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5화 (16/220)

15화 드림 코퍼레이션 (4)

“이봐!!”

요한과 프랑켄이 경찰서를 나가는 태일과 앨리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쫓아 나왔다.

“잠깐 시간 좀 내줬으면 하는데.”

“바빠.”

“좀 봐달라고. 5분 정도면 돼.”

요한이 다소 사정하는 듯한 말투로 숙이고 들어왔다. 아마 제인 때문일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태일은 마지못해 그를 따라 경찰서 입구 옆 골목길로 들어갔다. 앨리스와 프랑켄 역시 함께였다.

요한은 벽에 등을 기댄 채 한숨을 내쉬더니,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나도 마음 같아서는 자네 편을 들고 싶었는데, 상황이 좀 그렇잖아. 당장 제인과 아는 사이라는 거 빼면 그쪽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말이야.”

무의미한 말이다.

태일은 담배를 입에 무는 그를 곁눈질하면서 역시 무의미한 질문을 던졌다.

“보아하니 신고자도 따로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알고 출동한 거지?”

드림 코퍼레이션은 자신들의 화물에 손을 댄 태일을 놓아 보냈다. 화물열차에 시선이 몰리는 것 자체를 막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녀석들이 직접 경찰에 신고했을 리는 없었다.

“화물칸 경보가 울렸어. 1번 칸에 설치된 대기 센서, 소음 센서…….”

말끝을 흐린 요한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눈을 가늘게 뜬 그의 표정에 언뜻 자괴감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1번 화물칸, 가축들이 실려 있던 칸이다. 육질 좋은 고기를 위해 설치된 센서에 소음과 먼지 따위가 검지되면서 그 많은 경찰 병력이 출동했던 것이다.

“고깃덩어리들을 지키려는 것치고는 좀 과하던데.”

“어제 테러 건도 있었으니까…….”

요한의 담배 연기가 바람을 타고 앨리스의 얼굴을 덮었다.

“콜록콜록.”

“담배는 아이에게 해롭습니다, 선배님.”

프랑켄이 주의를 주며 앨리스를 데리고 담배 연기가 향하는 반대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요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다시금 말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호송차에서처럼 제인에 대해 캐물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요한은 차분해 보였다. 태일에게 할 말을 고르는 것처럼 보인다. 태일은 뜸을 들이는 요한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3분 지났다.”

“손 떼.”

짧은 한마디.

“…….”

“제인이 하려는 일, 그리고 당신이 하려는 일. 전부 그만 두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아직 다 타지 않은 담배꽁초를 내던진 요한이 다짜고짜 태일의 멱살을 잡았다.

프랑켄은 그런 요한의 행동을 보고는 황급히 손바닥으로 앨리스의 눈을 가렸다.

“마피아든 드림이든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이 새끼야. 조용히 50구역에서 꺼져.”

요한의 거친 말투에서 숨길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 분노는 태일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이 맞다는 걸 알고 있군. 그렇지?”

“…….”

정곡을 찔린 요한이 태일의 멱살을 놓고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자기혐오에 휩싸인 요한은 제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깨물었다.

그 어디보다도 가난하고 척박한 50구역이다. 그런 곳에 ‘신약 재료’와 같이 귀한 물건이 운송되어 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기차의 목적지인 50구역 끝자락에서 생육을 구매할 수 있는 고객은 마피아의 고위 간부들뿐이다. 열차의 고객이 누구인지 너무나 명백한 상황에서 미르파우더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워낙 성의가 없어 일부러 속아 넘어가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의 허술한 거짓말. 그러나 LAPD는 눈을 감는 쪽을 선택했다.

“…정체불명의 약품 밀수 따위, 여기서 그리 별난 일이 아니야.”

요한이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분노에 이은 자기합리화.

요한은 뻔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척해야만 하는 현실에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울벌룬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했다.

“SB 때문에 50구역은 지옥이 될 거다.”

“여긴… 원래부터 지옥이었어.”

마피아에 의해 지배되는 범죄 도시.

살인, 납치, 폭력, 매춘이 일상인 환락가.

부패한 상부와 무기력한 일선 경찰.

요한에게는 그런 환경이 그저 끔찍할 뿐이었다.

“아니, 요한 경위. 당신은 몰라. 진짜 지옥이 어떤 모습인지.”

SB가 유통된 이후, 좀비로 변한 중독자들이 누비고 다니는 50구역에는 곳곳에 시체뿐이었다. 경찰이, 아니, 사람이 머무를 수 없는 진짜 지옥. 그리고… 그것은 기획된 지옥이다.

드림 코퍼레이션, 그들은 50구역을 지워 버리려 한다.

“가자, 앨리스.”

“네, 네!”

앨리스가 프랑켄의 손을 밀어내고 태일의 옆에 붙어 섰다.

태일은 골목길을 나가기 직전, 마지막으로 요한을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도움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방해나 하지 마.”

요한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상태였고, 프랑켄은 그런 요한과 태일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문득 프랑켄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빛났다.

* * *

경찰서를 벗어나 환락가까지 찾아가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환락가의 잔여물들을 쫓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고약한 냄새와 토사물, 비틀거리는 취객과 흐느적거리는 여자들, 호시탐탐 주변을 살피는 소매치기 소년들까지… 그 모든 게 환락가로 안내하는 이정표였다.

환락가는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의 극치였지만, 정작 환락가의 흔적들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삼촌, 쉬다 갈래? 옆에 꼬맹이보다는 내가 나을걸?”

두껍게 화장을 덧칠한 여자들이 몸에 딱 달라붙은 옷을 입은 채 담배를 뻑뻑 피우다 말고 태일과 앨리스를 향해 추파를 던졌다.

어린 여자애를 데리고 환락가에 들어가는 태일의 모습이 꽤나 흥미롭게 보였는지, 저희들끼리 키득거렸다.

앨리스와 태일을 보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역겨운 관계를 떠올리는 여자들. 그녀들은 그런 관계가 일상인 삶을 살아왔기에 그 밖의 관계를 상상하지 못했다.

앨리스는 그런 여자들의 음탕한 발언들이 새롭지 않은지 애써 의연한 척했지만, 귀가 빨개진 채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냥 빨리 지나가요. 상대할 가치도 없어요.”

“…그래.”

하지만 태일은 깔깔거리는 여자들의 뒤편에 걸린 전구를 향해 슬쩍 손가락을 튕겼다.

파캉!

“꺄악! 뭐, 뭐야, 썅!”

“이런 씨!!”

한 줄기 번개에 직격당한 전구가 폭파하며 자그마한 불꽃놀이가 연출되고, 여자들은 욕설과 함께 호들갑을 떨어 댔다.

쪽방촌 골목 사이사이에는 공허한 눈을 한 채 주저앉은 이들이 보였다. 경찰서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건만, 정신을 반쯤 놓고 입을 헤벌린 이들은 아무런 제지조차 받지 않은 채 널브러져 있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지 5분도 안 된 거 같은데… 쯧.”

사창가까지야 그렇다 쳐도 저 꼴은 좀 심하지 않은가.

“경찰 단속 때에는 패밀리들이 미리 정리해요.”

“패밀리라…….”

마피아와 유착된 경찰.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요한을 비롯한 경찰들이 태일을 미친놈 보듯 하는 것 역시 어찌 보면 당연했다.

LAPD는 당장 근처에 널린 부랑자들조차 단속할 여력이나 의지가 없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정체 모를 남자가 드림 코퍼레이션이라는 대기업을 들먹이며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LAPD로서는 묻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묻어야만 했다. 심지어 드림 코퍼레이션이 신약을 운운하며 대놓고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눈을 감고 뒷짐을 져야 했다.

물론 그렇게 얽히고설킨 사정들이 LAPD의 무책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제부터 환락가예요.”

앨리스가 낡아 빠진 전화 부스 옆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알아.”

굳이 앨리스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붉은 언덕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려 주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한 저녁 시간대, 환락가의 영업장들은 슬슬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마피아들도 눈앞의 화려한 사업장을 통해 돈을 번다. 50구역 공장 지역에서 찾아오는 이들의 푼돈에서부터 은밀한 밤 문화를 즐기기 위해 찾아든 상속자들의 헤픈 돈에 이르기까지, 마피아들의 배를 불려 줄 호구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태일은 한때 그 모든 것을 부수고자 했고, 실제로 성공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은 방법이었는지, 이제 와서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태일은 비록 유흥가를 부수었지만, 사람들의 탐욕마저 없애지는 못했다. 관리자의 목숨을 거두었지만, 동료들의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그런 고민 자체가 무의미했다.

무엇보다 SB가 그려 낼 지옥도를 막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생각을 정리한 뒤, 전화 부스를 지나쳐 환락가에 발을 들이던 태일이 갑자기 멈춰 섰다.

“…아저씨?”

태일은 앨리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레이에게 받은 검은 카드를 꺼내 든다.

이제야 비로소 카드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긴 모르는 게 당연했다. 태일의 세계에서는 리볼버만큼이나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던 물건이니까.

레이가 준 것은 다름 아닌 전화카드였다.

“…여기 같아요.”

앨리스는 부스 안에 들어와 유심히 전화기를 살피는 태일에게 카드 투입구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20여 년 만에 다뤄 보는 공중전화이기에 태일은 사용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다.

수화기를 들고 투입구에 카드를 집어넣자, 번호가 자동으로 입력되더니 곧이어 신호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

하지만 상대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태일은 그런 상대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나에게 그 물건을 보여 주었지?”

곧이어 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어떻게 행동할지 궁금했거든요. 다행히 당신은 도망치지 않았죠.]

레이의 목소리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뭐야?”

태일은 핵심을 피해 가는 레이의 말에 짜증이 치미는 것을 느끼며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마피아들의 중재? 아니면 드림 쪽에 엿이라도 먹이고 싶었던 건가?”

얼마간 침묵하던 레이가 대답했다.

[그 두 가지는 결국 같은 이야기입니다.]

“…무슨 뜻이지?”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50구역을 끝장내려는 쪽과 지키려는 쪽이 있고, 저는 지키려는 쪽일 뿐이죠.]

“당신이?”

순간, 레이와 얽혔다는 사실만으로 제인을 걱정하던 요한의 모습이 떠올랐다.

제인은 레이가 암흑가나 히트맨 등 위험한 이들과 얽혀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나 위험한 놈이 자신은 50구역을 지키는 쪽이라고 말한다. 그건 50구역 LAPD조차 감히 하지 못할 말이었다.

그러나 레이는 태일의 비아냥거림에 대꾸하는 대신 준비했다는 듯 기계적으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본 것은 주인을 잃은 물건입니다. 화물이 출발한 직후, 물건을 인수받아야 할 당사자가 목숨을 잃었죠.]

“…….”

한마디로 샬롯이 주인이라는 의미였다.

[드림 코퍼레이션은 이 기회에 새로운 고객을 찾고 있습니다. 전 그 거래를 막고 싶고, 아마 당신 역시 동의하리라 믿습니다.]

태일은 말없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적어도 이 순간, 레이와 자신의 목표는 같다. 그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당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친구가 근처에 있습니다.]

“…뭐?”

탕!

“꺄아아악!!”

레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화 부스 바깥쪽에서 사격음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반대쪽 골목에서 누군가의 시체가 지붕 위에서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아, 아저씨……!”

놀란 앨리스가 태일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담담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드림 측 암살자를 제거한 모양이군요. 그 친구, 꽤 실력이 좋거든요.]

태일은 레이의 빤히 들여다보이는 수작에 조소를 흘렸다.

레지스탕스 생활을 할 적에도, 혁명군 대장이 된 뒤에도 수많은 이들이 태일의 암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태일은 여전히 살아 있다.

태일은 경찰서를 나서는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뒤를 쫓는 이가 둘이나 붙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 둘 모두 태일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았기에 살려 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방금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저격당했다.

“당신 도움 따위 필요 없어.”

[그 친구는 제 부하가 아닙니다.]

시답지 않은 변명에 태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이어진 레이의 말에 태일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레지스탕스의 대원이죠.]

잠시 뒤, 태일이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카드 투입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제 역할을 마친 전화 카드가 공중전화 자체를 망가뜨리며 내부에서 타 버린 것이다.

앨리스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공중전화 앞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태일을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한편 태일은 레이에게 들은 말을 곱씹고 있었다.

“친구의 말을 전하겠습니다.”

레지스탕스의 전언.

‘함부로 날뛰지 마라’.

레이는 레지스탕스의 메시지를 전한 뒤, 짧게 마지막 한마디를 남겼다.

“행운을 빌죠.”

레지스탕스 대원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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