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51화 (52/220)

51화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 (2)

철컥!

무겁다.

도영의 손에는 역사 시대의 대륙에서 사용되던 AVS―36이 쥐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 총으로 도영에게 사격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좋은 총이지. 좋은 사수가 되려면 총의 무게에 익숙해져야 한다.”

저항군의 아들로 태어나 레지스탕스의 대장으로 평생을 바친 아버지의 평생 소원은 ‘방주’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 역시 그 방주를 두 눈으로 본 적은 없었다.

“방주에는 이런 무기들이 잔뜩 비축되어 있었다더구나.”

방주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역사 시대 지도자들이 센트럴에게 저항하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상징성을 지녔으니 방주에 대해 갖가지 구전이 전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저항군 지도자들이 방주에서 각 구역 레지스탕스를 지원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방주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저항군을 이끄는 대통령과 장군이 존재했다는 전설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 역시 다양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다.

― 방주는 50구역 지하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레지스탕스 내부에서 허황된 소문이 도는 게 드문 일은 아니고, 방주에 대한 이야기 역시 그런 헛소문이라 치부하는 이들이 많았다.

도영 역시 성인이 된 뒤로는 아버지가 말한 방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도영이 발을 디딘 공간은 아버지가 말하던 그대로였다.

붉은 먼지가 휘날리며 불쾌한 냄새가 풍기는 바깥과 달리, 방주 내부는 쾌적하고 깔끔했다.

생명을 좀먹는 중금속도, 눈을 찌르는 매연도 없다.

그리고…….

“여기가…….”

“그래, 방주야.”

방주는 50구역 지하에 있었다.

선두에 선 민호가 걸음을 멈추고는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세 명의 대원을 바라보았다.

도영과 민호를 비롯한 네 명의 대원 모두 가면을 쓴 채 무장하고 있었다.

마피아들 사이에 전쟁이 발생한 와중에 모든 일을 끝내야 한다.

드림코퍼레이션의 이사 둘이 50구역에 들어와 있다는 첩보가 있고, 필연적으로 둘과 동행한 용병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합류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민호의 손짓에 따라 모두들 발소리를 내지 않은 채 복도를 내달렸다.

복도를 누비는 내내 심장이 강렬하게 뛴다.

배 속에서부터 울렁거림이 밀려 올라온다.

이 넓은 공간 어딘가에 지금껏 찾아 헤매던 남자가 있다.

놈은 아버지를 붙잡은 뒤, 기쁨에 차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소리를 도영은 아직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복도 반대편에서 희미하게 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 *

방주의 가장 깊숙한 안쪽 로비.

수십 년 전, 사령부였던 실내는 사치스러운 가구와 장식품으로 새롭게 꾸며져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센트럴 상류층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양식을 모방한 것이었다.

한때 저항의 상징이던 방주는 50구역 의회 의원들의 별장이 되었다.

센트럴의 공습을 버텨 내던 방호 시설인 만큼 그 안정성은 이미 보장되었고, 센트럴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더욱 안락한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아크 씨가 꽤나 늦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방주 로비의 정중앙 원탁에는 다섯 명의 의원이 둘러앉아 있고, 그 뒤로 의원들을 지키는 메타휴먼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와인 한 잔 더.”

“이쪽도.”

다섯 명의 의원은 손을 까딱이며 명령을 내렸고, 그럴 때마다 메타휴먼들은 충실히 의원들의 요구에 응했다.

의원들은 그렇게 와인이나 시가를 건네받는 와중에도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금 의원들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홀로그램은 드림코퍼레이션의 후계자 아크가 선물한 오버테크놀로지의 산물이었다.

CCTV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증강 현실이 현출되고, 외부 드론이 송출해 온 전투 영상을 생생하게 구현해 냈다.

LAPD의 반란, 마피아들 간의 전투, 용병들의 전투, 이레귤러들의 전투 등 풍성한 볼거리에 의원들은 잔뜩 흥이 오른 상태였다.

의원들의 입에서 각종 추임새가 튀어나온다.

“허허, 마피아 놈들, 정말 야만적이군. 어떻게 저 정도로 미개할 수 있는지…….”

“크, 대단하구만!”

마피아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는가 하면, 이레귤러의 전투에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다.

“이거야 원, 아쉽구만, 아쉬워!”

카츠미가 용병과 함께 드론까지 베어 버리자, 대머리 의원이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어린 여두목에게 가해질 성적 학대 장면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카츠미의 일격에 드론이 추락하자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드론, 드론을 더 투입해! 저 장면이 중요하다고!”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수행하던 메타휴먼들이 의원들의 요구에 고개를 숙여 보였고, 곧이어 다시금 사거리의 상황이 홀로그램으로 떠올랐다.

“이거야 원, 용병 놈들이 생각보다 약하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고작 저런 놈들이 우리 사업을 방해하고 있었다니, 쯧쯔.”

Z―rail 50구역 이사를 맡고 있는 의원 두 사람은 전투에 연달아 패하는 용병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껏 비웃었다. Z―rail 이사라고 해 봐야 명예직에 불과하지만, 용병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뚱뚱한 의원 한 명은 모자를 눌러쓴 채 말없이 홀로그램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벌써 와인을 여섯 잔째 비웠고, 쿠키 역시 여덟 접시째 먹어 치웠다.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재생되었지만, 의원들은 마치 액션 영화를 보는 관객처럼 즐거워 보일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나머지 한 명, 푸른 머리 의원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환락가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화면 속 태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번개라… 정말 저런 능력이 있었다니!”

그에게는 이레귤러의 시신을 박제해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태일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최고의 명품을 구경하는 수집가의 눈이었다.

“흐흐흐, 저놈… 저놈은 꼭 가져야겠군.”

태일을 본 그는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태일이 보여 주는 힘은 지금껏 가진 수집품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강력함이었다.

그는 지금껏 신체 변형 능력, 특수 염동력, 수인형 등 다양한 종류의 이레귤러를 수집했지만, 그중 특정 원소를 아예 지배해 버리는 자연계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번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태일이 50구역에 나타난 것이다.

그 가치는 감히 값으로 따질 수도 없을 정도였다.

“저건 내 거야. 내 거라고! 후후후후…….”

홀로그램을 속 상황은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다.

LAPD의 반란, 페이진의 반란, 카게구미 대장들의 배신…….

그리고 이야기는 어느새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태일과 자켄, 강필이 도착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고, 결국 페이진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승리한 쪽은 처음 예상과 달리 카츠미였다.

이윽고 홀로그램이 종료되었다.

“이거야 원, 저 꼬마가 환락가를 전부 집어삼키게 될 모양입니다.”

“글쎄요. 그게 어디 저 꼬마의 능력이겠습니까? 이레귤러 셋이 나선 덕분이죠.”

의원들은 마치 스포츠 경기 결과에 대해 평가하듯 자못 진지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곧 의원들의 관심은 신비한 경험을 선사해 준 홀로그램 기계로 전환되었다.

“이 물건, 아주 기막히지 않습니까? 드림코퍼레이션의 기술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정말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개발 단계라고 들은 거 같은데, 완성도를 보니 충분히 훌륭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투자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수익은 보장된 거라고 봐야지요.”

“허허, 아크 씨가 오면 한 번 얘기해 봐야겠습니다. 기업가치고 투자자들을 마다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지요.”

그렇게 한창 화기애애한 담소가 오가던 중,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는 푸른 머리의 의원이었다.

딸깍!

송풍기나 홀로그램 기기, 문고리에서도 들릴 수 없는 소리였다.

“…뭐지?”

눈살을 찌푸린 그가 소리가 들려온 문 쪽을 주시했다.

외부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음이 들리지는 않았다.

“너, 밖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게 아닌지 확인해 봐.”

못내 불안함을 느낀 의원은 바로 뒤쪽에 서 있던 메타휴먼을 바라보며 지시했다.

푸른머리는 평소 테러의 위협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좀처럼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레지스탕스의 위협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수백 구의 이레귤러 시신을 박제해 보관하고 있는 만큼 그에게는 유난히 적이 많은 편이었다.

“네, 탐색하겠습니다.”

메타휴먼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건물 내 CCTV와 실시간 연동해 모든 기록을 살피기 시작했다.

시스템 연동 역시 평범한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오버테크놀로지이기에 전 대륙에 소유한 이는 채 백 명을 넘지 못할 것이다.

푸른머리는 보안 상품이 나올 때마다 그 누구보다 먼저 사 모았고, 자신이 소유한 메타휴먼 전부에게 해당 기능을 탑재해 놓았다.

“허어, 뭐 그리 민감하십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여긴 방주예요. 위치를 아는 사람도 몇 없는데, 감히 어떤 놈이 여기를 습격한단 말입니까?”

“패트롤 메타휴먼이 내는 소리였겠지요. 이 안에 사람은 우리 다섯밖에 없어요.”

푸른머리의 행동에 다른 의원들은 짐짓 걱정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나 푸른머리는 방금 자신이 들은 쇠붙이 소리가 못내 불길했다.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때마침 분석을 마친 메타휴먼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스캔 완료. 37개의 CCTV 중 32개 작동 중, 5개 CCTV 연결 불가. 고장이라 추정됩니다.”

“뭐? 고장? 그게 무슨……!”

탕!!

당황한 푸른머리가 목소리를 높이는 찰나, 커다란 사격음이 들려왔다.

툭!

이마 정가운데 총알이 박힌 대머리 의원의 몸뚱어리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진다.

“으, 으아아아!!”

“이, 이런!!”

“뭐야! 무슨 일이야?!”

세 의원이 내지른 비명 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탕!!

다시금 들려온 총성 소리와 함께 방금 CCTV를 분석하던 메타휴먼의 머리통이 박살 났다.

푸른 머리 의원이 황급히 메타휴먼의 뒤쪽을 가로질러 내달리려던 참이었다.

타탕!! 탕! 탕!!

“쿠아악!!”

뚱뚱한 의원이 다리를 부여잡은 채 쓰러지면서 입에 머금고 있던 와인을 내뿜었고, 푸른 머리 의원은 그 누구보다 재빠르게 내달려 엄폐물이 될 만한 물건을 찾았다.

“사, 살려 줘!”

“누가 나 좀…….”

타타타탕!!

나머지 두 의원 역시 무수한 총탄을 맞고 숨이 끊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푸른머리뿐이었다.

지금껏 오로지 그만을 노린 총알이 연달아 날아들었지만, 다른 의원들과 달리 값비싼 나노 슈트를 껴입고 있었기 때문에 총알이 파고들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나노 슈트라 해도 머리까지 보호하지는 못한다.

“제길, 제기랄!”

책상 뒤에 몸을 숨긴 푸른머리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시계는 30여 기에 이르는 메타휴먼들과 연동되어 있었다. 그중 열 기는 A급 방위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웬만한 군대 정도는 넉넉히 막아 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 방위 시스템만 작동한다면 이 방에 있는 메타휴먼 단 한 기만으로도 저런 테러리스트 따위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시계 컨트롤러 화면에는 오로지 한 문장만 떠 있었다.

「접속 불가」

의원들의 시중을 들던 메타휴먼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멈춰 서 있다.

“어, 어째서!!”

미리부터 꺼져 있던 다섯 개의 CCTV, 작동하지 않은 침입자 감지 센서, 습격 직후 끊어진 메타휴먼과의 연결… 그 모든 것은 한 가지 결론에 닿았다.

“센트럴… 캐피탈… 너희들이!”

50구역 의원들은 버려졌다.

철컥!

푸른머리의 관자놀이에 차가운 총구가 닿았다.

흰 가면을 쓴 테러리스트가 쥐고 있는 총은 무려 80년 전에 사용되던 구식 무기, AVS―36이었다.

“내게 감히 이따위……!”

수많은 보안장치를 갖춰 놓고 강력한 이레귤러의 신체를 수집하던 그였다.

그런 그의 머리에 구시대 유물과 같은 무기가 겨눠진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한 굴욕이었다.

“당장 저리 치우지 못해!!”

잠시 뒤, 그의 귓가에 총을 든 흰 가면의 변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잡았다.”

사실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능력자였던 도영의 아버지는 푸른 머리 의원의 손에 ‘포획’되었고,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된 아버지는 스스로 자폭을 택했다.

수많은 이레귤러들이 그의 손에 그렇게 붙잡혔고, 도영의 아버지 역시 그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도영은 포획한 직후에 놈이 터뜨리던 웃음소리도, 아버지의 자폭 후 놈이 분노에 차 내지르던 고함 소리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드디어… 잡았어.”

놈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영을 노려보았다.

“너, 이 새끼. 어디 감히 이따위 저급한 무기를 내게…….”

탕!!!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그러나 도영은 이 한 발을 위해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뒤에서 나머지 의원들의 사망을 확인한 민호가 도영의 뒤로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수고했어.”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방주를 떠날 일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죽어 널브러진 푸른머리의 손목에서 작은 기계음이 들려왔다.

삐빅!

「접속 재개」

「방위 모드 작동」

「침입자 포착」

시계에서 연달아 메시지가 떠오른다.

곧이어 지금껏 제 주인이 죽어 나가도 미동조차 하지 않던 메타휴먼들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아니, 애당초 메타휴먼들의 주인은 의원들이 아니었다.

키리릭… 철컥!

메타휴먼들의 팔에서 순식간에 너덧 개의 총구가 모습을 드러내고, 어깨에서 로켓 구동 장치가 튀어나오며 몸이 비스듬히 떠올랐다.

바깥에 정지해 있던 패트롤 메타휴먼들까지 같은 무장을 갖춘 채 로비로 들이닥쳤다.

순식간에 열 기가 넘는 메타휴먼들이 민호와 도영을 비롯한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포위했다.

그 꼴을 본 민호는 총을 견착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지원군은 없을 것이다.

최후를 각오해야 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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