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59화 (60/220)

59화 광기는 달린다 (3)

“하아…….”

태일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어젖혔다.

흙먼지 속에 기름 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태일 일행을 겹겹이 포위한 펑크라이더들은 하나같이 조잡하기 짝이 없는 바이크와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들은 온갖 기괴한 함성을 질러 댔고, 바이크의 클랙슨을 울려 댔다.

하지만 정작 놈들 대부분은 비쩍 마른 상태인데다 자랑스럽게 온갖 문신을 새긴 상체에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휘이익!

라이더 중 하나가 카츠미를 보며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어 댄다.

놈들은 명백하게 태일 일행을 얕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태일 일행의 무장 상태를 이해할 정도의 상식을 갖춘 녀석조차 없었다.

그저 머릿수만 믿고 있을 뿐이었다.

“어리석은 놈들…….”

카츠미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는 권총을, 나머지 한 손으로는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끝내 검을 버리지 못한 카츠미를 보며 페이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귀찮게 됐어.”

“…그러네.”

감상은 그뿐이었다.

당장 눈앞의 펑크라이더들은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럴듯한 분위기에 비해 라이더들이 쥔 장비는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대장을 비롯해 간부처럼 보이는 일부가 소총과 석궁 따위를 쥐고 있지만, 대부분은 쇠파이프나 방망이 따위 어설픈 무기를 꼬나 잡고 있었다.

굶주린 것처럼 보이는 놈들의 상태를 보아 석궁의 활도, 총알도 부족할 게 빤했다.

“놈들이 문제가 아냐.”

페이진이 내뱉듯 말했다.

태일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프랑켄을 바라보았다.

“차는?”

“타이어만 조금 상했을 뿐입니다. 스페어가 있으니 별문제는 없습니다.”

프랑켄의 말에 페이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간을 너무 끌면 하이에나들이 몰려들 거야.”

태일 일행은 개조 차량 G―7과 AL―13, 가솔린, 탄약, 타어어를 비롯해 갖가지 장비와 자원을 가지고 있다.

하나같이 황량한 대지에서 귀한 가치를 지닌 것들이었고, 냄새를 맡은 놈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했다.

“프랑켄, 차를 고쳐.”

태일은 가만히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펑크라이더의 대장이 태일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아직 앳되어 보이는 녀석이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가진 거 전부 내놓고 꺼져. 여자도 두고!”

그 순간, 다른 라이더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호응했다.

녀석들의 고함 소리로 인해 한동안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높아지는 비명 속에서 한껏 고무된 대장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렸고, 총구는 하늘 위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태일이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총을…….”

대장은 전혀 겁먹은 기색이 없는 태일을 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제대로 겨누어야지.”

치칙!

그 순간, 대장은 태일의 몸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어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레귤러!’

황급히 다시 팔을 내려 태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찰나, 눈앞으로 푸른빛이 번쩍였다.

페이진이 순식간에 감전되어 널브러진 라이더들을 바라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페이진의 경고가 무색하게도 싸움… 아니, 제압은 채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애당초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총도, 칼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태일의 능력만으로 충분했다. 인간은 결코 신의 능력인 번개를 이겨 낼 수 없다.

그 압도적인 능력을 보고 있자니, 처음 태일을 만났을 때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샬롯의 공장을 두고 카츠미와 결투를 벌이려던 당시, 태일은 중간에 난입해 순식간에 자신과 카츠미를 쓰러뜨렸다. 분명 지금 눈앞의 펑크라이더들처럼 꼴사나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대체 우리를 뭣 하러 데려온 거지? 보아하니 댁 혼자서도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혼자 오려고 했어.”

태일이 차갑게 쏘아붙이며 담배를 빼 물었다.

강필과 자켄은 결코 태일을 혼자 보내려 하지 않았고,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과한 장비들을 준비했다.

자켄의 입장에서는 반란을 막고 카츠미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그럴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야 했고, 강필 역시 LAPD가 수행해야 할 일을 외부인과 마피아 따위에게 맡겨 둘 생각은 없었다.

그밖에 다른 의도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태일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노릇이었다.

페이진은 쓴웃음을 지으며 리볼버를 집어넣었다.

“잘나서 좋겠군.”

카츠미 역시 말없이 차에 등을 기댄 채 쓰러진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펑크라이더들은 대부분 10대에서 20대 초반 정도에 불과한 청년들이었다.

자그마한 체구와 비쩍 마른 몸은 펑크라이더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는지 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처음부터 놈들의 광기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저 생존을 위해 발악해야 했고, 미친놈을 흉내 내야 했을 것이다.

놈들의 어설픈 피어싱이나 문신도 스스로의 두려움과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포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분장들은 그들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들의 가장 큰 죄는 이 척박한 땅에 태어난 것이었다.

그때, 타이어 정비를 마친 프랑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났습니다. 이제 다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49구역을 주파하야겠어.”

태일의 말에 페이진과 카츠미 역시 동의하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킥, 킥킥……!”

바로 그때, 쓰러진 무리들 속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펑크라이더의 대장이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희들, 여기를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 같아?! 곧… 백련 님이… 오신다!”

페이진이 리볼버를 다시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같으니. 그냥 가만히 누워 있었으면 살았을 텐데.”

페이진이 광기 들린 듯 마구 웃어 대는 놈을 향해 총을 발사하려는 찰나, 카츠미가 목소리를 높였다.

“페이진, 멈춰. 굳이 죽일 필요는 없어.”

“…….”

카츠미의 목소리에 방아쇠를 당기려던 페이진의 손동작이 멈추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파치치칫!!

“끄아아아악!!”

푸른빛과 함께 감전된 대장이 격렬하게 발작하더니,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이봐요!”

카츠미가 항의하듯 외치자, 태일이 불붙지 않은 담배를 문 채 카츠미를 빤히 바라보았다.

“왜? 녀석들이 불쌍하기라도 한가?”

태일이 피식 웃으며 카츠미에게 다가갔다.

“잘 들어, 당주님. 환락가는 결국 저런 놈들이 있기 때문에 존속할 수 있는 거야.”

49구역과 50구역의 모든 부와 자원은 50구역의 환락가와 공장 지대로 몰린다.

즉, 환락가와 공장 지대의 존속은 근방 지역을 폐허로 만든 대가였다.

카츠미는 태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탓이라는 건가요?”

“글쎄, 내 말을 오해한 거 같은데.”

센트럴은 49구역과 50구역을 점령한 직후, 환락가와 공장 지대를 제외한 도시 전부를 파괴했다.

역사 시대를 넘어서기는커녕 원시시대로 돌아가 버린 두 구역의 원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약탈에 의존해야 했다.

펑크라이더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높은 확률로 살인을 경험한 녀석들이었고, 그들의 살인은 환경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살인에 능숙해진다면 용병이 될 수 있고, 용병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외부인들이 ‘사료’를 던져 준다.

그 사료를 받아먹기 위해서 펑크라이더들은 손에 피를 묻힐 수밖에 없었다.

“미쳐 버린 세계에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자는 애당초 살아남을 수 없어.”

때마침 차에서 우렁찬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출발합니다!”

프랑켄의 목소리에 태일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차 문을 열었다.

카츠미에게 차가운 말을 내뱉은 태일 역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태일이 저항 도시를 만들기 직전, 다른 세계의 49구역 역시 황량한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망가진 상태는 아니었다. 적어도 10대 꼬마들이 총을 들고 나서야 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곳은 아니었다.

이쪽 세계에서는 환락가가 터무니없이 번성한 대신 49구역의 넓은 대지는 완전히 버려졌다.

* * *

태일이 떠나고 수분이 지난 뒤,

“실망스럽구나.”

누런 먼지가 흩날리는 가운데, 키 큰 남자가 흰옷을 입은 채 빙긋 웃고 있었다.

하얀 피부에 흰 머리칼을 가진 남자는 마치 온몸에 표백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옷은 단정히 늘어진 채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흙먼지 역시 닿지 않아 순백의 색을 유지했다.

그 와중에 그의 몸은 안개로 뒤덮인 채 공중에서 살짝 떠 있었다.

“교, 교주님!”

펑크라이더들은 전부 넙죽 엎드린 채 벌벌 떨었다.

땋은 머리의 대장은 마구 떨리는 몸을 억지로 가누며 열심히 변명했다.

“그, 그게… 강한 놈들이었습니다. 놈들 중 이레귤러가…….”

순간, 교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펑크라이더 대장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죄, 죄,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그… 능력자가… 컥!”

대장이 갑자기 말을 멈춘 채 멍하니 입을 쩍 벌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목을 움켜쥔 채 입을 뻐끔거렸다.

어느새 검은 연기가 마치 악마의 손처럼 그의 목을 단단히 옥죄어 가고 있었다.

살려 달라는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지만, 입 밖으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대장의 얼굴이 당장에라도 질식할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안타깝구나.”

교주는 차가운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고, 오래지 않아 대장은 숨이 끊어진 채 축 늘어져 버렸다.

“…한 번 내뱉은 말을 거둘 수는 없는 거란다.”

교주의 목소리는 마치 애정 어린 충고를 건네는 스승처럼 잔잔했다.

한편, 뒤에서 엎드린 채 대장이 죽어 가는 꼴을 본 펑크라이더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아이야.”

교주가 죽어 버린 대장의 바로 뒤에 있던 청년 하나를 지명했다.

“예, 예! 교주님!!”

“네가 말해 보려무나.”

“그, 그게… 저희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푸른빛이 번쩍한 직후에 몸이 굳어서…….”

“…….”

청년은 슬쩍 고개를 들어 교주의 표정을 살폈다.

교주는 분명 웃고 있지만, 그 시선은 더없이 차가웠다.

겁에 질린 청년은 이마를 땅에 마구 찧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저희는 정말……!”

“그만.”

교주는 조용히 청년을 달랬다.

“너희의 신앙심을 의심하지 않는단다. 너희는 늘 신실한 아이들이었지.”

단 한 번도 성금을 거른 적이 없는 집단이었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니 제발…….”

벌벌 떨며 사정하는 이들을 바라보던 교주는 조용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신앙심. 그것의 본질은 공포다.

심판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신에 대한 공포.

그들의 공포야말로 교주, 백련의 힘이었다.

“가서 배교자들을 찾아라. 만약 그들을 찾거든 위치를 알리도록 하렴.”

교주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부드럽고 친절했다.

그러나 그 친절함이 오히려 펑크라이더들을 극단적인 공포로 몰아넣었다.

“조, 존명! 반드시,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야지.”

백련은 빙긋 웃으며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백련의 시선은 이미 펑크라이더 따위에 향해 있지 않았다.

그의 몸이 상공 위로 떠오른 가운데, 넓게 펼쳐진 대륙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곧 49구역에 약속의 날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돼지들은 다시 기억해 낼 것이다.

역사와 함께 잊혀져 버린 ‘신’의 존재를. 그 ‘신’이 가진 힘을.

심판의 날이 닥칠 것이다.

“너희들도 가서 아이들이 증언한 배교자를 찾아라.”

백련이 조용히 중얼거리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존명.”

사방에 몇 마리의 독수리들이 유유히 날고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