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캐피탈 클럽 (5)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하필 그 시간에 태일은 역전 바로 옆길을 지나치고 있었고, 하필 지우의 수다에 지쳐 고개를 들었으며, 하필 때마침 햇빛이 저격수의 총구에 반사되었다.
총구는 태일이 아닌 역전 안쪽을 겨누고 있었다.
‘한 놈이 아니군.’
숙련된 놈들이었다.
만약 몇 가지 우연들이 겹치지 않았다면,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까지 그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놈은 완벽에 가깝게 은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앨리스한테 그만 좀 하라고…….”
“지우야.”
한창 떠들던 지우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태일을 바라보았다.
“환락가까지 뒤돌아보지 말고 곧바로 뛰어.”
“…형?”
“당장.”
파짓!
순간, 태일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가 있던 자리에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다.
빠아아아아앙!!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연기가 공중에 피어오른다.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던 지우는 태일의 말대로 곧장 환락가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방금 태일의 표정, 그것은 인형극단을 무너뜨리던 날 보여 준 표정이었다.
“동작 그만.”
태일의 목소리에 줄곧 움직이지 않던 저격수가 처음으로 움찔거렸다.
그는 자신이 뒤를 잡혔다는 사실에 꽤 놀란 것 같았다.
곧이어 놈의 몸이 뒤집히면서 태일의 목을 향해 단검이 날아들었다. 제법 날렵한 움직임이지만, 그래 봐야 전류의 속도를 이길 수는 없었다.
미세한 스파크와 함께 그는 단검을 놓쳐 버렸고, 태일은 그 즉시 무릎으로 놈의 가슴팍을 눌렀다. 이어 한 팔을 발로 밟아 움직임을 봉쇄했다.
완전히 제압된 저격수는 의미 없는 몸부림을 포기한 듯 태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편, 녀석의 눈을 본 태일은 숨을 들이켜며 입술을 깨물었다.
“너는……!”
복면으로 눈만 드러낸 녀석의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딸칵!
멀지 않은 곳에서 플라스틱의 접합음이 들려온다.
탕!!
막기에는 이미 늦었다.
“으아아아악!!”
역전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첫 발로 인해 쓰러진 이는 고급 양복을 갖춰 입은 뚱보였다. 그 옆의 비실이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러 대는 와중에 근육질 경호원들이 그를 보호한답시고 둘러쌌다.
강필은 흥분한 듯 수백 개의 구슬을 조종하며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경호원들이 나름 비실이를 보호할 생각인 듯 주변을 둘러쌌지만, 태일이 있는 각도에서 볼 때, 딱 좋은 표적에 불과했다.
만약 태일이 이쪽 저격수를 제압해 두지 않았다면, 꽤 높은 확률로 비실이 역시 방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곧이어 장량이 경호원들과 비실이를 다그쳐 급히 건물 안쪽으로 이동시켰다. 사방이 노출된 개찰구에서 달아나는 게 우선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판단한 것이다.
한편, 강필 서장은 첫 발로 위치가 노출된 저격수를 직접 상대하기 시작했다.
태일은 잠시 전장에서 시선을 돌려 자신이 제압한 메타휴먼을 바라보았다.
복면을 벗겨 맨얼굴을 드러낸 놈을 보며 태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 대해 설명이 필요할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무표정한 얼굴로 태일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
“프랑켄.”
그는 지난밤 ‘납치’되었다고 알려진 메타휴먼 경찰, 프랑켄이었다.
바로 그때, 역전 창고 뒤편에서 폭발이 일었다.
강필에 의해 제압된 저격수가 자폭을 선택한 것이다.
태일은 폭발의 열풍 속에서 다리에 스파크를 두른 채 곧바로 공중을 날아올랐다.
그 와중에 태일의 한 손은 프랑켄의 뒷덜미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 * *
인적 없는 골목길.
태일은 프랑켄을 아무렇게나 집어 던진 뒤,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행여 자폭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빠져나오기 직전에 프랑켄의 허리에 둘러놓은 기폭 장치를 해체시키긴 했지만, 혹여 자폭 장치를 한두 개쯤 더 숨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다행히 프랑켄도 더는 수단이 없는지 태일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켄이 태일에게 붙잡힌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프랑켄이 강필에게 걸렸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자폭 전에 정체가 들키기라도 했다면, 요한은 물론, 제인까지 얽혔을 것이다.
처음으로 프랑켄의 입이 열렸다.
“저를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일단 얘기나 좀 들어 볼 생각이야.”
프랑켄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신에게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건 내가 판단하는 거지, 이 양반아.”
태일이 담배를 입에 물며 벽에 등을 기댔다. 이 와중에도 프랑켄은 그 모습이 이상했는지 태일을 빤히 바라보았다.
“빈 담배를 어째서 물고 있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는 니코틴도 유입되지 않고, 심리 안정 효과도 얻을 수 없습니다.”
“금연 중이라서.”
“그게 담배를 물고 있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무의식적인 행동인 겁니까?”
녀석의 호기심은 진심이었다.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로봇 취급을 받지만, 태일이 살던 세계에서조차 인공지능이 ‘호기심’을 느끼는 일은 없었다.
기계 학습이라는 것조차도 감정이 거세된 행위일 뿐이었다. 과제를 만들어 내는 과정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부여받은 임무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태일이 담배를 물고 있는 행위는 프랑켄의 그 어떤 임무와도 무관했다.
“시간 끌 생각 말고.”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넌 뭐냐? 경찰이 맞긴 하냐?”
“제 신분은 아직까지도 경찰이 맞습니다.”
“신분 말고.”
잠시 고민했다. 진심이 뭐냐고 물어야 할까? 놈에게 애당초 진심을 담아 둘 마음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이상하게 개조된 채 지하 쓰레기 처리장에 처박혀 있던 그 메타휴먼에게도 마음이 있던 걸까?
아니면 소유주가 누구냐고 물어야 하나? 강필은 녀석을 두고 경찰의 소유물이라고는 했다. 엄연히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처럼 사고하는 녀석에게 그 질문이 맞는 걸까?
“네 목적이 뭐냐는 거야.”
“…….”
프랑켄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보안으로 단단히 봉인된 프로그램의 경우,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프로 해커가 아닌 이상 쉽게 진입할 수 없다. 프랑켄이 로봇에 불과하다면, 자신의 자발적 판단에 의해 입을 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요한이 네 걱정을 많이 하더군.”
“…….”
“네가 붙잡힌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어. 자신의 약혼녀 때문에 저지른 일에 너를 동참시킨 꼴이니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녀석이 꺼낸 말이 한낱 로봇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지금 녀석의 표정이 영혼 없는 로봇의 얼굴에 떠오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일까?
“네가 저격에 실패해 붙잡혔다면, 너뿐만 아니라 요한까지 공범으로 몰릴 수 있어.”
“선배는 무관한 일입니다.”
태일은 무릎을 굽힌 채 얼굴을 프랑켄의 붉은 눈동자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놈에게 심장박동 따위는 들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터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다.
“그렇겠지. 요한은 그저 제인을 만나기 위해 열차표를 검색한 거야. 그리고 제인을 습격한 히트맨을 찾기 위해 시스템을 뒤졌을 거고.”
“…….”
“하지만 너는 아니지, 프랑켄.”
프랑켄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였다. 프랑켄은 새로 부임할 서장과 팀장의 기차 편 정보를 누군가에게 넘겼다. 뿐만 아니라 히트맨에 관한 내부 정보까지 빼돌렸다. 그런 정보 유출이 결코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후 프랑켄은 ‘감식’이 결정되자 외부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를 탈출했고, 그들과 함께 드림코퍼레이션의 전문가들을 저격하려 시도했다.
프랑켄을 도운 외부의 ‘누군가’는 아무리 간밤이라 해도 LAPD에 침입해 프랑켄만을 빼낼 수 있을 정도로 귀신같은 놈들이었다.
레지스탕스는 물론, 마피아조차도 할 수 없는, 아니, 할 이유가 없는 일들이었다.
태일은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줄곧 의심하고 있던 조직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널 풀어 줄 수도 있어. 아니, 웬만하면 풀어 줄 생각이야.”
태일의 말에 프랑켄의 얼굴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어진 태일의 말에 프랑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너도 50구역을 지키는 쪽이냐?”
50구역을 지키는 쪽.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50구역을 끝장내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이 있고, 저는 지키려는 쪽일 뿐이죠.”
처음 그 표현을 사용한 사람은 레이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50구역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 놈들을 태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RSB를 이용해 SB의 존재 자체를 지우려고 한 이들.’
셸터다.
레이부터 시작해 태일을 엄호하기 위해 나온 민호, 그리고 마피아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려 한 테러리스트들까지.
그렇게 암흑가 변호사, 레지스탕스, 마피아의 가면을 쓰고 있다면, LAPD의 가면 하나쯤 더 쓰고 있다 한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게 설마 메타휴먼일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을 뿐이다.
“당신은…….”
프랑켄의 표정은 그 자체로 답변이었다.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
“난 셸터가 아니야.”
프랑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과연 태일의 짐작대로 셸터는 철저한 점조직으로, 서로의 정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프랑켄의 붉은 눈동자가 아니라면 그는 더 이상 메타휴먼처럼 보이지 않았다. 꾸밈없이 놀라고 당황한 그의 얼굴은 의심할 여지없이 인간의 것이었다.
“풀어 주지.”
궁금증은 풀렸다.
태일에게는 프랑켄을 없앨 이유도, LAPD에 넘길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궁금증을 가진 쪽은 태일이 아닌 프랑켄이었다.
“대체 당신은 누굽니까?”
“말한다 해도 믿지 못할 거야.”
“…….”
프랑켄은 중얼거리듯 말하는 태일을 가만히 바라보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동안 프랑켄은 떠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풀어 주겠다고 했건만, 곧바로 떠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일이 언뜻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50구역에 들어온 양복쟁이 둘을 없애려 한 이유가 뭐지?”
50구역을 지킨다고 자처하는 셸터.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거나 활동하는 경우가 드물던 녀석들이 굳이 LAPD 서장과 팀장이 보는 앞에서 저격을 시도했다. 셸터 입장에서도 강수를 둔 것이었다.
“그들은 50구역을 시작으로 세계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겁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프랑켄의 대답에 태일은 순간 멍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세계? 무너뜨린다?
“그러니까… 그 뚱보랑 비실이가?”
프랑켄을 비롯한 저격수들이 노린 두 사람에게 그 정도의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당장 둘 중 하나는 허무하게 숨이 끊어져 버렸지 않았던가.
“그 두 사람은 드림코퍼레이션에서 파견된 기술자들입니다. 드림코퍼레이션이 제조한 메타휴먼은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겁니다.”
태일은 냉정한 프랑켄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프랑켄, 너 역시 메타휴먼이잖아?”
“…….”
메타휴먼인 프랑켄이 ‘메타휴먼에 의해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설픈 종말론을 읊어 대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그들의 시나리오에서 결정적인 역할은 대개 인간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이 인공지능에 의한 파괴이든, 자연재해이든, 혹은 신에 의한 종말이든 결국 종말을 직접 야기하는 존재는 따로 있었다.
“뭐, 아무래도 좋아.”
태일은 이 자리에서 묵시록적 종말론에 대해 떠들고 싶지 않았고, 프랑켄 역시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종말론은 일종의 종교적인 범위에 해당하고, 셸터의 행태 역시 공교롭게도 광신도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사상(思想)이 아닌 행동(行動)이다.
“어쨌든 셸터가 드림코퍼레이션을 노리고 있다는 뜻이군.”
“당신은 아닙니까?”
프랑켄이 도리어 되물었다.
“나?”
생각해 보니 자신이 프랑켄과 처음 만났을 당시, 드림코퍼레이션의 화물열차에 침입했다가 체포된 상태였다.
“어쩌다 보니 드림코퍼레이션이랑 각을 세우긴 했군.”
드림코퍼레이션의 SB 유통 계획을 망가뜨린 사람은 분명 태일이었다. 그 사건 때문인지 캐피탈 클럽에서는 태일의 뒤를 캐고 있었다.
“그렇다고 너희들 편이라고 할 수도 없지.”
셸터의 테러를 저지하고, 저격을 방해한 사람 역시 태일이다.
프랑켄 역시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그제야 비치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아남은 놈을 다시 저격할 생각이냐?”
“…….”
프랑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갔다.
태일은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