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6화 (77/220)

76화 천재의 클론 (4)

“병동을 습격한 건 코가서스 놈들의 비공정이었어.”

“비공정?! 그걸 민간이, 아니, 테러 조직이 갖고 있다고?”

민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테러 조직? 코카서스가? 고작 그 정도일 리가 없지. 놈들의 배후에 누가 있을 거 같아?”

페이진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버블의 붕괴와 함께 탄생한 ‘코카서스’는 지도부가 베일에 싸인 비밀결사였다.

센트럴의 주요 정치 인사들과 사업가들이 속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스스로가 코카서스의 멤버임을 당당하게 밝힌 이는 없었다. 그러나 코카서스가 센트럴 정치 조직과 선이 닿아 있는 것은 빤한 이치였다.

코카서스가 가진 무력과 정치력, 기술력은 지하조직인 레지스탕스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충격을 받은 것은 페이진과 카츠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비공정이라니… 그걸 센트럴이 그냥 방치해 둔다고? 로비로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항공 기술만큼은 절대 민간에 풀지 않았어.”

“비전투용 드론 한 대 얻어 보겠다고 별짓을 다했지만, 그것만큼은 얻을 수 없었어. 심지어 할아버님이 여행용으로 여객기 대여를 요청해도 거절하더군.”

마피아 조직은 사실상 50구역 전체에서 가장 많은 부를 움켜쥔 곳이다. 때때로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치를지언정 그들의 사생활은 사치의 극치였다. 그림 같은 경관을 가진 정자를 짓고, 예술품의 한가운데에서 최고급 식사를 즐겼다.

하지만 그런 마피아조차 비전투용 드론 한 기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코카서스는 거대 비공정으로 전 대륙을 비행하며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다.

“하아… 미치겠군.”

태일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갈수록 가관이라더니, 이젠 비공정이란 말이지?’

태일이 이쪽 세계에 넘어와 목격한 것들 가운데 가장 기괴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메타휴먼과 드론일 것이다.

낡아 빠진 증기기관과 구시대 유물인 리볼버가 아직까지 사용되는 와중에 레일건이 장착된 드론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은 위화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젠 드론보다도 앞서 나간 기술, 전투순양함 ‘비공정’이 전투에 동원된 것이다.

태일이 살던 세계에서조차 전투순양함은 아직 개발 중이었다. 혁명군을 몰살시키기 위해 발진 예정이라는 소문만 있을 뿐이었다.

클론에 이어 이젠 항공 기술까지…….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세상이란 말인가.

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갔다.

“내가 그때껏 살려 낸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살해당했고…….”

부서지거나 폐기된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

엄연히 살아 있는 생명이자 시민인 로보티안들에게는 평온한 죽음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비공정에서 쏟아져 내린 수백 기의 드론들, 엄청난 양의 폭탄들…….

딘은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끔찍한 광경은 딘의 표정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인형 병동에서 딘은 수많은 로보티안들을 치료했고, 개조해 어떻게든 살려 냈다.

하지만 그렇게 구해 낸 로보티안들은 손쓸 틈조차 없이 학살당했다.

그중에는 친구나 동료라 여길 만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어떤 설명도, 협상도 없었어. 그냥 기계적으로 로보티안들을 학살했지.”

이미 세상에서 버려진, 그래서 더는 쓸모를 인정받지 못한 로보티안들을 살해해야 할 당위성 따위 있을 리 없다.

코카서스의 공격은 그야말로 순수한 악의였고, 혐오였다.

그저 로보티안이라는 이유로 코카서스는 총탄을 쏟아부었다.

끼리리리리리.

깡통 로봇이 맥주를 운반해 들어왔고, 잠시 이야기가 끊어졌다.

“난 싸웠어.”

딘은 백련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골렘을 만들어 전투에서 사용했지만,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딘은 죽은 동료의 잔해들을 조립하여 거신병 골렘을 만들었고, 전투의 전면에 나섰다.

아니,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투가 가능한 이는 그 자리에 딘 혼자뿐이었으니까.

한 명이라도 더 구해 내려면 놈들을 막아야 했으니까.

“간신히 비공정을 추락시켰지만, 많은 동료들과 병동을 잃었지.”

딘은 홀로 코카서스의 병력을 막아 냈다.

“추락…시켰다고?”

민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카츠미와 페이진 역시 꽤 충격을 받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태일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센트럴에서 가장 경계하던 인물, 혁명군의 모든 기술력을 담당하던 천재.

그런 남자의 클론이다. 코카서스 따위에게 당했다면 오히려 놀랐을 것이다.

“비공정 조종실 안에는 단 한 명뿐이었어. 이미 사망한 뒤였지만…….”

드론들은 모조리 원격 조종이었고, 비공정 역시 자동 항해였기에 조종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홀로 조종실에 남아 있던 조종사.

“놈의 눈동자… 붉은색이더라.”

코카서스 군단을 이끌고 온 이는 메타휴먼이었다.

이성을 가진 로보티안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딘의 얼굴은 마치 얼음장과도 같았다.

“분수를 알라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르지. 그 넓은 비공정 조종실에 메타휴먼 하나를 넣어 둔 채 로보티안들을 학살한 거야, 그 쓰레기들이.”

틱!

딘은 이야기를 멈춘 뒤, 맥주 캔을 따더니 그대로 들이켰다.

로봇이 가져와 원탁에 올려 둔 맥주는 그 자리에 앉은 모두가 마시고도 남을 양이지만, 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손을 뻗지 않았다.

그저 저마다 생각에 잠긴 채 딘을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뒤, 민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충분히 알겠어. 하지만 아직 내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았어.”

복제인간에 관한 이야기는 민호에게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상상을 한참 벗어난 이야기였고, 당장은 그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당초 민호가 궁금해한 것은 메타휴먼의 정체 따위가 아니었다. 알렉세이 딘을 복제한 남자의 과거 역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대체 어째서 셸터를 사칭한 거지?”

맥주를 들이켠 딘은 한동안 가만히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누군가를 불렀다.

“녹스, 듣고 있지?”

[…그래.]

방송음을 통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중성적 목소리.

하지만 태일은 그 목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포트리스를 지키는 파수꾼이자 포트리스, 그 자체. 딘이 가진 제작자의 능력을 극한으로 발휘해 만들어 낸 존재였다.

“모습을 드러내. 여기서부터는… 네가 설명하는 편이 낫겠어.”

잠시 뒤, 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원탁의 빈자리에 푸른빛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여든 빛 알갱이들이 팔과 다리, 머리를 형성해 간다.

그 모습을 본 페이진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군.”

민호는 경계 어린 눈으로 인간의 모습을 갖춰 가는 영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완성한 영체가 민호를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반가워, 민호.]

“녹스…….”

[잘 지냈어?]

그것은 매우 기묘한 모습이었다. 분명 영체가 민호를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 가고 있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메아리처럼 들렸다.

“설명이 필요할 거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말이야. 셸터는… 어떻게 된 거지? 왜 이 사람이 셸터를 사칭한 거지?”

영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민호와 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난, 오랫동안 버려져 있었어.]

“…….”

[모두 사라졌어.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아무도 말이야.]

“녹스…….”

버려진 인공지능.

딘의 소울로 만들어진 녹스는 딘의 일부와도 같았다.

낮은 수준이지만 자율적으로 사고할 수 있고, 학습할 수 있으며, 감정을 느낀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은 5년 전, 버려졌다.

그리고 지금 영체는 그것에 대해 괴로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카츠미와 페이진은 마치 어린애처럼 투정부리는 영체를 보며 어지간히 놀란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한편, 민호는 녹스를 향해 변명하듯 말했다.

“미안, 녹스. 널 남겨 둔 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나도, 대원들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고 싶었어. 하지만 섣불리 여기로 찾아올 수는 없었어.”

[딘은 잠깐 다녀온다고 했어.]

“…….”

[그리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지.]

긴 시간 홀로 남겨진 녹스는 포트리스를 알렉세이 딘이 기존에 남겨 둔 작업을 계속했다.

포트리스를 보수하고 청소 로봇을 만들었으며,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고독감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그동안 곳곳을 정찰하고, 외부의 정보를 수집했어. 그러다가 얼마 전, 꽤 규모가 큰 에너지 반응을 발견했지.]

코카서스와 딘의 전투 현장이었다.

[당시 포착한 소울의 형질은 알렉세이 딘의 것이었어. 그래, 내 것과 같은. 전투를 마친 딘은 친구들과 함께 사막을 떠돌고 있었지.]

영체에게는 표정이 없기에 감정을 읽을 수 없고, 목소리 역시 녹화된 기계음과 같기에 감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녹스가 딘을 발견했을 당시, 크게 흥분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직접 가서 맞아들였어.]

녹스는 그렇게 한마디로 간단히 사건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딘이 아니야.”

이 자리에 앉은 딘은 로보티안, 즉 클론이다.

[생물학적으로 98.8%가 일치해. 1.2%의 차이가 있지만, 변이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어.]

“아니, 녹스. 이건 변이가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란 말이야.”

[글쎄, 처음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

“…뭐?”

[이제는 이 사람이 진짜 알렉세이 딘이야. 내가 그에게 딘의 지식을 모두 전달했거든.]

민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태일은 그런 녹스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알렉세이 딘의 논리였으니까.

“만약 내 지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건 곧 나야.”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렸지만, 딘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식’으로 규정지었다.

기억과 감정이 아닌, 날것의 지식.

같은 지식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이라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다.

그래서 그는 녹스의 기억장치에 자신의 지식을 백업해 두었다.

녹스는 그런 알렉세이 딘의 관점과 생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었다.

민호는 당황한 듯 입을 뻐끔거렸고, 딘은 말없이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셸터는…….”

[내가 곧 셸터야.]

민호는 당당한 녹스의 주장에 입을 다물었다.

[누가 셸터의 자산을 지켰지? 누가 셸터의 지식을 보존했지?]

알렉세이 딘과 한세연. 그밖에 ‘셸터’라는 조직을 이끌던 지도부는 5년 전 모두 사라졌다.

[바로 나야.]

그렇게 모두가 사라져 버린 상황에서 녹스만큼은 자리를 지켰고, 그들의 모든 것을 보호했다.

이제 녹스는 자신을 곧 셸터, 그 자체라 여기고 있었다.

[내가 딘을 받아들였고, 딘의 친구들을 받아들였어, 민호.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셸터야.]

포트리스를 지키기 위해, 셸터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녹스.

그런 녹스가 이제는 스스로를 셸터의 주인이라 여기고 있던 것이다.

민호는 그런 녹스의 황당한 논리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히려 입을 연 것은 태일이었다.

“헛소리 한번 길게 늘어놓는군.”

[뭐?]

“이봐, 녹스. 혹시 날 기억해?”

[…….]

“이쪽 세계의 넌 날 모를 수 있지만, 난 널 잘 알아. 녹스.”

태일인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영체를 빤히 바라보았다.

“넌 그냥 유치하기 짝이 없는 멍청이야.”

[감히!]

두두두두두…….

순간, 포트리스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이봐?!”

“대체 어쩌려고!”

민호와 카츠미, 페이진은 모두 경악한 얼굴로 태일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로지 딘만은 그 와중에도 꿋꿋이 맥주 한 캔을 더 따고 있었다.

탁!

태일이 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원탁 위에 올려놓았다.

째깍, 째각, 째각.

영체의 시선이 원탁 위의 회중시계로 향했다.

“이 물건을 기억하나?”

[…….]

“어리광부리지 마, 녹스.”

곧이어 실내의 흔들림이 멈추었다.

녹스는 협박을 멈춘 가운데 태일을 빤히 바라보았고, 태일 역시 그런 영체의 시선을 피하지 않앗다.

X―7.

녹스는 결코 이 물건의 주인을 건들지 못한다.

그렇게 긴장된 와중에 갑작스레 구석의 문이 벌컥 열렸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라비가 산발을 한 채 넋 나간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고정되자, 라비가 잠깐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어… 그… 할아버지가… 깨어났어.”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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