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환락의 밤, 배신의 낮 (6)
싸움이 끝난 LAPD 사무실 내부.
모든 기물들이 부서져 엉망이 되어 버린 가운데,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배신자들은 죄를 순순히 시인했다.
코헨이, 박 계장이 시켜서 그랬다고 핑계를 댈 법도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러지 않았다.
강필 역시 그런 배신자들을 포박하거나 심문하지 않았다. 그저 한 가지 지시만을 내렸다.
“…시신들을 수습하도록 해.”
항복한 배신자들은 그저 묵묵히 숨이 끊어진 동료의 시신을 모았다.
괴물로 변한 이들의 몸뚱아리는 태일의 번개와 강필의 쇠구슬에 의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괴물에게 당한 경관들은 머리가 박살 나거나 몸이 찢겨졌다.
하나같이 처참한 꼴이었다.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 중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토악질을 해 댔으며, 누군가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움직였다.
한편, 태일은 그 난장판 속에서 가만히 ‘박 계장’이라 불린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괴물의 가슴 부위는 검게 타 버렸고, 심장의 뜀박질 역시 완전히 멈추었다.
태일은 잠시 망설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소울 능력의 폭주로 인해 모든 기관이 비대하게 부풀어 올랐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저 살과 피, 뼈로 이루어진 존재일 뿐이다.
‘대체 어떻게…….’
태일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파짓, 파지지.
통제되지 않은 스파크가 힘없이 손끝을 맴돈다.
무리해서 많은 양의 소울이 쏟아 낸 부작용으로 인해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레이징 코어(Razing Core)’.
단 한 방으로 센트럴의 전함을 침몰시킨 적도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기술이었다.
산업 시대 말기에 개발된 배터리 수백 개를 쏟아부어도 구현해 낼 수 없는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은 그 기술을 연달아 몇 발이나 막아 냈다.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기어코 태일의 모든 공격을 받아 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한 거지?”
이미 숨이 끊어진 박 계장에게서는 그 어떤 대답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태일은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그자를 구해 내려 한 거지?”
결국 코헨은 살아서 경찰서를 탈출했다.
코헨은 박 계장을 괴물로 만들어 버린 남자다. 박 계장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남자다.
그런데도 박 계장은 필사적으로 코헨을 지켜 냈다. 태일과 강필, 장량의 합공까지 버텨 내며 기어코 코헨의 뒤를 지켰다.
“가족들이 50구역을 떠날 수 있도록 힘써 주겠다고 약속했다더군.”
어느새 태일의 뒤로 다가온 강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강필의 손에는 박 계장이 늘 들고 다니던 가족사진이 쥐어져 있었다.
“고작 그 약속 하나만을 믿고… 미련하게 우리 앞을 막아선 거다.”
강필의 목소리에 분노는 없었다. 대신 허탈감이 짙게 배어 있을 뿐이었다.
“…….”
태일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기 직전, 박 계장은 코헨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부탁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필과 태일이 말없이 박 계장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던 와중에 장량이 다가왔다.
“선배, 잠시 창고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첫 살인이 벌어진 것은 강필과 태일이 LAPD에 도착하기 고작 몇 분 전이었다.
태일은 창고 안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요한의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사실 요한에 대해 딱히 좋은 기억은 없었다.
유치한 질투심을 드러내며 공공연히 시비를 걸어오던 남자.
드림코퍼레이션의 SB 유통에 대해 알면서도 눈감고 있던 경찰.
나쁜 인간은 아닐지언정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인간이었다. 죽음만으로 그의 평범함이 특별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평범한 인간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여기 잡혀 있다는 것을 알면 요한이 많이 걱정할 거예요. 만약 기회가 된다면 너무 걱정 말라는 말 정도는 해 줘요. 돌아가면 단단히 혼낼 거지만.”
열차에서 테러 사건을 겪고 호텔에 구금된 와중에도 제인은 요한을 걱정했다.
“요한 선배에게 도망가라고… 50구역 따위 아무래도 좋으니, 형수님과 함께 달아나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50구역의 위기를 알리면서 LAPD 내부의 배신을 경고하던 프랑켄 역시 요한을 염려했다.
그 둘에게 뭐라 말해야 할지,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알리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강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넷은 끝까지 반란에 반대했다고 합니다.”
장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창고 안에 싸늘한 시체로 남겨진 이는 요한 파머 외에도 세 명이 더 있었다.
코헨은 배신의 대가로 막대한 부를 약속했다. 센트럴의 계획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어차피 50구역은 무너질 겁니다. 그러니 버려요. 그러면 우리 드림코퍼레이션이 여러분의 미래를 보장하죠.”
코헨의 그런 제안을 들었을 때, 요한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침 요한은 서장 암살 의혹을 받고 있었다.
강필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멍청한… 짓을 했군.”
그것은 요한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다.
강필은 요한이 암살 미수 사건의 주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부터 알았다.
하지만 LAPD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엄하게 굴었다.
그런 강필의 조치는 지금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돌아왔다.
요한은, 네 명의 경관은 반란을 끝까지 반대했다. 50구역을 포기하지 않았다.
“너무 무모했습니다.”
네 사람은 반란 참여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코헨을 향해 총을 꺼내 들었다.
이미 나머지 경찰들은 코헨의 말에 따르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한데 고작 넷이서 수십 명을 상대로 총을 꺼내 든 것이다.
“어째서…….”
강필은 떨리는 손으로 피가 채 식지 않은 요한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 사람의 몸에는 제각기 수십 발에 이르는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중 상당수는 등에 박힌, 즉, 뒤에서 날아든 것이었다.
“왜… 우릴 기다리지 않았지?”
강필이 요한의 부릅뜬 눈을 감겨 주며 조용히 한탄했다.
요한의 탓이 아님을 알고 있다. 사망한 경찰 넷에게는 죄가 없다.
죄는 50구역 LAPD를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본, 그로 인해 무고한 경찰 넷을 구하지 못한 자신에게 있었다.
“미안하다.”
강필은 그저 그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사무실의 전화기가 울렸다.
따르르르르르릉!!
전투 중 몇 번이나 울렸지만, 누구도 받지 않은 바로 그 전화다.
강필이 발걸음을 옮겨 수화기를 들었다.
“예, LAPD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즈음, 태일은 깨진 창문을 통해 멀리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았다.
환락가 쪽이었다.
그 와중에 주머니에 넣어 둔 시계의 뒤편으로 푸른빛이 비쳤다.
* * *
슬슬 해가 지고 있었다.
완전히 해가 떨어지면 그때부터 환락가에서는 그 이름에 걸맞은 쾌락의 밤이 시작된다.
지금쯤 50구역 역전에는 막차가 들어왔을 것이다.
다른 시간대에는 한산하기 짝이 없는 역전이지만, 저녁 시간대와 이른 새벽에는 제법 많은 이들이 붐볐다.
불장난을 즐기러 온 부잣집 자제들이, 혹은 그런 시늉을 하고 싶은 자들이 50구역에 몰려들기 시작한다.
특히 환락가 중앙의 카지노 흑룡과 유곽 임청각에는 수많은 이들이 찾아들 터였다.
그러니 그 밖의 재미없는 이야기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했다.
이를테면… 배신과 복수 따위의 시시한 이야기 말이다.
페이진은 힐끗 자신의 주변을 살폈다.
자신의 곁에는 정예이자 심복이라고 할 수 있는 천중회 단원 20명과 캐피탈 클럽이 고용해 지원한 A급 용병 일곱 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반면, 카츠미의 곁은 고작 무사 다섯과 절름발이 무사 하나가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카츠미에게 지원군은 없을 것이다.
페이진은 가만히 텅 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하늘에는 수많은 드론들이 스텔스 모드로 비행 중이었다.
드론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많은 이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쾅!!
환락가 11번 구역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솟았다.
자못 화려한 연출이었다.
“너에게 유감은 없어.”
“…….”
카츠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문 채 페이진을 노려보았다.
마피아 보스들이 머무르고 있는 환락가의 중앙 사거리에서는 살인이 금지된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2주 전, 카게구미의 우에스기가 임청각에서 목숨을 잃었고, 몇 시간 전에는 천중회의 웨이창이 흑룡에서 살해당했다.
이젠 사거리 한가운데에서 카츠미가 페이진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도 중립 조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페이진은 중립 조직부터 습격해 괴멸시켰을 것이다.
환락가 전체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마피아의 모든 규칙이 박살 났다. 그 규칙을 박살 낸 인물은 다름 아닌 페이진이었다.
“네놈 입으로 마피아의 규칙이니 명예니 떠들지 않았던가?”
카츠미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지금 페이진의 행동은 LAPD의 마약 단속에 반발하며 한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흑룡 안에서 보스인 웨이창을 살해하고, 외부 세력과 결탁했다. 특히 외부와의 결탁은 마피아에게 있어 철저히 금지된 행동이었다.
“그래, 그랬지. 큭큭.”
페이진이 키득거리고 웃더니, 권총을 빼 들고 빙글 돌렸다.
“하지만 말이야, 진정한 규칙이나 명예를 잊은 건 바로 너야. 그리고… 아버지지.”
키릭!
권총을 고쳐 잡은 페이진이 안전장치를 풀었다.
“마피아가 지켜야 할 단 하나의 규칙과 명예는 바로 ‘힘’이야.”
마피아는 공포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규칙이니 명예니 하는 것들은 전부 힘이 있을 때 성립된다.
그 누구보다 강하기에 존경했던 양아버지, 웨이창은 그 근본적인 진리를 잊었다.
“목줄을 채우려 드는 놈들에게 잠자코 목을 빼 줄 수는 없다.”
현실을 모르는 헛소리였다.
캐피탈 클럽이 동원한 히트맨과 용병단, 50구역을 청소하기로 결의한 센트럴 의회.
그들과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모든 힘을 잃고 비참하게 죽게 될 것이다.
그래서 페이진은 캐피탈 클럽의 손을 잡았다. 아니, 그 가랑이 사이로 기어 들어갔다.
그 대가로 캐피탈 클럽은 천중회가 누려 오던 이권들을 인정할 것이다. 아니, 만약 그렇게까지 보장해 주지 않더라도 페이진의 목숨만큼은 살려 줄 것이다.
머리 회전이 빠른 자들은 벌써부터 페이진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카츠미, 카게구미의 12대장 중 열 명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어. 정확히 한 시간 걸리더군. 이미… 대세는 기울었어.”
열두 명 중 열 명. 사실상 전부가 카츠미로부터 등을 돌렸다.
카츠미의 편에 선 사업장들에 이미 병력이 출동한 상태였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모든 일은 끝이 날 것이다. 해가 지고 나면 환락가의 주인은, 50구역의 주인은 페이진이 될 것이다.
페이진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카츠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포기해, 카츠미. 그러면 목숨만은 구할 수 있다. 이미 LAPD와 손을 잡으려 한 너잖아? LAPD도 지금쯤이면 무너졌을 거다.”
그러나 카츠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멍청한 놈.”
페이진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난 분명 기회를 줬다.”
총구가 정확히 카츠미의 이마를 겨누었다.
스릉!
카츠미의 옆을 그림자처럼 지키고 있던 꽁지머리 무사, 코우가 칼을 뽑아 들며 주인에게 겨눠진 총구 앞을 막아섰다.
페이진이 그런 코우를 보고 피식 웃더니 비아냥거렸다.
“주제도 모르는 절름발이 같으니…….”
탕!!
페이진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고, 코우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콰쾅!!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금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