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30화 (31/220)

30화 제3의 세력 (4)

“…제인!”

조사실에 들어서자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요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한과 맞은편에 앉아 있던 서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인과 태일을 바라보았다.

“한쪽은 예상했던 손님이군. 그런데 다른 한쪽은…….”

“사무장이랍니다.”

꺽다리 팀장의 말에 서장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재밌구만.”

그러나 그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마치 승냥이 같은 눈매로 태일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팀장이 피로가 묻어나는 말투로 보고했다.

“서장님, 방금 1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환락가 입구까지는 수색이 끝났다고 합니다.”

“입구까지?”

“그 이상 나갈 경우, 희생이 커질 수 있다면서 철수를 요청해 왔습니다.”

순간, 서장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팀장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피아들의 협박을 받은 것 같습니다.”

“놈들에게 받아먹은 게 많은 모양이지.”

“…….”

서장의 차가운 말에 팀장은 보일락 말락 고개를 끄덕였다.

‘표적은 마약쟁이 따위가 아니군.’

태일은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긴 듯 보이는 서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장은 과연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가 진입을 명령하는 순간, 곧바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것도 추격전이 아닌, 전면전이 말이다.

어제 막 부임한 서장이 내뱉을 한마디의 무게는 그만큼 무거웠다.

짧은 시간 동안 고민하던 서장이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이만 철수하라고 해.”

대답을 들은 제인이 안도한 듯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태일은 도리어 눈살을 찌푸렸다.

철수를 명령했지만, 이 순간 서장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허탈감이나 체념이 아니었다.

선명하게 드러난 관자놀이와 음산하게 흘러나오는 소울.

그것은 잔잔한 분노였다.

철수는 ‘유예’일 뿐, ‘굴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조사실의 문이 닫혔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썩었어. 그렇지 않소?”

서장이 몸을 일으키며 제인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강필이오. 그 썩은 놈들의 대장쯤 되는 사람이지.”

“제인이에요. 여기 있는 요한 파머 씨의 변호사입니다.”

제인이 선뜻 악수에 응하며 애써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 이 친구의 약혼녀이시라고 들었는데… 반갑소.”

그 말에 딱딱하던 제인의 얼굴에 균열이 일었다.

서장은 이미 제인과 요한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이어 서장의 시선이 태일에게 향했지만, 따로 인사하지는 않았다.

잠시 뒤.

“…그건 말도 안 돼요.”

제인은 최대한 의연함을 유지하고 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만큼 서장에게서 나온 요한과 프랑켄의 혐의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저는 억울합니다, 서장님. 저는……!”

요한이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였지만, 스스로를 변호하는 데 썩 유리한 반응은 분명 아니었다.

한편, 서장은 한없이 담담했다.

“지금부터 내가 조사한 것들에 대해 말해 주지. 부디 솔직한 답변을 바라네.”

태일은 팔짱을 낀 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군.’

“저는, 저는 서장님을 살해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요한은 기어코 자신의 말을 끝맺었다.

하긴 요한의 입장에서도 이성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일 터였다.

통신법과 국가정보법 위반으로 체포된 요한과 프랑켄에게 어느새 살인 교사 혐의가 더해진 것이다.

서장은 환락가 철수를 명령할 때 잠시 내비친 분노를 완전히 숨긴 상태였다.

“50구역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 우리 둘 다 시체가 될 뻔했소.”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도 하듯 아무 감정도 내비치지 않은 채 담담히 말을 이었다.

“히트맨 두 놈이 바로 뒷좌석에 앉아서 우리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으려 했거든.”

누군가가 50구역 LAPD에 부임하려는 서장과 팀장의 살해를 의뢰했다.

“물론 실패했지.”

당연히도 실패한 히트맨의 자백은 받아 낼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기차 시간에 좌석까지… 놈들이 과연 어떻게 알아냈을까? 우리가 직접 예매했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는데 말이지.”

서장이 책상 위 물병을 들더니, 뚜껑을 열며 말을 이었다.

“Z―rail 서버에 해킹의 흔적은 없다고 하더군. 하지만 조회의 흔적은 있었지. 게다가 히트맨 기록 조회의 흔적까지 말이야.”

물을 한 모금 들이켠 서장이 이마를 쓸어 넘겼다.

“조회한 당사자가 자네라는 사실은 인정하나, 요한 경위?”

요한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방금과 달리 요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곁눈질로 제인을 슬쩍 바라볼 뿐이었다.

입에 자물쇠를 걸어 버리는 묵비권(黙秘權). 경찰의 입장에서야 짜증스러운 장애물이지만, 피의자 입장에서 그만큼 좋은 무기도 없다. 경찰인 요한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증거로는 부족해요. 그것만으로는 살인교사 혐의를 씌울 수 없어요.”

제인이 요한을 대신해 날카롭게 반박했다.

무죄추정(無罪推定), 증거주의(證據主義). 이 모든 것은 경찰에게 꽤 불리한 환경을 구축한다.

그러나 서장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요한 경위와 프랑켄 경장은 50구역으로 들어오는 일주일 치 열차 탑승자 명단을 전부 조회했소. 최근 벌어진 테러 사건의 수사 때문이라고 했지만, 비루한 핑계야.”

테러가 벌어진 후 탈출하려는 테러범을 수색하려 했다면 50구역을 ‘나가는’ 열차를 조회했어야 한다. 그러나 요한은 ‘들어오는’ 열차를 조회했고, 그중에는 새로 부임할 서장과 팀장의 열차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건 저 때문이에요.”

제인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제 열차표를 조회하기 위해 정보를 뒤진 거죠.”

사적인 목적으로 열차 정보, 개인 정보를 얻기 위해 서버를 훑은 이상 통신법 위반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살인 교사 혐의에 비하면 가벼운 법 위반일 뿐이다.

“약혼녀의 열차 도착 시간을 알고 싶어서 Z―rail 서버를 뒤졌다라… 그 얘기를 어떻게 믿지?”

“전화 기록을 확인해 보면 되겠군.”

태일이 차분히 입을 열자, 세 사람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요한, 저 양반. 제 약혼녀가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면서 애먼 사람한테 진상을 부렸거든.”

잠시 민망한 침묵이 이어졌다.

요한은 태일의 시선을 피해 슬쩍 고개를 돌렸고, 제인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제 전화 기록을 봐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저 사람 연락을 피했거든요.”

서장이 표정 변화 없이 다시 질문했다.

“히트맨 조회는 어떻게 설명할 거요?”

이번에도 그의 의문에 답한 사람은 태일이었다.

“당시 열차 테러의 표적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약혼녀였어. 눈이 뒤집힌 거겠지.”

제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Z―rail 측에서 저에게 배상한 기록이 남아 있을 거예요. 얼마간 Z―rail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보호를 받기도 했죠.”

“서장님, 그것만큼은 정말 수사 목적이었던 게 맞습니다. 전임 서장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제가 멋대로 조회한 것은 사실이지만…….”

요한은 그렇게 자신의 국가정보법 위반 사실을 줄줄 불어 버렸지만, 그만큼 그는 절박했다.

서장이 가만히 요한의 얼굴을 보더니, 갑자기 물병을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서장의 행동에 놀란 제인이 덩달아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요. 아직 끝이 아닐 텐데요? 저는 요한의 변호사로서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필요 없소.”

“…예?”

“집에 가도 좋다고.”

의외로 쉽게 놓아주자 도리어 당황한 쪽은 제인과 요한이었다.

태일 역시 정황상 혐의를 벗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기에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다.

“요한 경위, 자네는 내일부터 정상 출근하게.”

만약 요한이 출근을 하지 않거나 근무지에서 벗어날 경우, 서장은 다시금 체포를 감행할 터였다.

얼떨떨한 와중에도 안도하던 요한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프랑켄 경장도 풀려나는 겁니까?”

“아니.”

서장이 짧게 말했다.

“그 기체(機體)는 드림코퍼레이션 측에 정밀 감식을 의뢰할 거네.”

그 순간, 요한은 마치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프랑켄은… 제가 시킨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랬겠지. 자네의 무죄는 기체의 감식을 통해 증명될 거네.”

요한은 아직 혐의를 벗지 못했다.

서장은 그저 인간인 요한을 취조하는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을 떠올린 것뿐이었다.

“인간과 달리 메타휴먼은 머리를 열어 볼 수 있어. 취조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그보다 편리할 수 없지.”

제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건…….”

“인권 침해라고 주장할 셈이오?”

서장이 피곤하다는 듯 제인의 말을 뭉갰다.

“…….”

“그래, 로보티안(Robotian)의 권리. 나도 잘 알지. 하지만 F―2020은 경찰 채용 당시 이미 두뇌 감식에 동의했소. 감식을 의뢰하는 것은 내 권한이고.”

‘프랑켄’이 아닌 ‘F―2020’.

F―2020에게는 묵비권 따위 의미가 없다. 메타휴먼은 뇌의 감식이 가능하니까.

그 순간, 태일은 호텔의 지하 폐기물 처리장에서 보았던 메타휴먼을 떠올렸다.

기괴한 몸뚱어리로 개조되어 있던 그 녀석.

슬픔도, 괴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수십 개의 다리로 쓰레기를 분리하던 녀석.

히트맨으로서 작전에 실패한 뒤, 지하에 처박혀 폐기물 처리 기계로 변해 버린 놈의 모습은 끔찍했다.

분명 사람과 닮았으되, 사람이 아닌 존재.

영혼[Soul]을 지녔으되, 인권은 없는 존재.

요한이 상기된 얼굴로 서장을 노려보았다.

“프랑켄은 LAPD의 일원이고… 제 부하입니다.”

프랑켄은 여느 메타휴먼과 달리 풍부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자발적으로 타인을 배려할 수도 있었다. 요한에게 있어 프랑켄은 가장 믿음직한 동료였다.

그러나 요한의 동료애 앞에서 서장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F―2020은 LAPD이고, 나의 부하이기도 하지.”

군견이나 경찰견에게도 계급이 부여된다. 그러나 개는 인권을 갖지 못한다. 제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군이나 경찰의 소유물일 뿐,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서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조사실의 문을 열었다.

“멀리 나가진 않겠소. 워낙 바쁜 날이라서.”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제인은 그런 서장과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조사실을 나섰고, 요한은 상기된 얼굴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결국 고개를 떨어뜨린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태일은 한동안 문 앞에 멈춰 선 채 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프랑켄… F―2020…….

태일은 한 개체를 표현하는 두 개의 표현을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영혼과 이성을 가졌다면, 그건 인간 아닌가?”

순간, 제인과 요한이 걸음을 멈춘 채 뒤돌아 태일을 바라보았고, 서장은 가만히 눈살을 찌푸렸다.

서장 역시 태일처럼 특유의 소울을 다루는 자였다.

그 역시 알 것이다. 메타휴먼이라는 존재에게 ‘영혼’이라고 부를만한 힘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구나 프랑켄과 만나 몇 마디라도 섞었다면, 그에게 ‘이성’이 있다는 사실 역시 모를 수 없었다.

“술집사장, 사무장에 이어… 이번에는 철학자인가?”

서장이 태일을 노려보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자네와 달리 직업이 하나뿐이지. 내 역할은 ‘법의 집행’이라네. 해석은 내 몫이 아니야.”

“태일 씨, 여기서 더 할 일은 없어요. 나가야 해요.”

제인 역시 고개를 내저으며 태일의 팔을 잡아끌었다.

결국 LAPD 서장은 ‘법’을 운운했고,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제인뿐이었다.

때마침 바깥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부하들이 돌아온 모양이군. 이만 나가 주겠나?”

경찰서 내부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잡혀온 마약쟁이들로 경찰서 전체가 들썩이고, 감옥은 물론, 조사를 위한 자리마저도 부족해서 태반의 용의자들은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그러나 경찰에 붙잡힌 현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녀석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절반 정도는 여전히 약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제정신을 차린 나머지 절반은 죄의식조차 없이 배짱을 부리는 중이었다.

“이봐, 내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

“서장 나오라고 그래, 서장!”

“회장님들이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난 정당하게 대가를 주고 샀다고!”

그리고…….

“어, 어?! 당신! 새로운 회장님… 맞지?!”

공교롭게도 그중에는 태일을 알아본 이도 있었다.

그러나 방금까지 약에 취해 해롱거리던 자의 말을 귀담아듣는 경찰은 없었다. 단 두 사람, 서장과 팀장을 제외하고.

태일은 그런 헛소리를 무시한 채 요한, 제인과 함께 경찰서를 나섰다.

그 와중에 뒤편에서 악에 받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똑똑히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회장님들께서 가만있지 않을 테니!!”

50구역에서 ‘회장님’이란 명칭으로 불리는 이들은 천중회와 카게구미의 마피아 보스들뿐이었다.

만약 서장이 정말 그들을 두려워했다면 애당초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껏 50구역의 허수아비에 불과하던 ‘LAPD’는 제3의 세력으로서 총을 꺼내 들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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