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지하 도시의 망령 (2)
“여기…가 입구라고?”
카츠미 역시 코를 감싸 쥔 채 자신의 눈앞 ‘입구’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눈앞에 보이는 ‘구멍’은 어떻게 보아도 입구라기보다 쓰레기 투입구였다. 온갖 오물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고, 정체 모를 끔찍한 악취가 풍겨 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미끄럼틀처럼 만들어진 쓰레기 투입구.
바로 그 투입구를 통해 지하 도시로 들어가야 한다는 민호의 말에 카츠미와 페이진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농담이겠지? 여, 여기를 내려간다고?”
“그래.”
민호는 담담히 대꾸하며 방호복을 착용했다.
그 와중에 굳은 얼굴의 카츠미와 페이진에게 나름의 조언까지 건넸다.
“피부가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라. 안에 들어가서 뭐든 함부로 만지지 말고.”
“말도 안 돼… 지하… ‘도시’라면서?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적어도 입구는 있을 거 아냐!?”
“지하 도시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그저 쓰레기장일 뿐이지.”
태일은 어느새 코트를 벗어 배낭에 넣은 뒤, 방호복 착용까지 마친 상태였다.
방호복 상태를 확인한 태일이 방독면을 쓰기 직전, 카츠미와 페이진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가기 싫다면 여기 남아 있어도 좋아.”
“…망할!”
페이진과 카츠미는 이를 갈면서 마지못해 방호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으으, 대체 이게 뭔 꼴인지…….”
페이진은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방호복에 투덜거렸지만, 더 큰 문제는 방독면이었다.
“후우, 후우…….”
방독면을 쓰는 순간 숨이 답답하고 소리도 먹먹해졌다.
카츠미 역시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듯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더듬거리며 자신의 보검과 막야의 사인검을 옆구리에 낀다.
그렇게 한창 뒤뚱거리며 방호복과 방독면에 적응하는 찰나, 귓가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려 왔다.
“간다!”
곧이어 민호와 태일이 차례로 투입구를 향해 몸을 던졌고, 빠른 속도로 미끄럼틀을 타고 사라져 갔다.
카츠미와 페이진은 한동안 녹색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투입구 안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곧 마음을 굳힌 듯 차례로 투입구 안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몸을 던짐과 동시에 방독면 안면부는 온갖 점액질과 정체불명의 안개에 뒤덮이고 말았다.
퍽!! 퍼퍽!
“으아아아!!”
페이진은 뻐근한 허리를 매만지며 기다시피 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입구의 미끄럼틀에서 빠져나온 직후에도 얼마간 데굴데굴 굴렀기에 온몸이 뻐근했다.
“으으으윽, 썅… 망할!”
반쯤 울먹이며 안면부의 끈적한 것들을 닦아 내던 중 페이진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나?”
태일이 페이진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태일의 방호복 역시 정체 모를 찌꺼기와 점액질 따위로 뒤범벅이 되어 있지만, 조금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은 듯 담담한 목소리였다.
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민호가 비틀거리는 카츠미를 부축하고 있었다.
“제길, 다신 안 할 거야, 이런 거. 다신 안 올 거라고. 내가 왜… 왜 이런…….”
“괜찮아 보이네. 이봐, 거긴 어때?”
페이진은 정신을 반쯤 놓은 채 횡설수설했지만, 태일은 오히려 그런 페이진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돌려 민호 쪽을 바라보았다.
민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손으로 O를 만들어 보였다.
태일은 페이진을 부축한 채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산들.
적어도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봉우리들이 산재해 있다.
무슨 독성을 품었는지 알 수 없는 연기가 사방에 가득한 가운데, 거대한 집게발을 가진 기체(機體)가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태일은 바로 그 집게발의 기체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건 과거 테러 사건 직후에 호텔 지하에서 본, 개조된 메타휴먼과 같은 모습이었다.
집게발 기체 한가운데 박힌 얼굴의 붉은 눈동자가 태일 쪽을 향한다.
“기분 정말… 엿 같군.”
태일을 보고도 무심히 고개를 돌려 제 할 일에 열중하는 메타휴먼을 보며 태일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메타휴먼이 어떤 존재인지 대강 알게 된 지금, 태일에게 있어 개조된 메타휴먼의 모습은 그저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간 태일 일행은 말없이 쓰레기 더미의 사잇길을 하릴없이 걸었다.
가끔 인기척이 느껴졌지만, 고급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한 태일 일행을 경계한 듯 상대 쪽에서 먼저 피했다.
“여기에 와 본 적 있나?”
민호가 태일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누구든지 처음 지하 도시에 도달하면 충격에 빠져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바로 뒤에서 비틀비틀 걷고 있는 카츠미와 페이진이 그랬고, 민호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사실에, 아니, 이런 세계에 사람이 산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일은 줄곧 지나치게 침착했다.
그건 분명 이런 세계의 존재를 처음부터 알고 있던 자의 태도였다.
“…그래, 딱 한 번.”
태일은 다른 세계의 알마티 지하에 잠입한 적이 있었다.
알마티의 레지스탕스 세력과 연합하기 위해 도시에 잠입한 것이었고, 상부에서 밀려난 이들이 모여 살아간다는 지하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름의 목적을 갖고 지하에 내려온 태일은 모든 기대와 희망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자유에 대한 갈망, 독립에 대한 의지, 평등에 대한 외침… 이른바 저항 의식.
그 모든 것은 지하 도시에서 와닿을 리 없는 허상에 불과했으니까.
지하에는 오로지 쓰레기 더미만이 가득했다. 깨끗한 물과 식량이 부족했고, 주민들이 보유한 방독면조차 대부분은 불량이었다. 햇빛도, 달빛도 들지 않기에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조차 알지 못했다.
당장 내일의 삶이 보장되지 않는 가혹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미쳐 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태일의 눈앞에 있는 지하 도시는 분명 당시와 달랐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인기척들. 그건 주민들의 것이 아니다.
붉은 눈동자의 메타휴먼들이 방독면조차 쓰지 않은 채 지하 공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대한 집게발의 몸뚱어리로 개조된 채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는 메타휴먼들 역시 전에는 없던 광경이었다.
그 와중에 기력을 다한 듯 그대로 쓰레기 더미 한가운데에 쓰러져 버린 메타휴먼도 보였다. 그렇게 부서진 녀석들은 결국 그 자신이 폐기물로 전락해 버렸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끔찍해졌어.”
민호는 그런 태일의 말에 온갖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한 시간가량 걸었을 무렵, 태일 일행의 방호복 안쪽은 땀으로 절여져 있었다.
걸어가면 갈수록 주변 온도는 치솟아 오르고, 뿌연 연기는 더욱 짙어졌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피로에 지친 카츠미의 물음에 민호가 천천히 팔을 들어 올려 저만치 치솟은 불길을 가리켰다.
꺼지지 않는 불, ‘야나르(Yanar)’.
지하 도시에서는 바로 이 불꽃이 태양을 대신한다.
“저 근방에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어. 거의 다 왔다.”
지하 도시 전체를 밝힐 정도의 불꽃은 24시간 쉬지 않고 불타오르며 각종 쓰레기와 연료들을 태운다.
야나르는 지하 도시 주민들에게 유일한 온기이자 앞을 밝히는 빛이었으며, 지상에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조달했다. 즉, 지하 도시는 거대한 폐기물 처리장임과 동시에 열병합 발전소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다.
키리리릭… 끼긱…….
한편, 불꽃에 가까워질수록 거미처럼 개조된 메타휴먼의 숫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었다. 사방에서 쓰레기가 떨어지는 와중에 쉴 틈 없이 분리하고, 그렇게 분리된 쓰레기를 어디론가 운반하는 메타휴먼들의 모습은 이제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키리리리…….
태일과 눈이 마주친 메타휴먼이 고개를 돌려 주변의 부품 잔해물을 집는다.
태일은 주변의 수많은 붉은 눈동자들이 틈틈이 이쪽으로 집중된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LAPD인지, 다른 제3의 존재인지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태일 일행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 공격하려는 기색은 없었다.
메타휴먼들의 붉은 눈동자에 담긴 것이 적의인지, 두려움인지, 그도 아니라면 단순 경계심인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뒤, 태일 일행의 눈앞에 야나르를 중심으로 세워진 거대한 장벽이 나타났다.
“도시라고 했지, 그러고 보니.”
가쁜 숨을 몰아쉬던 페이진이 장벽 앞에 서서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고철이나 폐기물 따위로 쌓아 올린 벽.
그것은 분명 지금껏 보아 온 쓰레기 더미들과는 달랐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폐기들과 빈틈없이 매워진 벽면에는 분명 인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벽면을 중심으로 공중에 둘러쳐진 불투명한 막이 눈에 띄었다.
“자, 이제 어쩔까? 저 벽을 부수고 들어가기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벽을 타 넘어야 하나?”
“아니.”
철컥!
카츠미가 페이진의 말에 답하며 칼을 고쳐 잡았다.
“우리를… 맞으러 온 거 같은데?”
삐이이이이이이!!
잠시 뒤, 사방에서 거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땅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거대한 몸체의 압착진개차[Pack Truck], 이른바 청소차 서너 대가 마치 탱크처럼 왼쪽에서 몰려온다.
“다들 긴장 풀어.”
태일은 제각기 무기들을 움켜쥐는 카츠미와 페이진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를 공격하려 했으면 기회는 여러 번 있었어.”
이미 뒤쪽에서는 수많은 개조 메타휴먼들이 쓰레기 산 위에서 저마다의 일손을 멈춘 채 태일 일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제야 태일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 페이진이 쓴웃음을 흘렸다.
“그랬군. 이미 감시하에 있었단 말이지.”
한편, 민호는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다가오는 차량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고는 그대로 두 팔을 들어 올린 뒤,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들에게 해를 끼칠 의사는 없어!”
끼이이이익!!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차량이 멈춰 섰다.
곧이어 차량 위에 달린 조잡한 음향 장치에서 어두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무를 밝혀라.]
“우리는…….”
민호가 잠깐 고민하듯 말꼬리를 흐리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외쳤다.
“루키우스 씨를 만나러 왔다!”
민호의 목소리가 울린 뒤, 얼마간 특장차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 * *
지하 도시의 중심부.
그곳에는 이른바 ‘시청’이라 불리는 건축물이 존재한다.
그저 쓰레기뿐인 지하 도시에서 그나마 멀쩡하게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기에 더욱 돋보였다.
그리고 이 시청에는 당연하게도 지하 도시의 ‘시장’이 머무른다.
단칸방으로 지어진 건물은 곧 시장의 집이었고, 작업실이었으며, 접대실이었다.
“오늘따라 나를 찾는 손님이 많군.”
구겨진 양복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턱수염, 상처투성이의 손을 가진 노인이 한숨을 내쉬며 푹 꺼진 소파에 앉았다.
“그래, 어디 한번 먼저 온 손님의 이야기부터 듣도록 하지.”
노인의 앞에는 딱딱한 표정의 금발 남자가 홀로 서 있었다.
남자는 노인을 빤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가지 지시가 있다, 루키우스.”
“지시? 당신이… 나에게?”
노인이 시꺼먼 이빨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첫째, 이곳에서 생산되는 모든 전력을 센트럴로 공급해라.”
“잘 모르는 모양인데,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은…….”
“알마티는 곧 대부분의 기능이 정지된다.”
순간, 노인의 입에서 미소가 씻은 듯 사라졌다.
“둘째, 지금 찾아온 녀석들을 내게 넘겨.”
금발 남자는 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삐이이이이이이!!
때마침 창밖으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