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60화 (61/220)

60화 포트리스의 사막여우 (1)

2021년 10월, 태일의 혁명군은 49구역의 용병, 센트럴 연합군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고, 제2의 방주라 부를 법한 포트리스를 확보했다.

49구역의 상징성은 대단했다.

49구역을 제압하면서 주변 세 개 구역의 저항군들이 합류 의사를 표했고, 반란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실익은 적었다.

49구역에서 벌어진 전투는 혁명군 전력의 절반이 날아갈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혈투였고, 얻어 낸 땅은 대부분 폐허에 불과했다.

결과적으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은 전투였다.

센트럴에 의해 방치된 49구역은 사막화된 지 오래였고, 수십 년 전에 무너진 건물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물도, 식량도 부족했다.

그럼에도 승리는 승리였고, 태일을 비롯한 혁명군은 승전을 자축했다.

포트리스에 가득한 파티의 분위기는 밤새 사그라지지 않았다.

마침 그날 밤,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떴다.

땅이 메마른 대신 검은 매연이 없었고, 그 어떤 구역보다도 화려한 밤하늘을 자랑했다.

지하 벙커처럼 지어진 포트리스의 지붕, 즉 허브 위는 별을 보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이 땅은 내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야.”

등을 기대고 누운 세연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먼 옛날, 이 땅에는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어.”

“70년 전 얘기 아니었던가?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봤지.”

“…….”

“꿈에서.”

세연은 그렇게 말한 뒤, 실없이 웃었다.

농담을 좀처럼 하지 않는 그녀이지만, 가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생뚱맞은 소리를 꺼내곤 했다.

“여긴 원래 유목민의 땅이었어.”

그건 센트럴이 등장하기도 전, 그러니까 최소 수백 년 전의 이야기였다.

“대륙인들은 이 땅의 전사들을 두려워했지.”

유목민들은 넓은 땅을 누비며 수시로 대륙을 침공했고. 대륙의 국가들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그들은 침략자일 뿐, 지배자는 아니었다. 침공은 영속적 지배로 이어지지 못했고, 어느새 다시금 말을 달리곤 했다. 늑대와 같은 이들이기에 결코 집을 지키는 개가 될 수 없는 자들이었다.

길들여지지 않던 전사들을 키워 낸 초원은 역사 시대 말기까지도 지배자들에게 맞서는 전초기지로 남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이미 잊혀진 역사였다.

“너무 오래전 이야기야.”

태일은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옆에서 흘겨보는 세연의 눈빛에 움찔하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세연은 그런 태일의 모습에 피식 웃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았다.

“여긴 오랫동안 저항자의 땅이었어. 그건 나름 의미가 있지.”

센트럴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 땅의 저항자들은 자신의 국가를 되찾기 위해, 제국주의라 불리던 폭력에 맞서기 위해, 자유를 위해, 그리고 생존을 위해 싸웠다.

“글쎄, 과연 의미가 있을까? 기억하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데.”

초원은 모조리 사라졌고, 건물들은 완전히 파괴되어 다시는 복구되지 않았으며, 구역 자체가 철저하게 버려졌다.

이곳에 대한 모든 기록은 사라졌다.

센트럴은 이 땅을 그처럼 철저하고 잔혹하게 지워 버렸다.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의미가 있게 만들어야지.”

“…그래.”

그렇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은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아래쪽에서 단단히 골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당장 못 내려와?! 허브에 조금이라도 흠이 생기면 넌 내 손에 뒈질 줄 알아!”

“이봐, 딘! 째째하게 너무 그러지 말라고! 좋은 날이잖아? 더구나 지금 세연이도 같이 있…….”

“지랄하고 앉았네! 당장 내려와, 이 새끼야!”

“…너, 그거 질투지?”

태일은 허브 아래에서 거품을 물고 욕을 때려 박는 알렉세이 딘을 내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그날 49구역의 밤바람은 꽤 차가웠다.

그리고 약 반년 뒤, 혁명군은 무너졌다.

* * *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길이 다시 거칠어진 것 같은데…….”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차체 속에서 한창 죽는소리를 내던 페이진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막으로 변해 버린 49구역에서는 길을 잃기 쉬웠다.

도시처럼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건축물이나 표지판이 없었고, 대신 드물게 존재하는 폐기물이나 피탄지 따위가 지역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표지로 기능했다.

“철로도 안 보여…….”

카츠미 역시 노랗게 뜬 얼굴로 밖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말했다.

49구역을 관통하는 철로는 방향을 짐작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표시였다.

49구역과 50구역에 들어오는 철로는 애당초 단 하나뿐이고, 그 철로를 통해 물자들이 오가기에 49구역 주민들은 철로를 따라 생활 구역을 형성했다.

철로에서 멀어질수록 사람과 만나기 힘들고 위험해진다.

“실은 조금 전 모래바람 속에서 철로를 놓쳤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사막에 부는 모래바람은 끔찍할 정도로 거셌고, 바람이 부는 동안은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심지어 바람이 잦아든 뒤에는 모든 것이 모래에 덮여 웬만한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젠장.”

“우으으…….”

멀미에 지친 페이진은 힘없이 머리를 떨어뜨렸고, 카츠미 역시 이마를 감싸 쥔 채 머리를 뒤로 기댔다. 길을 잃었다는 말에도 화조차 내지 못할 만큼 둘은 지쳐 있었다.

그 와중에 태일은 말없이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약 10분 뒤, 페이진과 카츠미가 심하게 멀미를 겪는 통에 차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저만치 멀어져 구역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그사이, 태일 역시 차 밖으로 나와 불붙지 않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없으니 오늘 밤은 별이 잘 보일 것이다.

“태일 씨는 괜찮습니까?”

프랑켄이 옆으로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태일은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그래.”

혁명군 생활을 하면서 거친 길을 행군해야 할 경우가 적지 않고, 태일에게 이 정도 흔들림은 꽤 익숙했다.

“혹시 49구역에 와 본 적이 있습니까?”

“…글쎄.”

약 반년 전까지만 해도 49구역에서 큰 전투를 치른 태일이다. 물론 엄연히 다른 장소이고, 다른 환경이었지만.

프랑켄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꿈에서.”

“예?”

“꿈에서 와 봤다고.”

태일은 실없는 농담을 건네며 프랑켄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프랑켄이 기계적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프랑켄은 마치 기계를 흉내 내는 인간처럼 보였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철저하게 계산된 듯 행동하지만, 본질적인 모습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다른 세계에 존재하던 AI, 즉 인간을 흉내 내던 기계와는 다르다.

프랑켄은 인간이고, 따라서 알고리즘에 갇힌 기계와 달리 판단을 예측할 수 없다.

“프랑켄, 궁금한 게 있는데…….”

태일은 AL―13을 꺼내 들며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를 어째서 여기로 데려온 거지?”

“…….”

프랑켄은 대답 없이 가만히 태일을 바라보았다.

아까처럼 어설프게 길을 잃었다는 둥 헛소리는 내뱉지 않는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여기를… ‘포트리스’라고 부르지, 아마?”

철컥.

태일은 AL―13의 안전장치를 풀고는 프랑켄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날 여기로 데려온 이유를 말해.”

차에서 꽤 떨어진 곳.

한껏 속을 게워낸 카츠미는 한동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카츠미에게 있어 멀미는 전에 경험한 적 없는 고통이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는 통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 그렇게 멀미에 맥을 못 추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자신만만하게 일행에 합류했건만, 도움이 되기는커녕 멀미로 인해 짐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급기야 자신 때문에 차가 멈춰 서기까지 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50구역의 혼란은 더욱 커져만 가고 있을 것이다.

자켄의 힘을 믿고는 있지만, 아무리 그녀라 해도 더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50구역 내 불만은 격화된 상태였다.

카츠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낀 카츠미가 급히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쯧, 검 말고 총을 사용하라니까.”

“…페이진.”

곧 페이진의 모습을 본 카츠미는 한숨을 내쉬며 검에서 손을 떼었다.

“정말 죽을 맛이지. 안 그래?”

역시 비틀거리며 다가온 페이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멀미로 고생한 그 역시 얼굴이 핼쑥해진 상태였다.

“속이 괜찮아졌으면 차로 돌아가 있지 여긴 뭐 하러 온 거야?”

“당주님, 그렇게 날카롭게 굴 건 없지 않나?”

페이진은 나름 카츠미를 ‘당주’라 부르며 존중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스스럼없이 대했다.

카츠미 역시 그런 페이진의 태도를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지금 페이진에게 화가 나는 것은 다른 이유에서였다.

“하아, 대체 내가 왜 당신을 데려왔을까…….”

카츠미는 한숨을 내쉬며 페이진을 흘겨보았다.

용병들과 관계가 있기에 도움이 되리라 여겼건만, 막상 사막지대에 들어온 페이진 역시 멀미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카츠미와 더불어 짐 덩어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거 섭섭하네. 기껏 중요한 얘길 하려던 참인데.”

“중요한 얘기?”

페이진이 입을 열려다 말고 멈춰 선 차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들리지 않을 거리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 그가 카츠미의 가까이로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 버그, 신뢰할 수 있는 놈인가?”

“버그? 프랑켄을 말하는 건가?”

“그래.”

프랑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태일은 물론, 자켄과도 인연이 있는 경찰이기에 딱히 경계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저 녀석, 여기까지 오는 내내 속도를 조금도 줄이지 않았어.”

“뭐?”

“길을 잃었다면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달렸다고.”

“……!”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카츠미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프랑켄은 모래바람 속에서도 거침없이 달렸고, 그 와중에 태일과 여유롭게 대화를 주고받기까지 했다.

결코 길을 잃은 운전수의 태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프랑켄은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

“프랑켄, 저놈… 다른 의도가 있어.”

페이진의 관찰력과 직관은 발군이었다. 그는 그 능력으로 환락가의 무수한 전쟁 속에서 살아남았고, 부하들의 신뢰를 얻었다.

“대체 어째서…….”

“모를 일이지. 그 서장 놈이 대체 왜 우리를 방해하는지. 센트럴 놈들이 일찌감치 서장에게 손을 썼을 수도 있고.”

페이진은 강필이 프랑켄에게 무언가 지시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카츠미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서장과는 무관할 거야.”

강필의 성격상 무언가 해결할 일이 있다면, 그가 직접 일행에 따라붙었을 것이다. 더구나 센트럴이 LAPD와 손을 잡았다면, 지난 2주간 LAPD를 그렇게 완전히 방치할 이유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서장과 프랑켄의 관계는 악연에 가까웠다. 서장이 부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프랑켄의 체포였을 정도다. 그런 서장이 프랑켄에게 비밀스럽게 명령을 내렸을 리 만무했다.

“LAPD가 아니면, 저 자식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라고?”

카츠미는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야 모르지.”

아직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단 한 명이라도 다른 마음을 먹고 있다면, 이번 일은 성공할 수 없다.

“신태일, 그자와 얘기해 봐야겠어.”

“좋아, 빨리 움직이자고. 속은 좀 괜찮아졌나?”

“…그래.”

성격이 급한 페이진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카츠미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둘은 곧이어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뭐, 뭐야?”

방금까지 G―7이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태일과 프랑켄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는다.

둘은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멍하니 텅 빈 사막 지역을 바라보았다.

거센 모래바람이 다시금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