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90화 (91/220)

90화 비공정 다빈치 (1)

“그러니까… 진짜 너도 가겠다고?”

“당연하지. 내가 뭐 때문에 인간이 됐는데?”

녹스의 폭탄선언에 놀란 딘이 입을 뻐끔거렸다.

간신히 이네사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프랑켄이 녹스의 옆에 서서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제가 잘 보호하겠습니다.”

“웃기지 마! 절대 안 돼!”

“어린애의 모습이다 보니 좀 불안하시겠지만…….”

“얘를 만드는 데 포트리스 에너지의 8할을 끌어다 썼단 말이야! 그런데 지금 와서 그냥 떠나겠다고?! 양심도 없냐? 어?!”

“…….”

딘이 녹스의 안부를 걱정한다고 여긴 프랑켄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얼굴이 되었다.

반면, 녹스는 빤히 예상했다는 듯 팔짱을 끼더니,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하, 어처구니가 없네. 어이, 가짜 딘.”

“뭐, 뭐?! 가짜?”

불량스러운 표정과 ‘가짜’라는 표현에 완전히 얼이 빠져 버린 딘은 입을 딱 벌렸고, 듣고 있던 태일과 프랑켄 역시 할 말을 잠시 잃고 말았다.

“지금껏 텅 빈 요새를 몇 년 동안 이만큼이나 지켜서 고이 넘겨줬으면 감사 인사는 못 할망정, 뭐가 어쩌고 어째? 양심이 없는 게 누구지?”

“아니, 누가 넘겨 달라고 했어?!”

“아, 몰라. 네가 데려온 친구들이 있잖아. 전력 공급 방법도 꽤 있고. 안 그래? 그러니까 징징거리지 말란 말이야. 어디서 어리광을 부리는 거야?”

귀여운 소녀의 얼굴을 한 채 딘을 몰아세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한편으로 웃기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걱정스럽기도 했다.

당장 그녀가 따라가려고 하는 건 다름 아닌 태일이었으니까.

태일이 한숨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왜 굳이 우릴 따라가겠다는 거지?”

“글쎄, 오히려 내가 필요한 건 그쪽 아닌가?”

“…….”

“내가 없이도 저걸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겠어?”

타탁!

녹스가 손을 들어 올려 병기창 안쪽, 거대한 무언가를 가리키자, 병기창 내부의 조명이 켜진다.

병기창 내부에 있던 물건이 조명의 빛을 받아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다.

“자, 잠깐! 설마 저걸 갖고 간다고?! 어? 안 돼, 절대 안 돼!”

충격을 받은 딘이 다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페이진과 카츠미의 탄성이 들려왔다.

“세상에… 저건 대체?!”

“이런 빌어먹을, 저 괴물은 대체 뭐지?!”

한때 셸터에 속한 민호 역시 그런 물건이 있는 줄 몰랐던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이런 게 있었다고?”

한편, 가장 뒤에서 따라오던 라비와 장 영감은 비공정의 모습을 보고는 놀란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저 한참 뒤, 장 영감이 나지막이 중얼거렸을 뿐이다.

“신이시여…….”

불이 밝혀진 병기창 안에 놓인 거대한 몸집의 기체, 그건 바로 거대 비공정이었다.

비공정 ‘다빈치(Da Vinci)’.

녀석의 이름이었다.

항공 기술은 역사 시대 말기의 세계대전 당시, 병기의 발달과 함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당시 제국들은 항공기를 운용하여 폭격을 펼쳤고, 항공 전력을 두고 경쟁했다.

그러나 전쟁이 한창이던 역사 시대 말기까지 기갑이나 함대와 비교해 항공 전력의 역할은 과소평가되었다.

― 전쟁사에서 공군이 결정적인 전력이 될 수는 없다.

역사 시대 말기, 어느 얼빠진 지도자는 그렇게 말하며 항공 기술을 평가절하할 정도였다. 그러나 바로 몇 년 뒤, 항공 기술은 역사를 완전히 끝장내 버렸다.

센트럴이 공중 전투순양함, 플루톤(Pluton)을 발진시킨 것이다.

내부에 수백 기의 전투기를 품은 채 일대 수십 킬로미터에 일시 폭격을 퍼부을 수 있는 괴물.

오버테크놀로지의 결정체인 플루톤은 전투의 양상 자체를 완전히 바꿔 버렸다.

플루톤은 마치 하늘을 떠다니는 성채와 같이 상공에 군림하며 제국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순식간에 박살 냈다. 전쟁 후반부, 제국들이 연합해 구성한 3천여 기의 전투기 병력은 단 열두 대의 플루톤에 격파당했고, 전 대륙의 제공권은 센트럴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플루톤을 막아 낼 방법을 찾지 못한 병사들은 소총을 마구 쏘아 댔지만, 플루트의 갑주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구형 전투기 한 대조차 추락시키기 힘든 화기들로는 플루톤을 상대할 수 없고, 플루톤의 무차별적 폭격 아래 제국들이 차례로 무너졌다.

전쟁이 끝나고 역사 시대의 종말을 선언한 후, 센트럴 정부는 항공 기술의 역외 유출을 철저히 금지시켰다. 항공 기술의 위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당연한 조치였다.

장난감 수준의 드론이 LAPD에 보급되긴 했으나, 인간을 태우고 날 수 있는 비공정의 연구와 개발은 엄격히 금했다.

태일의 세계 역시 하이퍼루프와 고속철도 등 육상 수단의 진보가 있었지만, 항공 기술만큼은 단단히 봉인되었다.

가끔 제멋대로 항공 기술을 실험한 과학자들이 있었지만, 모조리 반역죄로 붙잡혀 교수대에 올랐고, 하늘은 오로지 센트럴 지도부의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봉인을 본인의 기술력만으로 간단히 풀어 버린 녀석 단 한 명 있었다. 바로 미치광이 천재, 알렉세이 딘이었다.

딘은 비공정 ‘다빈치’를 제작했고, 5년 동안 태일은 다빈치를 이용해 대륙을 오가며 게릴라 작전을 펼쳤다.

그 다빈치가 지금 태일의 눈앞에 있었다.

태일은 다빈치에 가까이 다가가 황금색 몸체와 먼지 쌓인 프로펠러를 살폈다.

“어, 어?!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이봐……!”

딘과 녹스가 한목소리를 내며 황급히 태일의 뒤를 쫓아온다.

둘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태일은 가만히 다빈치의 몸체에 손을 올렸다.

유선형의 몸체로 날렵한 형태를 띠고 있는 몸체와 박쥐를 닮은 양 날개, 그 아래쪽의 프로펠러.

먼 과거, 위대한 천재의 도안에서 착안한 다빈치는 산업 시대의 잿빛과 달리 선연한 황금빛을 띠고 있다.

‘역시 조금은 다르군.’

엔진의 크기가 훨씬 크고, 조종간의 형태 역시 기억 속 다빈치와는 다르다.

태일은 포트리스에서 느낀 이질감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리고 비공정의 꼬리 쪽에 새겨진 음각, ‘2015’라는 숫자를 보면서 그 이유를 확실히 알았다.

비공정은 약 7년 전 제작되었다.

딘이 혁명군을 위해 다빈치를 제작한 시기는 2017년도였으니, 지금 눈앞의 다빈치는 그보다 2년 전에 제작된 물건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 포트리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빈치의 초기 버전이었군.”

“초기 버전? 그게 무슨 소리지?”

태일의 중얼거림을 들은 녹스가 물었다.

“다른 곳에서 다빈치의 다음 버전이 만들어졌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래, 맞아. 5년 전, 알렉세이 딘은 다빈치의 다음 버전을 만들었어.”

태일의 말을 들은 녹스의 얼굴은 벙찐 표정이 되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오랫동안 대륙 곳곳을 뒤졌는데……. 대체 넌 어디서 온 거야?”

한편, 그사이 태일의 손끝으로 푸른 전력이 집중되고 있었다.

치지지직…….

푸른 전류가 황금빛 구동부를 감싼다.

쿠구구구… 우우우웅!!

그러자 다빈치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 * *

“넌 이런 게 있다는 걸 몰랐냐?”

“…그래.”

페이진의 물음에 딘은 조용히 대꾸하며 다빈치를 올려다보았다.

아마 이런 비공정이 잠들어 있는 줄 알았다면, 포트리스를 그냥 방치해 두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다.

“넌 대체 뭐야? 레지스탕스로 자랐다면서?”

카츠미는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젠 알 수 있었다.

눈앞의 비공정을 만들어 낼 정도의 과학력을 가진 조직이라면, 이미 50구역의 레지스탕스는 물론, 마피아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이미 목격한 기계병들과 비공정만으로도 마피아뿐 아니라 50구역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조직을 상대로 복수를 입에 담은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민호가 복잡한 표정의 카츠미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셸터가 대륙에 나타난 건 7년 전이야.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

“당시 페노제가 무너졌지.”

페이진과 카츠미 역시 모를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50구역의 주민이라면 그 누구도 모를 수 없는 대형 사건이었다.

7년 전 8월 29일 새벽, 인적 끊긴 환락가 사거리에 누군가가 페노제를 습격했다.

총소리와 비명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지만,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다.

모든 범죄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승전기념일. 환락가에서도 이날만큼은 사적 복수와 무제한적 폭력이 허용되고,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마 페노제가 무너질 거라 상상한 이는 없었다.

페노제는 거대 대부 업소를 운영하며 압도적인 자금력을 갖추었다. 상인들은 고리대금에 시달리며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였고, 페노제는 그렇게 긁어모은 돈으로 독보적인 부를 쌓아 올렸다. 당연하게도 페노제의 빌딩에는 센트럴 일류 보안 장비와 최신 무기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날이 밝은 뒤, 사람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사거리 한 면을 차지하고 있던 페노제의 건물은 철저히 파괴되어 있었다. 덩굴이 건물 전체를 감쌌고, 온갖 종류의 꽃들이 건물 곳곳에 피어나 있었다.

건물 안, 페노제의 마피아들은 가시덩굴에 온몸이 묶인 채 각 층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건물 옥상, 숨통이 끊어진 채 발견된 페노제 보스의 몸뚱어리는 이끼에 뒤덮여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한세연…….”

환락가 한가운데 기괴한 숲을 만들어 낸 마녀.

그녀의 습격으로 인해 7년 전 성인식은 열리지 않았다. 아니, 이후로도 성인식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마피아들은 ‘페노제’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행위조차 꺼렸다. 그것은 미지의 힘에 대한 공포였고, 환락가 전체에 각인된 트라우마였다.

“그분이 바로 셸터를 이끄는 대장이었어. 난 그분과 함께하기로 맹세했고.”

페노제가 무너지면서 동시다발적으로 페노제의 고아원들 역시 모조리 불타 사라졌다. 당시 고아원장들의 목을 모조리 베어낸 자가 바로 첫째, 민호였다.

“난 그분을 따라 이곳까지 왔지만, 간부가 되진 못했어. 아니, 될 수조차 없었지.”

민호가 본 셸터의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차원을 뛰어넘는 괴물들이었다.

아스팔트 바닥에서 새로운 생명을 피워 내는 마녀, 아무렇지 않게 거대한 건축물을 하룻밤 새에 만들어 내는 과학자, 시간의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시간술사, 온갖 종류의 동물들과 소통하는 야수 조련사까지.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그들 앞에서 민호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대체 이렇게 엄청난 조직이 어째서 페노제를 무너뜨린 거지? 왜… 당주를, 할아버님을 살해한 거야?”

“마피아들은 결코 손대서는 안 되는 물건에 손을 댔어.”

“…….”

소울벌룬(Soul Ballon).

카츠미 역시 자켄에게 들었기에 이젠 알고 있었다.

한세연이 페노제를 공격한 이유이자, 태일이 마로트를 부순 이유.

심지어 민호는 마로트가 남긴 SB 공장을 탐낸 카게구미와 천중회의 당주들까지 살해하려 했다.

“셸터는 미래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알고 있었어.”

사이비 신도처럼 확신에 찬 민호의 말에 카츠미와 페이진은 잠깐 동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눈앞의 비공정 다빈치와 포트리스는 명백한 현실이었다.

거짓말 같은 오버테크놀로지의 존재를 목격한 이상, 민호의 정신 나간 말조차도 쉽사리 부정할 수는 없었다.

“좋아, 알겠어. 그럼 그렇게 대단한 녀석들이 지금은 전부 어디로 사라진 거지?”

“나도 모르겠어. 5년 전, 갑자기 전부 자취를 감추었어.”

“…….”

페노제를 무너뜨린 한세연 역시 5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셸터의 흔적은 찾았지.”

민호는 기체 위에 손을 얹고 있는 태일을 바라보았다.

포트리스와 녹스, 다빈치의 존재는 물론, 세연과 딘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남자.

그는 5년 전 사라진 셸터 간부들의 이후 행보를 알고 있다.

잠시 뒤, 태일의 손에서 푸른빛이 퍼져 나감과 함께 다빈치가 우렁찬 엔진음을 내기 시작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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