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소울 웨폰 (2)
무수한 총소리가 울린다.
눈먼 총알들이 사거리 가게들의 창문을 뚫고 들어갔고, 보도와 가로등, 주차된 차량 따위에 박혔다.
사거리는 환락가에서도 가장 번화한 장소였고, 지금껏 암묵적으로 마피아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사거리가 환락가 전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마피아들 입장에서도 사거리 가게들을 부수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이었다.
종업원과 손님들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사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까지도 가게는 무사할 거라 생각했고, 때문에 대부분 탈출하지 않았다.
하지만 환락가 전체를 집어삼키기 위해 혈안이 된 페이진에게 그런 사정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이번 전투에서 패한다면 모든 것을 잃는다.
“쏴! 쏘란 말이야!! 총을 손에서 놓은 새끼들은 내 손에 죽는다!”
발악하는 페이진에게 겁먹은 마피아들은 조준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전방을 향해 미친 듯이 총을 난사했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던 고급 술집과 전각들에 총알이 날아든다.
전각에 걸려 있던 새장 속 구관조 역시 눈먼 총알에 몸이 꿰뚫려 숨이 끊어졌다.
“꺄아아악!!”
“쏘, 쏘지 마요! 쏘지 마!”
겁에 질려 거리로 뛰쳐나온 종업원 몇 명이 총을 맞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잠깐 사이에 사거리가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수부티는 어지럽게 날아드는 총알들을 가볍게 피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귀찮군.”
수부티에게 있어 사거리의 상황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모처럼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와중에 전투가 방해받는다는 사실이 짜증스러웠다.
잠깐이지만 뒤쪽 마피아 놈들부터 모조리 정리해 버리고 시작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그때, 태일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리를 옮기지.”
태일이 온몸에 푸른 전류를 휘감은 채 카지노 ‘흑룡’의 옥상으로 향했다.
그 난리 통 속에서도 흑룡 건물로는 총알이 날아들지 않았다.
제아무리 페이진과 천중회 단원들이 넋을 놓았다 해도 회장의 거처인 흑룡 건물을 향해 총을 휘갈기진 못했다.
“좋군.”
수부티 역시 머스킷을 늘어뜨린 채 붉은 연기를 타고 가볍게 몸을 날렸다.
어느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옥상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태일과 수부티가 제각기 뿜어내는 소울만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옥상에 발을 디딘 수부티는 흥미롭다는 듯 넓은 옥상을 둘러보았다.
“이 공간, 맘에 드는걸?”
흑룡 건물 옥상 정중앙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조각상이 거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략 10미터 크기의 용은 당장 하늘로 날아오를 듯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용은 결국 환락가 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딘은 지금 어디에 있지?”
태일의 질문에 수부티가 비죽 웃음을 내보였다.
“글쎄, 그런 너는 알렉세이와 대체 무슨 관계지?”
천재 기술자인 알렉세이 딘은 센트럴은 물론, 히트맨, 용병, 레지스탕스 등 수많은 세력에게 쫓겼다.
그도 그럴 것이, 딘의 기술력은 센트럴의 기술 수준을 가볍게 압도했으며, 그만큼 치명적이었다. 특히 딘이 고안해 제작한 무기, ‘소울 웨폰’은 신물(神物)이라 불렸다.
지금껏 수많은 무기 제조자들이 딘의 병기를 연구했지만, 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소울을 그처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처럼 강력한 기술력을 지녔기 때문에 딘이 마음만 먹는다면 센트럴의 정규군을 압도할 정도의 병기를 양산해 낼 수 있었고, 실제로 혁명군에 들어온 딘은 그 일을 해냈다.
“친구.”
딘은 혁명군을 위해서, 태일을 위해서 소울 웨폰을 만들어 주었다.
수부티가 쥐고 있는 AL―13은 혁명군 간부들을 위해 지급된 물건이었다.
오로지 혁명을 위해, 센트럴을 무너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소울 웨폰이 한낱 전투광 용병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지금껏 차분하던 수부티의 눈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감돌며 광기 어린 웃음이 떠올랐다.
“친구라… 널 잡으면 딘, 그놈도 손에 넣을 수 있겠군. 그렇지?”
딘의 소울 웨폰을 탐내는 이들은 많다.
“…AL―13은 회수하겠다.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기야.”
그러나 그 무기를 제대로 이해한 이는 없었다.
수부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회수? 빼앗겠다고? 재밌군. 할 수 있으면 해 봐.”
수부티가 머스킷을 고쳐 잡고 태일을 향해 겨누었다.
태일을 상대로는 조금의 힘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타탕!!
발사된 한 발이 수십 갈래의 꼬리로 나뉘어 붉은 기운을 머금은 채 태일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츠츠츠츠츠츠츠!!
그와 동시에 공기를 찢는 파공음이 사방에 울렸다.
‘딘이 이 꼴을 못 봐서 다행이군.’
자신의 무기가 지금처럼 무지막지하게 사용되는 꼴을 보기라도 한다면, 펄펄 뛰며 쌍욕을 퍼부어 댈 것이다.
적탄(赤彈)의 꼬리 하나가 수부티의 컨트롤 미숙으로 인해 흑룡 조각상의 머리에 닿았다.
콰쾅!!
굉음과 함께 용이 문 여의주와 머리에서부터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수십 개의 꼬리 중 단 하나가 닿았을 뿐이건만, 용 조각상 자체가 완전히 박살 나 먼지로 변해 버렸다.
그 커다란 조각상이 순식간에 파괴되어 버린 것이다.
수십 개로 갈라진 꼬리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사방으로 퍼져 폭발하는 순간, 카지노 건물은 물론, 사거리 전체가 박살 날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해 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 엄청난 화력에 완전히 매료된 수부티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그런 수부티의 모습을 지켜보는 태일의 얼굴은 더없이 차가웠다.
“이래서 넌 그 무기의 주인이 될 수 없는 거다.”
태일이 가만히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탄 한 발에서 갈라져 나온 ‘꼬리’의 화력은 대전차포와도 같다.
AL―13은 그 정도로 무식한 화력을 자랑하는 병기이고, 혁명군은 과거 AL―13 적탄 한 발로 센트럴의 발트급 전투순양함을 침몰시킨 적도 있었다.
그러나 수부티는 지금 전투 현장도 아닌 도심 한가운데에서 사실상 폭격에 가까운 공격을 가했다.
알렉세이 딘은 처음 무기를 제작할 때부터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막고자 했다.
마음을 굳힌 태일은 가만히 손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째깍, 째깍, 째깍.
“…시계?”
순간적으로 태일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본 수부티가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태일의 손에 쥐어진 회중시계의 초침이 바삐 돈다.
이윽고 적탄의 꼬리들이 태일을 향해 몰려드는 순간, 시계가 갑자기 요란하게 울렸다.
따르르르르릉!!
거대한 폭발음 속에서도 시계의 알람 소리는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태일을 향해 날아들던 적탄의 꼬리들이 공중에서 산화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방금까지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기세로 날아들던 탄들이 마치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수부티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이 시계로 딘이 제작한 물건들을 통제할 수 있어.”
딘의 역작, 모델명 ‘X―7’… 일명 ‘지휘관의 열쇠’.
딘은 자신이 만든 병기들을 한순간에 깡통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억제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제작한 억제기를 어째서인지 세연에게 주었고…….
“너야말로 진짜 지휘관이야.”
세연은 그 시계를 태일에게 선물했다.
“내가 살아 있다면, 이 시계 역시 멈추지 않을 거야.”
째깍, 째깍, 째깍.
시계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방금까지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만 같던 적탄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수부티는 당황한 가운데,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딸깍, 딸깍!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는 소울이 느껴지지 않고, 탄이 발사되는 일 역시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태일은 그렇게 당황한 수부티의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너, 이 새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딸깍, 딸깍!
수부티는 더 이상 발사되지 않는 AL―13을 결코 손에서 놓지 못했다.
AL―13을 손에 넣은 뒤, 수부티에게 실패란 없었다.
수천 미터 밖에서도 저격이 가능할 뿐 아니라, 탄도와 궤적을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사실상 최강의 병기.
그 병기를 사용해 고작 7년 만에 황야 최대 규모의 용병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방금 사용한 적탄의 위력이라면, 황야를 넘어 도시 하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껏 수부티에게 모든 것을 쥐여 준 AL―13은 완전히 망가진 듯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사용한 적탄을 끝으로 수부티는 더 이상의 소울을 끌어낼 수 없었다.
“제기랄!!”
수부티의 바로 앞에서 태일의 발걸음이 멈춰 섰다.
“그 무기는 네 것이 아니야.”
태일의 몸에서는 여전히 스파크가 어지럽게 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수부티는 결코 AL―13을, 그가 쥐고 있던 보물을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었다.
“웃기지 마!”
수부티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대며 옆구리의 대검을 빼 들었다.
눈앞의 정체 모를 남자만 해치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태일의 목을 향해 대검을 휘두른 순간, 날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었고, 곧이어 수부티의 온몸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끔찍한 고통과 함께 온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끄, 끄그그그극…….”
비명조차 지를 수 없는 상태에서 수부티는 이를 악물고 태일을 노려보았지만, 정작 수부티를 감전시킨 태일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잠시 뒤, 수부티의 몸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수부티를 쓰러뜨리고 AL―13을 빼앗아 든 태일은 부서진 용 조각상 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을 향해 가만히 총구를 겨누었다.
* * *
쿵, 쿵, 쿵, 쿵, 쿵 쿵쿵쿵쿵쿵!
미친 듯이 심장이 뛴다.
12년 전, 단 한 명의 손에 70명이 넘는 천중회 단원들의 머리가 달아났다.
여우 가면을 쓴 살인마.
그녀의 이름은 ‘자켄’이었다.
“꼬마야, 너도 날 죽이러 왔니?”
그날은 페이진의 첫 출전날이었다.
당시 페이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품속에 칼 한 자루를 품고 있었지만, 감히 꺼내지도 못했다.
그사이, 아랫도리가 축축해진 상태였다.
자켄은 겁에 질려 오줌까지 지린 페이진을 뒤로한 채 유유히 떠나갔다. 당시 가면 뒤에 숨겨진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페이진을 비웃고 있었을 것이다.
페이진은 당시 자켄에게 있어 죽일 가치조차 없는 꼬맹이였다.
시간이 흘렀다.
자켄은 어느 날 갑자기 은퇴를 선언했고, 엉뚱하게도 작은 옷가게에 처박혔다.
이후, 페이진은 ‘히나코’라는 이름의 그녀를 가끔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검을 손에서 놓은 그녀는 그저 옷가게 주인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페이진은 과거의 공포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환락가에 자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여우가면 자켄이 검을 늘어뜨린 채 천천히 페이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
탕!
겁에 질린 채 쏜 마지막 한 발이 허무하게 자켄의 칼에 가로막혔다.
카츠미의 목숨을 끊기 위해 달려든 A급 용병 다섯은 모조리 숨이 끊어진 채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A급 용병들은 제각기 이레귤러로, 나름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부분 경화, 기계화, 고속 이동, 수인화… 심지어 가장 오래 버텨 낸 용병은 불을 다루기까지 했다.
그러나 용병들은 자켄의 극검과 강필의 염동력 앞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아니,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완벽히 부활한 자켄이 이젠 페이진을 죽이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 누구라도 나를… 누가 나를!!”
땅을 박박 긁어 대며 뒤쪽을 바라본다.
스무 명의 천중회 단원들은 이미 갖고 있던 탄약 모두를 소진한 상태였고, 잔뜩 겁에 질린 채 얼어 있었다.
누구 하나 페이진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이가 없었다. 페이진은 다시금 12년 전의 오줌싸개 애송이로 돌아가 있었다.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나, 나는……!”
그렇게 넋이 나간 채 중얼거리던 찰나.
“멈춰!!”
자켄의 뒤쪽에서 쥐어짜 낸 듯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자켄을 향해 무수한 쇳조각들이 날아들었다.
티릭, 팅!
그러나 자켄은 아무렇지 않게 쇳조각들을 쳐 냈다.
자켄을 향해 팔을 뻗은 강필이 비틀거리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놈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어. 피는 충분히 흘렀다.”
그러나 자켄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뚜벅뚜벅.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지.”
강필은 결코 자켄의 걸음을 멈춰 세울 수 없다.
“자켄, 멈춰요. 그자를 지금 죽이는 건 의미가 없어요.”
자켄의 발걸음이 멈춘다.
그녀를 멈출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카게구미의 당주 카츠미뿐이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