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66화 (67/220)

66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3)

“이거 놓게! 저건, 저건 미친 짓이야!”

당연하게도 장 영감은 백련에게 손끝 하나 댈 수 없었다.

백련의 곁을 지키던 호위대장 주더가 급히 달려들어 백련을 방해하려는 장 영감을 제압한 것이다.

“젠장,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자네 미쳤나?!”

갑작스러운 폭주에 놀란 주더가 우악스럽게 장 영감을 붙잡아 억지로 꿇어 앉혔다.

그사이, 백련은 벌써 네 발째 화살을 균열 안으로 발사시키고 있었다

한 발, 한 발이 틈새로 들어갈 때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굉음이 울려온다.

“제발, 제발 멈추시오!”

장 영감은 망연한 얼굴로 점점 커지는 균열을 바라보았다.

백련의 안개를 통해 표출된 균열은 점차 크기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장 영감은 어떻게든 백련을 말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멤브레인은 가장 안정적이고 완벽한 구조로 형성되어 있었다. 촘촘하게 차원을 구성하고 보호하는 껍데기인 만큼 강력한 힘으로 형태를 유지한다.

백련은 지금 그 껍데기를 억지로 부수려 하고 있었다.

“저렇게 강제로 멤브레인을 파괴하면 대폭발이 일어날 거요! 그 뿐만이 아니야. 근방이 완전히 오염되어 버릴 수도 있단 말이오!”

멤브레인의 파괴는 끔찍한 재앙을 불러온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미 잊혀졌지만, 장 영감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다 건너 또 다른 대륙을 죽음의 땅으로 만들어 버린 대폭발.

그 원인이 바로 멤브레인의 파괴였다.

그 폭발은 역사 시대 말기, 제국이 만든 핵무기를 능가하는 파괴력을 가졌으며, 오염 또한 회복이 불가능했다.

“모두가 죽게 될 거요,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닥치지 못해?!”

퍽!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대머리 용병이 욕설을 퍼부으며 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갈겼고, 장 영감은 그대로 축 늘어지고 말았다.

“야, 인마! 무슨 짓이야?!”

주더가 대머리 용병에게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 영감과 사적으로 친분이 있던 주더는 어떻게든 보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새파랗게 젊은 대머리 용병은 주더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 대며 장 영감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이 영감탱이 말하는 거 좀 보십쇼! 마치 교주님께서 큰 잘못이라도 하는 것처럼 악을 쓰고 있잖습니까?!”

“그래도 인마, 네가 뭔데 마음대로 손을 대?! 어?”

그때였다.

철컥!

몽키를 살해한 뒤 소총을 정비하던 클론터가 허리춤의 리볼버를 꺼내 들어 장 영감의 머리를 겨누었다.

클론터는 주더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실력자다.

“클론터 님, 아직 교주님의 명령이……!”

“교주님께서는 명하시길…….”

클론터가 주더의 말을 끊으며 리볼버의 안전장치를 해제했다.

“배교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 하셨다.”

영감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장 영감은 백련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다. 백련을 믿지 못했다.

교주를 향한 불신은 곧 배교다.

배교자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처분, 그것은 영원한 안식뿐이다.

철컥!

“잠깐.”

클론터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백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란스럽구나.”

백련은 잠시 능력을 거둔 뒤, 장 영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배교자입니다.”

조용히 리볼버를 거둔 클론터가 백련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짧게 대답했다.

백련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떨군 장 영감을 바라보았다.

“장 영감인가.”

장 영감은 백련 휘하 용병단에게 제법 많은 장비들을 납품했다.

3대 용병단 중 한 축을 담당한 만큼 거래의 빈도가 잦기 때문에 백련 역시 장 영감을 알고 있었다.

백련이 기억하기에 장 영감은 평판과 달리 매우 실력 있는 기술자였다.

고물상에서나 취급할 재료들을 이용해 그럴듯한 무기를 제작해 낼 정도였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사막여우보다도 대단했다.

“멈추…시오…….”

장 영감은 힘겹게 말을 이으며 백련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백련은 딱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믿음이 없는 불쌍한 자로구나.”

“위험…하니… 제발…….”

더듬더듬 말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는 백련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차라리 동정심에 가까웠다.

인간은 신의 행동을 제지할 수 없다. 어리석은 노인은 그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라 해도 배교자를 살려 둘 수는 없다.

“안타깝구나.”

백련의 왼손 끝에서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스스스스…….

검은 안개가 장 영감의 목을 감싸기 시작한다.

“커, 커거거거…….”

목을 단단히 옥죄어진 장 영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장 영감의 몸을 붙잡고 있던 주더는 백련의 검은 안개를 보며 몸을 떨었다.

백련이 나선 이상 장 영감을 살릴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한편, 클론터와 대머리 용병을 비롯한 부하들은 무릎을 꿇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교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주더는 광기 어린 얼굴로 장 영감의 죽음을 외치는 용병들의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광적인 믿음, 절대적인 복종… 그들은 더 이상 용병이 아닌 광신도였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거지…….’

백련이 처음 49구역에 나타난 지 고작 5년.

그사이 너무 많은 것이 변했다.

베테랑 용병들이 누비고 다니던 지역에 백면서생의 모습을 한 백련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얼핏 센트럴에서 왔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나중에는 하늘에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어느 날 갑자기 49구역에 등장한 백련은 고작 일주일 사이에 제법 이름난 용병단 다섯 개를 굴복시켰고, 수십 개의 포인트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믿기 힘든 그의 활약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49구역에서는 ‘힘’이 곧 미덕이다.

백련의 압도적인 힘에 매료된 용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백련은 거대 규모 용병단의 대장이 되었다.

주더 역시 당시 그의 휘하에 부하들을 이끌고 들어간 용병대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백련은 그저 용병단 대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백련의 안개는 척박한 사막에 수분을 공급했고, 그가 머무르는 땅에서는 작물이 자라났다.

센트럴의 철저한 파괴 이후, 폐허로 변해 버린 49구역에서 작물의 생산은 그 자체로 기적이었다.

유랑 생활에 지친 49구역 주민들은 땅 한 뙈기라도 얻고 정착하기 위해 백련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49구역 주민들은 백련을 보며 오래전 잊혀져 버린 신을 떠올리고 있었다. 역사 시대의 끝과 함께 사라진, 아니, 금지된 신이 49구역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기적을 보여 주십시오! 기적을!!”

기적.

용병단 대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배교자에게 죽음을!”

“멍청한 노인내 같으니!!”

“죽여라! 죽여!”

“저 배교자의 목을 매달자!”

장 영감이 버둥거리며 죽어 가는 가운데, 용병들 몇몇이 성난 목소리로 포효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자유의 상징과도 같던 용병들은 충실한 신도로 변모했다.

백련에 대한 충성심은, 아니, 신앙심은 곧 배분받을 수 있는 땅의 크기를 결정했다. 그동안 그토록 찾아 헤맸던 ‘포트리스’가 발견되었으니, 신앙심의 크기만큼 전리품을 얻어 낼 수 있을 터였다.

그 와중에 펑크라이더 일당과 소수의 용병들은 애써 검은 안개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들은 백련의 힘 앞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쪽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장 영감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살려 낼 수는… 없겠군.’

하긴 과연 누가 감히 백련의 뜻에 반할 수 있을까.

감히 누가 신의 의지에 저항할 수 있을까.

상황을 파악한 주더가 자신의 손에 붙잡혀 있는 장 영감의 귓가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움직이지 말게. 고통이 길어질 뿐이니.”

주더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장 영감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 가끔 장 영감을 찾아가 고물을 건낸 뒤 술을 얻어 마시는 게 주더에게는 자그마한 낙이었다.

괴짜 같은 영감이지만, 제법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잃고 싶지 않기에 장 영감이 선을 넘기 전에 자신이 나서서 제압한 것이었다.

‘어리석은 친구 같으니…….’

주더는 장 영감이 잘못을 빌며 목숨을 구걸하길 바랐다. 백련은 워낙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지만, 납작 엎드린다면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 영감은 끝까지 백련을 자극했다.

“커어어… 위험… 멈추…….”

장 영감은 온몸을 비틀며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백련을 제지하려 했다. 백련의 의지에 반하고자 했다.

그럴수록 고통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백련은 쉽게 끝내지 않을 것이다.

장 영감은 아직까지도 살려 달라거나 잘못했다는 말을 내뱉지 않았다.

굴종하지 않는 배교자의 죽음은 느리고 고통스럽다. 그 과정은 마치 고문과도 같았다.

검은 안개 속에서 장 영감의 시선이 주더에게 고정된다. 그의 입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 고통을… 끝내… 주게…….

주더는 입술을 깨문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유를 등에 업은 채 대륙을 누빌 적, 주더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늘 당당하고,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다.

그러나 백련의 앞에 무릎 꿇으면서 주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변해 갔다. 거대 용병단에 편입되면서 호위대장의 직함을 받고, 수많은 부하를 거느리게 되었지만… 목줄이 채워졌고,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

이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불쌍한 친구의 마지막 부탁 정도는 들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주더는 천천히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단 한 번, 그의 머리를 내려치면 장 영감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미안하네.”

주더의 주먹이 호를 그리며 장 영감을 노린다. 그 와중에 주더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백련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주더의 팔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주더의 눈앞에서 팔이 이상한 각도로 시야에서 멀어졌다.

“무슨…….”

고통을 채 눈치채기도 전에 잘려 버린 팔이 공중에 떠오른 뒤, 힘없이 땅바닥에 떨어진다.

엄청난 양의 피가 흩뿌려지는 가운데,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범!!”

팔이 잘린 채 거세게 휘청이던 주더는 뒤로 넘어가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자?’

해골 모양의 목걸이를 두른 공격자는 펑크라이더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틀림없는 여자아이였다. 낯익은 얼굴이다.

가끔 술을 마시러 장 영감을 찾아갈 때면 얼굴에 기름칠을 한 채 툴툴거리며 나타나던 꼬맹이.

‘이름이… 라비였던가?’

핏물로 적셔진 땅바닥에 자빠진 주더는 가쁜 숨을 쏟아 내며 장 영감을 부축한 꼬마를 바라보았다.

“대, 대장!!”

“감히!!”

주더의 직속 부하들이 아우성치며 몰려든다.

그사이, 라비는 재빨리 장 영감과 함께 도망쳤다.

소란 속에서 주더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팔의 격통 때문만은 아니었다.

친구가 무사히 도망치기 바랐지만, 그 속내를 입 밖으로는 낼 수 없기에 그저 눈을 감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 * *

“난장판이군.”

회중시계를 다시 품 안에 집어넣은 태일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급한 대로 영감을 죽이려 하던 용병의 팔을 잘라 버렸지만, 차원을 이동한 직후 소리와 혈향, 방향감각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처럼 묘한 잡음들이 사방에서 들려왔고, 멀미가 날 정도로 온 사방이 흔들렸다.

한편, 라비는 감각이 엉망인 상태에서도 비틀거리며 장 노인을 향해 내달렸다.

“할아범!!”

아마 라비의 목소리 역시 용병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태일과 라비를 향해 공격해 오는 용병은 없었다.

용병들은 그저 무리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태일과 라비를 바라보며 허둥댈 뿐이었다.

사실 녹스를 활용해 적의 포위망 한가운데 나타나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였다.

만약 센트럴의 정규군 앞에서 이런 짓을 벌인다면, 감각에 적응하는 와중에 허무하게 사살당할 것이다.

그러나 어중이떠중이를 모아 놓은 용병단은 태일과 라비가 온전히 감각을 되찾기까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한데?’

라비가 노인의 몸을 빼내는 순간까지도 그 많은 용병들 중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팔이 달아난 용병의 부하처럼 보이는 녀석들만이 제 상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달려왔을 뿐이다.

그리고 잠시 뒤, 청각에 익숙해진 태일의 귓가에 용병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나타난 거 맞지?!”

“어디서…….”

“설마 백련 님께서?”

“시, 신이시여!”

태일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신이라고?’

용병단은 엉뚱하게도 전투를 준비하는 대신 신을 찾고 있었다.

총기를 꺼내 드는 놈조차 보이지 않는다.

라비는 그 틈을 기회로 삼아 장 영감을 구조해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용병들의 머뭇거림 속에서 분노 담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네놈들은 대체 뭐냐?!”

흰 머리칼의 남자가 태일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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