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5화 (76/220)

75화 천재의 클론 (3)

“웃긴 얘기지. 안 그래?”

원탁에 앉은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딘의 이야기를 듣는 이들의 얼굴에는 죄책감, 반감, 분노 등 온갖 감정들이 떠올라 있었다.

반면, 태일은 여전히 감정을 내비치지 않은 채 무표정으로 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랬군. 그 최초의 로보티안, F―2020이 바로…….”

“그래, 프랑켄이야.”

카츠미가 태일의 말을 대신 끝맺었다.

그제야 태일은 프랑켄이 받던 시선과 차별, 마피아들까지 은연중에 내비치던 경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종족적 차원의 혐오였다.

“로보티안법의 제정은 한낱 계기에 불과해. 결국 벌어질 일이었지.”

딘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수천 명의 로보티안을 치료하고 개조하면서 그들의 신체 곳곳을 살폈어. 혹시 알고들 있나? 메타휴먼의 신체가 어떠한지, 그 신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말이야.”

딘의 목소리는 마치 학생들에게 무언가 설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담담했지만, 그 말의 내용은 결코 가벼운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감히 딘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로보티안 법안이 제정된 이유.

“로보티안은… 아니, 메타휴먼은 인간과 같아.”

인간과 메타휴먼 사이에 근본적 차이는 사실상 없다.

쾅!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버그가 인간이랑 똑같다니!”

원탁을 내려친 페이진의 주먹이 떨리는 와중에,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분노를 가장했지만, 실제 그가 느끼는 감정은 당혹감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딘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들은 누군가의 ‘클론’이야.”

한동안 테이블에 침묵이 흘렀다.

“클… 뭐?”

페이진이 얼빠진 얼굴로 입을 뻐끔거렸다.

카츠미와 민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카츠미, 페이진, 심지어 민호까지도 ‘클론’이라는 단어와 의미 자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태일은 그 단어를, 그 의미를 알고 있다.

“복제 인간, 즉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인간이라는 뜻이야.”

모두의 시선이 태일에게 집중되었다.

“그게 대체 무슨…….”

“뭘 만든다고?!”

불신과 경악에 찬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클론(Clone), 즉 복제 인간.

그것은 역사 시대 이후 센트럴이 지워 버린 개념이었다.

* * *

1년 전 그날, 태일은 그저 딘에게 무기를 맡기러 찾아갔을 뿐이다.

어쩌다가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 인간을 만들어?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쯧쯧, 과학을 과소평가하지 마.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는 거야.”

“아니, 그건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작은 센트럴이 아니었어.”

하지만 그 자리에서 딘이 태일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역사 시대 말기에 한 독재자가 인간 복제를 시도했어. 우생학[Eugenics]을 연구하던 과학자들이 함께했지.”

“우생학이라면 우월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다는… 그건가?”

세연에게 들은 적 있는 이야기였다.

“그래, 비슷해.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해야 한다는 거야. 우월한 DNA의 특성을 모아 완벽한 인간, 즉 군인을 복제해 내겠다는 프로젝트였지.”

“…말도 안 돼.”

“당연히 실패했지. 그 과학자라는 놈들, 그리 뛰어나지 못했거든.”

딘이 어깨를 으쓱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센트럴은 관련된 사람들을 모조리 체포하고 연구실을 파괴했어. 연구 기록도 모조리 압수하고 소각했지.”

“괴담이군.”

“아니, 실제 있던 일이야. 연구는 실패하고 폐기되었다…라고, 그렇게 사건을 덮었지.”

“덮었다고?”

알렉세이 딘이 히죽 웃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센트럴 놈들은 그 연구를 계속했어. 아니, 확대 발전시켰어. 소울에 손을 댄 거지.”

생명의 근원, 소울.

태일과 같은 능력자들이 가진 힘.

능력자들이 사용하는 힘은 역사 시대 말기에 갑자기 발현했고, 여전히 정체가 규명되지 않은 미지의 힘이었다.

“놈들은 인간 복제를 넘어 소울을 수집하고 증폭시킬 수 있는 그릇을 만들 계획이었어. 그건… 인간을 넘어선, 어떤 새로운 생명체였지.”

딘의 눈동자는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생각해 봐. 소울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서 모든 종류의 능력을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괴물. 그뿐만이 아니야.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영생을 누릴 수도 있어.”

센트럴은 뛰어난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신’을 만들고자 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어지간해서는 놀라는 일이 없던 세연의 얼굴에도 당혹감과 의구심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냐고?”

딘은 낄낄거리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꽤 오래전 그 연구에 참여했거든. 하지만 때려치웠지. 그 모든 걸 파괴하고 탈출했어.”

너무나도 가볍게 말했지만, 미치광이 과학자 알렉세이 딘의 탈출은 일대 사건이었다.

딘은 대륙 히트맨들의 제1표적이었고, 현상금만으로 보면 혁명군 대장인 태일보다도 높았다.

당시 태일은 딘의 설명을 들으며 그 이유를 납득했다.

과연 센트럴 정부가 클론을 연구했다는 사실이 대중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딘의 존재는 그 자체로 센트럴 정부의 존립을 위협했다.

딘은 클론에 대한 모든 연구 기록을 없애고 연구소까지 부숴 버렸다. 그렇게 도망친 뒤, 태일의 혁명군에 합류했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한 거야? 왜 연구를 전부 중지시키고 달아난 거지?”

태일의 질문에 대한 딘의 대답은 간결했다.

“어차피 실패할 연구였으니까.”

그러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태일은 딘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딘의 얼굴에 떠오른 광기와 희열, 그리고 두려움. 그것은 결코 ‘실패할 게 뻔한’ 연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쨌든 이쪽 세계에서 실험은 계속되었고,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든 성공했다.

클론들은 상품으로 대량 생산되었다. 드림코퍼레이션의 ‘메타휴먼’이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알렉세이 딘, 그 자신의 복제 인간마저 제작되었다.

* * *

“인간을 만든다니… 그럼 드림코퍼레이션이 신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카츠미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놈들이 어떤 의도로 어떻게 메타휴먼을 만들게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딘의 붉은 눈동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다만, 놈들에 의해 만들어진 로보티안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는 알지.”

인형 병동의 로보티안들은 대개 처참한 삶을 경험한 이들이었다.

아니, 단지 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로보티안들은 고된 삶을 견뎌 내야 했다.

‘로보티안법’의 제정으로 인해 시민권을 받고 해방되었지만, 그 시점부터 일자리를 잃었다.

기존 메타휴먼과 달리 로보티안에게는 일한 만큼 임금을 주어야 하고, 휴식 시간과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 그야말로 응당 누려야 할 ‘시민으로서의 권리’였으니까. 바로 그 때문에 로보티안은 일자리에서 밀려났다.

당연하게도 사업주들은 소유자에게 약간의 배당금을 지급하기만 하면 노예처럼 마음껏 부릴 수 있는 메타휴먼을 선호했다.

실업 상태에 놓인 로보티안들은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했다.

그나마 복지 차원에서 로보티안을 고용한 정부기관과 LAPD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했고,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춘 경우에나 꿈꿔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결국 시민권의 대가는 빈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보티안들은 사냥의 대상이야.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무차별 학살을 당하고 있지.”

“너희들 때문에 망한 이들이 몇인지나 알고 있나? 그때 하마터면 우리들의 사업장도 전부 무너질 뻔했어.”

페이진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자, 딘이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게 로보티안들 때문인가? 너희의 탐욕 때문이 아니고?”

“뭐? 네가 뭘 안다고…….”

“페이진.”

카츠미가 페이진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제지했다.

태일은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 가만히 질문을 던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카츠미와 페이진, 민호는 의아하다는 듯 태일을 바라보았다.

“모르는 거냐?”

“당신, 정말 어디서 온 거야?”

딘이 한숨을 내쉬며 내뱉듯 짧게 대답했다.

“…금융 버블의 붕괴.”

5년 전, 메타휴먼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금융업계는 메타휴먼의 권리를 사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사들인 권리를 증권처럼 분리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메타휴먼을 기업에 노동 인력으로 제공할 경우, 기업은 소유주에게 노동의 대가, 즉 배당금을 지급한다. 금융 회사들은 바로 이 배당금에 대한 권리를 쪼개 판 것이다.

― 노동 소득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금융 소득으로 안락한 삶을 영위하세요.

― 일은 메타휴먼이, 여가는 당신이.

메타휴먼의 등장으로 인해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퇴직금을 금융 상품에 쏟아부었다.

그것은 본인들의 선택이었을 뿐만 아니라 센트럴의 권고이기도 했다.

배당 상품은 안정성으로 말미암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시민들의 온갖 연금들이 몰리면서 메타휴먼의 배당권은 전 대륙 시민들에게 분산되었다.

일하지 않아도 월급이 지급되는 시대.

그것은 그야말로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그 와중에 금융 회사들은 메타휴먼의 배당권을 담보로 엄청난 양의 대출의 일으켰고, 갖가지 파생 상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거품의 형성이었다.

노동을 멈춘 인간들은 메타휴먼의 소유권, 배당을 사고팔면서 돈을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메타휴먼 증권의 가치는 끝도 없이 치솟았고, 대륙 곳곳에서 벼락부자들이 나타났다.

메타휴먼 증권에서 시작된 금융 호황은 주식과 원자재, 기타 온갖 자산들의 가치 상승으로 이어졌다. 탐욕의 시대이자 황금의 시대였다.

하지만 파티는 짧았다.

배당 상품이 발매된 지 2년 뒤, 로보티안법이 제정되었다.

이성과 감정을 가진 메타휴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

법안이 통과되면서 수많은 메타휴먼들이 권리를 얻었고, 로보티안이 되었다.

당연하게도 로보티안이 상품이던 시절, 소유자에게 주어지던 배당금 지급은 취소되었다.

로보티안의 권리를 인정받은 그 순간부터 노동의 대가는 로보티안 그 자신에게 귀속된다.

제조사인 드림코퍼레이션조차 메타휴먼이 어떻게 영혼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했고, 이는 곧 어떤 메타휴먼이든 로보티안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 불확실성으로 인해 메타휴먼 증권의 가격은 한순간에 바닥을 쳤고, 증권을 담보로 일으킨 레버리지는 고스란히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수백 개의 금융사가 무너져 내렸고, 은행들이 문을 닫았다.

메타휴먼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뒤, 배당과 위험한 투자에 골몰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은 채 부랑자로 전락해 버렸다.

버블의 붕괴였다.

금융 위기 속에서 사람들의 분노는 시민권을 부여받은 로보티안들에게 집중되었다.

각 구역 의회 앞에서 거센 시위가 일었으며, 시위를 막기 위해 출동한 LAPD의 로보티안 경관이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수많은 로보티안들이 산 채로 불태워졌고, 일부 로보티안들은 그에 대한 복수로 인간을 살해했다.

그 끔찍한 혼란 속에서 센트럴은 진압군을 파견했고, 로보티안을 공격하는 인간들과 인간을 공격하는 로보티안들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짓밟았다.

수많은 피가 흘렀고, 소요는 진압되었다.

사건이 터진 지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처는 남아 있었다.

당시 선두에서 로보티안을 때려 부수던 이들은 ‘코카서스’라는 집단을 조직하여 음지에서 버그들을 사냥했다.

로보티안 법안은 폐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만, 일부 메타휴먼은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 뒤에도 그 사실을 숨긴 채 평범한 메타휴먼으로사의 삶을 살아갔다.

“로보티안이 되었을 때 하게 될 일이란 사실 빤하지. 유흥업소나 투기장에 들어가거나…….”

로보티안들은 매춘부로서 혹은 투기장의 투사로서 살아갔고, 그만큼 쉽게 망가졌다.

“…혹은 무법자가 되는 거야.”

신체가 개조되었거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로보티안은 용병단이나 히트맨 조직의 일원으로 들어갔다. 혹은 범죄 조직에 몸을 담기도 했다. 그들은 노동자로 월급을 받는 대신 음지에서 돈을 벌고, 쓰임이 다하면 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 이들이 끝자락에 이르러 닿는 곳이 ‘인형 병동’이었어. 하지만… 그런 안식조차 가만두지 않더군.”

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병동은 코카서스의 공격을 받았어.”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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