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10화 (111/220)

110화 남매 (3)

해가 진다.

데엥― 데엥―

한때 교회였던 건축물의 축대에 위치한 종이 도시 전체에 울렸다.

검은 안경을 쓴 클라이드 바토리는 느긋하게 거리를 누비며 주변 풍경을 지켜보았다.

주민들은 경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종소리는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울렸지만,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에 대해 저항하거나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아니, 아예 의문을 표하지도 않는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종소리에 따라 충실히 움직일 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주민들은 무엇을 믿고 LAPD의 명령에 순순히 복종하는 걸까?

그들의 지시를 따르는 게 자신들에게 이로울 거라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센트럴과 LAPD가 자신들을 지켜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틀렸다.

센트럴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수호자까지도 모조리 살해한 이들이다.

그런 자들이 누구인들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센트럴이 제국과 전쟁을 치르던 당시, 전투순양함 플루톤의 활약으로 제국들을 때려 부수며 승리를 거듭하던 와중 센트럴에게도 단 한 번의 위기가 있었다.

제국 연합군이 보유 군단을 전부 끌어모아 센트럴 사령부를 포위, 타격한 사건이었다.

센트럴 사령부를 지키는 병력의 숫자는 연합군 병력과 비교해 현저히 부족했기 때문에 승리는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그날, 단 300명의 센트럴 특수부대가 수만에 이르는 제국 연합군을 전멸시키는 기적이 일어난다. 연합군을 막아 낸 300명은 바토리 일족의 소울 능력자들이었다.

센트럴 지배자들에게 ‘수호자’라 칭송받은 바토리 일족은 유전적으로 강력한 소울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센트럴에는 그런 능력을 개발할 기술력이 있었다.

플루톤이 상공을 지배하는 동안 수호자들은 전 대륙을 누볐다. 수호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수많은 제국군을 박살 냈으며, 무수한 도시를 파괴했다.

“우리는 전 대륙에 평화를 가져오고 싶었단다.”

클라이드는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당시 전쟁에 참여한 이유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제국들은 다른 민족을 탄압하고 식민지를 넓히며 수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우리의 선조들 또한 야만스러운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모든 것을 빼앗겼단다.”

제국주의자들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했으며, 조잡한 창칼로 무장한 바토리 일족의 선조들을 마음껏 유린했다. 원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그들의 영토를 제멋대로 나눠 가졌다.

“결국 제국은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압도적인 힘을 가진 우리들의 손에 무너지고 말았지.”

화약과 기갑부대로 무장한 군단들은 소울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바토리 일족의 부대를 막아 내지 못했다.

불과 석유에 이은 제3의 에너지, 소울을 다루는 바토리 일족은 오버테크놀로지, 그 자체였다. 날아오는 포탄을 맨손으로 막아 냈고, 자유자재로 기상과 환경을 바꾸었으며, 불가사의한 힘으로 제국군의 화기들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전쟁은 센트럴의 승리로 끝났고, 제국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러나 제국을 무너뜨린 직후, 바토리 일족은 자신들이 꿈꾸던 평화가 허상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어느새 또 다른 제국주의자들을 비호하고 있었던 게야. 아니, 우리 자신이 제국주의자가 되어 가고 있었어.”

전쟁이라는 광기 속에서 바토리 일족은 너무도 많은 이들을 살해했다.

비록 전쟁이 끝났지만, 대륙민들은 징집된 자신의 아버지를, 형제를, 아들을 죽인 바토리 일족에게 원한을 품었다. 그 모든 학살의 책임은 오롯이 바토리 일족에게 뒤집어씌워졌다. 그리고 센트럴은 대륙민들을 달래기 위해 수호자였던 바토리 일족을 망설임 없이 버렸다.

그 누구도 바토리 일족을 보호하지 않았고, 곧이어 바토리 일족을 상대로 한 테러 행위가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하루하루 일족의 참전 용사들이 비참하게 죽어 나갔다.

바토리 일족은 의회 의석과 함께 정치적 발언권을 요구했고, 바토리 일족에 대한 센트럴 차원의 적극적 보호를 요청했다.

그러나 센트럴은 침묵하고 방관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는다. 애당초 바토리 일족의 역할은 사냥개에 불과했다.

결국 바토리 일족은 센트럴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센트럴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규모 토벌군을 조직했고, 바토리 일족을 철저하게 학살했다. 토벌군은 바토리 일족에 원한을 갖고 있던 연합군 전사자의 유자녀들로 구성되었다.

클라이드의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비롯한 일족 대부분이 학살당했으며, 클라이드와 보니를 비롯한 아이들은 센트럴의 실험실로 끌려갔다.

클라이드는 실험실에서 탈출하기 전까지 잔혹하고도 지독한 실험을 견뎌 내야 했다.

그 와중에 클라이드가 의식을 유지한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다.

동생 보니를 지켜야 한다는 그 한 가지 의지였다.

클라이드는 동생을 찾기 위해 다시금 센트럴의 사냥개가 되었다.

* * *

“정말 이래도 괜찮겠소?”

LAPD 서장은 안절부절못하며 벌써 다섯 번째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명령장은 받았을 텐데. 그럼 그저 그 명령에 따르는 게 당신 일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을 벌이면 폭동이 날 수도 있어요.”

“그런 사태를 막으라고 당신들이 있는 거지.”

서장은 입술을 깨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클라이드를 노려보았다.

“그만둡시다. 내게 시간을 조금만 더 주면, 내가 직접 의원들을 설득하도록 할 테니…….”

“이미 늦었소.”

“뭐?”

“이미 임무는 시작되었거든.”

야간 통금과 함께 클라이드의 부하들은 이미 움직인 상태였다.

“이런 미친!”

서장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휘청거렸다.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던 서장이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는 클라이드를 향해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악마 같은 놈! 이게 다 네 놈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지? 바토리 놈들이 살인에 미쳐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감히 내가 보호하는 도시에서 이런 짓을 벌여?!”

바토리 일족은 눈부신 금발에 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투명한 피부를 특징으로 한다. 아마 서장은 그런 외관으로 클라이드의 출신을 눈치챈 것 같았다.

서장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보고 있던 클라이드가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키 작은 서장 앞에 바짝 다가섰다.

검은 안경 너머로 핏발 선 서장의 눈을 내려다본다.

문득 서장이 자신의 붉은 눈동자까지 보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졌지만, 안경을 벗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당신 손을 떠났어. 당신은 그저 맡은 일만 잘하면 된다는 뜻이야.”

클라이드는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서장의 어깨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그대로 서장실 문을 열어젖혔다.

그 와중에 서장이 소리를 꽥꽥 질러 댄다.

“두고 봐라! 윗분들이 너같이 저주받은 바토리 놈을 언제까지 곁에 둘 것 같으냐? 네놈은 곧 버려질 거다!”

“알고 있어.”

클라이드는 짧게 대답한 뒤, 그대로 서장실을 빠져나와 버렸다.

아무리 발악해도 서장은 결코 센트럴의 명령에 저항하지 못할 것이다.

서장은 그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면죄부를 받기 위해, 최소한의 핑곗거리라도 만들기 위해 저항하는 척할 뿐이었다.

심지어 그가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자신이 바토리 출신의 클라이드에게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차피 벌어질 일은 벌어진다. 결국 지하 도시에서 반란은 벌어질 것이고, 한바탕 도시가 뒤집어진 뒤, 센트럴에 의해 진압될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그랬듯 말이다.

다만, 저 무능한 서장이 오늘 밤,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

클라이드가 경찰서를 빠져나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검은 후드를 쓴 남자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불은 완전히 꺼졌습니다.”

클라이드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이왕이면 일을 좀 더 쉽게 만들었으면 좋겠군. 루키우스를 없애버리도록 해. 놈이 없다면 일은 더 간단해질 거다.”

“네, 알겠습니다.”

루키우스가 없다면 반란은 훨씬 쉽게 진압될 것이다. 어쩌면 LAPD의 힘만으로 막아 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장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알마티를 완전히 센트럴의 손아귀에 넣는 게 클라이드의 임무였다.

명령을 내린 뒤, 클라이드는 가만히 알마티 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태일과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는 아직 꽤 시간이 남아 있다. 그전에 최대한 일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다.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주변 수색에 대한 건입니다.”

“뭐라도 찾았나?”

“그게… 숲에서 이상한 흔적들을 찾았습니다.”

“흔적?”

검은후드가 대답 대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돌멩이를 관통한 나뭇가지. 아니, 정확하게는 관통한 것이 아니라 나무와 돌멩이가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결합해 있었다. 나무껍질이 돌멩이의 위아래를 감싸고 있는 걸 보니, 마치 나뭇가지가 돌멩이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건 뭐지?”

“숲에서 이런 것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마치 생태에 무슨 변화라도 생긴 것처럼…….”

“잠깐.”

클라이드가 다른 손을 들어 올려 검은후드의 말을 막았다.

눈앞에 있는 기괴한 형태의 오브젝트는 분명 어떤 능력의 결과물이었다.

“그럴 리가…….”

클라이드가 놀란 듯 신음을 흘리자, 검은후드가 살짝 고개를 들고 클라이드를 바라보았다.

“팀장님?”

“가서 팀원들 전부 모아.”

“루키우스의 제거는…….”

“다마스커스 형제면 충분하겠지. 둘만 보내고, 나머지는 지금 당장 정문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검은후드는 골목길 사이로 스며들 듯 사라졌고, 루키우스는 한동안 손 위의 돌멩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움켜쥐었다.

‘뮤테이션(Mutation)’, 물질의 성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능력.

클라이드가 아는 한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보니, 정말 너냐?”

* * *

“다시 한번 말해 봐. 뭐라고?”

아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집사에게 되물었다.

방금까지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음악을 듣고 있던 아크의 얼굴은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

“아가씨께서 50구역의 세력을 규합해 49구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50구역에는 마피아와 레지스탕스, 거기에 로보티안까지 있어. 그걸… 규합했다고?”

“소수이지만 LAPD도 합류했다고 합니다.”

“하.”

아크 탈로스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토해 냈다.

센트럴이 탄생한 이래 무수히 싸워 온 마피아와 레지스탕스가 함께 움직인 것만으로도 놀랄 일이건만, 금융 버블 사태로 인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린 로보티안까지 규합했다.

“어쩌면 내가 누님의 능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

바로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백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49구역에서 기계병단에게 패배한 뒤, 아크에게 구출된 사이비 교주 백련이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팔자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흐흐흐.”

아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헤실거리는 백련을 노려보았다.

“뭐가 그렇게 우습죠?”

“아,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군. 난 그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도리어 신기해서 말이지.”

백련은 아크의 굳은 얼굴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도련님, 당장 다 죽게 생겼는데 원한이니 명분이니 따질 여유가 있을 리 없잖아? 놈들도 살아 보겠다고 발악하는 거지.”

아크는 굳이 그런 백련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지만, 이번 일이 그리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50구역을 쓸어버리기 위한 토벌군이 몰려온다 해도 마피아와 레지스탕스가 손을 잡는 일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로보티안이 어떤 존재인가. 레지스탕스는 로보티안을 센트럴 지배의 상징처럼 여기며 혐오했고, 마피아들은 짐승 이하의 존재로 여기며 천대했다.

그런 세력들의 연합은 카렌의 중재 능력 없이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님은 정말이지 끝까지 고집을 부리시는군.”

청년당을 자극해 센트럴 오더를 뒤엎으려 하더니, 이젠 직접 50구역의 세력들을 이끌고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49구역에 발을 들인 연합 세력이 기계병단과 손을 잡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게다가 그런 놈들의 무력시위가 의회에까지 전해진다면, 공들여 쌓은 탑이 일거에 무너질 수도 있다.

결국 마음을 굳힌 아크가 백련을 바라보았다.

“백련, 준비하세요. 49구역으로 가야겠습니다.”

“후후, 49구역이라면 내 땅이야. 당연히 이 몸이 가야지.”

“저도 갑니다.”

“…뭐? 도련님이 직접?”

아크는 두 번 말하지 않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횃대 위의 독수리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요. 직접 갑니다. 아무래도 누님을 만나 봐야겠어요.”

한 쌍의 독수리들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날개를 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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