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포트리스의 사막여우 (4)
외부인들의 눈에 49구역의 황량한 땅은 그저 끝도 없이 펼쳐진 벌판처럼 보이지만, 오랜 기간 이 땅을 누벼 온 라이더들에게는 나름의 ‘포인트’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에서 바이크 부품이 거래되는가 하면, 흙먼지가 쌓여 가동되지 않는 주유소를 용병들이 창고로 사용하기도 했다.
한때 군용 건물로 사용되던 건축물 앞, 수십 대의 바이크들이 멈춰 섰다.
본래 사령부로 만들어져 무기들이 비축되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역사 시대의 끝자락에 폭격으로 인해 반파되었고, 지금은 파괴된 모습 그대로 흉가에 가까운 꼴을 하고 있었다.
“정지! 정지! 여기서 잠시 숨 좀 돌린다!”
리더의 신호에 따라 바이크를 멈춰 세운 라이더들은 제각기 수통의 물을 마시거나 육포를 씹었다. 새벽같이 두 시간을 꼬박 달린 덕분에 라이더들은 전부 꽤 지친 상태였다.
리더의 얼굴에서는 피로감과 더불어 긴장이 떠올라 있었다.
백련의 소집 명령.
이번 소집에는 엄청난 기회가 걸려 있었다.
최근 3대 용병단을 비롯한 메이저급 용병단에 갑작스러운 전력 누수가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는 펑크라이더들에게 기회였다.
수많은 팀이 ‘용병단 가입’이라는 기회를 잡기 위해 집결할 것이다.
라비와 스컬 등 나름 이 바닥에서 쟁쟁한 녀석들이 모조리 달려들었지만, 폴이라고 해서 기회를 잡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어이, 남의 영업장 앞에서 뭐야! 엔진 안 꺼? 시끄럽잖아!”
얼마간 쉬고 있으려니, 흰 턱수염이 고슴도치처럼 솟은 노인이 펑퍼짐한 엉덩이를 뒤뚱거리며 건물 밖으로 나왔다.
폴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노인을 바라보았다.
한편, 짜증을 내며 모습을 드러낸 노인은 곧 폴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히죽 웃어 보였다.
“뭐야, 폴. 아직 살아 있었냐?”
반파된 건물이라도 비를 피할 수 있다면 주인은 있다.
폴이 건물의 주인, 장 영감을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출장이라도 나갔나 했더니만, 안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장 영감도 아직 살아 있었네.”
49구역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기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장 영감은 60세가 넘도록 살아남았으니, 생존력 하나만큼은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뭐 필요한 물건이라도 있어서 온 건가? 아니면 넘길 거라도 있냐?”
장 영감이 눈을 가늘게 뜬 채 바이크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펑크라이더들에게 저가의 불량 바이크와 장비들을 팔아먹는 자칭 엔지니어였다. 장 영감이 생산하거나 개조한 바이크들은 하나같이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지만, 스피드만큼은 확실했기 때문에 많은 펑크라이더들이 그의 제품을 사용했다.
폴 역시 그에게 세 번이나 바이크를 구매했다. 즉, 앞선 두 개의 바이크는 처참하게 박살 났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바이크 때문에 두 번이나 죽을 뻔한 걸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뚱보 영감의 머리를 부수고 싶었지만, 그가 죽어 버린다면 저가 바이크 수급은 영원히 불가능하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영감한테 볼일이 없어. 우리도 소집 명령을 받고 온 거거든.”
“소집? 여긴 너희들 구역도 아니잖아?”
49구역에서 닳고 닳은 장 영감은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폴은 알짜배기 포인트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서 밀려난 상태였기에 그런 지적이 달가울 리 없었다.
성질을 긁는 장 영감의 말에 부아가 치민 폴이 차갑게 쏘아붙였다.
“영감, 호기심은 명을 단축시킨다는 거 몰라?”
물론 장 영감은 새파랗게 젊은 폴의 협박에 꼬리를 말 정도로 녹록한 인간이 아니었다.
“내가 너보다 세 배는 오래 살았어, 애송아. 너희 무리가 타고 다니는 바이크 대부분은 내 손으로 만들었지. 건방지게 굴면 재미없어.”
장 영감의 말에 별달리 대꾸하지 못한 폴이 포켓에서 꺼내 든 육포를 화풀이 삼아 질겅질겅 씹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번뜩였다.
이번 소집의 이유, 그거라면 눈앞 건방진 영감을 엿 먹일 수 있다.
“포트리스가 발견된 모양이야.”
폴의 생각은 맞았다.
뚱보 영감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뭘 발견해?”
“포트리스 말이야. 우리는 ‘여우’를 길들이러 온 거야.”
장 영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수십 년 동안 엔지니어를 자처한 장 영감의 아킬레스건, 그건 이른바 ‘사막여우’의 존재였다.
7년 전, 49구역에 갑작스레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산탄을 쏟아 내는 머스킷,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주는 슈트, 엄청난 스피드와 안정성의 모빌리티 등 장비 하나하나가 기존의 상식을 뒤엎어 버리는 것들이었다. 아니, 애당초 대륙의 기술 수준으로 제작이 불가능한 물건들이었다.
그 장비들의 메이커라 알려진 인물이 바로 사막여우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알렉세이 딘’이었다.
사막여우의 등장과 함께 49구역 유일의 기술자로 존중받아 온 장 영감의 명성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장 영감의 조잡한 장비들은 사막여우의 것들과 공공연하게 비교되었고, 모욕적인 비하를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장 영감은 묵묵히 저품질의 물건들을 생산해 낼 뿐이었다.
그리고 5년 전, 사막여우는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다.
“사막여우를… 아니, 포트리스를 발견했다고?”
‘포트리스’는 사막여우가 머무른다는 요새였다.
센트럴의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은폐된, 오버테크놀로지 장비들이 잔뜩 쌓여 있는 보물창고.
그게 바로 소문 속 포트리스였다.
용병단들이 무리해 가며 포트리스를 찾아 헤맨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 어떤 용병단도 포트리스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럴 리 없어.”
이번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한편, 폴은 침착성을 잃은 채 흔들리는 장 영감의 얼굴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남은 육포를 씹어 삼켰다.
“사막여우니 포트리스니 하는 건 다 헛소리야. 암, 그렇고말고.”
그도 그럴 게, 지난 5년간 사막여우의 장비들은 유통되지 않았다.
“이봐, 애송이. 포트리스에 대한 정보, 이 바닥 모든 라이더에게 전달되었겠지?”
“거의 그렇겠지. 나한테까지 전달되었을 정도… 잠깐, 영감. 그게 왜 궁금한데?”
“잠깐 기다리고 있어!”
폴의 말에 마음을 굳힌 장 영감이 뒤뚱거리며 건물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폴은 그런 장 영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은 뒤, 바이크의 바퀴와 엔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들 출발 전에 최종 확인해!”
정비가 필요하다면 장 영감이 있는 이곳에서 부품과 장비를 조달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렇게 폴의 일행이 얼마간 바이크를 손보고 있을 때 즈음, 장 영감이 바퀴 달린 무언가를 덜덜거리며 끌고 나왔다.
의아한 얼굴로 뚱보 영감의 하는 꼴을 지켜보고 있던 폴은 그 물건을 자신의 바이크에 연결하자 깜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어, 어? 뭐 하는 거야, 영감?”
어느새 폴의 바이크에는 사이드카가 결속되어 있었다.
속도를 중시하는 펑크라이더의 바이크에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물건을 달고 다닌다는 것은 효율을 떠나 비웃음거리가 되기 딱 좋은 짓이었다.
“이 미친 영감탱이가!”
성을 내며 사이드카를 발로 차려는 순간, 장 영감이 폴을 향해 웬 쇠뭉치를 건넸다.
“이건!”
“7.92밀리 다섯 발이다. 날 포트리스까지 데려다 주면 스무 발을 더 주지. 선수금이라고 생각해.”
폴이 멍하니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탄환들을 바라보았다.
클립에 끼워진 다섯 발의 탄환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허접한 공포탄 따위와는 달랐다.
그러나 폴은 용병을 지망하는 펑크라이더이고, 용병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자신의 몸값을 합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교섭력이다.
“30발.”
“…….”
“30발은 받아야겠어. 영감을 안전히 모시려면 그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어? 선수금으로 열 발.”
폴은 배짱을 부리는 와중에도 장 영감이 당장에라도 다섯 발을 빼앗을까 싶어 급히 탄환을 자신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러나 장 영감은 말없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다섯 발을 더 꺼내 던지듯 건넸다.
화조차 내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탄환을 내주는 장 영감의 모습에 오히려 폴이 놀랄 정도였다.
‘망할 영감탱이, 대체 얼마나 숨겨 둔 거지?’
폴은 장 영감을 포박한 뒤, 그의 거처를 털어 탄환을 모조리 빼앗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에게 손을 댄다면 영감과 거래하는 모든 이들의 표적이 될 것이다.
자칫 거대 용병단의 적이 된다면, 100발의 총탄이 있다 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
“…좋아.”
폴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이크에 올랐다.
이왕 온 김에 바이크를 튜닝하고, 부품을 갈겠다는 생각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 무엇보다 탄환을 받아 내는 일이 급하다.
“안전히 모시지.”
폴이 팔을 들어 올리자 다른 라이더들 역시 급히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폴은 항상 카빈 소총을 등에 메고 다녔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 폴이 소유한 열 발의 총탄은 열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이었다.
폴 일행은 약 15분간 시속 2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사막을 질주했다.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폴을 비롯한 라이더들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고글을 쓰고 있었다.
“비가 쏟아질 거 같다! 엔진 망가질 수 있으니 조심해!”
폴은 사이드카에 눕다시피 앉아 목소리를 높이는 장 영감을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무슨 헛소리야?!”
49구역의 사막지대에는 평소처럼 흙먼지가 몰아치며, 몇 시간 동안은 유달리 건조한 기후가 유지되고 있었다. 먹구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장 영감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49구역과 50구역에서 수십 년 동안 이행된 봉쇄정책의 결과, 땅은 척박해지고 기후는 미쳐버렸다. 한때 우기였던 시기에 폭염이 지속되는가 하면, 건기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져 한 지역이 모조리 잠겨 버리기도 했다.
망가진 환경과 후퇴한 기술력으로 버려진 49구역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의 감각은 꽤 정확한 편이었다.
“허리가 뻐근하단 말이다!”
폴이 장 영감의 말에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순간, 선발대로 앞서 달리던 두 녀석이 갑자기 바이크를 멈춰 세웠다.
둘은 무언가를 목격하고 깜짝 놀란 듯 황급히 바이크의 핸들을 돌려 되돌아 달려왔다.
멀리서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만큼 둘은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다들 정지!”
폴은 입술을 깨물며 카빈 소총을 꺼내 들고, 장 영감에게 받은 탄환을 장전했다.
그사이, 폴의 앞으로 헐레벌떡 달려온 둘은 창백한 얼굴로 두서없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대, 대장!!”
“전부, 전부 뒈졌어!”
한창 전투를 준비하던 폴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는 둘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꼴사납게 뭐 하는 짓들이야! 똑바로 말 못 해?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거야?”
“스컬 패거리와 라비 패거리 전부… 당했어.”
“뭐라고?!”
장 영감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사이드카에서 달려 나왔다.
“그, 그럴 리가… 아닐 거야… 아니야…….”
장 영감은 넋이 반쯤 나간 채 허겁지겁 앞으로 달렸고, 폴 역시 입술을 깨문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잠시 뒤, 폴의 눈에 처참한 광경이 비쳤다.
“이게 대체……!”
채 식지 않은 피 냄새가 짙게 풍겨 온다.
바로 조금 전까지 이곳에서는 처참한 살육이 벌어진 듯 보였다.
석궁이나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걸로 보아 펑크라이더들은 누군가를 공격하려 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라이더들은 도리어 상대에게 당해 버렸다.
팔다리가 날아가거나 목뼈가 부러지고, 이마에 총탄이 박힌 시신들은 하나같이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녀석들이었다.
그 와중에 펑크라이더를 제외한 적의 시신은 보이지 않는다.
“라, 라비!”
장 영감은 허겁지겁 시체들의 면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간 듯 시체들을 마구 뒤집어 보는 장 영감의 모습은 소름 끼칠 정도였다.
반면, 지금껏 허세를 부리던 펑크라이더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얼어 있었다.
무법자처럼 행세한다 해도 펑크라이더들은 고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애송이에 불과했다. 살인에도, 죽음에도 익숙하지 못하다.
“우, 우우욱!”
폴의 뒤쪽에 있던 녀석들 중 몇이 허리를 숙인 채 토하기 시작했다.
폴은 애써 구역질을 참아 냈지만, 더는 견디기 어려운 듯 시선을 떨군 채 부들부들 떨었다.
“이봐, 영감! 돌아와!”
잠시 후, 정신을 차린 폴이 장 영감을 불렀다.
“돌아가야겠어. 빨리 튀어야 한다고!”
그러나 장 영감은 폴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시신들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폴은 피를 뒤집어쓴 장 영감을 보며 침을 탁, 뱉었다.
“젠장, 여기서 뒈지든지 말든지! 우린 오늘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알겠어?”
아무리 용병단 가입이 걸려 있는 기회라 해도 목숨은 하나다. 폴은 수많은 라이더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에 발을 담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똑. 똑.
때마침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이크는 물과 친하지 않다.
“빨리 준비해!”
그러나 바로 그때, 시체들이 가득한 현장에서 모기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 살려… 살려… 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폴의 부하들이 황급히 목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달려갔다.
“리, 리더! 라비 밑에 있던 ‘몽키’야! 아직 살아 있어!!”
폴이 눈살을 찌푸리며 목격자를 향해 다가가던 중 뒤쪽에서 달려온 장 영감의 힘에 휘청이고 말았다.
“이, 이봐! 영감, 무슨 짓이야?”
폴이 목소리를 높이는 찰나, 장 영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라비… 라비 애슈턴은 어디에 있어? 살아 있겠지? 그렇지?!”
몽키의 멱살을 움켜쥔 장 영감의 목소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