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붉은 눈의 기계병단 (1)
“흐흠, 음식들이 입에 맞을지 모르겠는데… 일단 먹어 봐!”
태일은 자신의 눈앞, 원탁에 놓인 통조림들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겉보기에는 좀 그래도 꽤 맛있거든.”
밝은 목소리의 알렉세이 딘.
“괜찮군요. 토끼 고기입니까?”
고기를 음미하며 아무렇지 않게 질문하는 프랑켄.
“아무래도 설명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굳은 표정의 카츠미와 페이진.
게다가 말없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비까지.
태일의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못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먹고 나서 얘기하지. 배고프지 않아?”
딘은 고기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즐거워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태일이 알던 딘 역시 괴짜였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원탁에 앉아 있는 딘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이상한 녀석이었다.
결국 태일은 식기를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지금 딘에게는 악의가 없다. 더구나 끼니때가 한참 지나 꽤 허기가 졌기에 나쁘지 않은 제안인 것도 사실이었다.
“대체 이게…….”
카츠미 역시 이 기괴한 상황에 대해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이지만, 페이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당주, 일단 먹는 게 좋겠어.”
“페이진, 지금 이 상황이 이해되나?”
페이진은 태연한 얼굴로 식기를 들며 역시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럴 리가.”
사막 한가운데에 갑자기 요새가 나타나더니, 사라졌던 태일과 G―7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말이다.
요새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주인으로 있었고, 이제는 뜬금없이 식사를 대접받는 중이었다.
몇 분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그러나 페이진은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49구역에서 이만한 식사를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은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사막 한복판에서 다들 여유만만하네.”
이미 통조림을 반 이상 비운 태일과 프랑켄을 본 카츠미는 살짝 투덜거렸지만, 결국은 마지못한 듯 식기를 들었다.
사실 카츠미 역시 자신이 겪는 상황에 대해 긴장감이나 두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강자에게는 스스로의 생존에 대한 자신감 혹은 확신이 있다.
카츠미와 페이진, 태일은 강자였다.
그러나 라비 애슈턴은 달랐다.
약자는 여유 대신 긴장을, 자신감 대신 의심을 무기로 삼는다.
라비는 자신을 살려 둔 뒤 이어질 고문에 대비해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자리에 라비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결국 눈앞의 통조림에 대한 의심을 거둘 때까지도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얼마간 대화 없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불편한 분위기와 무관하게 딘이 내놓은 통조림 고기들은 꽤 맛이 좋았고, 고집을 부리던 라비 역시 막판에는 슬며시 수저를 들었다가 순식간에 통조림 세 개를 비워 버렸다.
식사가 끝났을 무렵, 식당 밖에서 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털털털.
“뭐지?”
순간, 페이진과 카츠미, 라비는 긴장한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았지만, 정작 나타난 것은 바퀴 달린 고철 로봇이었다.
삐걱삐걱…….
부엌으로 들어온 로봇이 빈 통조림 캔들을 전부 회수한다.
로봇의 관절부가 움직일 적마다 쇠붙이 소리가 꽤 날카롭게 들려왔다.
“이건 뭐야?”
로봇을 본 페이진이 꽤 놀란 듯 입을 쩍 벌렸고, 카츠미 역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상기된 얼굴로 칼집에 손을 올려놓았다.
“메타… 휴먼?”
“아니. 이것들은 그저 쇳덩어리를 결합해 만든 로봇일 뿐이야.”
딘이 조용히 대답했다.
로봇들은 메타휴먼과 달리 인간의 모습을 조금도 닮지 않았다.
물론 호흡을 하거나 식사를 하지도 않는다.
“포트리스에 있는 인간은 여기 원탁에 둘러앉은 여섯 명뿐이야. 그러니 안심해도 좋아.”
그사이, 다른 로봇이 커피포트와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두 발로 걷는 안드로이드 로봇이었다.
“인간이라…….”
페이진이 의아하다는 듯 딘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말인가?”
“무슨 뜻이지?”
“붉은 눈동자를 가졌다는 건…….”
페이진은 잠시 주저했다.
알렉세이 딘을 자처하는 남자의 눈동자는 프랑켄과 같이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이쪽 세계에서 붉은 눈동자는 메타휴먼을 상징한다. 그리고 메타휴먼 중 이성을 가진 존재를 사람들은 ‘로보티안(Robotian)’ 혹은 ‘버그(bug)’라 불렀다.
로보티안은 일종의 유사 인간으로 취급되며 배척받는다.
딘이 페이진을 바라보며 말없이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딘의 옆자리에 앉은 프랑켄 역시 굳은 표정으로 페이진을 똑바로 응시했다.
“너희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든, 나는 인간이야.”
페이진이 입술을 깨문 채 반박하려 했지만, 딘은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약 65%의 물, 28%의 탄소, 질소와 칼슘, 인, 염소 등 기타 구성 성분까지, 나의 신체는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이 맞아.”
“어?”
“프랑켄 이 친구도 마찬가지야. 몇 번의 개조를 거쳐 사이보그에 가깝게 변하긴 했지만, 기계부를 제외한 파츠들은 틀림없이 인간이야.”
딘이 잘라 말하자, 페이진은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이번에도 딘의 정의는 실로 독특한 것이었다.
딘의 설득은 영혼 따위를 들먹이거나 정치적 권리를 내세우지도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페이진이 마지못한 듯 중얼거렸다.
“…오해는 마. 내가 코카서스(Caucasus) 같은 쓰레기는 아니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만약 당신이 그놈들과 한통속이었다면 이곳에 들인 걸 후회했을 거야.”
페이진은 충돌을 피하고자 논쟁을 포기한 것이지만, 딘은 충분히 만족한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꽤 많은 놈들이 날 잡으려 했지. 그중 가장 지독한 놈들이 코카서스였어.”
역사와 함께 소실된 신화 속에서 신들의 왕 제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건넨 프로메테우스에게 잔혹한 형별을 가한다. 당시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산의 이름이 바로 ‘코카서스’였다.
“날 더러 악마의 인형이라고 부르더군. 내 몸이 자신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하여튼 머리가 텅 빈 것들이 악마니, 영혼이니 운운하면서 헛소리를 퍼부어 댄다니까.”
딘은 히죽 웃으며 코카서스에 대한 험담을 쏟아 냈다.
태일은 ‘코카서스’라는 집단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쪽 세계에서 처음 본 메타휴먼은 인간을 흉내 냈으되, 인간이 아닌 존재였다. 원탁에 커피를 내놓고 있는 안드로이드처럼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한 기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가끔 프랑켄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자각한 메타휴먼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그런 존재를 나름대로 정의해야 했다.
인간과 닮았으되, 인간이라고 인정하기 어려운 존재.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필요한 만큼의 권리만을 허락해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거나, 아예 인정하기를 거부하며 파괴하려 들거나.
코카서스는 바로 후자의 반응을 보인 자들이었다.
카츠미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조용히 물었다.
“여긴 어디지? 분명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갑자기 요새가 나타났는데.”
“후후, 신기하지? 아공간을 활용해서 겹쳐진 차원에 요새를 비롯한 오브젝트들을 숨겨…….”
“흠흠.”
프랑켄이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자, 딘이 입을 다물었다.
알렉세이 딘은 입이 꽤 가벼운 남자였다. 물론 딘이 설명한다 해도 녀석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드물었지만.
“아공간? 오브젝트? 대체 무슨…….”
페이진은 멍청한 얼굴로 딘을 보며 중얼거렸다.
반면, 처음 질문을 던진 카츠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커피만 머금고 있었다.
잘 모르는 이야기가 오갈 때에는 침묵이 더 나은 법이다. 그런 점에서 카츠미의 대응이 훨씬 현명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놀란 듯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
순간, 모두의 시선이 줄곧 조용하던 라비에게 집중되었다.
“아저씨가 하는 말, 멤브레인(Membranes)이잖아?”
“호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딘은 흥미롭다는 듯 라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멤브레인에 균열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 텐데?! 분명…….”
딘이 피식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꼈다.
“꼬마야, 난 성공했어. 네가 있는 이 포트리스가 바로 그 증거고.”
“리플렉터나 일루전 종류의 기술이겠지. 돈은 비싸게 들겠지만, 최소한 불가능하지는 않아.”
“반사나 신기루 따위로는 이렇게 완벽하게 공간을 분리할 수 없어, 꼬맹아.”
딘의 표정은 마치 즐거운 게임에 완전히 빠져든 소년처럼 보였다. 반면, 라비는 마치 홀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편, 카츠미는 꽤 놀란 얼굴로 자신이 몇 분 전 죽이려 한 꼬마를 바라보았다.
어린 여자가 한 무리의 리더를 맡으려면 그에 맞는 능력이 필요한 법이다. 라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라비에게는 49구역 라이더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지식’이 있었다.
“그쯤 해 두지. 어차피 대부분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잖아.”
“어? 그런 거였어?”
딘이 놀란 얼굴로 원탁을 둘러보자, 라비를 제외한 모두가 슬슬 시선을 돌렸다.
“뭐, 그래. 배도 찼으니,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자고.”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딘이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 잔을 밀어 냈다.
깡통 로봇이 다시금 털털거리며 들어와 잔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문은 내가 먼저 해야겠어. 어쨌든 이곳의 주인은 나니까.”
딘이 태일을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을 연달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신태일, 당신은 알렉세이 딘과… 그러니까 나와 정확히 어떤 사이이지? 애당초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딘의 질문에 페이진과 카츠미는 물론, 프랑켄까지도 태일을 바라보았다. 태일에 대해 궁금한 이는 비단 알렉세이 딘뿐만이 아니었다.
페이진과 카츠미, 프랑켄 역시 태일에 대해 아는 게 그리 많지는 않았다.
등장하자마자 마피아 조직 하나를 괴멸시켰고, 바로 얼마 전에는 캐피탈 클럽의 음모까지 막아 낸 남자. 그러나 정작 태일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잠시 생각하던 태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렉세이 딘은 내 친구이자 동료였어. 하지만 당신은… 아니지.”
딘의 질문은 그 자체로 많은 답을 내포하고 있었다.
딘에게는 태일에 대한 기억이 없다. 아니, 심지어 본인이 ‘알렉세이 딘’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알렉세이 딘이야.”
딘이 부아를 내며 말했지만, 태일은 거기에 대꾸하는 대신 다음 질문에 답했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난 ‘레미제라블’이라는 바의 주인이야. 단지 그뿐이지.”
태일의 과거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기대하던 이들은 금세 김빠진 표정이 되어 버렸다.
딘 역시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불성실한 답변이네. 이래서야 통조림 값도 안 나오겠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 난 네 질문에 사실대로 답변했을 뿐이야.”
“…….”
“이번에는 내가 묻지.”
태일이 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알렉세이 딘이 아니었다.
“Z―rail 본사로 가야겠어. 이용할 수 있는 빠른 수단이 있나? 비공정이라든지 전차라든지.”
딘이 아닌 남자에게 던질 사적 질문 따위는 없다.
정적이 흘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새, 터무니없는 기술력, 첩자 역할을 하던 프랑켄에 이르기까지, 당장 몇 분 사이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카츠미는 태일이 그런 것들 중 하나를 질문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태일은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았다.
태일이 50구역을 떠나온 이유는, 멈춰 선 열차를 다시 움직이기 위함이다.
“…젠장.”
카츠미는 낮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정작 리더의 자리에 앉은 자가 환경에 휘둘려 본연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50구역은 시시각각 말라 가고 있을 것이다.
한편, 딘은 뚱한 얼굴로 태일을 바라보다가 짧게 대답했다.
“있어.”
“다행이군. 그중 한 대만 있다면…….”
“빌려주는 건 다른 문제지.”
딘의 말투는 앞서와 달리 매우 진지했다.
“신태일, ‘셸터’에 들어와.”
“박사님!”
프랑켄이 깜짝 놀란 듯 딘을 향해 외쳤다.
“잠깐.”
그러나 이미 카츠미는 이미 딘의 말을 똑똑히 들은 뒤였다.
“방금 뭐라고… 했지?”
카츠미의 목소리는 마구 떨리고 있었다.
“‘셸터’라고 했나?”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