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드림 코퍼레이션 (3)
태일과 앨리스가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채 호송 차량까지 이동하는 그 짧은 사이, 요한은 마치 똥마려운 개처럼 태일을 힐끔거렸다.
차마 직접 태일에게 다가와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제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 몸이 달아 있던 것이다.
결국 요한은 서까지 호송하는 차량에 기어코 태일과 함께 올랐다. 뜬금없이 용의자들과 동석한 요한을 본 운전석의 경찰이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어리둥절한 음성으로 물었다.
태일은 운전석에 앉은 경찰의 붉은 눈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틀림없이… 메타휴먼이었다.
“…경위님?”
“뭐, 왜? 출발해.”
“뒷좌석은 용의자 좌석입니다만.”
“알았으니 출발하라고, 인마!”
“…….”
지금껏 만난 메타휴먼들과 달리 꽤 풍부한 감정으로 의아함을 표현하던 경찰이 찜찜한 얼굴로 액셀을 밟았다.
한편, 그렇게 차가 출발하자마자 요한은 마음 놓고 질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제인은 어디에 있어? 왜 당신 혼자 나타난 거지?”
“혼자… 아닌데요.”
사이에 낀 앨리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지만, 요한은 못 들은 척 질문을 계속했다.
“그리고 테러를 당했다는 건 무슨 소리야? 설마 그 양반이 제인을 표적으로 의뢰라도 했다는 거야?”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얼굴이 벌게진 요한을 본 태일은 한숨을 쉰 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일단 진정 좀 하지.”
“동감입니다, 경위님.”
한창 운전하던 운전석 메타휴먼도 한마디를 보탠다.
“입 닥쳐, 프랑켄!”
메타휴먼에게는 ‘프랑켄’이라는 이름까지 있었다.
태일이 차근차근 지금껏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하자 요한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해 갔다.
모든 사실들을 털어놓아도 괜찮을지 고민하긴 했지만, 적어도 제인을 생각하는 요한의 마음만큼은 진심으로 보였기에 최대한 솔직하게 벌어진 일들을 알려 주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났을 때, 요한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죄책감이었다.
“나, 난 몰랐어. 설마 그 양반이 그렇게까지 할 줄은…….”
프랑켄 역시 한마디를 보탰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거 같군요. 딸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다니.”
“너무 죄책감 느낄 필요는 없어. 결과적으로 당신의 고자질 덕분에 당신 약혼녀는 안전한 곳에 감금되어 있으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그 와중에 운전석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태일이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실례일 수 있지만… 궁금해서 묻는 건데 말이야. 운전석에 앉은 경관, 메타휴먼 아닌가?”
그러나 운전석의 프랑켄은 순순히 답변해 주었다.
“아, ‘출신’은 그렇죠.”
“아, 출신이라, 출신…….”
어찌 보면 황당한 대답에 태일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특히 메타휴먼에 관한 이쪽 세계의 상식에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앨리스 역시 신기했는지 눈동자를 굴리며 물었다.
“아저씨가 바로 그 말로만 들었던 버그(Bug)? 아, 죄송해요, 아저씨. 달리 다른 표현을 잘 몰라서.”
‘버그’라……. 일단 벌레라는 뜻이니, 매우 무례한 표현일 터였다.
그러나 정작 프랑켄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빙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괜찮아, 꼬마 아가씨. 나와 같은 이들은 ‘로보티안(Robotian)’이라고 한단다.”
로봇 인간.
그러나 프랑켄은 전혀 로봇처럼 보이지 않았다.
한편, 요한은 아예 고개를 푹 숙인 채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빌어먹을, 난 머저리야. 제인이 그런 상황에 놓인 줄도 모르고……!”
거의 절망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솔직히 말해 준 태일이 도리어 미안해질 정도였다.
“일단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태일의 위로에 고개를 든 요한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으르렁거렸다.
“안전? 레이 녀석과 얽혔는데 안전할 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요한은 변호사 레이가 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레이가 그만큼 위험인물이라는 뜻일 터였다.
“레이… 그 사람이 그렇게 유명한가?”
요한에게는 레이 덕분에 화물칸에서 미르파우더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그저 레이가 제인에게 한 제안의 내용 정도만 언급했을 뿐이다.
끼이익.
태일이 레이에 대해 좀 더 물어보려는 찰나, 차가 멈춰 섰다.
여전히 웃는 낯의 프랑켄이 밝은 목소리로 도착을 알렸다.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선배.”
약 20년 만에 보는 LAPD 건물은 예전 태일의 기억 속 모습과 유사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낡아 있고, 마룻바닥은 불안하게 삐걱거렸다.
음식 잔반 냄새가 담배 냄새와 뒤섞인 와중에 경관들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새겨져 있었다.
태일의 취조는 넋이 반쯤 나간 요한을 대신하여 신참으로 보이는 젊은 경찰이 맡았다.
그리고 태일은 5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눈앞의 신참으로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르파우더? 그게 뭔데?”
태일이 열차에서 발견한 물건에 대해 털어놓았건만, 기껏 내뱉은 첫마디가 그 모양이었다.
“소울벌룬을 만드는 재료. 설마… 모르는 건가?”
“…소울벌룬은 또 뭔데? 쉽게 설명하라고, 쉽게.”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태일이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안 되겠어. 당신 같은 신참이 감당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야. 상급자 데려와.”
“아, 아저씨…….”
깜작 놀란 앨리스가 태일의 소매를 잡아당겼고, 순간, 경찰서 안 모든 경찰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들은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하는 시선으로 태일을 보고 있었다.
태일은 답답함을 느끼며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감이 안 오나? 이건 50구역을 뒤집어엎을 수 있을 정도의 큰 건이다.”
태일의 노골적인 무시에 얼굴이 벌게진 경찰이 화를 내려는 순간, 그의 자리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너 이 새끼, 잠시 기다리고 있어. 잡범 주제에 날 무시해?”
그는 이를 뿌득, 갈면서 태일을 노려보더니, 수화기를 들었다.
“네, LAPD 이순철 경장입니다. 네, 네. 말씀하십쇼.”
그리고 잠시 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순순히 답하던 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치 상대방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 듯 허리까지 굽히며 깍듯이 전화를 받았다.
“아, 네넵! 네, 알겠습니다! 네.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이순철 경장은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태일은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이, 괜찮아?”
전화를 받는 그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낀 게 태일뿐만이 아닌 듯, 옆에서 줄담배를 피우고 있던 경감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 경장, 왜 그래? 누군데 그래?”
“그, 그게… 청장님 연락이었습니다.”
“…뭐?”
경감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여전히 파랗게 질린 후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서장님은 서장실에 계시잖아. 뭔 헛소리야?”
“아뇨, 서장님이 아니라 청장님 연락이었단 말입니다!”
“이 새끼가… 야, 인마! 청장님이 무슨 옆집 아저씨라도 돼? 그 높으신 양반이 너 같은 새우한테 직통전화를 때린다는 게 말이 되냐? 경찰씩이나 돼서 보이스 피싱이나 당하고 말이야!”
“그, 그게 아니라… 엇! 왔다!”
한창 면박을 당하던 이순철 경장이 깜짝 놀라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뭐? 이번엔 또 뭔데?”
거듭 정신을 못 차리는 이순철 경장의 모습에 짜증이 치민 듯 면박을 주려던 경감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다 곧 화면에 떠오른 무언가를 보더니, 손에 쥐고 있던 담배꽁초를 떨어뜨렸다.
“세, 세상에…….”
이어 경감과 이순철 경장, 두 사람의 시선이 태일에게 집중되었다.
“대체 당신, 뭔 짓을 한 거야?”
태일은 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뒤, 경감을 비롯한 모든 경찰들의 시선이 태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순철 경장은 이미 옛적에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뒤였고, 그 자리에는 경감이 앉아 있었다.
“당장 압수수색을 벌여서 미르파우더를 압수해야 해. 그게 50구역에 풀리면 지옥이 펼쳐질 거요.”
“그래, 당신이 찾은 그 가루는 미르파우더가 맞아. 우리도 방금 중앙청으로부터 열차 안의 화물 목록을 받았거든.”
“그럼 대체 뭘 망설이는 거지?”
태일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경감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이 양반 봐라? 우리가 무슨 초법 기관이라도 되는 줄 알아? 우리는 아무거나 함부로 압수하고 그러는 집단이 아니야! 그건 당신이 속했던 마피아나 그렇겠지!”
태일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이 되어 경감을 바라보았다.
“뭐?”
“모를 줄 알아? 당신이랑 같이 있는 이 꼬맹이, 얼마 전까지 샬롯 가에 속해 있던 녀석이잖아. 이름은 ‘앨리스’라지?”
겁에 질린 앨리스가 깜짝 놀라 태일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태일은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은 채 시선을 돌려 요한을 바라보았지만, 요한은 슬슬 태일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가 비호하기에는 일이 너무 커졌다는 뜻일 것이다.
경감은 황당해서 뭐라 대꾸조차 못하는 태일의 반응이 긍정이라 판단한 것인지,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마피아랑 연이 닿은 사람답게 막가파인 거 같은데, 잘 들어. 우리들은 암흑가에서 너희들끼리 결투를 벌이든 도박을 하든 웬만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 하지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는 게 있는 거야!”
“…….”
“미르파우더라는 물건, 파운드당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의 값어치라지? 감히 그런 물건을 건드려?!”
미르파우더는 확실히 비싼 물건이었다.
1파운드만 있으면 수백 회에 걸쳐 사용할 수 있는 양의 소울벌룬을 제조할 수 있는데, 열차 화물칸에 실린 양은 일개 마피아 집단을 사실상 좀비 군대로 만들 수 있는 정도였다.
“그 물건은 50구역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모르겠나?”
“헛소리. 그 물건은 최근 드림 코퍼레이션에서 제조 중인 신약의 재료야!”
“…뭐?”
태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헛소리에 다시금 할 말을 잃었다.
“당신이 온 데 구멍을 뚫어 버리는 바람에 꽤 많은 양이 소실되었다더군. 그래도 사측에서는 금방 수습했으니 굳이 공론화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이야.”
선처해 주겠다는 자비로운 제안처럼 위장했지만, 이건 명백히 소울벌룬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였다.
위험천만한 물건이 눈앞에서 빤히 유통되고 있건만, 경찰은 그걸 두 눈 똑바로 뜬 채 도시로 들여보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재료를 들여오는 주범은 대륙급 규모의 대기업이었다.
정체조차 알 수 없는 태일과 신분이 명확하고 명분까지 확실한 대기업. 둘 중 저울추가 어디로 기울지는 빤한 노릇이었다.
“당신,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드림 코퍼레이션에서 당신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건이 커지는 건 막았지만, 청장님께서도 이번 사건에 주목하고 계시단 말이야!”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뒤,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앨리스에게 말했다.
“가자.”
경감은 그런 태일의 태도에 당황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뭐야, 당신?”
“이번 사건은 높으신 분들 덕분에 잘 수습되었으니, 앞으로는 조용히 지내라… 뭐, 그런 말처럼 들렸는데. 아닌가?”
경감이 얼굴을 구기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맞긴 한데…….”
“충분히 알아들었어. 더는 볼일이 없는 거 같으니, 우린 이만 나가보지.”
앨리스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태일의 옆에 붙어 섰다.
경감은 그런 태일을 노려보며 경고했다.
“…조용히 지내는 게 좋아. 위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실내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경찰들이 경계 어린 시선으로 태일을 쏘아보고 있었다. 다만, 요한과 프랑켄 정도만 걱정 섞인 시선으로 태일을 바라볼 뿐이었다.
“충고 고맙군. 새겨듣지.”
태일은 그렇게 한마디를 남긴 뒤, 앨리스와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어차피 태일은 처음부터 LAPD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태일은 제인이 선택한 세 번째 제안대로 제3의 세력과 접촉해 이번 상황을 막아 낼 생각이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