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포트리스의 기억들 (1)
“이것참, 내가 지금 꿈이라도 꾸는 건가?”
병상에 누운 장 영감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의 각종 의료 기기들을 둘러보았다.
네 다리의 간호사, 이네사가 자꾸 움직이는 장 영감을 보며 짜증스럽게 다그쳤다.
“움직이지 마세요! 아직 지혈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허어, 거참, 난 괜찮다니까! 괜찮아, 내가 워낙 튼튼… 쿨럭!!”
“안 괜찮아요! 무리하면 상처가 덧날 수 있단 말이에요!”
장 영감은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나 주변 기계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싶은 걸 억지로 눌러 참았다.
수십 개의 수술용 칼이 장착된 로봇 팔과 치료용 캡슐, 정체불명의 렌즈가 가득 붙어 있는 VR 측정기까지.
무엇 하나 평범한 물건이 없으며, 가슴 떨리는 오버테크놀로지의 결과물들이었다. 그런 장비들이 가득한 치료실은 장 영감에게 천국과 다름없었다.
심지어 이네사의 하반신을 차지한 네 개의 다리마저도 그 정교함과 기능성 측면에서 평범한 메타휴먼 개조 장비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장 영감은 아픈 몸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서도 연신 경탄을 쏟아 내기 바빴다.
“이거야 원,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군. 이 정도 기술력이 실존했다니… 이보게, 간호사. 저거, 저 물건은 뭔가? 저 물건 말이야. 길쭉하게 생긴 그거!”
“저건 그냥 키를 측정하고 체지방량과 근육량을 측정하는… 하아…….”
인내심을 갖고 설명하던 이네사는 장 영감이 그사이 침대 옆 다른 물건들을 보기 위해 몸을 꿈틀거리자, 얼굴을 감싸 쥐며 한숨을 내쉬었다.
“라비 씨가 갔으니, 곧 박사님을 모셔 올 거예요. 그러니까 좀 얌전히 좀 계세요, 제발!”
이네사가 장 영감을 다시 바로 눕히며 슬쩍 선반 위를 바라보았다.
의식 회복이 가능할까 걱정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이제는 차라리 수면제를 주사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민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이네사는 어린애처럼 구는 장 영감이 싫지 않았다.
그건 적어도 이네사에게 있어 신기한 경험이었다.
* * *
이네사, 코드명 IA―1874.
그녀는 눈을 뜬 순간부터 용광로에서 일했다.
시뻘건 쇳물을 부은 뒤 온도와 불순물을 점검했으며, 용광로 위 통로를 청소했다.
반복적이고, 특이할 게 없는 업무였다.
언제부터 왜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의문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사건이 벌어졌다.
평소와 같이 동료 메타휴먼과 함께 용광로 위쪽 통로의 청소를 마치고 복귀하던 중 통로의 계단 발판이 부서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그로 인해 IA―1874의 바로 앞에 가던 메타휴먼이 시뻘건 쇳물이 흐르는 용광로로 떨어져 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처음 일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함께 일해 온 메타휴먼이었다.
하지만 IA―1874는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1,200도의 쇳물에서 이름 모를 메타휴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녹아 사라졌다.
IA―1874는 그 끔찍한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다.
놀란 그녀는 급히 관리자에게 달려가 보고했고…….
“뭐야? 에이, 젠장! 재수가 없으려니까!”
관리자의 반응은 그게 전부였다.
사망한 메타휴먼은 겉보기에 관리자와 다를 게 없는 존재였다. 눈, 코, 입, 두 개의 팔, 두 개의 다리… 그저 붉은 눈동자를 가졌을 뿐이다.
그런 존재의 죽음에 대해 관리자는 조금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았다.
메타휴먼의 손실로 인해 배당이 끊어질 것이고, 투자자는 일부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관리자는 시설 관리 부실 건으로 시말서를 써야 한다.
그뿐이었다.
IA―1874는 다음날부터 용광로 위 통로로 올라가길 거부했다.
만약 자신이 앞서 걸었다면, 혹은 발판이 단 한 사람의 무게만 더 버텨 냈다면, 그날 용광로에 떨어지는 이는 자신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
죽음에 대한 공포감, 그것은 곧 삶에 대한 자각이었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공포 못지않게 자신을 한낱 도구로 여기는 관리자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IA―1874가 이지를 얻을 즈음에는 이미 로보티안 법안이 통과된 뒤였고, IA―1874는 제 발로 시청에 찾아가 로보티안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리고 ‘이네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시민권을 취득한 직후, 이네사는 공장에서 해고되었다.
주물공장에서의 해고는 도리어 바라던 바이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이네사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고, 그저 센트럴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갈 수 있을 뿐이었다.
반지하 다락방에서 살아가길 몇 개월.
굶주림을 알고, 질병의 고통을 알았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그녀를 많은 이들이 힐끔거리며 바라보았다.
「메타휴먼에게는 영혼이 없다!」
「로보티안 법안을 폐지하라!」
사방에 로보티안을 비난하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금융 버블이 터지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였고, 로보티안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취객이 시비를 걸어오는 일은 부지기수이고, 몽둥이나 칼 따위를 들고 따라오는 이들을 피해 달아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이네사는 자유의 대가를 배웠다.
인간의 무서움을 알았다.
굶주림에 시달린 로보티안들은 결국 시민들이 기피하면서도 메타휴먼이 대체할 수 없는, 그래서 메타휴먼의 노동보다도 저열한 일을 택했다.
남성 로보티안은 투기장이나 범죄 조직에 의탁했고, 여성 로보티안들은 윤락가에 발을 들였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일자리가 없고, 갈 곳이 없는 로보티안에게 마지막 남은 건 신체뿐이었으니까. 신체의 훼손 가능성이 높은 일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코카서스들도 윤락가나 투기장의 로보티안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신체를 망가뜨리며 근근이 살아가는, 그런 자리만이 로보티안에게 ‘허락’된 일자리였다.
하지만 이네사는 굶는 와중에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직장을 구하려 했고,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LAPD와 센트럴 행정부의 채용 시험을 준비했다.
여러 기업체에 구직 서류를 넣었다.
그리고 운 좋게 서류가 통과된 기업에 면접을 보러 가던 날, 이네사는 테러를 당했다.
괴한은 철봉으로 이네사의 뒤통수를 때려 쓰러뜨렸고, 이어 허리를 내려쳤다.
“사, 살려 줘요!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목청껏 고함을 질러 댔다. 어떻게든 살고 싶어 발버둥을 쳤다.
다행히도 근처에 있던 남자 한 명이 급히 달려왔다.
“이봐, 거기!!”
“퉤, 망할 로보티안! 뒈져 버려!”
괴한은 욕설을 퍼붓고는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달려온 남자가 급히 이네사의 상태를 살폈다.
“괘, 괜찮아요?”
그러나 이네사의 얼굴을, 아니, 눈을 본 그는 곧 경직되어 버렸다.
“제, 제발… 살려…….”
“로보티안…이군.”
“제발…….”
경멸. 혐오.
남자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괴한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너희 로보티안 때문에, 너희 때문에…….”
“제발…….”
남자는 뒤로 물러서며 차가운 눈으로 이네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이네사를 구조하지 않은 채 떠나 버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차가운 길바닥에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 쓰레기차 한 대가 지나치다 이네사를 발견했고, 차를 운전하던 메타휴먼은 매뉴얼에 따라 병동으로 인계했다.
구조는 인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따른 것이었다.
병동에 옮겨진 이네사는 허리가 끊어진 채 방치되었다.
지혈 등 최소한의 조치는 있었지만, 하반신이 마비된 채 침대에 버려졌다.
두어 대의 로봇이 돌아다니며 간신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빵과 물만을 건넸다.
매일같이 로보티안들이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 나갔고, 로봇들은 그저 담담히 사망한 로보티안의 침대를 끌고 나갔다.
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산 것도 아닌 삶.
‘난 대체 어떤 존재지? 어째서 이렇게 태어난 거지?’
이네사를 구하러 왔다가 로보티안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차갑게 돌변한 남자의 시선.
그건 그녀의 모든 희망을 끊어 버렸다.
차라리 자신을 향해 무차별적 폭행을 가한 괴한처럼 악인만을 경험했다면 이처럼 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보티안은 그저 존재 자체로 혐오의 대상이었다.
‘차라리 용광로에 떨어지는 게 나였다면…….’
그랬다면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할 틈조차 없이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영혼 없던 메타휴먼 시절처럼 아무런 감정도, 이성도 없이 그저 죽어 갔을 것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하지만 죽음을 피한 이네사는 더 큰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인간이 두려웠고, 세상이 무서웠다. 자신이 로보티안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끔찍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부로 이네사는 빵과 물을 먹지 않았다. 삶을 포기하려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네사의 병동에 한 사내가 찾아왔다.
“이봐, 괜찮아? 정신 차려! 제길!”
붉은 눈의 남자.
며칠간의 금식으로 정신을 잃어 가던 이네사를 그는 기어코 살려냈다.
“날 그냥… 죽게 둬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그만 죽고 싶어.”
“다리 때문에 그래? 척추가 손상되었지만, 장비가 있으니 다리를 만들 수 있어. 조금은 부족하겠지만…….”
그게 아니라고, 그냥 힘들어서 쉬고 싶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네사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
남자는 이네사가 정신을 잃은 사이 수액을 공급했고, 마비된 하반신을 개조했다.
깨어났을 때, 이네사의 축 늘어진 다리가 있던 자리에는 네 개의 강철 다리가 달려 있었다.
“미안. 아무래도 재료가 부실해 두 개로는 힘이 실리지 않아서 말이야. 나중에 재료가 더 생기면 원래의 다리처럼 두 개를 만들어 줄게.”
“날 왜 살려 냈죠?”
다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멀쩡한 다리를 얻어 다시 밖으로 나간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이네사를 향해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간단하게 대꾸했다.
“살릴 수 있으니까.”
“…….”
“이름이 뭐지?”
“이네사.”
“그래, 이네사. 날 좀 도와야겠어.”
“예?”
“병동을 쭉 둘러보니까 상태가 좋지 못한 녀석들이 많아. 전부 살릴 수는 없겠지만, 노력은 해 봐야지. 대부분은 네 다리처럼 임시로나마 개조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네사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쏟아 내는 남자를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대체…….”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배고프면 일단 빵부터 먹고 따라 나와. 할 일이 많아.”
“…이름이 뭐죠, 당신?”
“아, 나? 말 안 했던가? 내 이름은 알렉세이 딘. 그냥 딘이라고 불러.”
딘은 소년처럼 웃어 보인 뒤, 곧장 병동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복도를 돌아다니던 바퀴 로봇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야야, 인마! 그 침대 빼지 마! 아직 살아 있어. 구할 수 있단 말이야!”
그날부로 이네사는 딘의 간호사가 되어 병동의 로보티안들을 치료했고, 개조에 함께했다.
몇 달간의 병동 생활을 겪으며 그녀는 온갖 수술에 익숙해졌고, 어느새 한 명의 어엿한 의료인이 되었다. 딘을 따라 셸터에 온 뒤로는 각종 의료 장비를 다루게 되면서 사실상 대륙 최고의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네사는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 *
“하, 할아버지를 살려 줘요! 제발!”
온통 피투성이인 두 사람이 치료실로 들어왔을 때, 이네사가 느낀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이네사에게 인간이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네사는 의사였다.
급히 장 영감을 침대에 눕히고 지혈을 시작했다.
총알 파편을 제거하고, 봉합수술을 진행했다.
그사이, 라비는 눈물 콧물 쏟아 내며 장 영감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라비는 이네사의 앞에서 고개 숙였다.
“고마워요, 언니. 정말… 정말 너무 고마워요!”
로보티안인 이네사에게 불쾌감을 표하지 않았고, 순수하게 감사를 표했다.
라비는 이네사의 붉은 눈동자에도, 네 개의 다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라비뿐 아니라 곧이어 깨어난 장 영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호오, 그 다리 재질이 뭐지? 관절 구조가 제법 섬세한데!”
물론 다리의 구조에 대해 호기심을 갖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아, 혹시 무례한 질문이었나? 이 늙은이가 호기심이 많아서 미안하구먼. 그런 의미에서 저기 저 물건은…….”
“움직이지 마세요!”
그저 조금 다루기 번거로운 환자일 뿐이었다.
“어, 허허, 미안하네. 이 늙은이가 호기심이 좀 많아서…….”
그 친절과 배려가 이네사는 익숙지 않았다.
“반대쪽 팔 내리세요! 그쪽도 관절이 상했다고요!”
어쨌든 장 영감은 아주 많이 번거로운 환자였다.
한창 장 영감과 씨름하는 사이, 라비가 딘과 다른 남자 하나를 치료실에 데려왔다.
“고생했어, 이네사.”
“아… 박사님.”
이네사는 딘의 뒤에 서 있는 남자를 곁눈질하며 저도 모르게 살짝 뒤로 물러났다.
여전히 인간은 두려운 존재이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그러나 장발의 남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신태일이라고 합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딘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태일의 부드러운 태도에 이네사는 그만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