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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40화 (41/220)

40화 환락의 밤, 배신의 낮 (4)

수십 발의 총탄과 구슬들이 일제히 발사된 직후, 사무실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화약 냄새가 사무실에 짙게 배인 가운데, 모두는 책상이나 캐비닛 따위를 엄폐물로 삼은 채 몸을 낮추고 있었다.

총격전 속에서 아직 누구 하나 죽은 이는 없었다.

잠깐의 고요.

그 와중에 갑작스럽게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깼다.

따르르르르릉!

아직 박살 나지 않은 전화기들이 부산스럽게 울려 댔다.

하지만 누구도 수화기를 드는 이는 없었다.

아니, 애당초 그 누구도 전화기 소리에 정신을 기울일 수 없었다.

“젠장…….”

강필은 입술을 깨물면서 피에 젖은 팔을 바라보았다.

강필은 50구역 LAPD 경찰들의 결단력과 실행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던 부하들이 설마 자신을 향해 대놓고 총을 꺼내 들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런 강필의 자만이 빈틈을 만들었고, 미처 막아 내지 못한 총알 한 발이 강필의 팔에 박혀 들었다.

난장판 속에서도 강필을 지키기 위해 다가온 장량이 다친 팔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그냥 스친 거야.”

그러나 어느새 강필의 팔은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두 번만 스쳤다가는 아예 죽겠군.”

태일의 비아냥거림에 강필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넘어진 캐비닛 뒤에 등을 기댄 태일의 손에서는 한 줄기의 스파크가 튀고 있었다.

사실 태일 역시 LAPD가 완전히 드림코퍼레이션에 넘어갔을 거라 생각하지는 못했기에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다.

‘이제 어쩐다?’

태일은 아직 본인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구식 총기로 무장한 LAPD 열댓 명 정도야 어렵지 않게 쓸어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경찰 한두 명의 일탈이 아니라 조직적인 ‘반란’ 혹은 ‘숙청’이었다.

정식 체포영장이나 직위해제 발령 대신 총기를 꺼내 들었다는 것은 경찰 상부, 나아가 센트럴 내부에 뭔가 이변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르릉!

다시금 울리는 전화벨 소리.

철컥, 철컥.

그 와중에 저들이 숨은 반대편에서 재장전 소리가 들려온다.

결국 이 모든 사건들은 이긴 자의 시각에서 해석될 것이고, 만약 강필이 패한다면 꼼짝없이 악역을 맡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정의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태일은 입술을 깨물고 있는 강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장, 이제 어쩔 생각이지?”

“…….”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강필의 결정에 따라 그는 센트럴, 즉 정부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태일은 이미 다른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배자였기에 정부에 맞선다는 의미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히트맨과 군, 경찰에 쫓기게 된다.

막대한 자본력과 행정력으로 인해 결국은 고립된다.

쫓기지 않으려면 센트럴에 맞서야 하지만, 태일은 결국 정부에 맞선 혁명에 실패했다.

‘개입하지 않는다.’

태일이 결론을 내릴 즈음, 강필 역시 마음을 정했는지 이를 악물고 가만히 말했다.

“신태일, 넌 이 싸움에 끼어들지 마라.”

“…….”

비장하게 말하는 강필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이건 우리 경찰들의 문제야. 외부인인 네가 낄 일이 아니란 뜻이다.”

태일은 대답 없이 가만히 강필을 바라보았다.

“내가 놈들의 눈길을 끌 테니, 여기서 빠져나가.”

강필은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장량, 여긴 나 혼자 충분하니까 자네도 일단 몸을 피해. 가서 이번 일의 흑막이 어떤 새끼인지 찾아내도록 해.”

부하도, 외부인도 밀어낸 채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고 있었다.

저항이든, 죽음이든 이 사건의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선배!!”

강필의 외침에 장량이 얼굴을 붉혔다.

“서장,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태일이 뭔가 말하려는 찰나,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장, 항복하시오. 우리도 당신을 죽일 마음은 없어요. 순순히 체포에 응한다면, 즉결처분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마치 찍찍대는 것 같은 목소리는 코헨 로날드의 것이었다.

듣다 못한 장량이 목소리를 높였다.

“체포? 개소리 집어치워! 이건 엄연히 반란이야, 이 새끼들아!”

“반란? 아니지. 이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이야.”

강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슨 뜻이지?”

반대편에서도 코헨이 의기양양하게 몸을 일으켜 얼굴을 드러냈다.

“센트럴 의회도, 캐피탈의 사장들도 50구역을 쓸어버리기로 결정했소. 방법이야 어쨌든 50구역은 이제 끝장나겠지.”

“그 말뜻은… 우리 LAPD더러 50구역을, 사람들을 포기하라는 뜻인가?”

강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당신도 이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거 아닙니까. 여긴 답이 없어요. 마약쟁이와 창녀, 거지, 마피아, 레지스탕스… 50구역은 이미 자체 정화가 불가능해요. 안타까운 일이지.”

그러나 정작 코헨의 얼굴에는 조금의 동정심이나 괴로움도 없었다.

마치 구조 조정을 통보하듯 사무적인 얼굴로 말을 이을 뿐이었다.

“지금 우리들은 그런 것들을 청소하려는 겁니다, 서장.”

‘청소’, 그것은 곧 제노사이드(Genocide)를 의미한다.

태일은 캐비닛에 등을 기댄 채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어느새 담뱃갑 안 마지막 담배다.

‘…똑같군, 여기도.’

수많은 국가들이 난립하던 역사 시대의 끝자락에서 가장 늦게 센트럴 체제에 편입된 50구역은 줄곧 골칫거리였다.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레지스탕스와 국제 범죄 조직 마피아들이 뿌리내린 땅.

여자, 술, 마약, 폭력과 쾌락…….

센트럴이 금지한 모든 것들이 50구역에는 버젓이 남아 있었다.

아마 센트럴의 사회 지도층 역시 젊은 시절 한 번쯤은 이곳에 와서 타락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입장에서 50구역을 표적으로 삼을수록 권력의 정당성은 높아지고, 지지율은 올라갔다.

주변 구역 주민들에게 50구역은 혐오의 대상이었다. 아마 그런 혐오는 자신들의 땅 역시 50구역처럼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재건은 우리 드림코퍼레이션 측에서 담당할 겁니다. 더 나은 도시가 될 거요, 50구역은.”

자본가 집단인 캐피탈 클럽에게 50구역은 꽤나 탐나는 땅이었다.

더 뻗어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몸집이 커져 버린 그들의 시선은 어느새 도시 재개발과 철도 부설, 고급 카지노의 운영 등 온갖 이권이 굴러다니는 50구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랄 맞게 똑같아.’

다른 세계의 50구역에 SB가 유통되었을 당시, 센트럴에서는 권력이 교체되었다.

새로운 지도자들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50구역의 중독자들을, 혹은 중독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모조리 살해했다. 이른바 ‘청소’였다.

센트럴 체계의 약점이자 치부인 50구역을 청소한 대가로 지도자들은 ‘영웅’이라 불렸다.

그러나 캐피탈 클럽은 50구역에 진출하지 못했다.

청소의 생존자들이, 태일과 같은 이들이 대대적인 혁명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 선두에 태일이 있었다.

‘젠장…….’

처음으로 담뱃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일이 눈을 감고 가만히 머리를 기대고 있던 중 강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민의 신체와 생명, 재산을 보호하라.”

50구역 LAPD의 행동 강령, 그 첫 문장.

“의회든, 캐피탈이든 시민들을 건드리려 한다면 나부터 없애야 할 거다.”

강필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쇠구슬들이 떠오른다.

곧이어 반대편에서 수십 개의 총구가 강필을 겨누었다.

“어리석은 결정을 하셨군.”

“올바른 결정을 한 것뿐이야.”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펑!

커다란 파공음과 함께 강필의 주변을 휘돌던 구슬들이 일제히 코헨과 LAPD 경찰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코헨은 허겁지겁 고개를 숙이며 고함을 질렀다.

“쏴!!”

그 와중에 쇠구슬이 엄폐물들을 꿰뚫으며 뒤쪽에서 총을 쏴 대는 경찰들의 몸뚱어리에 박혀들었다.

“우와아아악!!”

앞선 첫 격돌과 달리 방어가 아닌, 섬멸을 위한 공격이었다.

반면, 상대편에서 발사한 수십 발의 총알은 단 하나도 강필에게 닿지 않았다.

어느새 경찰서 바닥에 새겨진 문양의 영향을 받은 총알들은 한없이 느린 시간 속에서 멈춰 있었다.

“장량!”

“저도 서장님과 같은 명령을 받고 LAPD에 왔습니다.”

장량이 굳은 얼굴로 역시 몸을 일으켰다.

“쏴, 쏘란 말이야!!”

코헨의 옆을 지키던 박 계장이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탕, 타탕, 탕, 탕!!

그러나 장량이 소울로 만든 영역 안에 들어온 총알들은 단단히 붙잡힌 듯 멈춰 버렸고, 어느새 수많은 총알들이 주변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었다.

“제기랄, 직접 앞으로 나가! 부딪치란 말이야!!”

성난 코헨의 지시가 울려 퍼졌지만, 그 어떤 이도 엄폐물 밖으로 빠져나와 강필과 장량에게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편, 그 와중에 엄폐물을 뚫고 들어간 쇠구슬이 경찰들의 어깨와 팔을 집중적으로 꿰뚫었다.

핑! 피핑!!

“끄아아아악!!”

“피, 피해!! 와아아악!!”

강필의 쇠구슬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빠르게 방향 전환을 하며 파고들었기에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막아! 책상 밑으로!!”

더구나 총알을 뛰어넘는 속도로 쏘아졌기에 막을 수조차 없었다.

피로 범벅된 쇠구슬이 마구 날뛰는 가운데, 사무실 온 사방에 비명이 울려 퍼졌고, 경찰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갔다.

“제기랄, 고작 두 놈을 못 잡아서!!”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코헨이 몸을 낮춘 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코헨은 후크를 떠올렸다.

50구역에 들어오자마자 이마에 구멍이 뚫려 목숨을 잃은, 불쌍한 친구.

물론 그와 같은 최후를 맞이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이미 자신은 맡은 임무를 다했다. 살아서 회사에 돌아가기만 한다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성과급이 주어질 것이다.

절대 이렇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이봐요, 박 계장!”

“박사님…….”

사정하듯 코헨을 부르는 박 계장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코헨은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고작 몇 분 전만 해도 두 사람 정도야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남자가 이젠 겁에 질린 두꺼비마냥 몸을 움츠리고 있다.

하긴 그렇게 무능하니 50구역에 처박혀 정년이나 기다리고 있었겠지.

은퇴 후의 이주를 약속하자 선뜻 배신할 정도로 어리석은 남자였으니, 애당초 강필과 장량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자체가 무리였다.

코헨이 박 계장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걸 써요!”

“하, 하지만…….”

박 계장이 손을 덜덜 떨며 주머니에서 몇 개의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최상급 이레귤러의 힘을 일시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는 비약. 비밀리에 개발된 비약이지만, 그 부작용이 워낙 심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뭣 하는 거요! 빨리 쓰란 말이야!!”

당장 계장의 곁에서 두셋의 경찰이 전투 불능 상태로 끙끙거리고 있었다. 그 팔에 주삿바늘을 박아 넣기만 하면 된다.

그게 뭐 어려워서 저 멍청이는 저렇게 망설이고 있단 말인가.

“그, 그래도 이건…….”

박 계장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뭐라 말하려는 찰나, 주변을 맴돌던 쇠구슬 하나가 그의 어깨를 꿰뚫었다.

“끄어억!!”

그와 함께 박 계장의 손에 들려 있던 주사기들이 힘없이 바닥을 굴렀다.

“저 멍청이가!!”

코헨은 급히 몸을 움직여 주사기를 마구 움켜쥐었다.

하지만 박 계장은 주사기 따위는 아랑곳 않은 채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의 팔만 바라보며 곰처럼 울부짖었다.

“아, 아아… 내 팔이, 팔이!!”

코헨은 자신의 손에 쥔 주사기 중 하나의 바늘 캡을 벗겨 낸 뒤, 곧바로 박 계장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순간, 박 계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지금 무, 무슨!”

“그러게 빨리 사용하랬잖아!!”

“지금 이게…….”

박 계장은 현재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곧이어 박 계장의 몸이 빠른 속도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SB의 정수, RSB가 그의 몸을 변이시키고 있었다.

코헨은 그사이 주사기를 바꿔 들고는 전투 불능이 된 주변 경찰들의 몸에 꽂아 넣기 시작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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