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3화 (74/220)

73화 천재의 클론 (1)

“50구역에서의 테러, 너희 셸터라는 놈들이 저지른 사건인가?”

민호에게 묻는 카츠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페이진은 불안한 얼굴로 다시금 카츠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츠미는 그런 페이진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아니, 피해서는 안 될 문제다.

어째서 할아버지가 죽어야 했는지, 다케다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그토록 어렵게 나온 질문이건만…….

“그래.”

민호의 대답은 담백했다.

50구역의 테러에 대해 아무런 핑계도 대지 않았다. 그저 인정했다.

“정확히는 셸터의 잔당들이라는 표현이 맞겠지.”

“잔당…이라고?”

그렇게 쉽게,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는 모습에 카츠미는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을 받았다.

“너희가…….”

카게구미와 천중회를 습격한 RSB 복용자들, 그들 중 하나인 다케다의 손에 카게구미의 전대 당주가 목숨을 잃었다.

“너희가 벌인 짓이란 말이지…….”

당주의 죽음을 계기로 환락가 힘의 균형이 무너지고, 대장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테러 사건이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었다.

그런 정신 나간 행위를 민호는 아무렇지 않게 긍정했다. 핑계도, 이유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히 벌어져야 할 일이 벌어졌다는 태도였다.

“그게 전부란 말이지.”

카츠미는 민호를 노려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철컥.

쇠붙이 소리가 들려온다.

“당주.”

태일이 조용히 카츠미를 불렀다.

“칼을 뽑으면 난 당신의 편을 들어 줄 수 없어.”

태일은 분노에 찬 카츠미 쪽을 바라보지 않았다.

분할 것이다.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태일은 셸터가 막으려 한 미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테러 사건이 없었다면 SB는 유통되었을 것이고, 결국 50구역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카츠미와 페이진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SB로 인해 무너져 버린 세계. 그것은 겪지 않은 자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지옥도였다.

“선택해, 그 칼을 뽑을지 말지.”

협박이라기보다는 경고였다.

칼을 뽑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칼을 뽑게 되면 반드시 누군가는 죽게 될 테고, 태일은 민호가 죽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모처럼 알게 된 과거 동료들의 흔적이다.

“당주!”

페이진이 다급히 카츠미의 팔을 붙잡았다. 물론 그가 카츠미를 말리는 이유는 태일과 달랐다.

셸터의 목적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지금 무엇이 더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제발…….”

“…….”

카츠미 역시 알고 있었다.

50구역에서 가장 중요한 남자, 태일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그 무엇보다 급한 일은 전대 당주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무너져 가는 50구역을 살려 내는 것이다.

지금 50구역에 남은 이들은 오로지 열차가 다시 움직이기만을, 봉쇄가 풀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50구역은 사막으로 변해 버린 49구역처럼 고사당하고 말 것이다.

그녀는 카게구미 전 당주의 손녀이기 이전에 50구역 모든 마피아들을 이끄는 당주이자 대표자였다.

카츠미는 결국 검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대신 민호를 향해 짓씹듯 말했다.

“피는 피로 갚는다. 그게 우리의 법이야. 잊지 마라.”

‘우리’, 즉 마피아. 그것은 역사 시대 때부터 전해 온 단 하나의 법이고, 그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유념하지.”

민호는 카츠미의 경고에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잔당…이라고 했나?”

태일이 다시 말문을 열었을 때, 원탁 위에 올려진 술잔은 모두 비워져 있었다.

“오늘 한 사람은 나에게 셸터에 들어오라고 했고…….”

알렉세이 딘.

“또 한 사람은 내게 셸터의 일원이냐고 물었어.”

민호.

두 사람이 굳은 얼굴로 서로를 곁눈질했다.

“그 두 개의 조직이 같은 건가?”

태일의 질문에 먼저 대답한 이는 딘이었다.

“아니. 내가 말한 셸터는 한 달 전에 만든 조직이야.”

“뭐라고?”

“내가.”

딘의 말에 민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민호가 당장에라도 딘을 죽일 듯 노려보며 물었다.

“알렉세이 딘은 어디 간 거지? 네가 무슨 권리로…….”

“알렉세이 딘을 자처하냐고? 셸터라는 이름을 사용했냐고?”

딘이 민호의 말을 끊었다.

민호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AD―002.”

딘의 한마디에 프랑켄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내 이름이야.”

* * *

남자의 첫 기억은 정체 모를 용액 캡슐 안에서 본 바깥의 모습이었다.

수천수만 개에 이르는 캡슐들이 끝도 보이지 않는 철제 건물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배열된 캡슐들 안에는 잠든 인간들이 벌거벗은 채 담겨 있다.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바로 옆에도 캡슐에 담긴 누군가가 잠들어 있었다.

‘여긴 어디지?’

키리리릭, 키리릭, 키릭.

기계 팔 몇 개가 공중에서 내려온다.

기계 팔 끝에 달린 집게들이 캡슐 몇 개를 쥐더니, 그대로 공중으로 떠올랐다.

끼이이이익…….

캡슐 안에 담긴 인간들은 기계의 진동에 의해 거세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급히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아니, 치려 했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움직일 수… 없어.’

그렇게 눈만 뜬 채, 그저 숨만 쉰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나 혼자만 깨어 있는 거지?’

‘어째서 이런 액체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는 거지?’

‘나는… 누구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 와중에 희미하게 기억들이 떠올랐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남자를 보며 정겹게 웃고 있다.

한 사람, 두 사람… 점점 늘어난다.

분명 낯이 익지만, 누구인지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저분한 옷을 입고, 얼굴이나 몸에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빙글빙글 웃으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제멋대로 팔짱을 끼는가 하면, 머리를 마구 헝클이며 호탕하게 웃기도 했다.

불편하고 짜증스럽지만… 싫지는 않다. 그저 어색할 뿐이었다.

그 와중에 그들의 손에 들린 물건에 눈길이 갔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무기들이다.

‘한심한 녀석들, 고작 그런 무기를…….’

혀를 차는 찰나, 붉은 피가 사방에 튀었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이들이 붉은 피 보라를 내뿜으며 하나둘 사라져 간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남자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그는 과거,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난 그저 내 할 일을 할 뿐.’

모두가 죽어 사라지는 와중에도 남자의 목소리는 그저 차가웠다.

사실이 아니었다.

그들을 그냥 버려두고 싶지 않다.

그들이 그렇게 죽어 가는 모습을, 사라지는 모습을 견딜 수 없다.

사라져 가는 와중에 ‘친구’들은 입을 열어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알렉세이… 딘.’

남자는 결국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냈고, 다시금 잠들어 버렸다.

두 번째 기억.

꿈을 꾸었다.

‘도망쳐, 지금 당장! 네 능력이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잖아!’

남자는 고함을 내질렀다.

홀로그램을 통해 떠오른 상대는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넌 지휘관이야. 알아? 네가 무너지면 내 연구는…….’

거짓말이다. 사실 연구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남자는 지휘관의 생존을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그를 막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알았다. 이 꿈의 결론을 남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그램 속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아서 갈 거야. 포트리스에서 보자.”

포트리스.

지휘관과의 약속을 기억해 내면서 남자는 다시 눈을 떴다.

꿈에서 깨어 주변을 둘러보니, 남자가 담긴 캡슐은 기계 팔에 잡힌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캡슐은 공중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좁은 복도를 지나쳐 어디론가 이동해 가고 있다.

남자는 잠시 눈을 감고 자신이 본 ‘지휘관’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다.

장발에 코트.

그 외에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말한 ‘포트리스’라는 단어만이 계속 맴돌았다.

잠시 후, 집게발에 매달려 도착한 장소는 거대한 원형의 방이었다. 캡슐이 온 벽을 벌집처럼 촘촘히 매운 상태였고, 방의 정중앙에는 검은 탑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 있었다.

남자의 캡슐이 땅에 닿자 기계 팔들이 일제히 방을 빠져나갔다.

쿠구구…….

육중한 철문이 자동으로 닫혀 원형 방이 완벽히 폐쇄된다.

외부로부터 단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가운데, 정중앙 검은 탑 끝에서 묘한 불빛만이 보였다.

그리고 잠시 뒤.

우우우우우우웅…….

마치 탑이 울기라도 하듯 엄청난 굉음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거대한 진동과 함께 원형 공간이 당장 붕괴하기라도 할 듯 마구 흔들린다.

주변 캡슐의 다른 이들은 그 소음과 진동을 느끼지 못하는 듯 가만히 잠들어 있었지만, 남자는 귀를 찢는 소음과 숨쉬기조차 힘든 진동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그 끔찍한 고통 속에서 남자는 똑똑히 보았다. 검은 탑에 금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남자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세 번째 기억.

눈을 떴을 때, 그의 캡슐은 방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앞서 캡슐들이 잔뜩 모여 있던 장소가 마치 공장처럼 보였다면, 지금의 방은 조그마한 창고 같았다.

인적 없는 방 안에는 온갖 쓸모없는 집기들이 가득하다.

남자는 캡슐 안에서 창고 내부를 둘러보며 잠시 생각했다.

앞선 두 개의 기억.

그것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일까?

아니, 지금도 어쩌면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삐익… 삐익…….

캡슐 뒤편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온다.

[감마 단계가 해제됩니다. 코드네임 AD―002. 10… 9… 8… 7…….]

무미건조하게 숫자 읊는 목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방금 들은 코드네임을 되뇌었다.

‘AD―002’.

꿈에서 들은 남자의 이름, ‘알렉세이 딘(Alexei Dean)’의 약자였다.

[6… 5… 4…….]

그리고 뒤쪽의 숫자 2.

‘어쩌면 나는…….’

그때, 캡슐의 용액이 어디론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산소가 코를 타고 흘러 들어온다.

[3… 2… 1…….]

치이이이―

카운트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캡슐이 열렸다.

[해제가 완료되었습니다.]

비틀거리며 캡슐 밖으로 걸어 나온 AD―002는 주변을 둘러보며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알렉세이 딘’이라 불렸다는 사실 이외에는 본인이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딘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창고 곳곳에 쌓인 물건들을 살폈다.

녹슨 파이프, 망가진 도르래, 지저분한 플라스크, 옷걸이와 옷, 상자 가득 쌓인 서류 뭉치…….

딘은 캡슐 옆의 옷걸이에 걸린 셔츠와 바지를 입었다. 그러고는 서류 뭉치들을 집어 들었다.

각종 코드네임들이 어지럽게 적힌 서류의 맨 앞장에는 ‘META―HUMAN’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DREAM CORPS’라고 새겨진 인장이 찍혀 있었다.

* * *

딘의 이야기를 듣던 태일이 가만히 담배를 꺼내 들었다.

딘이 본 사람들… 그들은 혁명군의 대원들이다.

딘이 말하는 지휘관은 다름 아닌 태일, 자신이었다.

그리고 검은 탑.

태일은 그와 비슷한 탑을 이미 알고 있다. 이쪽 세계로 넘어올 당시, 태일 역시 탑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딘의 이야기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나는 메타휴먼이야. 처음부터 누군가의 기억을 가진 채로 만들어진… 불량품이었지.”

딘의 자조 어린 고백에 원탁에 앉은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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