를 태워 잿더미로 만들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알마티를 정치적 희생양 정도로 여기는 캐피탈 클럽과 센트럴 정치가들, 그런 이들에 저항하려 하는 지하 도시 주민들, 그리고 알마티의 겁쟁이 자본가들.

그러나 그 모두가 결국은 장기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

스스로가 플레이어인 척, 판세를 읽고 능동적으로 판단하는 척 거드름을 떨지만, 결국 누군가의 손아귀에서 보기 좋게 놀아나고 있을 뿐이었다.

“보안팀이 회장님의 안전을 지킬 겁니다. 지금은 일단 본사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장은 비서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계 공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러다 잠시 멈춰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키릭… 키리릭…….

자그마한 태엽 소리와 함께 날아든 황금 나비가 장의 손가락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회장님…….”

“형들을 없애고, 아버지를 밀어낸 다음… 회장 자리에 앉자마자 한 일이 뭐였는지 아나?”

갑작스러운 장의 물음에 비서는 놀란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공식적으로 장의 형들은 ‘불미스러운 사고’로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났고, 장의 아버지는 ‘센트럴의 반역자’로 재판받은 뒤 추방되었다.

‘제 형제들을 살해한 살인마’,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빼앗은 패륜아’…….

사람들은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결코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장은 지금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고 있었다.

“0(제로)구역으로 갔지.”

“…….”

비서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른바 센트럴의 귀족들이 산다고 알려진 구역이지만,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바다 건너의 대륙 바깥에 마련된 장소라고도 했고, 또 누군가는 심해에 건설된 수중 도시라고도 했다. 심지어 누군가는 제로 구역이라는 장소 자체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로 구역은 분명히 존재했고, 1구역의 의회와 센트럴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자 정부가 바로 제로 구역에 있었다.

“난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거든.”

장의 손가락에 잠시 내려앉은 황금 나비가 다시금 태엽 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렇게 날개를 부산히 움직여 역시 인공으로 만들어진 분홍빛 꽃 위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러나 받아주지 않더군. 아니, 아예 구역 내부로의 진입조차 허락하지 않았어.”

장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히 말하고 있지만, 그 말투에는 차가운 분노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몇 년 뒤, 탈로스 가문이 제로 구역에 들어갔지.”

“…….”

비서는 그 누구보다 장의 탈로스 가문에 대한 열등감을 잘 알고 있었다.

장은 탈로스 가문을 따라잡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으나 실패를 거듭할 뿐이었고, 그로 인해 Z―rail은 점차 쇠퇴했다.

그럼에도 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을 가진 메타휴먼 경찰의 최초 등장.

그 사건 당시 장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 언론사와 정치가, 인권 단체를 움직여 로보티안법을 통과시켰다. 메타휴먼 산업 자체를 파괴하여 드림 코퍼레이션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장의 뜻대로 법안이 통과한 뒤, 전 대륙에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의 금융위기가 닥쳤다.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했고, 일자리를 잃은 로보티안들이 지하 도시로 쫓겨났다. Z―rail을 비롯한 기업들의 공장과 작업장들이 죄다 멈춰 섰으며, 일거에 사라진 로보티안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기업들은 더 비싼 비용을 치르고 새로운 메타휴먼을 사들여야 했다. 메타휴먼은 낮은 인건비로 말미암아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던 것이다.

비용이 높아진 가운데 금융위기의 여파로 인해 자본금마저 바닥난 기업들은 연쇄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결과적으로 메타휴먼 산업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아니, 로보티안의 대량 해고 이후 메타휴먼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탈로스 가문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결국 장이 막대한 자금을 들인 공작은 탈로스 가문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탈로스 가는 아마 그런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장은 그들의 손에 완전히 놀아났을 뿐이다.

그럴수록 장의 탈로스 가문에 대한 분노는 커졌고, 조급해졌다.

“난 지하 도시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네.”

“…회장님.”

센트럴 오더를 막기 위해 지하 도시의 저항을 지원한다는 계획은 자못 그럴듯했다.

하지만…….

“카렌 탈로스. 그녀가 우리를 돕고 있어요.”

제인의 입에서 ‘카렌 탈로스’라는 이름이 나온 바로 그 순간, 장은 제인과 루키우스의 제안을 머릿속에서 깨끗이 지워 버렸다.

“그럼 센트럴의 요구에 응할 생각이십니까?”

센트럴은 기업 자산을 모두 넘기라고 지시했다. 특히 철도 운영권의 경우, 일단 센트럴에 빼앗기게 되면 결코 돌려받지 못할 것이다. 그건 곧 Z―rail의 몰락을 의미했다.

“물론 그럴 수야 없지.”

“그럼 대체…….”

비서는 의구심을 품은 채 고개를 들었다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둠 속 장의 얼굴이 순간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처럼 보인 탓이었다.

* * *

케인 경감이 서장의 명령에 따라 부하들을 이끌고 기계 공원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에 가까워 있었다.

중무장한 채 따라오는 부하들이 저희끼리 소곤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저 불길 오르는 건 다 뭐냐고.”

“지하 도시에서 일으킨 반란이라잖아.”

“지하 도시 놈들이? 아니, 그 자식들이 대체 왜 갑자기…….”

“떠들지들 마라!”

케인을 날카롭게 외치며 부하들의 잡담을 막았지만, 그 자신 역시 사방에서 이는 불길을 보며 머릿속이 어지러워진 상태였다.

서장은 분명 처음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미리 병력을 집결시키고, 무기 상태까지 일시 점검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서장은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쾅!!

“겨, 경감님!”

뒤쪽에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올랐다.

LAPD 본부 쪽이다.

기어코 경찰 본부까지 습격해 온 것이다.

“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케인은 이를 갈며 주먹을 움켜쥐었지만, 곧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우리는 기계 공원에 들어간다.”

“하지만 경감님, 본부가……!”

“시끄러워! 우리가 맡은 임무가 뭔지 잊었나?”

본부마저 습격당한 상황은 케인에게도 충격적이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임무였다.

그의 임무는 기계 공원을 지키는 것이다.

기계 공원이 어떤 곳인가.

“기계 공원이 뚫리면 타운이 위험하다.”

기계 공원을 지나 도착하는 곳은 다름 아닌 부유층과 지배층들이 몰려 있는 리치 타운이었다.

지하 도시와 이어진 쓰레기 처리 통로가 가득한 외곽과 달리, 부자들이 모여 사는 리치 타운에는 직접 지하와 이어진 통로가 없다. 리치 타운 주민들이 지하와 직접 연결되는 통로 설치를 반대했기에 타운 내부에 쓰레기 처리 통로 자체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지하 도시의 반란군들이 리치 타운을 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길목인 기계 공원을 지나야만 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리치 타운 길목의 수비야말로 LAPD 본부 탈환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임무였다.

“경감님, 저기 좀 보십시오! 불이 켜져 있습니다.”

알마티의 통금도 기계 공원과 그 안쪽 리치 타운은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실질적인 알마티의 지배자와 마찬가지였고, 고작 서장의 권한으로 그들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도시 곳곳에 불길이 오르면서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도 기계 공원의 전력을 훤히 켜 놓은 모습에는 욕지거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떤 대가리에 총 맞은 새끼가 이런 상황에 저기서 처 놀고 있는 거야!”

“저, 저기……!”

정장을 잘 차려입은 신사와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배에 기름 낀 부자 녀석이 여비서와 남몰래 밀회라도 즐기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들에게는 도시에서 오르는 불꽃들이 멋진 구경거리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단단히 부아가 치민 케인이 주먹을 움켜쥔 채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시오, 거기!”

그러나 그렇게 다가가는 순간, 기계 공원을 비추던 빛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키릭… 키리릭… 지직……!

근처 꽃 위에 내려앉은 황금 나비가 연기를 내뿜으며 멈춰 선다.

황금 나비뿐 아니라 기계 공원의 중심부에서 쉬지 않고 회전하던 자이로스코프와 무인 열차 역시 멈춰 섰다.

스스스…….

사방에 검은 먼지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대체 이게 무슨…….”

얼결에 제자리에 멈춰 선 케인 경감은 멍한 얼굴로 신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사의 온몸에서 검은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사를 바라보던 비서가 뒤로 주춤하다가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제자리에 쓰러져 버린다.

그 순간, 검은 연기가 케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 * *

“회장님…….”

비서는 눈앞에 있는 장의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연기가 천천히 기계 공원 곳곳으로 번져 가고 있었다.

연기에 닿은 기계들은 동작을 멈추고 검게 부식되어 스러져 갔다.

황금 나비의 날개는 먼지로 변해 버렸고, 인공 꽃들 역시 먼지로 부스러져 사방에 휘날렸다.

쾅!

지지대가 부식되어 사라지자, 자이로스코프가 그대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비서는 지난 5년간 장을 보좌했지만, 장은 스스로 이레귤러라는 사실을 철저히 감추었다.

“많이 놀란 얼굴이군.”

장의 얼굴은 뱀의 그것처럼 검은 비늘로 뒤덮였고, 두 눈은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대체 어쩔… 생각이십니까?”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어.”

장이 웃으려는 듯 입꼬리를 올렸지만, 도리어 그의 웃음은 악마의 그것처럼 소름 끼칠 뿐이었다.

“뭐, 뭐야, 이거! 다들 물러나!”

“내, 내 총이……?!”

비서는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고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몰려온 LAPD 경찰들이 저마다 비명을 내지르며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들이 들고 온 무기와 방호복은 검은 연기에 닿아 부식되어 검은 먼지로 화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불청객은 치워 버려야겠지.”

장은 그대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비서를 지나쳐 갔다.

그제야 비서는 자신의 몸 주위로는 검은 안개가 닿지 않았음을 알았다. 강철도, 황금도 모조리 검은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연기가 만약 사람의 몸에 닿는다면 어떻게 될까?

“으, 으아아아아악!!”

“모, 몸이… 내 몸이!!”

드러난 살점이 검은 연기에 닿자, 검은 먼지로 변해 흩어진다.

검은 연기에 뒤덮인 경찰들은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들의 몸뚱어리는 곧 형체조차 남기지 않고 먼지로 변해 흩어져 버렸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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