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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71화 (72/220)

71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8)

“쿨럭!”

백련은 검붉은 피를 토해 내며 비틀거린 끝에 볼썽사납게 쓰러졌다.

태일은 가만히 서서 그런 백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츠츠츠츠―

그가 펼쳐 낸 모든 안개는 먼지와 함께 흩어져 버렸고, 이젠 사방을 그저 푸른 전류가 감싸고 있었다.

“이럴 리… 없다.”

잔뜩 일그러진 백련의 얼굴에는 경악과 불신, 그리고 공포가 떠올라 있다.

선택받은 자, 구원자, 전능한 자, 절대자… 백련은 49구역에서 그런 존재였다.

“나는… 나는!!”

그 누구도 그런 백련을 심판할 수 없다.

그 누구도 그런 백련을 무릎 꿇릴 수는 없다.

파츠츠― 퍽!

백련은 발버둥 치며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다시금 무릎이 꺾이며 땅바닥에 엎어졌다.

전류의 영향으로 몸이 마비된 가운데,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황에서 백련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 댔다.

그 와중에 백련이 겹겹이 쳐 놓은 검은 안개는 천천히 걷히기 시작했다.

이제 곧 백련의 모습은 부하들에게, 신도들에게 드러날 것이다.

“나는 전능한 신이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다!!”

백련이 발악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보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결코 보여서는 안 되는 모습이다.

“널 찢어 죽일 것이다! 넌!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백련은 저주를 퍼부으며 악을 써 댔다.

한편, 태일은 프랑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프랑켄은 백련의 추한 꼴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

프랑켄은 팔과 다리가 전부 부서진 상태였다. 그토록 무력해진 백련의 몸에 칼을 꽂아 넣을 수도, 놈의 이마에 총알을 쑤셔 박을 수도 없었다.

“네가 원한다면 대신 놈을 없애 줄 수도 있어.”

“그냥… 두십시오.”

프랑켄이 누운 채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태일에게는 백련을 죽일 힘이 있지만, 백련을 죽여야 할 자는 그가 아니다.

결코 태일의 손을 빌릴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새 안개가 완전히 걷힌 가운데, 주변에서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련 님?!”

“이럴 수가…….”

“구원자께서… 교주께서…….”

백련을 충실히 따르던 신도들은 넋이 나간 채 무릎 꿇은 백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멍하니 넋을 놓은 사이, 신도들은 기계병의 손에 붙잡혀 허무하게 몸이 분쇄되었다.

백련의 명에 따라 그 누구보다 열렬하게 버그들을 추적해 살해하던 신도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기계병에 의해 몸이 찢겼다.

골렘에 의해 온몸이 부스러진 클론터 역시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백련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총소리가 멎었다.

한동안 얼어 있던 용병들이 허겁지겁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빨리 튀어! 캐, 캠프로 가야 해!”

“열쇠, 열쇠 어딨어?!”

용병들은 자신들이 타고 온 개조 차량으로 도망치듯 내달렸다.

전투는 그렇게 백련이 쓰러지며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하지만 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쾅!! 콰쾅!! 쾅!!

기계병단의 폭격으로 인해 용병들이 타고 온 개조 차량 몇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해 버렸다.

키리리리리릭!! 키릭!!

기계병들은 뜻 모를 괴성을 내지르며 집요하게 용병들을 추격했고, 단 한 놈이라도 더 없애겠다는 듯 총탄을 쏟아부었다.

“사, 살려 줘! 내 말 알아듣잖아. 그렇지? 나, 난… 난 아직 어린 아들이 있어. 제발… 제발!”

“나도, 나도 살려 줘! 난 지금껏 너희들을 사냥한 적이 없어. 그러니 제발…….”

퇴로가 막힌 용병 몇이 무릎을 꿇고 이성을 가진 메타휴먼의 동정심에 기댔다.

타타타타타탕!!

“으아아악!!”

그러나 기계병단은 조금의 자비 없이 항복하는 이들까지도 철저하게 살해했다.

메타휴먼의 이성을, 감정을 먼저 무시한 이들이다.

짐승의 울부짖음만도 못하게 여기며 ‘오류’로 취급해 비웃으며 폐기하던 놈들이다.

기계병단은 지금껏 자신들을 ‘버그’라 부르며 사냥해 온 이들을 반대로 학살하고 있었다.

당한 것을 그대로 돌려줄 뿐이다.

붉은 눈동자의 안면에는 승리에 기쁨 대신 짙은 분노와 복수심만이 존재했다.

“어딜… 어딜 가는 거냐! 다들! 다들 돌아오지 못해?! 다들! 나를… 나를 지키란 말이다!”

용병들의 비명이 온 사방을 메운 와중에 백련은 고함을 내질었다.

그들이 숭배하던 신은 이미 없다.

신이 아닌 백련을 지키는 부하들은 없었다.

태일은 가만히 선 채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는 현장을 바라보았다.

말리지 않았고, 말릴 수도 없었다.

라비와 장 영감 쪽을 바라보니, 둘은 광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바위 뒤에 숨은 채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선과 악, 옳고 그름.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이 현장에서 더 이상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 시대에도 수십, 아니, 수백 차례의 반란이 있었어.”

세연은 이미 모든 기록이 지워져 버린 역사 시대에 대해 유난히도 잘 알고 있었다.

노예가 주인을 향해, 농민들이 지배자를 향해, 백성들이 왕을 향해 칼을 겨누는 반란.

세연은 그런 반란들에 대해서도 가끔 얘기해 주곤 했다.

“처음에는 나름의 정의가 있었어. 하지만 결국 그런 건 금방 잊혀져 버렸지.”

대부분의 반란은 실패했다.

그러나 드물게 반란이 성공하는 일도 있었다.

“왕의 머리가 단두대에서 날아갔지만, 결국 그 단두대를 만든 이조차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어.”

반란이 성공하는 경우, 진압되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많은 피와 고통이 수반되었다.

반란의 성공 뒤에는 복수를 이유로 많은 피가 흘렀고, 그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불렀다.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연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슬퍼 보였다.

“우린 다를까?”

그건 세연의 경고였다. 태일의 혁명 역시 같은 결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

당시 태일은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초심을 잃는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결국은 세연이 맞았다.

욕망과 복수, 싸움을 위한 싸움… 그 굴레에 빠진 채 혁명은 실패했다.

한편, 부하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러 대던 백련은 넋이 나가 버렸는지 얼빠진 얼굴로 독수리 두 마리가 유유히 비행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태일은 빈 담배를 문 채 프랑켄의 옆으로 다가갔다.

“일으켜 줄까?”

“됐습니다. 굳이 보고 싶은 장면이 아니라서.”

프랑켄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지만, 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태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땅이 거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르르…….

이어서 우렁찬 울림이 사방에 퍼졌다.

[멈춰!]

기계병단의 삐걱거리는 기계음과 폭격 소리가 순식간에 멎었다.

“이건…….”

기긱.

갑작스레 멈춰 선 몇몇 구동부에서 미세한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틀림없이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기계병들의 시선은 오로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행동을 정지시킨 목소리는 돌과 철 조각들로 구성된 거인, 골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딘…….’

골렘을 소환하는 딘의 기술에 대해 태일 역시 알고 있었지만, 그 능력을 지금껏 전투 목적으로 사용한 적은 없었다. 그저 거대한 공사를 치러야 할 때 건설기계처럼 활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눈앞의 딘은 그 골렘의 능력을 전투에서 사용했고, 수많은 용병들을 짓뭉개 버렸다.

스스스… 쿵… 쿠쿵…….

골렘의 몸체를 구성하고 있던 바위와 쇳조각들이 천천히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산사태라도 난 듯 거대한 땅울림과 함께 골렘의 몸이 무너진다.

한창 도망치던 용병들마저도 갑자기 멈춰 선 기계병단과 기현상을 보이는 골렘의 모습에 압도된 나머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팔과 다리가 부스러지고, 머리 부위가 먼지처럼 흩어져 버린다. 그렇게 골렘이 해체되는 가운데, 심장이 있을 법한 부위에서 알렉세이 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목소리에 짙은 피로감이 묻어났다.

딘은 골렘의 잔해가 산처럼 쌓인 곳에서 천천히 내려와 얼이 빠져 버린 백련 쪽으로 다가왔다.

기계병들 역시 모두 무기를 거두었고, 더 이상 용병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딘을 호위하듯 함께 백련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한편, 태일은 딘을 비롯한 기계병들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뒤로 물러나 거대한 바위에 등을 기댔다.

백련을 쓰러뜨린 이는 태일이지만, 백련의 처우를 결정하고 그와 결론을 내야 할 이는 태일이 아니었다.

메타휴먼들을 살해하고 그 시신까지 잔혹하게 짓밟은 백련이다. 아마 코카서스라는 집단에 속해 지난 몇 년을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백련을 심판해야 할 이들은 바로 ‘버그’라 불리며 사냥당한 메타휴먼들이었다.

“백련, 꼴사납게 됐네.”

줄곧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백련이 고개를 내리더니, 차가운 눈으로 딘을 노려보았다.

“…….”

“네 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

“사람? 쓰레기 같은 버그 놈들… 주제를 모르는군. 크큭.”

백련은 몰려든 기계병들을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코카서스에 속한 자들이 누구인지 말해.”

“흐흐… 나는 신이다. 전능한 자이자 심판자이지.”

백련은 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엉뚱한 말을 횡설수설하며 흐느적거렸다.

삐이익― 삐익!

하늘에서 독수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딘은 심문을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프랑켄의 옆에 떨어져 있던 머스킷 AL―13을 집어 들었다.

머스킷의 총 끝이 백련의 이마를 향한다.

“유언은?”

“나… 백련이 너 따위에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킥킥…….”

“…없나 보군.”

딘이 머스킷의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 갑자기 백련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빽! 고함을 질렀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냐!!”

삐이익―! 삐이이이익!!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프랑켄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위험해!!”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태일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파파팟!

독수리 두 마리가 급강하하며 백련의 전후좌우에 뻣뻣한 깃털들이 내리꽂힌다.

치지지지지… 콰앙!!

바닥에 꽂힌 깃털들 사이에 거친 역장이 펼쳐졌고, 그 역장을 중심으로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크윽! 이게……!”

태일의 힘에 인해 밀려난 딘이 백련의 주변을 감싸듯 형성된 돌개바람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타탕!!

지켜보던 기계병 하나가 백련을 향해 사격을 가했지만, 총알은 돌개바람을 뚫지 못한 채 그대로 바람에 휩쓸려 하늘로 솟구쳐 버렸다.

태일이 조금만 늦었다면 딘의 몸뚱아리가 그 바람에 휘말려 갈가리 찢겨졌을 것이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한편, 돌개바람 안쪽의 백련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반드시 오늘을 후회하게 될 거다!! 너희는!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이들을 건드린 게야!!”

그러나 정작 태일의 시선은 어느새 백련의 좌우에 나타난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하늘을 맴돌다가 별안간 급강하한 독수리 두 마리는 돌개바람 속에서 인간 남녀의 형태로 변한 상태였다. 이제 갓 열 살은 넘었을까 싶을 정도로 어린 쌍둥이는 나이에 맞지 않는 양복을 갖춰 입고 있다. 쌍둥이 역시 공중에 뜬 채로 태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놈을 이대로 보내서는……!”

“방법이 없다는 걸 너도 알잖아.”

태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딘을 단단히 붙잡았다.

언뜻 보기에 그저 회오리바람처럼 보이지만, 그 바람을 경계로 안쪽과 바깥의 공간은 완벽히 분리된다. 즉, 포트리스가 존재하는 아공간처럼 평범한 수로는 닿을 수 없다.

딘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이만 갈고 있을 뿐, 녀석들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렇게 백련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뒤, 모두가 얼마간 백련이 사라진 장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철컥!

고요 속에서 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너, 누구냐?”

바이크 헬멧을 쓴 남자가 딘에게 총구를 겨눈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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