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67화 (68/220)

67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4)

백련은 한동안 할 말을 잃은 채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장 영감의 목을 죄고 있던 검은 안개까지 거둬들일 정도로 당황한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은 소울을 재배열하여 틈을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이 빠져나온 직후, 멤브레인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원상복구되었다.

조금의 불안정도, 오염도 없다.

놀라울 정도로 깔끔한 방식이었다.

백련은 자신의 지식을 초월한 광경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었다.

“네놈들은 대체 뭐냐?!”

백련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수군거리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조금 전까지 백련을 열렬히 숭배하던 용병 중 몇은 입을 벌린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신은 이 세상의 모든 이치를 통달한 존재이다. 아니, 이치를 설계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백련은 늘 신도들에게 답을 주었으며, 결코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애당초 신이 무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놀란 용병들이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사이, 태일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피곤해 보이는 태일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도 없었다.

“너야말로 뭐냐?”

“네놈……!”

“포트리스를 공격하길래 얼마나 대단한 녀석인가 싶었더니만…….”

태일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차라리 실망감에 가까웠다.

“이렇게 어설픈 사이비였을 줄이야.”

태일의 조롱을 들은 백련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백련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용병들이, 신도들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서 있지 않은가.

“다들 무엇을 보고 있는가! 배교자다! 악이다!”

“…식상하군.”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역사 시대가 끝난 직후, 센트럴이 가장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말살한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종교였다. 수많은 종교인이 순교를 맞이했고, 전쟁 때의 수백 배에 이르는 희생자가 생겨났다. 심지어 민족 자체가 아예 절멸해 버린 경우마저 있었다.

센트럴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종교를 지워 버리고자 했다. 그 결과, 이제 역사 시대 신들의 이름은 인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이라고는 신을 자처하며 욕망에 충실한 사기꾼들뿐이었다.

즉, 백련 같은 자는 처음이 아니고, 마지막 역시 아닐 것이다.

“감히!! 다들 들어라! 저놈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는 가장 기름진 땅을 하사할 것이다!”

백련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용병들이 허겁지겁 총기를 꺼내 들었다.

한편, 지금껏 그 누구보다 충실한 신도였던 클론터는 눈을 부릅뜬 채 백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백련… 님!”

5년 전까지 클론터는 그 거친 용병들조차 두려워 설설 길 정도로 이름난 히트맨이었다.

암살과 잠입을 수행하는 히트맨에게는 일반적으로 명성이 없다.

그러나 클론터만큼은 달랐다.

수백, 수천의 호위병을 뚫고 들어가 한 사람의 목숨을 거둘 정도의 실력자.

그는 몇 개 구역의 레지스탕스 대장들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 넣었고, ‘친정부 히트맨’으로 명성을 날렸다.

클론터에게는 늘 비밀스러운 의뢰가 쏟아졌다.

센트럴 고위직들의 의뢰를 받아 수많은 반정부 요인을 암살했고, 때때로 누군가의 정적을 비밀리에 살해한 적도 있었다.

센트럴이 키운 히트맨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클론터는 49구역에서 살아온 유민 출신에 불과했다.

친정부 의뢰를 수행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센트럴은 가장 높은 수익을 꾸준히 보장하는 의뢰자일 뿐이다.

그렇게 살아가던 클론터가 백련의 앞에 무릎을 꿇은 그날, 비가 내렸다.

클론터의 눈앞에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 버린 누이가 있었다.

“하늘의 과업을 모두 마치는 날, 내 직접 너의 누이를 되살려 줄 것이다.”

죽은 이의 부활.

실로 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의심하지 마라. 나를 믿어라.”

누이의 시신을 하얀 안개로 감싼 백련은 곧이어 그 시신을 냉동화했다.

그 뒤, 조건을 걸었다.

자신의 충실한 신도가 될 것.

충성을 다하기만 한다면, 누이는 약속의 날에 깨어난다.

클론터는 누이를 위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아니,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날 이후 클론터는 백련의 개가 되었다.

백련이 거짓된 신일 리 없다. 아니, 거짓이어서는 안 된다.

백련의 약속만이, 오로지 그것만이 클론터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

마음을 굳힌 클론터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의심하지 않는다. 백련을 믿는다.

“배교자를 죽여라!!”

태일을 향해 총구를 겨눈 클론터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백련에 대한 불신 때문이 아니었다.

클론터와 용병들이 발을 딛고 있는 땅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거세게 울리고 있었다.

진동이 점차 커지고, 굉움이 울려 온다.

쿠르르르르…….

똑바로 서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세상이 흔들린다.

“뭐, 뭐야?!”

“무기를 들어! 무기를!!”

용병들의 주변 땅 곳곳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클론터는 가장 가까이 솟아오른 모래 더미 속에서 시뻘겋게 빛나는 눈동자를 보았다.

* * *

포트리스 내부, 태일과 라비가 갑자기 사라질 즈음, 백련의 공격이 멈추면서 포트리스의 흔들림이 멈추었다.

카츠미와 페이진이 홀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가운데, 알렉세이 딘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프랑켄은 카츠미와 페이진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딘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딘이 능력을 발동하는 사이, 그의 본체는 철저히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신태일, 그자도 알고 있었어.’

태일은 마치 딘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곁을 지키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잠시 뒤에는 딘을 향해 달려드는 라비를 막아 내더니, 녹스의 능력을 사용해 라비와 함께 외부로 나가 버렸다.

녹스는 딘을 제외한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프랑켄 역시 녹스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대체 어떻게…….’

태일의 행동을 복기하던 프랑켄은 손에 쥔 권총을 고쳐 잡으며 딘을 바라보았다.

한편, 딘은 녹스에 의식이 연결된 가운데, 포트리스의 수복 작업을 이어 가고 있었다.

영체(靈體) 상태의 딘은 포트리스 주변을 날아다니며 외벽과 멤브레인의 상태를 살폈다.

“녹스, 외벽 상태는 어때?”

[수복 중이야. 96.95%… 96.97%…….]

“지난번 작업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난 거잖아. 안 그래? 이번에는 신경 좀 쓰자.”

애당초 이 모든 문제는 멤브레인의 작은 틈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녹스의 기능을 보완하던 중 발생한 결함을 발견하지 못한 탓이었다.

포트리스의 내부로부터 불만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난 억울해.]

“그러니까 잘하면 되잖아.”

알렉세이 딘에게 부여된 능력은 ‘데미우르고스(Demiurge)’, 이른바 제작자라고 불렸다.

공학과 소울을 결합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제작자에게 부여된 능력이었다.

딘의 능력으로 탄생한 포트리스의 시스템, 녹스(Nox)는 살아 있는 유기체와도 같았다. 포트리스는 공학의 힘으로 건설되었지만, 포트리스의 운영체제인 녹스는 소울로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물론 지금의 딘에게는 녹스를 만든 기억이 없었다.

도리어 기억을 잃어버린 채 49구역을 헤매던 딘을 찾아 포트리스로 데려온 게 바로 녹스였다.

녹스는 유전 정보로 말미암아 딘을 주인으로 인정했고, 메모리에 저장된 지식을 전달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식’이라 규정한 와중에 그 지식의 열쇠는 유전 정보로 설계해 두었으니, 딘이 만든 알고리즘은 모순, 그 자체였다.

“좋아, 수복 작업은 거의 끝났고…….”

[소울 안정성이 너무 낮아.]

“알고 있어.”

딘이 녹스의 말에 성의 없이 대답하며 외벽의 상태를 확인하는 찰나, 외부에서 무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싸우고 싶어.’

‘싸우게 해 줘, 딘.’

‘놈들을… 모두 없앨 거야.’

그것은 마치 녹스의 목소리처럼 제작자만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목소리들은 하나같이 분노와 악의에 차 있었다.

딘 역시 포트리스의 바깥에 몰려든 이들의 모습을 보았기에 이런 목소리가 들려올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딘은 그들의 목소리에 선뜻 응해 줄 수 없었다.

[소울 안정성 58%… 방금과 같은 공격이 계속된다면 위험해.]

녹스의 거듭된 경고에 딘은 한숨을 내쉬며 멤브레인의 틈새를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포트리스 외벽의 수복은 마무리했지만, 백련의 공격이 계속되면서 멤브레인의 틈은 꽤 넓어진 상태였다.

불안정하게 찢어진 멤브레인의 소울이 임계치를 넘어가면, 거대한 폭발과 함께 근방은 완전히 오염되어 버린다.

공중에 떠오른 채 멤브레인의 모습을 살피던 딘이 천천히 중얼거렸다.

“녹스…….”

[왜?]

딘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녹스의 영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녹스의 영체는 얼굴과 몸, 두 개의 손, 두 개의 발을 가졌지만, 세부 형체까지 갖추지는 못했다. 눈, 코, 입조차 없이 그저 하얗게 빛날 뿐이었다. 애당초 영체는 녹스의 본체가 아니다.

녹스는 포트리스, 그 자체였다. 포트리스의 벽과 문, 포트리스 내부에서 움직이는 로봇들까지도 전부 녹스다.

딘은 작업 중 녹스가 태일에게 복종하는 모습을 보았다.

“녹스, 바깥 상황을 띄워!”

태일의 목소리에 녹스는 선뜻 응답하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녹스는 지금껏 딘 이외의 누군가에게 시스템의 사용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너, 신태일에 대해 알고 있는 거냐?”

[…….]

녹스는 답하지 않았다.

태일과 라비는 녹스의 시스템을 이용해 멤브레인을 열고 나가 백련과 마주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간 둘은 웬 노인을 구해 냈고, 그사이 백련의 공격이 멈추었다.

“두 사람만으로 백련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봐? 그 정도로 신태일이라는 남자가 강해?”

[나도 모르겠어.]

녹스의 대답에 딘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녹스는 딘이 설계한, 딘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따라서 좀처럼 불확실한 답은 내놓지 않는다. 늘 철저한 확률과 예측으로 논리적 답변을 내놓았다.

즉, 녹스의 행동에는 ‘근거’가 있다.

“그럼 왜 저 두 사람에게 문을 열어 준 거야?”

[X―7.]

“…뭐?”

[저 사내가 지휘관의 시계를 가지고 있어.]

아무리 이성을 가진 듯 보여도 결국 녹스는 복잡한 알고리즘의 결과물이었다. 즉, 인간이 처음 설계해 둔 원칙을 자의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

녹스는 지휘관의 시계를 소유한 자에게 복종하도록 설계되었다.

[네가 만든 징표야.]

“난 그런 걸 만든 기억이 없어.”

딘이 불퉁거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애당초 딘에게는 태일이 건넨 보급형 머스킷 AL―13도, 지휘관의 시계 X―7도 만든 기억이 없었다. 제작지식은 있되, 기억은 없다. 그 제작 지식조차도 녹스가 전달해 준 정보일 따름이다.

[…….]

녹스는 혼란에 빠진 딘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알렉세이 딘과 유전자 일치율 98.8%. 지금 녹스와 대화하고 있는 딘은 생물학적으로 ‘유사’할 뿐, 딘이 아니었다. 녹스 역시 그 오차를 알면서도 딘을 새로운 주인으로 인정했다.

한편, 딘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목소리는 더욱 격렬해지고 있었다.

‘싸우고 싶어!’

‘내 손으로 놈을 없앨 거야! 내가 직접!’

딘의 머릿속에 전해지는 성난 목소리들이야말로 지금의 딘이 녹스에 저장된 알렉세이 딘과 다르다는 1.2%의 증거였다.

알렉세이 딘의 본체와 다른 한 가지, ‘붉은 눈동자’.

딘은 눈을 뜨고 자신을 자각한 직후부터 줄곧 수많은 이들에게 쫓겼다. 그중 가장 집요한 이들은 ‘코카서스’였다. 인간과 닮은 메타휴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 이른바 ‘순혈주의자’라 불리는 자들이었다.

붉은 눈동자를 지닌 존재는 이성과 지성을 가졌다 해도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메타휴먼이라 불리는 그들은 그저 누군가의 자산일 뿐이었다.

드림코퍼레이션은 이성을 갖게 된 메타휴먼을 불량품이라 규정했고, 메타휴먼의 ‘불량’으로 인해 손해를 본 인간들이 메타휴먼들을 공격했다.

센트럴 의회에서 이성을 가진 메타휴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그와 함께 조직된 ‘코카서스’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백련은 바로 코카서스의 간부 중 한 명이었다. 붉은 눈동자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의 로보티안들이 백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이들은 팔다리를 잃고 흉한 모습으로 개조되어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그렇게 코카서스에 의해 포획된 이들은 시민에서 메타휴먼으로 되돌아갔다.

“그래. 더는 물러설 수 없겠지.”

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백련을 바라보았고, 녹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녹스는 딘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분노의 목소리들을 듣지 못한다.

녹스는 딘에게 존재하는 1.2%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싸우자.”

딘을 이해하는 이들은 딘과 같이 1.2%의 특이 유전자를 가진 존재…….

“…친구들.”

다름 아닌 버그들이다.

딘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녹스 외부, 포트리스 근방의 땅들이 요란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