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혁명의 시작 (1)
이른 통금 뒤, 알마티 거리.
인적이 없어야 할 거리 곳곳에는 평소의 수배에 달하는 LAPD 병력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레이저건과 빔 소드, 나노 방호복으로 철저히 무장한 가운데, LAPD 경찰들의 표정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제이드와 볼트, 네이트 3인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쟁이라도 나는 건가?”
“그러게나 말이야. 이게 대체 무슨 난리래? 서장 표정이 심상치 않던데…….”
“센트럴에서 고위급 인사라도 오시는 모양이지. 하여간 지랄이다, 지랄. 우리 같은 아랫것들이나 죽어나지.”
“청장이라도 방문하나 보지. 서장, 그 인간은 청장한테 제 마누라도 갖다 바칠 인간 아니오. 얼마나 아부를 잘했으면 청장이 대놓고 밀어 줬겠어.”
호들갑을 떠는 서장의 명령에 갑자기 비상근무를 서느라 휴가 중이던 병력까지 모조리 동원된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강제로 끌려 나온 제이드는 입이 댓 발이나 나와 있었다.
푸근한 인상의 베테랑 볼트가 그런 제이드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진정시켰다.
“기운 내, 제이드. 나중에 보상 휴가라도 주겠지. 아니면 특근 수당이라도 넉넉히 쥐어 주지 않겠어?”
“형님은 아직도 우리 서장을 모르슈? 서장, 그 뚱땡이가 잘도 그런 걸 챙겨 주겠소. 우리가 아주 제 놈 종이지, 종.”
“제이드 형, 입 좀 조심해. 그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고.”
“내 입 갖고 내가 말한다는데 누가 뭐래?”
제이드는 애꿎은 네이트에게 화를 내며 침을 탁, 뱉었다.
“길가에 쥐새끼 하나 없구만, 대체 뭐 이렇게 호들갑을…….”
한창 투덜대던 제이드는 거리 반대편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말끝을 흐렸다.
“뭐야, 저건?”
웬 중년 남자가 거적때기를 걸친 채 삼거리 쪽에서 홀로 비틀대며 걸어 나오고 있다.
“술에 취한 건가?”
볼트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흥, 통금 시간 넘도록 술 처마시고 거리를 누벼? 오냐. 기분도 더러운데, 마침 잘 걸렸다.”
제이드는 볼트와 네이트가 막을 새도 없이 내달리듯 앞으로 나아갔다.
이내 비틀거리며 다가오던 상대가 옆으로 풀썩 넘어진다.
“얼씨구!”
제이드는 그런 남자를 향해 성큼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이봐! 너!”
“으음… 끄윽!”
가까이서 보니 제법 몸집이 큰 남자가 보풀이 잔뜩 인 거적을 뒤집어쓴 채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비상근무로 잔뜩 짜증이 치밀어 있던 제이드는 그대로 남자를 걷어차 버렸다.
퍽!
“어이쿠!”
“너, 인마! 통금 알림 못 들었어? 감히 겁도 없이 이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녀?!”
제이드의 발길에 차인 남자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엎드렸다.
“아, 아이고, 선생님. 제가 그만…….”
남자는 느릿느릿 말을 이으며 제이드와 그 뒤쪽 경찰들을 살폈다.
볼트와 네이트는 꽤 거리가 있는 뒤쪽에서 느긋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도리어 때마침 제이드의 화풀이 대상이 나타난 것을 반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봐, 제이드!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적당히 해, 적당히.”
제이드는 콧방귀를 뀌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흥, 이런 놈은 흠씬 두들겨 패서 지하에 처박아 버려야 해. 이런 거지새끼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끌려 나와 있는 거 아냐?”
그러나 제이드의 주먹이 치켜 올라가는 바로 그 순간, 남자가 또렷한 말투로 제이드의 말을 되뇌었다.
“지하에… 처박아 버린다고?”
그와 동시에 남자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매서운 눈동자가 제이드의 눈과 마주친다. 그의 눈에는 조금의 취기도 없었다.
“너……!”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품에서 꺼내 든 단도가 들려 있었다.
푹!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일어난 남자가 그대로 단도로 제이드의 목을 찔렀다.
“컥!!”
목에서 진득한 피가 튄다.
제이드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친 것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 채 입을 뻐끔거렸고, 남자는 비명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으려는 듯 나머지 손으로 제이드의 입을 틀어막았다.
잠시 움찔거리던 제이드는 곧이어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들어 올린 주먹이 힘없이 떨어졌다.
“어어? 이봐, 제이드! 왜 그래?!”
축 늘어지는 제이드의 모습을 보고 이상함을 깨달은 볼트와 네이트가 급히 이쪽으로 달려온다.
남자는 재빨리 제이드의 허리에 있던 레이저건과 빔 소드를 뽑아 든 뒤, 삼거리 안쪽으로 숨어들었다.
제이드의 몸이 힘없이 앞으로 쓰러지면서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번져 나간다.
“제, 제이드!”
“형님!!”
볼트와 네이트가 황급히 달려왔지만, 이미 제이드의 피가 거리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확인한 볼트가 황급히 품에서 무전기를 꺼내 든다.
“비상! 비사… 누구냐!”
무전기를 통해 상황을 전달하려는 와중에 삼거리 쪽에서 갑자기 단도를 든 사내 다섯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커, 커헉!!”
무릎을 꿇은 채 제이드의 상태를 확인하던 네이트는 잠깐 사이에 가슴팍과 목에 칼을 맞았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제이드의 시신에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이 새끼들이!!”
볼트는 그나마 베테랑답게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왼손으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레이저건을 꺼내 들었다.
펑!
그러나 먼저 발사된 것은 삼거리 안쪽에서 다시 나타난 남자의 레이저건이었다.
레이저에 가슴을 관통당한 볼트는 휘청이며 쓰러졌다.
그 와중에 손에 쥐고 있던 레이저건과 무전기가 땅에 떨어져 뒹굴었다.
“커, 커헉!”
[이봐, 무슨 일이지? 응답해!]
떨어뜨린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쾅!!
바로 그 순간, 알마티 거리 어딘가에서 폭발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이 일었다.
거적을 뒤집어쓰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볼트 앞으로 다가온다.
네이트를 살해한 뒤, 시신에서 무기를 빼앗아 든 이들 역시 볼트 쪽으로 몰려왔다.
“네놈들… 쿨럭!”
“싸움을 먼저 건 쪽은 너희야.”
볼트는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무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곧이어 단검이 볼트의 목에 쑤셔 박혔고, 그대로 숨이 끊어져 버렸다.
볼트의 사망까지 확인한 거적때기 차림의 남자, 안드레이는 볼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레이저건을 집어 든 뒤, 차가운 얼굴로 불길이 인 쪽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도시 서쪽에 이어 동쪽에서도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대장들은 빠른 속도로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형의 복수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대로 무기고로 간다. 서둘러.”
* * *
“이, 이런 멍청한 놈들!!”
서장실에서 창을 통해 도심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LAPD 서장은 양쪽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하 도시 놈들이 기어 나올 만한 입구들을 중심으로 순찰 병력을 배치했고, 병력을 배로 늘렸으며, 장비 소지 상태까지 철저히 점검했다.
지하 도시 주민들이라 해 봐야 구식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들에 불과하고, 훈련 경험이나 신체조건 역시 형편없다.
그런 상황을 빤히 알고 있기에 서장은 처음부터 지하 도시의 반란, 그 자체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LAPD 주요 간부들에게조차 비상근무의 이유가 지하 도시 주민들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대신 서장은 지하 주민에 대한 대량 학살 사태와 그에 따른 정치적 비난을 걱정했다. 만약 지하 주민들을 향해 공격 명령을 내린 주체가 자신이 된다면, 이후 온갖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서장은 그런 상황에 미리 대비하고자 했고, 그 때문에 명분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지하 주민들에 대한 공격을 명령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서장은 이처럼 빠른 시간에 도시가 혼란에 빠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불길이 일어난 가운데 비명 소리가 높아졌고, 거리의 경관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온 기회인데!!”
클라이드에게 화를 내긴 했지만, 서장은 이번 사태가 최고의 기회임을 알고 있었다. 보수당과 청년당은 물론, 캐피탈 클럽까지… 유력자들의 시선은 전부 알마티에 집중되어 있다. 이런 가운데 LAPD 서장인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무장 상태를 철저히 점검하고, 병력까지 전부 끌어모았으니 반란은 신속하게, 조기에 진압될 터였다.
학살의 책임을 피하면서, 알마티 LAPD의 위력을 대대적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도시 두 곳에 불길이 올랐고, 대대적인 혼란이 초래되었다.
조기 진압은커녕 허둥대며 대응조차 못 하는 무능함을 보이고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서장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책상의 검정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명분은 충분하다. 이미 도시 한가운데 불길이 올랐다면…….
따르릉! 따르릉!!
검정 전화기 옆에 놓인 황금색 전화기가 부산하게 울렸다.
지금껏 어떤 상황에서도 울린 적 없던 전화기가 바로 이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겁에 질린 눈으로 전화기를 바라보던 서장은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어 올렸다.
곧이어 수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장, 기대 이하로군.”
서장은 그대로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낮고 굵은 목소리, 그것은 분명 청장의 목소리였다.
“처, 청장님…….”
“알마티의 서장 자리를 맡기면서 내가 한 말 기억하나?”
알마티의 LAPD 서장 자리는 수많은 경찰 보직들 가운데 가장 권위가 높은 자리였다.
군대 수준으로 무장된 병력과 통금을 비롯한 각종 정책의 자율성, 거기에 청장 직통의 핫라인.
사실상 센트럴 경찰청장의 심복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이자, 승진이 보장된 자리였다.
당시 임명을 받고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던 와중에 청장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제부터 알마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자네가 져야 하네.”
다른 구역 서장에 비해 많은 병력과 자율성을 부여받은 만큼 알마티 LAPD 서장에게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른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서장은 황급히 말했다.
“아,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조기에 진압해서 아무 염려 끼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할 거야.”
청장은 당연하다는 듯 짧게 말했다.
“알마티에 주둔한 병력과 투입된 예산의 의미를 증명하게. 엉뚱한 데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야.”
청장의 의지는 명확했다.
알마티 지하 도시는 오늘 사라진다. 알마티의 오점과도 같던 주민들 역시 사라질 것이다.
더불어 서장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학살이라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고자 계산기를 두드린 서장의 행위는 청장에게 이미 파악된 상태였다.
청장의 눈과 귀는 어느 곳에나 존재했고, 모든 구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제 손금 보듯 빤히 알고 있었다. 알마티 도심에서 불길이 오르자마자 곧바로 직통전화가 온 것만 보아도 청장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처럼 청장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서장은 감히 스스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정치적 계산을 했다.
서장은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청장님, 기회를… 기회를 주십시오! 바로잡겠습니다.”
이제 서장은 아예 사정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 아니, 경찰로서의 생명을 쥐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서장의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들은 청장은 그저 짧게 지시했다.
“모조리 쓸어버려.”
그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서장은 창백해진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입술을 깨물었다.
서장실에서 상황을 지켜볼 때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서장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지하에서 기어 올라오는 반란 분자들을 모조리 없애 버려야 한다.
마음을 굳힌 서장은 그대로 서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곧이어 서장의 고함 소리가 알마티 LAPD 본부 전체를 울렸다.
“주둔 병력 전원 무장해! 내가 밖으로 직접 나간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