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13화 (114/220)

113화 사라진 불꽃 (3)

피투성이가 된 채 바이크에 오른 사내, 그리고 곡도를 든 채 바이크 앞을 막아선 복면 남자.

“에취! 큼큼, 이거… 분위기가 심각한데? 에, 에취!”

페이진은 연신 재채기해 대며 코를 훌쩍였다.

“아까부터 왜 그래?”

“근처에 강아지나 고양이가 있는 거 같은데… 내가 털 알레르기가… 에취!”

“정말 골고루 하네.”

“난들 이러고 싶어서 이러나?! 에… 에취!”

카츠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고, 민호는 짧게 혀를 찼다.

바로 그때, 바이크에 오른 안드레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 너희들! 저놈과 한편이 아니라면, 당장 가서 대장들을 불러와! 내가 놈을 막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곡도를 든 복면이 그대로 셋을 노리고 내달렸다.

“내가 가지.”

선두에 서 있던 민호가 카빈소총을 비스듬히 내려 로우 레디(Low―ready) 형태로 쥐고는 앞으로 나섰다.

민호의 행동을 본 복면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린다.

“정신 나간 놈.”

구식 소총을 들고 나서는 것도 우습지만, 소총을 들고 근접전이라도 하겠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오는 꼴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전투에 그 누구보다 익숙한 복면 사내, ‘하딘 다마스커스’의 눈에 민호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에취!”

페이진의 재채기 소리를 신호로 곡도가 현란한 원을 그리며 연달아 민호에게 날아들었다.

캉!!

곡도와 소총의 개머리판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충돌했고, 쇠와 쇠가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

어지럽게 날아드는 곡도를 마치 춤추듯 흘려낸 민호가 그사이 소총을 빙글 돌렸다.

곡도의 칼바람 속에서 통쾌한 장전 소리가 울린다.

철컥!

현란한 스핀 코킹으로 장전을 마친 민호가 그대로 튀어 오르며 총구를 하딘의 머리로 고정시켰다.

카캉! 탕!!

소총 발사 직전, 찰나의 순간 날아든 곡도가 총구를 틀면서 총탄은 애꿎은 벽에 박힌다.

하딘은 쉴 틈 없이 아크로바틱한 연결 동작으로 다시금 민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소총으로 무장한 민호를 상대로 어떻게든 근접전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였지만, 민호 역시 거리를 벌리기는커녕 전면전으로 맞불을 놓았다.

민호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수십 개의 곡선을 그려 내는 곡도를 회피했고, 그사이 소총을 재장전했다.

“이 자식!”

그제야 민호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하딘은 칼을 잠시 거둔 채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러나 민호는 그런 하딘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 도리어 바짝 파고들었다.

“감히!!”

하딘이 당황하며 휘두른 곡도가 다시금 허공을 가른다. 그 틈새로 민호의 총 끝이 날카롭게 찔러 왔다.

“큭!”

잠시 균형을 잃은 하딘이 순간 휘청였다.

그사이, 소총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탕!

하딘은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했지만, 총알이 스쳤는지 팔 부위가 붉게 물들었다.

하딘은 앞서 보여 주던 여유 따윈 온데간데없이 으르렁거렸다.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잔재주를 부려?!”

곡도를 고쳐 잡은 하딘이 다시금 달려들었고, 변칙적인 공격이 쏟아졌다.

때로는 빠르게, 또 때로는 느린 듯 날카롭게 곡선을 그린다.

부드럽게 원처럼 흐르다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질러 오거나, 내려치다가 방향을 틀어 헤집어 오기도 했다.

그러나 철저하게 몰아붙이는 가운데, 도리어 조급해지는 쪽은 하딘이었다.

‘어째서 닿지 않지?’

민호는 너무나도 쉽게 모든 공격을 받아넘겼을 뿐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해 오고 있었다.

탕!

쏘아진 세 번째 탄알이 하딘의 뺨을 스친다.

어느새 하딘의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했고, 호흡 역시 가빠진 상태였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하딘이 압도적으로 민호를 몰아붙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하딘은 칼은 민호에게 닿지 않았고, 지쳐 가는 쪽은 하딘이었다.

민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충실히 하딘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하딘을 압박해 들어갔다.

‘무의미하다.’

곡도의 춤이 멈춘다.

결국 하딘은 현재 자신의 힘만으로 민호를 제압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공격을 멈춘 하딘은 양팔을 내리고 가만히 서서 눈을 감았다.

철컥!

쾌속 장전을 마친 총구가 무방비 상태의 하딘을 겨누었다.

‘…뭐지?’

하딘은 싸움을 포기한 듯 갑자기 일체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근육이 완전히 이완된 가운데, 숨 역시 가늘어졌다.

민호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묘한 불안감을 느꼈지만, 그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재빨리 총구를 하딘의 머리에 고정시켰다.

꿈틀.

순간, 아무 움직임도 없던 하딘의 어깨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움찔거렸다.

물러서야 할까.

‘아니. 이대로 끝낸다.’

찰나의 망설임 끝에 민호는 입술을 깨문 채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렇게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하딘이 맨손으로 총구를 붙잡았다.

“더는 못 참아 주겠군. 적당히 상대하려 했더니만…….”

눈을 감은 하딘의 입에서 마치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같은 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와 동시에 하딘의 손에 붙잡힌 총구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기기기긱―

쇠로 된 총구가 마치 엿가락처럼 휘고 있었다.

오로지 팔의 완력만으로 총구를 꺾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민호가 곧장 총에서 손을 떼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하딘의 다른 쪽 손이 민호의 목을 잡아챘다.

“컥!”

예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고 재빠른 몸놀림이었다.

쿵, 쿵, 쿵.

요란한 심장박동과 함께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기라도 하듯 하딘의 근육들이 마구 꿈틀거렸다.

그사이, 붙잡힌 민호의 몸은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발버둥 치며 하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 했지만,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불쾌한 떨림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팔과 함께 온몸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 털이 돋아난다.

곧이어 하딘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짐승의 호박빛 눈동자가 이를 악문 민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 눈을 보는 순간, 민호는 온몸이 경직되는 느낌을 받았다.

“크르르…….”

노란 털에 검은 반점 무늬, 벗겨진 복면 사이로 드러난 이빨과 손발톱.

그것은 영락없는 표범의 모습이었다.

탕!

바로 그때, 어딘가에서 총성이 울렸다.

* * *

“에취!”

페이진은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도 전투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민호는 하딘의 공격에 맞춰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취하고 있었다. 이제 하딘의 처지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와 같았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거미줄은 몸을 죄어 갈 뿐이었다.속도나 힘의 문제가 아니다.

민호가 가진 재능은 바로 ‘눈’이었다.

곡도의 움직임이 현란하게 주의를 분산시키는 가운데, 민호의 시선은 줄곧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칼끝이 아닌, 그 검을 잡은 하딘의 몸뚱어리를 향하고 있었다.

민호는 하딘의 어깨와 옆구리 근육, 손목과 팔놀림 등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들을 완벽에 가깝게 포착해 냈다.

현란한 움직임 속에도 버릇이나 패턴이 있기 마련이고, 압도적인 힘이나 속도를 가진 적이라 해도 미리 공격의 방향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다면 오히려 몰아붙일 수 있다.

페이진 역시 민호와의 결투를 치러 본 적이 있기에 그 실력을 알고는 있지만, 완벽에 가까운 회피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나는 대체 지금껏 뭘 한 거지?’

민호의 실력은 페이진을 아득히 앞서 있었다. 근접전으로 상대한다면, 결코 민호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당주, 보고 있어?”

대답이 없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치열한 교전을 뒤로한 채 발전소 쪽으로 내달리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카츠미는 어느새 전투 현장을 가로질러 바이크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당주!”

깜짝 놀란 페이진이 급히 뒤를 따라붙으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페이진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니, 무언가가 페이진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우우우웅…….

어딘가에서 묘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페이진은 움직임을 멈춘 채 가만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울음소리의 근원은 발터에게 받은, 탄창 없는 권총이었다.

그것은 마치 짐승의 울부짖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망령의 비명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총을 쥔 순간, 차가운 냉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에 전해지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매캐한 화약 냄새가 사방을 덮은 가운데, 권총에서 회색빛이 뿜어져 나왔다.

환상인지 실제인지 구분조차 어려운 가운데, 페이진은 홀린 듯 권총을 빼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사방의 모든 필드와 구조가 페이진의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발터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자네는 사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나름 총기의 전문가라 자부해 온 페이진이다.

그동안 수백, 수천 발을 쏘았고, 웬만한 총기들은 전부 수집해 다루어 보았다.

그러나 발터는 그런 페이진의 대답에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아직 모르는군. 사격의 대가에게는 수백, 수천 발의 총알이 필요하지 않다네. 당연히 총기의 종류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지.”

그리고 이제는 발터가 한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캐한 화약 연기 속.

단 한 발로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 축,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는 기둥, 그리고 하딘의 심장과 관자놀이까지…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온다.

민호가 가진 눈이 투사의 것이라면, 지금 페이진의 눈은 그야말로 사격수의 것이었다.

늘 저돌적으로 맞부딪치며 무모하게 총탄을 쏟아붓던 페이진이다. 그러나 이 순간, 페이진은 눈앞에 펼쳐진 필드를 보며 전율하고 있었다.

“…….”

지금껏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침착하게 가라앉으며 전체 상황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격수의 시야, 사격수의 풍경.

난사하며 총알을 낭비하는 멍청이는 명사수라 할 수 없다.

명사수는 무수한 움직임 속에서 핵심을 꿰뚫어 보고 찰나의 순간 최선의 판단을 내린다.

“크… 으으윽…….”

민호의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탄창 없는 권총을 들어 올린다.

어느새 짐승의 형상으로 변신한 하딘이 민호의 목을 붙잡고 있었다.

평소라면 흉측하게 변해 버린 놈의 모습에 놀랐을 페이진이지만, 지금 이 순간 사냥감의 겉모습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히죽 웃을 뿐이었다.

“어쩐지 짐승 털이 휘날리더니…….”

불안정한 심장의 박동, 터질 듯 팽팽히 부푼 근육의 파열음, 미세하게 꺾인 허리와 튀어나온 어깨.

강인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약점 투성이의 불안한 모래성일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눈을 가졌다 한들, 그에 걸맞은 실력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페이진은 총알이 괴물의 몸뚱어리를 뚫을 수 있을지, 아니, 애당초 총을 발사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커어억…….”

붙잡힌 민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다급한 버둥거림도 천천히 멈춰지고 있었다.

조금 더 늦는다면 민호는 괴물의 손아귀에서 숨이 끊어질 터였다.

…3.

키릭.

심장부를 겨눈다.

…2.

숨을 참은 채 최소한의 떨림과 진동을 모조리 가라앉힌다.

…1.

탄창 없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탕!

깔끔한 총성과 함께 회색빛을 머금은 총탄이 하딘을 향해 날아갔다.

* * *

카츠미는 민호와 하딘 간의 교전을 틈타 발전소 앞에 세워진 바이크 쪽으로 달려온 참이었다.

바이크에 탄 사내는 두 사람의 교전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을 거지?”

카츠미의 목소리에 바이크 핸들을 잡고 있던 안드레이가 고개를 돌렸다.

“너희는… 대체 누구지?”

쾅!

“크라아아아악!!”

뒤쪽 연구실에서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요란한 굉음이 들려온다.

카츠미 역시 그 소리를 듣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안에서 누가 싸우고 있군.”

카츠미는 안드레이의 대답을 듣지 않은 채 가만히 발전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봐!”

안드레이가 그런 카츠미를 불렀지만, 카츠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순간, 카츠미의 온 신경은 오로지 자신의 옆구리에 찬 검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우웅―

막야에게 받은 사인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린다.

전투용으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보검이 검붉은 빛을 내며 떨리고 있었다.

보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묘한 고양감과 함께 지독한 피 냄새가 느껴진다.

바이크를 탄 남자의 피, 그리고 특히 발전소 쪽에서 풍겨 오는 지독한 피의 냄새.

그것은 매우 묘한 느낌이었다. 마치 검이 자신을 휘둘러 달라고, 피를 마시게 해 달라고 울부짖는 것처럼 느껴졌다.

카츠미는 마치 홀리기라도 한 듯 짙은 피의 냄새가 풍겨 오는 발전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천천히 사인검을 뽑아 들었다.

핏빛으로 빛나는 사인검으로부터 ‘요기’라 부를 법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카츠미는 발전소의 철문을 겨누며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그즈음, 뒤쪽에서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