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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69화 (70/220)

69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6)

또라이.

알렉사이 딘이라는 인간을 표현하기에 그보다 정확한 단어는 없었다.

비협조적이고 제멋대로인 과학자, 연구에 미친 매드 사이언티스트.

그게 딘에 대한 다수의 평가였고, 실제로도 그런 녀석이었다.

제인과 비슷한 시기 혁명군에 합류한 딘에 대해 여러 소문이 있었다. 한때 센트럴 최고의 과학자였다가 탈출했다는 것부터 역사 시대 지식을 탐구하는 비밀 단체의 일원이라는 소문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그만큼 그가 가진 역량과 기괴한 성격은 독보적이었다.

“뭐, 센트럴에서 일한 적이 있긴 하지.”

딘은 그 한마디로 자신에 대한 소문들을 일축했다.

“혁명군이니, 게릴라니 하는 건 아무래도 좋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거든.”

딘은 그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역사 시대의 종말 후, 금지된 구역까지 스스럼없이 진입할 수 있는 혁명군은 그저 딘의 연구에 ‘쓸모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딘은 자신이 만들어 낸 병기와 연구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였고, 그의 목에는 혁명군 대장인 태일을 상회하는 현상금이 걸렸다.

“내가 만든 작품을 사용하려면, 먼저 내 허락을 받아야 해.”

기술에 대한 딘의 자부심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딘의 제작 기준은 매우 까다로웠고, 쉽사리 원하는 병기를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장비 제작에 관한 한, 그 누구도 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딘이 장비의 사용을 ‘허가’할 뿐이었다.

그토록 거만하고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딘의 장비를 받기 위해 결코 그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았다.

“넌 지휘관이야. 알아? 네가 무너지면 내 연구는…….”

혁명의 마지막 날, 딘이 보인 분노 역시 혁명의 실패 때문이 아니었다. 딘은 그저 자신의 허가 없이 제멋대로 방공망과 경비 장치를 해제해 버린 것에 대해 분노했을 뿐이다. 태일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연구가 중지될 것을 두려워했을 뿐이다.

태일은 딘을 ‘친구’라 여겼지만, 딘에게 태일은 그저 ‘필요한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딘은 그런 남자였다.

그랬던 딘이 지금, 태일에게 ‘참전’을 요청하고 있었다.

“우리를 도와줘.”

딘은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살고 싶어.”

태일은 한동안 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체가 아닌 본체로 전쟁터 한가운데 나타나 태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 그는 틀림없이 과학자 딘의 모습을 하고 있다.

태일은 시선을 돌려 불길에 휩싸여 날뛰는 기체 하나를 바라보았다. 연료가 새어 나오는 것을 본 용병 한 놈이 거기에 불을 붙인 모양이었다. 거대한 기계 병기의 약점은 점차 용병들에게 간파되고 있었다.

“저 녀석들 전부 네가 직접 개조한 거냐?”

“…그래.”

딘은 아무에게나 병기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은 오로지 하나.

“어째서?”

효율성, 즉 힘이다.

자신의 장비가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 사용자의 힘을 얼마나 증폭시킬 수 있는가만을 생각했다. 딘의 장비를 사용하는 모두는 딘의 실험체와 다르지 않았다.

“팔다리를 전부 잃은 채 비참하게 버려진 녀석들이야. 같은 유전자 구조를 가졌으면서도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지. 저 녀석들은… 싸우고 싶어 했어.”

“그래서 저런 몸을 만들어 준 거냐?”

“자원이 부족하고, 부품도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게 최선이었어.”

태일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딘은 완벽주의자였다. 비효율적인 행동은 일절 하지 않으며, 허술한 장비는 아예 제작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장비들은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파괴해 버렸다.

반면, 기계병의 몸체는 지나치게 약점이 많고 허술했다.

“넌… 딘이 아니야.”

“…….”

태일의 손에서 푸른 전류가 튄다.

딘과의 짧은 대화 사이에도 기계병 셋이 더 쓰러졌다. 백련의 근처에서는 붉은 폭발이 일고 있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도와주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딘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싸움이 끝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딘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태일은 미약한 전류 몇 줄기만을 남긴 채 저만치 달려 나가고 있었다.

백련은 코카서스에 속한 이래로 가장 강력한 사냥꾼이었다.

버그는 인간이 아닌, 유사 인간일 뿐이다. 즉, 악마의 부산물이다.

인형에게 악령이 들린 버그야말로 반드시 파괴해 없애 버려야 할 존재들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백련의 손에 셀 수 없이 많은 버그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백련은 49구역의 모든 버그들을 부숴 버렸을 뿐 아니라 주변 48구역, 50구역까지 들어가 인간인 척하는 악마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백련의 폭주에 놀란 의회에서 체포를 위한 병력을 조직해 파견했을 정도다. 그러나 백련과 손잡은 센트럴의 코카서스 소속 의원들은 버그로 편성된 토벌군을 조직했고, 제대로 된 무기조차 들리지 않은 채 49구역으로 보냈다. 그렇게 백련 앞에 던져진 센트럴의 버그들은 모조리 박살 났다.

백련은 코카서스의 실질적 사형 집행인이고, 버그들은 백련의 옷자락만 보아도 도망치기 바빴다. 백련의 흰옷과 흰 머리칼은 버그들에게 있어 공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벌레 이하의 존재였던 버그들이 백련과 백련의 부하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감히… 감히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백련이 조합해 낸 안개가 관절 구동부를 파고들어 접합부를 부식시켰고, 거대한 기계의 팔과 다리는 허무하게 분리되어 부서졌다.

백련은 그렇게 균형을 잃고 쓰러져 버둥거리는 버그들의 붉은 눈동자를 뽑았고, 얼굴뼈를 직접 박살 냈다.

어찌 보면 불필요한 일이었다.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떨어진 그 순간, 이미 숨이 끊어졌다. 그럼에도 백련은 잔혹한 행위를 공공연히 과시했다.

감히 신에게 저항한 인형을, 사냥꾼에게 달려든 먹잇감들을 용서할 수 없다. 이들의 잔해조차 온전히 남겨서는 안 된다.

버그들을 파괴하는 백련의 손에는 감정이 한껏 실려 있었다.

버그들이 쏟아 낸 피와 기체 구동부에서 튄 기름으로 인해 백련의 백색 옷은 이미 검붉게 젖은 상태였다.

“죽여!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전부 없애!!”

광기에 물든 백련은 산발을 한 채 사방으로 검은 안개를 뿜어 댔다.

타타탕!!

백련이 미쳐 날뛰던 찰나, 붉은빛 탄환 수십 발이 허공에 떠올랐다.

소울을 머금은 탄환들이 오로지 백련, 한 사람을 노리고 날아든다.

처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백련은 순간적으로 안개를 뚫고 들어오는 탄환의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콰콰콰쾅!!

탄에 실린 소울과 백련이 만든 안개가 어지럽게 뒤엉켜 연쇄적인 폭발이 시작되었다.

백련의 실체를 추적하던 탄은 백련의 실체에 한없이 가까운 안개의 가짜 형체와 함께 산화되었다.

한편, 가까스로 따돌린 백련은 입술을 깨물며 탄이 날아온 궤적을 살폈다.

백련의 시선은 곧 AL―13으로 무장한 경찰에게 닿았다.

“LAPD?”

49구역의 LAPD는 사실상 용병들의 직업 소개소와 다를 게 없고, 결코 이런 분쟁에 나설 리 없는 자들이었다.

눈살을 찌푸린 채 경찰의 모습을 살피던 백련은 프랑켄의 붉은 눈동자를 보고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어디 감히 인형 따위가!!”

콰쾅!! 쾅! 쾅!!

수십 발의 붉은 탄환이 공중에서 연달아 폭발한다.

“감히 경찰 행세를 해?! 감히!!”

백련이 분노를 폭발시키며 그대로 폭발을 뚫고 프랑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프랑켄은 그런 백련을 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입 닥쳐, 살인마.”

타탕!!

다시금 탄환이 사방으로 백련을 향해 집중된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백련의 주변에 만들어진 가짜 형체들이 탄의 궤적을 막아섰다.

연달아 일어난 폭발을 뚫고 거리를 좁힌 백련은 그대로 프랑켄의 머리를 붙잡은 뒤,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퍽!

그러나 정작 백련이 내리찍은 것은 프랑켄이 아닌, 애꿎은 용병의 머리였다.

백련이 부하의 머리통을 보며 잠시 당황하는 찰나, 날카로운 단검이 그의 목을 노리고 들어왔다.

푹!

“크으윽!”

가까스로 몸을 피한 백련의 어깨에 단검이 박혔다.

“네놈!!”

“교주님!!”

백련이 상처 입는 꼴을 본 클론터가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나 백련은 단검이 꽂힌 팔을 들어 올려 클론터를 제지했다.

“끼어들지 말라! 너는 너의 할 일을 해라. 나는…….”

“크으윽….”

백련의 왼손에는 프랑켄의 목덜미가 단단히 잡혀 있었다.

“…나의 할 일을 할 테니.”

백련의 얼굴에 남몰래 미소가 떠오른다.

여기서부터는 결코 부하들에게, 신도들에게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백련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프랑켄의 몸뚱어리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프랑켄은 AL―13마저 놓친 채 백련의 팔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백련은 프랑켄의 경찰복 깃에 새겨진 문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F―2020’

“이런, 이런…….”

백련이 쓰게 웃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네가… F―2020이냐? 이름이… ‘프랑’…이었던가?”

백련의 말을 들은 프랑켄은 움직임을 멈추었다.

‘프랑’, 그것은 프랑켄의 파트너였던 유리가 붙여 준 이름이다.

어째서인지 백련이 그 이름을 들먹이고 있었다.

“그래, 기억나. 50구역에서 경찰 행세를 하고 있던 메타휴먼. 5년 전이었던가? 떠들썩했지. ‘최초의 로보티안’… 맞지?”

백련이 히죽 웃어 보였다.

“버그가 된 계기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기억하고 있지. 사랑하던 인간의 죽음. 그녀의 이름은 ‘유리’였지, 아마?”

“…네놈이 어떻게……!”

“웨이창, 그 영감탱이를 만나러 갔다가 그 여자를 만났지.”

백련은 당시 SB의 유통에 발을 걸칠까 싶어 50구역의 마피아와 접촉했다.

“지금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프랑켄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백련은 히죽 웃으며 속삭이듯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때 쥐새끼처럼 숨어 있던 그 여자를 내가 발견했어. 꽤나 뛰어난 경찰이었지. 그래, 그랬어.”

“너, 너 이 새끼……!”

“일단 발각되자 목숨 걸고 달려들더군.”

퍽!

“컥!”

백련은 프랑켄의 몸을 그대로 땅에 내리찍고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오해는 말라고. 굳이 죽일 생각까진 없었어. 그냥…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년이 약했을 뿐이지.”

“대체, 대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너, 네가… 끄아아아악!!”

평정심을 완전히 잃은 프랑켄이 온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이미 검은 안개가 이미 한 차례 부서진 프랑켄의 팔과 다리 관절부를 부식시키고 있었다. 신경과 연결되어 있던 구동부가 파괴되면서 팔이 잘리는 고통이 밀려온다.

그러나 당장 팔과 다리의 고통보다 더 끔찍한 것은 백련의 이야기였다.

“죽기 직전에 ‘프랑’이라는 이름을 부르더군. 누군가 했더니… LAPD 소유의 메타휴먼이라고 했어. 그 녀석에 관한 이야기가 며칠 뒤 기사에 실렸지.”

“……!”

“알겠어? 너를 버그로 만든 건 바로… 나야.”

“이 개자식! 네가! 네가아아아아아!!”

유리는 SB의 유통망을 추적하다가 수사 중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마피아가 없었다면 유리가 죽는 일 따위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프랑켄은 SB를 유통하던 놈들을, 마피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려 했다. 유리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마피아들의 씨를 말리려 했다.

그러나 유리를 죽인 자는 다름 아닌 백련이었다.

그녀를 죽인 남자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다.

“킥킥킥킥… 키히히히히히!!”

백련은 악을 쓰고 버둥거리는 프랑켄을 내려다보며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백련과 프랑켄의 주변은 이미 검은 안개가 겹겹이 감싸고 있었다. 백련의 신도들은 백련의 지금 얼굴을 볼 수 없다.

엄격한 교주이자 자비로운 신으로 군림하는 백련이 본능과 욕구를 가감 없이 쏟아 낼 수 있는 순간.

버그에게 공포와 절망을 충분히 맛보게 만든 뒤, 절정에 이르렀을 때 없애 버리는 것, 그야말로 백련이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더구나 ‘최초의 버그’다.

코카서스인 백련에게 프랑켄의 목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그래, 이제 끝내자. 잘 가라, 버그!!”

프랑켄의 머리를 검은 안개가 뒤덮는다. 프랑켄의 시야가 검게 가려진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퍽!!

“우욱!!”

백련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검은 안개가 걷혔다.

프랑켄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백련의 무게가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

“괜찮냐?”

입에 불붙지 않은 담배를 문 장발 남자, 태일이 프랑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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