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캐피탈 클럽 (4)
아침부터 역에 나온 강필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머리를 마구 긁적였다.
“망할, 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강필의 뒤에는 장량과 막내 이순철 경장이 함께 서 있었다.
“…운이 없었을 뿐입니다.”
장량의 말처럼 정말 운이 없었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일주일 만의 퇴근이고, 그조차도 50구역의 중요 감시 인물, 신태일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 틈에 웬 미친놈들이 경찰서 벽을 뚫고 들어올 줄 누가 알았을까.
“하아, 하다못해 술기운이라도 몰아내고 본청 연락을 받아야 했는데…….”
“…….”
강필은 센트럴 본청으로부터 그야말로 쌍욕을 먹어야 했다. 특히 일이 터지던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괘씸죄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 보고를 들은 청장까지 길길이 날뛰었다고 하니, 시말서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다.
최소 감봉, 심하면 정직 처분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잘되지 않았습니까? 이참에 50구역 말고 다른 곳으로 발령을…….”
“시끄럽다.”
강필은 장량을 짜증스럽게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이어 바로 뒤에 뻣뻣하게 서 있는 막내 경찰을 노려보았다.
“야, 넌 하필 그때…….”
당직을 서던 막내는 깊은 잠에 빠진 나머지 일이 터지고 대략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눈치챘다. 하지만 녀석도 지난 일주일간 최소 60시간 이상 근무한 상태였기에 심하게 혼낼 수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젠 아예 자동 응답기마냥 뭔가 말만 걸면 죄송하다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아마 선배들에게 실컷 털린 후유증일 터였다.
사실 굳이 놈을 역까지 빼 온 것도 선배들의 괴롭힘에서 잠시나마 탈출시켜 주려는 의도였다. 그런 가운데 녀석의 죄책감을 더 이상 자극하고 싶진 않았다.
“하아… 됐다, 됐어. 어깨 펴, 인마.”
“그보다… 기차가 좀 많이 늦어지는 모양입니다.”
장량이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열차는 무려 20분이나 연착되었고, 덕분에 세 사람은 멍하니 개찰구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대체 그놈들이 뭐라고 서장에 팀장까지 나와서 받들어 모셔야 하는 거지?”
“어쩌겠습니까, 청장님 특별 요청으로 동원된 전문가라고 하니.”
“염병, 망할 돈벌레 놈들.”
메타휴먼을, 그것도 LAPD 기밀을 잔뜩 갖고 있는 녀석을 도둑맞은 덕분에 50구역 LAPD 전체가 3교대 비상근무에 들어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센트럴의 전문가까지 맞아들여야 했다.
드림코퍼레이션은 이번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다며 메타휴먼 전문가들을 파견했다. 아마 이번 건수로 사측은 엄청난 수수료를 받아 챙길 것이다.
“그보다 선배, 이번 사건 말입니다…….”
장량이 턱을 매만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뭘로 벽을 뚫은 걸까요? 그 정도 두꺼운 벽이라면 분명 엄청난 굉음이 들렸어야 하는데, 근방 주민들조차도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얘가 아무리 잠에 깊이 빠졌다 해도…….”
“죄, 죄송…….”
강필은 팔을 휘휘 저으며 막내의 말을 끊어 버렸다.
“시끄러. 죄송하다는 말은 그만하고, 당시 기억이나 되살려 봐. 진동이나 소음을 아예 조금도 못 느낀 거냐?”
“…예. 어떤 기척도… 느끼질 못했습니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졌다 해도 간밤에 벽을 뚫어 버릴 정도의 굉음을 모르고 지나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량이 마음에 걸린다는 듯 자신이 확인한 바를 말했다.
“폭발의 흔적이 아니었습니다. 믿기진 않지만… 단박에 잘라 낸 것처럼 단면이 깔끔했습니다.”
드릴로 뚫거나 폭발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마치 무 자르듯 단번에 베어 낸 흔적. 게다가 소음도 거의 나지 않았다.
“이레귤러(Irregular)일까요?”
쟝량의 말에 강필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반응에 장량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
“아니, 됐어. 중요한 건 단어, 그 자체가 아니니까.”
거슬리는 쪽은 단어에 담긴 의미였다.
‘이레귤러’라는 표현에는 소울 사용자에 대한 두려움과 적대감이 내포되어 있었다.
애당초 이레귤러는 수십 년 전, 소울 능력자들을 집단 수용소에 집어넣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극우 정치인이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였다.
소울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비정상’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결국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지만, 단어의 탄생과 함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보다 뚜렷해졌고, 소울 능력자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 글씨가 되었다.
강필은 애써 말을 돌렸다.
“간밤의 일이 소울 능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50구역에 그만한 힘을 가진 이는 많지 않아. 그중 하나는 지난밤 우리와 같이 있었지.”
강필은 짧지 않은 경찰 생활 동안 그럭저럭 많은 이들을 상대해 왔다.
그런 그가 보기에 신태일은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난밤,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했다.
신태일, 그는 마피아와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렇게 강필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에 장량이 침묵을 깼다.
“선배, 옵니다.”
빠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시꺼먼 연기를 뿜어내는 열차가 역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요란한 등장과 함께 정작 열린 문에서 내리는 사람은 몇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산물이나 특별한 자원조차 없는 황량한 땅에 마피아가 득실거리고 치안은 엉망인 땅.
그럼에도 불구하고 50구역을 굳이 찾아오는 이들은 전 대륙에 몇 없는 환락가의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한 풋내기들 정도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 열차를 타고 50구역에 들어오는 이들은 몇 없고, 특히 돈깨나 있는 이들이 들어오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다.
“그 양반들, 몇 번 칸에 타고 있다고 했지?”
강필이 뿌연 연기 속에서 장량에게 물었지만,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자신의 질문이 무의미했음을 알았다.
“…정말 눈에 띄는군요.”
고급스러운 양복에 잘 손질된 머리, 번쩍이는 구두와 명품 시계로 무장한 채 거들먹거리는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드림코퍼레이션의 직원들이었다.
“차라리 발가벗고 얼굴에 ‘드림’이라고 써 붙이는 편이 덜 눈에 띌 것 같군요.”
두 사람의 주변에는 다섯 명의 근육질 경호원이 붙어 있는데, 모두가 고급 양복에 권총 한 자루만을 달랑 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경호원이라기보다는 헬스 강사처럼 보이는 애송이들이었다.
“경찰청장이 왜 ‘경호’를 지시했는지 이제야 알겠군.”
저런 꼴로 무방비하게 환락가 근처에 다가간다면, 소매치기 소년들에 의해 전부 털리고 말 것이다.
그건 그나마 나은 상황이었다.
혹 운 나쁘게 마피아 놈들의 눈에라도 띄기라도 한다면, 자신들이 고용한 경호원이 얼마나 어설픈 아마추어였는지 곧바로 깨닫게 될 테니까.
강필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손님’들을 향해 다가갔다.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50구역 LAPD 서장 강필입니다.”
강필이 두 사람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지만, 둘은 여전히 뻣뻣한 자세로 거만하게 강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둘 중 비쩍 마른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당신이 서장이오? 우리가 보급한 기체를 잃어버리셨다고?”
말투가 비딱했다.
옆의 뚱뚱한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여튼 사람들은 메타휴먼의 가치를 너무 몰라요. 메타휴먼은 아주 섬세한 기체인데 무식하게 굴리다가 망가뜨려 버리는 거지.”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같습니다만!”
강필의 뒤쪽에 서 있던 장량이 도끼눈을 뜨며 앞으로 나섰다.
상관을 앞에 두고 돌발적으로 나선 장량의 모습에 드림코퍼레이션 쪽 일행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딸꾹!”
그 와중에 LAPD 막내 역시 깜짝 놀랐는지 딸꾹질을 해 댔다.
그러나 강필은 장량의 돌발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상황은 그 반대에 가까웠다.
장량이 급히 앞으로 나서면서 강필의 팔을 붙잡지 않았다면, 방금 메타휴먼에 대해 헛소리를 지껄인 자의 머리통에 구멍이 뚫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강필은 분노로 마구 떨리는 얼굴근육을 통제하지 못한 가운데, 짓씹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난 지금… 내 부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소.”
요한과 제인의 앞에서는 프랑켄의 인권을 부정하며 ‘감식’을 운운했지만, 프랑켄이 그 누구보다 인간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름 아닌 강필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강필은 메타휴먼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 했지만, 마음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니, 거리를 두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경찰에 투입된 메타휴먼들이야말로 소울 능력자들과 함께 가장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는 동료였으니까.
일반적인 메타휴먼들과 달리 이성을 지닌 메타휴먼, 로보티안(Robotian)만이 경찰에 임용될 수 있었다. 그렇게 임용된 로보티안들은 ‘버그(Bug)’라는 멸칭으로 불리면서도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제복을 입은 이상 경찰의 일원이고, 내 부하요. 그러니 말을 좀 조심해 줬으면 좋겠소만.”
그러나 정작 강필의 경고를 들은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명백한 조소였다.
“뭐, 때때로 그런 경우도 있어요. 하물며 애완견에게도 애정을 주는데, 메타휴먼과 우정을 나눈다 한들 이상할 건 없죠.”
“맞습니다. 저도 핏불을 두 마리 정도 키웠는데, 녀석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놈들이 애완견을 운운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당장에라도 입을 찢어 버리고 충동이 느껴졌다.
‘…이건 일이다. 청장의 명령이다.’
강필은 주먹을 움켜쥔 채 필사적으로 되뇌었고, 대신 앞으로 나선 장량은 그런 강필을 불안한 눈으로 살폈다.
“어쨌든 갑시다. 잃어버린 기체를 빨리 찾아야 우리들도 이 동네를…….”
퍽!
묘한 타격음과 함께 한창 떠들던 뚱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리고… 별안간 뚱보의 미간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악!!”
비실이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스, 습격이다!”
뒤쪽에 병풍처럼 서 있던 다섯 경호원은 허겁지겁 권총을 꺼내들고는 비실이의 주변을 막아섰다.
“빨리 역전 건물 안으로!! 장량!”
“예, 선배!! 막내, 정신 똑바로 차려, 인마! 거기 당신들,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긴 너무 노출됐소!”
한창 부산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강필은 총탄이 날아온 방향을 훑고 있었다.
곧이어 창고 건물 위쪽 지붕에서 반짝거리는 쇠붙이가 강필의 시야에 포착되었다.
총구는 바쁘게 비실이 쪽을 쫓고 있었다.
‘젠장.’
이번만큼은 핑계조차 댈 수 없을 정도로 분명한 강필의 실책이었다.
분노로 집중력이 흩어지는 바람에 찰나의 순간 저격수의 기척을, 최후의 순간 방아쇠 울림을 놓쳤다.
철컥!
두 발째.
강필의 주머니에 넣어 둔 쇠구슬 수십 개가 떠오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쇠구슬은 어지러운 자기력(磁氣力)에 따라 사방을 떠돌았다.
그와 동시에 강필의 몸 역시 공중에 떠올랐다.
탕!!
비실이를 노리고 발사된 저격수의 두 발째는 강필의 쇠구슬 하나와 공중에서 충돌하며 요란한 굉음을 냈다.
실패를 눈치챈 저격수는 이미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는 중이었다.
“어딜!”
수십 개의 쇠구슬이 저격수를 노리고 벌 떼처럼 뿌옇게 날아들었다. 저격수를 추격하던 쇠구슬들 중 하나가 다리를 꿰뚫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강필은 급히 뒤로 물러서며 입술을 깨물었다.
“설마…….”
피가 튀지 않았다.
쾅!!
자폭.
순간적으로 엄청난 열기와 함께 거대한 바람이 강필의 정면에서 휘몰아쳤다.
강필은 양팔을 교차해 앞을 막아선 자세 그대로 뒤쪽으로 사정없이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강필은 역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남자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신태일!’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