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58화 (59/220)

58화 광기는 달린다 (2)

넓게 펼쳐진 평야 지대.

50구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 사막화되어 피폐해진 대지의 모습조차도 장관처럼 보였다.

태일은 개조 차량 G―7의 조수석에 앉아 흔들림에 몸을 맡긴 채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승차감이 진짜… 별로인데? 너무 심한 거 아냐?”

한편, 뒷좌석에 탄 카츠미와 페이진은 무려 한 시간 넘게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는 중이었다.

덜컹거림은 일정하지 않고, 가끔 차량이 튀어 올라 천장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멀미였다. 카츠미와 페이진의 얼굴은 아예 샛노랗게 질려 있었다.

“도로 상태가 엉망인데다 엔진까지 출력이 너무 강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앞으로 한 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괜찮아질 겁니다.”

운전대를 잡은 프랑켄이 친절한 말투로 설명했다.

사실 프랑켄에게는 악의가 없었다. 메타휴먼인 프랑켄은 당연하게도 멀미를 하지 않고, 멀미하는 사람의 심정 따위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온 만큼 더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카츠미는 눈을 까뒤집은 채 프랑켄을 바라보았다.

“머, 멈… 멈추… 으, 우웨에에엑!!”

“이, 이런! 이봐, 당주! 안에다 토하면 안 돼! 창문! 창문 열어!!”

한바탕 난리가 났고, 환기장치가 없는 G―7에 토사물이 범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를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녹록치 않은 여정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 못 한 바는 아니지만, 설마 그게 멀미일 줄은 카츠미 역시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한편, 주변의 풍경은 지난 한 시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쩍쩍 갈라진 도로와 망가진 건물들의 잔해, 잡초로 가득한 평원 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몇 번이나 모래 폭풍이 휘날리고, 가끔 폐타이어나 깨진 유리병, 천 조각 따위가 눈에 들어왔지만, 결국 사람은 단 한 명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정비된 철로만이 누군가 이 지역을 통과해 지나다니고 있음을 알려 주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한 일입니다.”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나와 바람을 쐬던 프랑켄이 파괴된 도시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시장 상인들과 환락가 주민들은 오랫동안 싸워 왔죠. 그들은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

“그런데 여기 이렇게 넓은 땅이 그냥 버려져 있지 않습니까? 이 땅을 사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프랑켄 역시 49구역과 50구역의 땅이 무법자들로 인해 민간인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도시가 발달한 50구역 외곽과 대륙 중심부로 이어지는 49구역은 실로 넓은 땅이었다.

프랑켄의 말처럼 센트럴이 직접 나서서 도시를 재건해 낸다면, 많은 이들의 삶이 달라질 터였다.

실제로 다른 세계에서 태일은 거의 성공할 뻔했다. 49구역과 50구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땅을 재건하려 했고, 저항 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저항 도시가 제대로 완성되기 직전, 모든 게 무너졌다.

태일은 모든 것을 잃었고, 꿈은 무너졌다.

그게 고작 세 달도 채 안 된 이야기였다.

“이 땅은 본보기야.”

“본보기?”

프랑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50구역과 49구역이라 호명된 대륙 동부의 끝은 가장 마지막까지 저항한 역사 시대 잔당들의 영역이었다. 그들은 작은 땅에서 끝까지 버텼고, 전 대륙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패배하여 센트럴로부터 마지막 숫자를 부여받았다.

전쟁은 센트럴의 승리로 끝났지만, 센트럴은 2개 구역을 상대하면서 만만치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놈들은 그 대가로 49구역과 50구역의 도시들을 완전히 파괴했고, 철저히 약탈했다.

“저항한다면 언제든 이렇게 파괴해 버리겠다는 경고인 거야.”

무수한 파괴의 흔적은 역사 시대가 끝나며 벌어진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

프랑켄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으로 가만히 눈앞의 폐허를 바라보았다.

프랑켄은 ‘셸터’라 불리는 조직의 일원이다. 그리고 셸터는 센트럴을 적으로 두고 있었다.

센트럴의 공무원이자, 센트럴의 소유물에 불과하던 메타휴먼이 센트럴을 적으로 둔 것이다.

태일은 담배를 빼 물며 프랑켄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메타휴먼이 셸터에 속할 수 있던 걸까?

그에게 지금 셸터에 관해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까?

그러나 먼저 입을 뗀 쪽은 프랑켄이었다.

“신태일 씨, 만약 당신이 모르는 어딘가에 또 다른 당신이 존재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뭐?”

“그리고 만약 당신의 존재가 가짜에 불과하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태일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자신의 입이 벌어지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입에서 떨어진 담배꽁초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프랑켄의 표정에는 여전히 조금의 변화도 없으나, 내뱉은 말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전의 세계와 너무나도 비슷한 세계, 이전 세계에서 알던 사람들과 닮은 사람들.

프랑켄이 던진 말은 누구에게도 밝힌 적 없는 태일의 비밀에 대한 것이었다.

“너, 지금 대체 무슨…….”

“어이!”

뒤쪽에서 페이진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대화가 끊어졌다.

“이제 그만 출발하자고!”

페이진과 카츠미는 어느새 정신을 좀 차린 듯 차에 기대서 있었다.

그러나 태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프랑켄의 팔을 붙잡았다.

“방금 한 말, 그거 무슨 뜻이지?”

프랑켄이 그런 태일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만약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싶어서요.”

“…….”

프랑켄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삐그덕거리며 운전석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태일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프랑켄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 *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다시 한 시간을 더 달렸다.

그사이, 바깥의 풍경과 승차감이 변하기 시작했다.

정비되지 않아 덜컹거리던 도로가 잘 다져진 땅으로 변했고, 폐허의 잔해물들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휘어진 쇠파이프, 폐타이어, 탄피 따위 폐기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좀… 나아지는 건가?”

카츠미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힘없이 중얼거렸다. 두 시간 동안의 강행군 덕분에 페이진과 카츠미는 이제 거의 시체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켄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용병 지대입니다. 습격이 있을 수도 있으니, 무기를 정비해야 합니다.”

50구역 환락가가 마피아의 땅이라면, 49구역과 50구역 외곽에 걸친 지역은 용병들의 땅이었다.

용병들 역시 사실상 마피아와 다를 바 없는, 아니, 마피아보다 훨씬 호전적인 무법자들이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건가?”

카츠미는 바깥에 뿌옇게 휘날리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편, 태일은 대지 곳곳에 어지러이 새겨진 바퀴 자국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흙먼지가 상시 휘날리는 기후 특성상 흙바닥 위의 바퀴 자국 정도는 금세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비교적 선명히 남아 있다는 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 이곳에 꽤 많은 이들이 머물러 있었다는 걸 의미했다.

페이진 역시 그런 흔적들을 보며 혀를 찼다.

“젠장, 그 야만인들을 다시 봐야 하는 건가?”

카츠미가 페이진을 바라보며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페이진, 용병들과 함께 싸우지 않았던가? 만약 당신이 아는 얼굴을 만난다면, 말이 통할 수도 있지 않겠어?”

그 말을 들은 페이진이 코웃음을 쳤다.

“그놈들은 짐승이야. 인간다운 교류 따위 없는 놈들이라고. 뭐, 내 목에 걸린 현상금이 높다면 반가워할지도 모르지.”

용병들의 힘을 빌려 카츠미를 처리하려 한 페이진이다. 그랬기에 페이진은 용병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놈들에게 명예나 전우애 따위는 없다.

오직 돈에 따라 움직이고, 보수만 충분하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센트럴과 태일의 혁명군이 전투를 벌일 당시에도 용병들은 열심히 자신의 몸값을 높여 부르기에 여념이 없었고, 결코 어느 한쪽에 온전히 몸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바로 어제까지 한편이던 녀석이 고용 기간이 끝남과 동시에 적으로 돌변하는 일도 빈번했다.

결국 용병 대부분은 압도적인 자금력을 쏟아부은 센트럴의 편을 들었고, 혁명군 활동 당시 49구역을 해방시키기 위해 상대해야 했던 적 대부분은 바로 49구역의 용병 부대였다.

“빨리 빠져나가자고. 용병 놈들과 마주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

페이진이 이를 악물고 말하는 바로 그 찰나.

덜컹!

차가 크게 흔들렸고, 곧이어 아예 멈춰 서 버렸다.

“뭐, 뭐야?!”

“이게 무슨…….”

바로 그때, 차의 좌우측에서 뿌연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저건!”

요란한 클랙슨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빌어먹을… 밟아!”

페이진이 소리를 질렀지만, G―7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엔진 소리만이 우렁차게 울렸다.

무언가에 걸린 듯 바퀴가 헛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길목에 트랩을 설치해 놓은 모양입니다.”

“함정이라는 거군.”

카츠미가 입술을 깨물며 검집을 빼 들었다.

페이진이 그런 카츠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검? 지금 검을 꺼내는 거야?”

“…….”

“당주님, 정신 차려! 여긴 환락가가 아니야!”

그러고는 자신이 갖고 있던 다른 리볼버 한 자루를 카츠미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한편, 그러는 동안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좌우로 밀려들고 있었다.

“펑크라이더(Punk Rider)로군요.”

“…젠장.”

센트럴은 역사 시대의 종결을 선언하며 ‘시대의 완성’을 부르짖었지만, 사실 인간은 오히려 야만으로 되돌아갔다.

그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괴성을 내지르며 해골 문양 엠블럼을 곳곳에 박아 넣은 놈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시대의 완성’과 거리가 멀었다.

사납게 오토바이를 모는 라이더들은 빡빡 민머리부터 폭탄 머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스타일을 자랑했고, 몸 곳곳에 문신을 박아 넣은 채 반쯤 벌거벗은 상태였다.

규칙 없이 얼굴에 박아 넣은 피어싱들은 흉측하게 보일 지경이고, 하얗게 뜬 화장으로 인해 더욱 기괴해 보였다.

그런 놈들의 손에는 저마다 사냥용 장총과 기계 석궁, 레버 액션 소총 따위가 들려 있었다.

차를 포위한 놈들이 총을 겨눈 채 고래고래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질러 댔다.

그 와중에 차의 전면에 선 소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에서 내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모두의 리더처럼 보였다.

“지금 당장!”

펑크라이더는 용병이 아니다.

놈들은 엄밀히 말하면 용병 지망생에 불과했다.

49구역 주민들은 트레일러를 끌고 다니며 마치 옛 유목민처럼 흩어져 살아갔다.

트레일러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사격 훈련을 하고, 바이크의 사용법을 배운다.

만약 운 좋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들은 가장으로서 라이더가 되어 기름이나 식량 따위를 조달해 와야 했다.

만약 그 과정에서 용병단의 스카웃 제의라도 받는다면, 그날부로 끼니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특히 유명 용병단의 경우, 49구역을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이더는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결국 라이더들이 나름의 집단을 조직한 것은 필연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용병단의 눈에 띌 목적으로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조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놈들은 다른 라이더들을 공격하거나 가끔 출몰하는 외부 차량을 습격했고, 심지어 열차마저 손대는 미친 짓까지 벌였다.

그야말로 무법자, 그 자체였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나르시스트들이었다.

LAPD와 근방 주민들은 그런 놈들은 ‘펑크라이더’라고 불렸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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