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61화 (62/220)

61화 포트리스의 사막여우 (2)

“대체 당신, 정체가 뭡니까?”

프랑켄이 자신의 이마에 겨눠진 AL―13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꾸민 듯한 미소도, 친절도 없다.

프랑켄의 말투에는 조금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도리어 그런 모습이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프랑켄은 더 이상 기계를 흉내 내지 않았다.

“공교롭네. 나도 마침 그걸 묻고 싶던 참인데.”

태일은 프랑켄의 붉은 두 눈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답했다.

프랑켄은 AL―13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러 태일을 49구역의 지하 벙커, 포트리스로 데려왔다.

프랑켄이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렉세이 딘…….”

태일이 딘의 이름을 말하자 프랑켄의 표정에 균열이 일었다.

“녀석이 여기에 있나?”

“…….”

그 순간, 주변에 뿌옇게 흙먼지가 일었다.

모래폭풍 속에서 G―7과 태일, 프랑켄을 둘러싼 주변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태일과 프랑켄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곧이어 방금까지 평지에 불과하던 공간에 거대한 요새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에서는 빛의 굴절로 인해 때때로 신기루 현상이 목격된다. 그러나 사실상 허상에 불과한 신기루와 달리 모습을 드러낸, 아니, 갑자기 나타난 요새는 그림자와 함께 묵직한 실체를 지니고 있었다.

“녹스(Nox)… 5형이군.”

태일은 둥글게 둘러쳐진 요새의 포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딘이 만든 천재적인 작품 중 으뜸을 꼽으라면, 단연 녹스 시리즈였다.

딘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임시 은폐 기술에 불과하던 1형에서 출발해 5형에 이르러 기어코 기지 전체를 숨기는 데 성공했다.

센트럴의 레이더와 위성조차도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오버테크놀로지.

최소한 몇 세대는 앞서간 딘의 역작이었다.

태일은 AL―13을 늘어뜨린 채 모래바람으로 휩싸인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식 증기기관차가 대륙을 달리고, 역사 시대의 유물인 리볼버가 사용되는 시대에 딘의 작품을 목격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다.

“아니. 이건 6형이야.”

익숙한 목소리에 태일의 얼굴이 굳어졌다.

“…….”

“기능 하나를 더 추가했거든.”

흙바람 속에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서 있었다.

곁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프랑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의 옆에 섰다.

곧이어 남자의 뒤편으로 회색 지붕, 허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원반과 같은 허브는 흙먼지 속에서도 선명한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벌집처럼 육각형을 이어 붙인 구조로 설계된 포트리스 허브는 무수한 폭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만큼 견고한 철벽의 요새였다.

“우리의 포트리스에 온 걸 환영해.”

혁명군의 거처였던 포트리스는 이쪽 세계에서도 건재했다.

태일은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민 붉은 머리의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태일의 입에 물려 있던 담배는 어느새 땅바닥에 굴러 떨어진 상태였다.

붉은 머리칼에 소년 같은 눈매, 천진난만한 웃음.

그 모든 게 태일에게는 너무도 익숙했다.

“…딘?!”

태일은 얼음처럼 그 자리에 굳어 버린 채 눈앞에 나타난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배신의 밤, 태일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것은 딘이었다.

[망할 배신자 새끼들이 오브를 정지시키는 바람에 지금 거기엔 놈들을 막을 수단이 없어. 젠장, 내가… 내가 50구역에만 있었더라도!]

분노한 딘의 목소리에서 울분과 괴로움이 묻어났다.

딘은 49구역 포트리스의 보안망 수리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참이고, 그사이에 배신자들은 모든 시스템을 꺼버렸다.

애당초 49구역 보안망을 망가뜨린 것 역시 놈들의 계획이었다.

[배신자들이 다크 웹을 통해서 히트맨들을 최소 20팀 이상 동원했어. 이 벌레 같은 새끼들이!]

“…….”

배신자들은 폭격조차 막을 수 있는 딘의 방공망뿐 아니라 경보 장치까지 완전히 해제시켜 버린 상태였다.

만약 소란이 커진다면, 센트럴은 그 즉시 폭격을 시작할 것이다.

방공망과 경보 장치가 모조리 마비된 상황에서 폭격이 시작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 사실을 배신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도망쳐, 지금 당장. 네 능력이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잖아!]

“…….”

[야, 듣고 있어?]

“내가 도망치면…….”

[너, 너, 설마…….]

“50구역은 폭격으로 끝장나겠지.”

[야, 이 미친 새끼야!]

배신자들이 방공망을 걷어낸 것은 경고였다. 놈들은 50구역 주민 전부를 인질로 잡은 것이다.

놈들은 혁명 전체를 걸고 배신을 택했다.

[넌 지휘관이야. 알아? 네가 무너지면 내 연구는…….]

“그래, 난 지휘관이야. 그래서 도망칠 수 없는 거고.”

[죽을 생각이냐?]

“그럴 리가. 배신자 놈들을 전부 처리하고 합류할게.”

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배신자는 혁명군 창설 당시부터 함께한 세 명이었다. 그렇기에 셋의 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셋뿐만 아니라 히트맨 부대까지 개입한 이상, 승산은 희박했다.

태일 혼자서 뚫고 나올 수 없는 포위망이다.

“세연이에게는 네가 연락해 줘. 난 이미 탈출했다고, 포트리스에서 만나자고… 그렇게 전해 줘.”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와. 그 새끼들이 아무리 밑바닥까지 갔어도 센트럴의 폭격까지 감수하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당연하지. 살아서 갈 거야. 포트리스에서 보자.”

그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고, 태일은 포트리스로 돌아왔다.

* * *

“하아, 진짜 미치겠구만.”

페이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양손의 리볼버를 고쳐 잡았다.

페이진과 등을 맞대고 선 카츠미 역시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리볼버를 움켜쥔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엔진 소리가 사방을 메운 가운데, 펑크라이더들이 주변을 겹겹이 포위한 상태였다.

“전부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일전과 달리 라이더들의 수는 배로 늘어 있었다.

조잡한 무기로 무장한 놈들은 고함을 질러 대며 페이진과 카츠미의 주변을 원형으로 맴돌았다.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듯 공중을 향해 폭죽 같은 것을 쏘아 올리는 놈도 있었다.

놈들은 질서도, 체계도 없이 그저 미쳐 날뛸 뿐이었다.

“당주, 이건 아무래도 좋지 않아.”

페이진은 놈들이 이질적인 집단의 어설픈 연합이라는 것을 곧 눈치챘다.

펑크라이더는 다른 집단과 손을 잡지 않는다. 그런 규칙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 말인즉,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다는 의미였다.

“놈들은 선발대에 불과해. 곧 본대가 올 거야. 일단 피하고…….”

“전부 베어 버리면 그만이야.”

카츠미의 단호한 선언에 페이진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여기에서 계속 싸우겠다고?”

넓은 개활지, 적의 기동력과 숫자, 게다가 뒤이어 들이닥칠 본대까지.

이곳에 오래 머무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신태일이 돌아올 때까지 버틴다.”

카츠미의 말에 페이진은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G―7과 태일, 프랑켄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만약 몰래 어디론가 가 버렸다면 응당 들려야 할 엔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지만, 신태일, 그 괴물이 누군가에게 당한다는 것은 애당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긴…….”

믿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차도 없이 사막 한가운데 버려져서 괜히 헤매 봤자 미아가 될 뿐이다.

식량과 물이 없는 상황에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당주의 명령에 따르지.”

철컥.

생각보다 총알은 충분하지 않았다.

용병은 돈이 되지 않는 일 따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9구역의 통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용병단 입장에서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처리할 졸개들이 필요했다.

그런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데 동원되는 이들이 바로 펑크라이더였다.

펑크라이더들은 용병단 간의 대리전을 수행했고, 세금을 바쳐 용병단의 엠블럼을 받았다.

그렇게 용병단의 키즈(Kids)로 생활하다 보면, 결원이 생겼을 때 정식으로 용병단에 소속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사실상 용병단 입장에서는 가입을 미끼로 급여조차 주지 않은 채 라이더들을 부려먹는 것이지만, 키즈들은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라비는 그 경쟁의 선두에 서 있었다.

경쟁자 스컬의 죽음 직후 낙오되어 떠돌던 스컹크 무리를 만났고, 녀석은 순순히 자신이 겪은 일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우두머리를 잃어버린 녀석들은 순순히 라비의 휘하로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백련이 찾는 놈들이 라비의 눈앞에 있었다.

“저놈들 확실해?”

“그래, 맞아.”

“넷이었을 텐데?”

“나머지 둘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하, 하지만 저 둘도 분명 같이 있었어.”

스컹크가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겁을 집어먹은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고작 이런 놈을 부하랍시고 거느렸으니, 스컬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은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라비의 부하들은 두 사람을 포위한 채 한껏 기세를 올렸다.

둘은 그럴싸한 리볼버 든 채 라이더들을 겨누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앳돼 보이는 소녀는 다른 손에 검까지 들고 있었다.

“리볼버는 꽤 좋아 보이는데…….”

그러나 리볼버가 있다 해도 탄환이 없다면 한낱 쇠몽둥이에 불과했다. 잘나가는 용병이라면 모를까, 한 발의 가격이 바이크 한 대 값인 탄약을 물 쓰듯 쓸 수는 없다.

고작해야 싸구려 공포탄 정도를 장전해 놓았을 것이다.

라이더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총구 앞에서도 그다지 겁먹지 않았다. 아니, 겁먹기는커녕 괴성을 내지르며 둘을 위협했다.

“하여튼 철없는 새끼들.”

웃통을 벗은 채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던 몽키가 핸들에서 양손을 뗀 채 고함을 내지르며 비틀대더니, 곧이어 바이크에서 떨어져 저만치 굴러가 버렸다.

“얼씨구?!”

한참을 구른 몽키는 제 몸이 망가진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대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본 라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 와중에 다른 녀석들은 깔깔거리며 웃기 바빴다.

“어이, 핀! 저 새끼,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어어, 아무래도 이번 임무만 마치면 고생 끝이잖아? 죽어라 마시더만. 그냥 자게 냅 두자고!”

“병신 같은 자식! 아예 저기서 그대로 코 박고 뒈지라 그래!”

라비의 걸죽한 욕설에 라이더들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편, 라비 일행이 한창 여유롭게 즐기는 사이에도 포위망 한가운데 두 사람은 조금도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부하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라비는 그런 둘의 모습이 못내 불안했다.

“저 둘, 꽤 전투에 익숙해 보이는데.”

스컹크가 허겁지겁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노, 놈들의 일행 중 능력자가 있었어.”

스컹크를 비롯한 스컬의 부하들은 꽤 험한 일을 겪었는지, 꼬리를 만 채 절대 놈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라비는 그런 녀석들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뭐, 녀석들도 굳이 먼저 달려들 생각은 없는 것 같으니까.”

충돌을 피할 수 있다면 라비 입장에서도 그보다 좋은 일은 없었다.

이미 신호를 보냈으니, 백천단 용병들이 곧 들이닥칠 것이다.

애당초 라비의 역할은 놈들의 발을 묶어 두는 것뿐이었다. 놈들을 붙잡아 고문하든, 가죽을 벗기든 그건 용병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한창 무리의 사기를 올리던 핀이 갑자기 제 흥에 취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자자!! 이 빌어먹을 라이더 생활도 이제 끝이다! 마지막 임무라고!”

“우와아아아아!!”

“저 둘을 잡아! 꽁꽁 묶어 먹기 좋게 포장해서 입단 선물로 내놓자고!”

순간, 라비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어이, 핀! 무슨 개소리야!”

그러나 이미 얼큰히 취한 핀은 그런 라비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신고식이다, 얘들아! 잡아!!”

“여자는 내 몫이다! 저리 비켜!”

라비는 그대로 둘을 향해 달려드는 라이더들을 바라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멈춰, 이 머저리들아!”

다음 순간, 포위되어 있던 둘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그리고 그 사격은 그저 위협용이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타타타탕!!

“이게 무슨!”

귀가 찢어질 정도의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펑크라이더 열댓 명이 그대로 땅에 엎어져 버렸다. 그중 일부는 실제 총에 관통당하기도 했지만, 그저 총소리에 놀라 자빠진 라이더가 태반이었다.

라이더 대부분은 총소리를 들어 본 적조차 없는 애송이들에 불과했기에 연달아 들려오는 사격음은 순식간에 무리 전체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한편, 기세를 잡은 둘은 탄을 쏟아부으며 라이더들을 도리어 몰아붙였다.

“이, 이런!”

라비가 황급히 바이크의 시동을 걸고 라이플을 고쳐 잡았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라비의 눈에 지금껏 함께해 오던 핀의 모습이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핀의 목이 허공으로 떠오르며 사방에 피가 흩뿌려진다. 벌겋게 달아오른 핀의 얼굴은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안 돼!!”

바이크에서 힘없이 나가떨어진 핀의 몸뚱아리 뒤편으로 악귀처럼 피 칠갑을 한 여검사의 모습이 보였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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