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포트리스의 기억들 (7)
성인식을 마치고 마피아가 된 아이들은 곧 깨닫는다.
성인이 되기 위해 손에 묻힌 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그렇게나 동경하던 ‘어른’이란 것이 결국 조직의 도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마피아가 된 아이들은 대개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조직간 벌어진 전투의 선두에 섰다가 칼을 맞기도 하고, 조직에서 발을 빼려다 살해당하기도 했다.
막내라는 이유로 가장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곳에 던져진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그저 살기 위해 싸워야 한다. 행여 도망치려 한다면 잔혹하게 살해당할 뿐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은 점차 살인에 둔감해졌고, 감정이 망가졌다. 그 와중에 살인을 즐기는 괴물이 태어나는 것은 필연이었다.
괴물들은 살인을 저지를 때의 흥분에 중독되어 끊임없이 날뛸 공간을 찾아 헤맨다.
그들에게 성인식의 뒤처리를 담당하는 폐기반은 유희였다. 살인을 모르는 애송이들을 살해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더없이 즐거운 게임이다.
…분명 그럴 터였다.
“뭣들 하는 거야, 병신들아! 죽여, 죽이란 말이야!”
폐기반의 팀장이 부하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누구도 셋을 향해 달려들지 못했다.
“끄, 끄으으으윽…….”
“제기랄, 아, 아파!”
사방에 흥건한 피와 신음 소리. 전부 폐기반의 것이었다.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폐기반의 열댓 명이 전투 불능 상태에 놓였다.
“이 머저리들이!”
아직 멀쩡한 녀석들마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살인에 대한 욕구를 압도할 정도의 이성적 두려움이 발목을 붙잡는다.
“빌어먹을!”
팀장은 입술을 깨물며 눈앞의 소년을 노려보았다.
최고의 유망주라 불리지만, 아직까지 성인식을 치르지 못한 겁쟁이.
살인의 맛을 모르는 애송이.
그런 첫째가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불현듯 깨닫는다.
“망할 늙은이 같으니.”
첫째가 칼을 역수로 쥔 채 팀장을 향해 내달렸다.
폐기반마저도 결국 잠든 괴물을 깨우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팀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투기장에 오른 건 우리였나.”
“…빌어먹을.”
꼴통은 지금껏 누군가에게 지는 상상을 해 본 적 따위 없었다.
그만큼 자신의 힘과 재능을 믿었다.
덩치 큰 선배를 향해서도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부당하게 매를 든 선생의 이마에 박치기를 날렸다.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아도 주먹질과 발길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이빨로, 손톱으로 악착같이 상대의 살점을 찢는다.
누구든 상관 없었다. 악착같이 싸우면, 끝까지 가면 결국 자신이 이길 거라고, 그렇게 막연히 믿었다.
그러나 이젠 알았다.
어린애 같은 오기로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꼴통과 카츠미가 제각기 폐기반 한 사람씩을 살해하는 사이, 첫째는 섬전과 같은 움직임으로 폐기반 다섯의 팔다리를 날려 버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그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조차 없었다.
피에 굶주린 폐기반의 까마귀 가면들조차 겁을 집어먹은 채 달려들지 못할 정도였다.
압도적인 힘.
그것은 천재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능력이었다.
첫째의 움직임에는 조금의 군더더기나 당혹감도 없다.
상대를 확실히 제압하면서 목숨 또한 해하지 않는다.
반면, 꼴통은 까마귀 가면 한 사람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은 직후, 걷잡을 수 없는 떨림으로 인해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
인생 첫 살인의 무게란 그런 것일 터다.
“저런 지독한 새끼…….”
꼴통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첫째의 선택은 나약함 따위가 아니었다.
‘불살(不殺)’. 그것은 오히려 압도적 강자이기에 허락되는 선택지이다. 강자만이 관철할 수 있는 길이다.
“하아, 하아…….”
카츠미 역시 까마귀 가면 하나의 목을 베었다.
끈적한 피가 검날에 엉겨 붙은 가운데 묵직한 떨림이 손을 타고 전해 왔다.
가면 때문에 죽어 가는 그의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그 고통은 고스란히 전해 왔다.
첫 실전에서 처음으로 벤 무사였다.
무겁다. 사람을 벤다는 것의 무게를 처음으로 느낀 카츠미는 이를 악문 채 간신히 버티고 서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 전장에서 유일하게 날뛰는 이는 사실상 첫째뿐이었다.
“대체… 대체 어떻게…….”
지금 첫째의 힘은 준과, 아니, 지금껏 보아 온 무사들과는 결을 달리할 정도였다.
애당초 비슷한 나이대의 소년들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의 무력은 환락가 전체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것이었다.
과연 카게구미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무사는 몇이나 될까?
‘오라버니는 본 거구나, 진짜 첫째의 힘을.’
단 한 번의 패배로 준의 영혼은 부서졌다. 그러나 본신의 힘을 드러낸 첫째 앞에서 카츠미는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준은 첫째를 보며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때껏 50구역을 통일하고, 센트럴과 맞설 정도의 세력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던 준. 그의 앞을 이름 모를 고아가 막아섰다.
자신과 동갑이되, 비교할 수조차 없는 재능을 가진 고아 소년.
그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었을 것이다.
카츠미는 입술을 깨문 채 전투를 멈추고 첫째를 응시했다.
이미 전투는 멈추었다.
꼴통과 카츠미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첫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 무대는 오로지 그를 위해 준비된 것이다.
꼴통과 카츠미도, 심지어 그가 지키려 한 아이들과 폐기반마저도 조연에 불과했다.
전장의 중심에는 오로지 첫째가 있을 뿐이다.
첫째가 무딘 칼을 역수로 고쳐 잡았다.
“설마…….”
카츠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곧이어 첫째는 적의 무리 한가운데로, 명령을 내리는 적의 보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저런 미친!”
꼴통 역시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돌격에 놀랐지만, 첫째의 패배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첫째라면 돌파를 성공시킬 것만 같았다. 당장에라도 팀장의 목을 베어 버릴 것만 같았다.
폐기반 서너 명이 황급히 그 앞을 막아섰지만, 첫째의 칼에 옆구리가 베이거나 팔이 날아갔다.
그 와중에 팀장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첫째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살인을 각오한 눈이군.’
첫째의 첫 살인, 그 대상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건 바로 폐기반을 이끌고 그의 동생들을 학살한 팀장, 바로 자신이다.
아마 페노제의 영감탱이는 이 상황을 예상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늙은이 같으니.”
팀장의 손이 허리춤으로 향했다.
품에서 번쩍이는 쇠붙이가 나온다.
철컥.
성인식에 결코 등장해서는 안 될 무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 돼! 위험해!”
깜짝 놀란 꼴통이 고함을 내질렀지만, 이미 총구는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첫째를 똑바로 겨누고 있었다.
탕!!
총성과 함께 첫째의 몸뚱어리가 기울어진다.
“아, 아아……!”
곧이어 총구가 꼴통을 향했다.
“안 되지, 안 돼.”
팀장의 까마귀 가면 뒤편으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나를 너무 만만히 봤어.”
그러고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드러난 얼굴은 꼴통 역시 아는 얼굴이었다. 자신에게 첫째에 대해 귀띔해 준 바로 그 선배다.
“미안하게 됐어, 꼴통.”
“당신이 어째서……!”
“선배한테 말버릇하고는. 뭐, 원래 그런 녀석이었지, 너는.”
“말해.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야?”
“보다시피. 이번엔 우리 천중회에서 폐기반을 맡았거든. 그런데 일이 좀 꼬였어. 우린 그저 너희가 싸울 판을 깔아 주려 했을 뿐인데 말이야.”
팀장이 싸늘한 눈으로 쓰러진 채 꿈쩍하지 않는 첫째를 힐끗 바라보았다.
시작은 사소했다.
페노제 고아원장과 천중회 폐기반은 비밀리에 첫째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첫째가 성인식 중 누군가에게 죽거나 죽인다면 자네들의 승리로 하지.”
어느 한쪽의 승리나 패배가 아니다. 단지 첫째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해당하면 무조건 이기는 승부였다.
폐기반 팀장은 천중회 쪽 후배 중 가장 저돌적이고 단순한 꼴통을 자극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둘 중 하나가 죽을 판을 깔아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꼴통은 첫째를 살해하지 못했다. 반대로 살해당하지도 않았다.
“싸움을 포기한 놈을 살려 두다니… 너답지 않잖아. 안 그래, 꼴통?”
팀장이 팀을 탁 뱉고는 이를 갈았다.
“기분이 더럽군. 정말 엿 같아. 이 늙은이가 감히 우릴 도구 취급했다, 이거지?”
원장은 애당초 첫째라고 불리는 괴물을 깨우기 위해 이 판을 짰다.
첫째가 결국 살인을 저지르지 않자 팀장을 직접 충동질하여 나서도록 만들었다.
“망할 영감탱이 같으니…….”
원하던 결말은 아니었다. 아마 원장 역시 팀장이 총을 소지한 채 폐기반 활동에 참여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괜찮겠어? 이런 짓을 하면 당신들, 전부 무사하지 않을 텐데?”
꼴통이 팀장을 노려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성인식은 마피아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팀장은 아직 성인식이 끝나기도 전에 개입했을 뿐 아니라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마피아의 규칙을 위반한 팀장은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
그러나 팀장은 히죽 웃으며 반문했다.
“우리가? 어째서?”
팀장이 일부러 이쪽 골목에 ‘눈’을 설치하지 않았기에 보스들은 이곳의 상황을 보지 못한다.
카메라는 단 한 대. 그조차도 페노제 고아원장과 함께 몰래 달아 놓은 것이니, 카메라를 부수고 원장만 없앤다면 증거는 없다.
“난 그저 성인식 전날 내 총을 몰래 훔쳐 사용한 너를 즉결처분했을 뿐인데.”
팀장이 비열하게 웃으며 총구를 꼴통의 머리에 겨누었다.
“이 개자식이……!”
눈치 빠르게 상황을 읽은 폐기반 까마귀들이 다시금 꼴통과 카츠미의 주위를 둘러쌌다.
카츠미 역시 이 사건의 목격자이고, 이들의 표적이었다.
카츠미가 주변의 까마귀들을 노려보며 나지막이 경고했다.
“카게구미는 반드시 천중회에게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겁니다.”
순간적으로 총구의 방향이 돌아간다.
탕!
“큭!!”
카츠미가 칼을 떨어뜨리며 오른팔을 감싸 쥐었다.
“카게구미의 꼬맹이, 너한테도 실망이 커. 너는 그래도 첫째를 악착같이 벨 줄 알았거든. 뭐, 그래도 우리 아가씨는 쉽게 죽이지 않을 생각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주변 까마귀 가면들의 안쪽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개자식이!”
“어어, 움직이지 말라고.”
분노해 날뛰려는 꼴통 쪽으로 다시금 총구가 돌아갔다.
그러나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바로 그 순간, 검은 형체가 갑자기 치솟아 시야를 가렸다.
퍽!
팀장의 손목이 총을 쥔 채로 공중을 날았다.
“끄, 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 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피를 뒤집어쓴 형체가 고개를 돌린다.
첫째였다.
그가 죽은 듯 누워 있다가 벼락같이 팀장의 손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
첫째의 입에서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 둘, 죽기 싫으면 꺼져.”
“당신……!”
카츠미가 뭐라 외치려 했지만, 첫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전부 내 손에… 죽는다.”
퍽!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팀장의 목을 단칼에 날려 버렸다.
첫째의 첫 살인.
팀장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잠시 정적이 흐른다.
첫째의 옆구리 총상에서 흘러나온 피가 이미 하반신 전체를 피로 적시고 있었다.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지 온몸을 떨고 있다.
“저, 저 새끼… 부상을 입었어! 별거 아니야!”
“죽여! 죽여 버려!”
까마귀 가면들의 아우성 속에서 꼴통은 얼이 나간 카츠미의 팔을 붙잡았다.
“무, 무슨……!”
“못 들었어?”
꼴통이 카츠미를 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도망쳐야 해, 지금 당장.”
그렇게 카츠미를 일으켜 뒤쪽으로 몸을 돌린 바로 그 순간, 첫째가 날뛰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가 골목 전체를 울렸다.
* * *
“죽은 줄 알았어.”
12년 전, 성인식 당시에 폐기반은 전멸했다.
그날, 그 골목에 생존자는 없었다.
그 사건으로 인한 파급은 컸다. 천중회와 카게구미가 격돌했고, 페노제의 원장은 살해당했다.
신성한 성인식이 방해받은, 불미스러운 사건은 그렇게 끝났다.
자세한 내막은 보스들이 의도적으로 묻어 버렸고, 첫째의 이름은 들려오지 않았다.
카츠미와 페이진은 성인식의 성공을 인정받았으나, 그날 이후로 첫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가 살아 있는 것조차 모른 채.
“빌어먹을, 12년 전 그 자식이란 말이지? 당신이?”
도끼를 들고 있던 페이진이 얼굴을 감싸 쥔 채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 괴물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어. 그랬지. 하, 하하… 하하하!”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카츠미의 물음에 민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말했잖아. 그날, 첫째는 죽었다고.”
“…….”
“레지스탕스이자 셸터인 나는 여전히 카츠미, 당신의 적이다.”
민호의 그 말이 끝날 즈음, 필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12년 전의 환락가를 구현한 필드의 배경이 무너져 내린다.
안개가 잦아들고, 건물들은 나노 단위의 입자로 화해 사라진다.
다시금 아무것도 없는 반구 안의 필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좋아, 그래. 좋다, 이거야. 그럼 넌 뭐지? 어째서 본 실력을 내지 않는 거냐?”
페이진이 으르렁거리며 캐물었다.
민호는 이번에도 제대로 싸우지 않았다.
그는 단 한 번도 카츠미와 페이진을 상대로 전력을 낸 적이 없었다.
민호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나의 적은 너희가 아니니까.”
민호의 대답을 끝으로 필드에 있던 세 사람의 형체 역시 사라졌다.
셋의 의식은 그렇게 캡슐 안 저마다의 본체로 돌아갔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