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드림 코퍼레이션 (2)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태일은 순식간에 부서져 버린 CCTV를 보며 얼마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 그… 저도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데…….”
앨리스는 멍한 표정이 되어 버린 태일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고르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우 역시 앨리스가 보인 퍼포먼스에 어지간히 놀란 듯 입을 헤벌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가능했지?”
“호텔 화장실에서 처음 알았어요.”
태일은 팔짱을 낀 채 앨리스의 손에 여전히 남아 있는 스파크를 바라보았다.
“나, 나, 나도… 나도 가르쳐 줘!”
한편, 앨리스의 힘에 눈이 뒤집힌 지우는 잔뜩 흥분해서 호들갑을 떨어 댔고, 그 바람에 이쪽의 기척을 알아차린 경비들이 가만히 머신 건을 들어 올렸다.
이어 놈들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열차에 인간 및 메타휴먼의 탑승은 허가되지 않는다. 거동 수상자는 지금 즉시 문을 열고 나와라.”
지우는 황급히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지만, 태일은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도박과도 같은 꼬마의 힘에 기댈 생각은 없었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해치우고 다시 얘기하자. 내가 쓰는 기술들 잘 봐 둬.”
파츠츠츠츠―
곧이어 태일의 손에서 야구공만 한 크기의 소형 리펄서 볼이 만들어졌다.
마치 수정 구슬처럼 보이는 리펄서 볼 안에서는 태일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된 스파크들이 어지럽게 날뛰고 있었다.
인형극단에서 만든 것에 비하면 훨씬 작은 형태이고 상대적으로 위력도 약하지만, 전력 자체를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소울을 다루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였다.
“예쁘다…….”
앨리스는 리펄서 볼의 모습에 눈을 반짝였지만, 태일은 쓰게 웃었다.
“글쎄, 그 표현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데.”
리펄서 볼의 살상력을 감안한다면, ‘예쁘다’는 수식어는 어딘가 소름 끼치게 들렸다.
한편, 문밖에서는 경비병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두 번째로 경고를 하는 중이었다.
“재차 경고한다. 거수자는 지금 즉시 모습을 드러내라. 만약 응하지 않을 경우, 발포하겠다.”
놈들의 팔에 장착된 머신 건은 마피아나 히트맨이 사용하던 것과 달리 군용(軍用)이었고, 철저하게 파괴를 목적으로 개발된 무기이기에 범위 또한 넓었다. 따라서 이쪽 칸을 향해 발포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다른 화물에도 총알이 박힐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놈들의 경고는 블러핑이거나 6번 화물칸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벌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잘 봐 둬.”
리펄서 볼을 완성한 태일이 손가락을 튕겨 날려 보냈다.
태일의 손을 떠난 리펄서 볼은 마치 영혼이라도 있는 듯 빙글빙글 회전하며 문틈을 통과해 바깥 복도로 나아갔다.
곧이어 리펄서 볼을 포착한 경비병들은 저희 나름의 분석을 시작했다.
“미확인 비행 물체 출현. 생명체는 아닌 것으로 추정. 움직임 예측 불가. 녹화 리포트 발송.”
“위험성 측정 불가. 성질 판별 불가. 파괴 요청.”
두 기의 메타휴먼은 결국 판단을 내린 듯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리펄서 볼을 향해 머신 건을 겨누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 뒤였다.
속도를 높인 리펄서 볼이 우측 경비병의 머신 건 총구 안으로 파고 들어가 버렸다.
파직!
“비정상 온도 변화 포착. 기체 파손… 20%… 30%…….”
놈들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감정이 없다.
콰쾅!!
잠시 뒤, 리펄서 볼이 폭파하며 경비의 팔 부위에 장착된 머신 건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머신 건과 함께 팔 한 짝을 잃고, 옆구리까지 부서져 버린 경비가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이벤트 영상 자동 전송 완료.”
곧이어 놈의 눈동자에서 형형히 빛나던 붉은 불빛이 사라졌다. 그러나 놈이 움직임을 멈추기 직전 마지막 한마디를 들은 태일의 얼굴은 차갑게 굳었다.
어차피 은밀히 잠입해 그 누구의 눈에 띄지 않고 화물을 확인한 뒤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기에는 애당초 태일이 가진 장비도, 사전 정보도 너무 부족했으니까.
“서둘러야겠다.”
그러나 태일은 급한 와중에도 앨리스에게 또 한마디 덧붙였다.
“이번에도 잘 봐 둬. 다른 방식을 보여 줄 테니까.”
태일의 손에서 다시금 전류가 뻗어 나온다.
이번에는 파문이 인 물속 물고기들처럼 흩어진 전류들이 여러 방향으로 쏘아져 벽을 타고 퍼져 나갔다.
“발포 허가.”
철컥.
남은 경비원이 짧게 복창하며 5번 화물칸을 향해 머신 건을 겨누고 장전했다.
시간을 끌 경우, 자신마저 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벽을 타고 사방에서 접근해 온 전류가 경비원의 온몸으로 파고들었다.
“기체 파손… 60%… 80… 회복 불가…….”
곧이어 놈의 몸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벤트 영상… 전송 완료.”
그 말을 끝으로 놈의 머리가 폭파했고, 남은 몸뚱어리는 힘없이 앞으로 쓰러져 버렸다.
순식간에 메타휴먼 두 기를 정리한 태일이 앨리스를 보며 말했다.
“할 수 있겠어?”
앨리스는 그저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 간신히 한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뭐를요?”
한편, 다시 입이 열린 지우는 태일에게 매달려 졸라 대기 시작했다.
“나, 나도 가르쳐 달라구요!”
그러나 태일은 그 이상 별말 없이 곧바로 6번 화물칸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정작 6번 화물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다른 화물칸과 큰 차이는 없었다.
일정한 크기의 상자들이 규칙적으로 쌓여 있고, 드림 코퍼레이션 로고가 새겨진 것까지도 똑같았다.
태일은 그대로 손가락을 들어 올려 상자 하나에 바람구멍을 냈다.
아무리 강하게 설계된 상자라 한들 강화 철판도 뚫어 버릴 정도의 고압 전류를 버텨 내지는 못했다.
푸스스스…….
구멍을 통해 푸른 가루 같은 것이 모래처럼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뭐죠?”
그러나 태일은 말없이 기계적으로 다른 상자에도 연달아 구멍을 뚫어 댈 뿐이었다.
6번 화물칸에 있는 수백 개의 상자. 그 안에는 모두 같은 물건이 실려 있었다.
“미르파우더(MIR Powder).”
태일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해저 8,000미터 이하 지층에서 채취할 수 있는 가루들이지.”
“헤에, 그럼 많이 귀한 거겠네요.”
가루들을 바라보는 지우의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귀하지. 무려 소울벌룬의 재료이니까.”
순간, 가루를 쥔 지우는 황급히 손을 털어 버렸고, 앨리스 역시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망할…….”
태일은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SB의 핵심 재료가 대량으로 50구역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레이는 태일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열차가 멈춰 섰다.
열차가 멈췄음에도 사방에서 어지러운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차창을 통해 이쪽을 촬영하고 있는 드론의 프로펠러가 슬쩍 보인다.
경비들을 통해 상황을 전달받은 자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바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무장을 해제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는 멘트.
적어도 마피아가 저런 표현을 쓸 리는 없으니, 열차를 포위한 이들의 신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50구역의 LAPD가 출동한 것이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설마 경찰이 출동할 줄이야…….”
밀수품을 유통하는 주제에 당당하게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에 태일은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당초 대기업이 SB에 손을 댄 시점부터 이미 이 세계는 글러먹었을지도 모른다.
태일은 한숨을 내쉬며 앨리스와 지우를 쳐다보았다.
“일단 열차에서 나갈 거야. 경찰들과 이야기해 볼 테니까, 너무 소란 피우지 마라.”
당장 LAPD과 싸울 필요까지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일단 LAPD 측에 SB 운반 건에 대해 알리고 그들의 대처 방식을 확인한 뒤에 탈출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당장 SB가 유통될 경우, 직격탄을 맞을 자들은 다름 아닌 LAPD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작 태일의 계획을 들은 지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 경찰들한테 잡히면 안 돼요. 이번에 잡히면 영락없이 시설에 넘겨질 거라구요.”
태일이 눈살을 찌푸리자, 지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전 제가 알아서 탈출할게요.”
앨리스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지우의 말에 그다지 놀라는 기색은 없었다.
“너, 진심이냐?”
“이 짓도 나름 익숙하거든요. 형이 주의만 제대로 끌어 준다면 더 쉬울 테니까, 잘 부탁해요.”
너무나 의연한 지우의 태도에 태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편, 앨리스는 그런 지우를 격려해 주었다.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당연하지. 나 못 믿어?”
“…응.”
앨리스와 지우의 대화를 듣다 보니, 다시 한번 상식에 균열이 가는 것 같았다.
10대의 어린 소년소녀가 경찰에 포위되어 나누는 대화치고는 너무나 평온해서 위화감마저 느껴진 것이다.
“그럼 전 50구역 중앙역에서 기다릴게요.”
지우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낮추고는 그대로 화물 맨 앞 칸으로 내달렸다. 빠른 속도로 녀석의 뒷모습이 사라져 간다.
앨리스는 황당해하는 태일을 보며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지우는 이런 상황에 꽤 익숙하거든요. 화물차에서 몇 번인가 가축들을 훔쳐 온 적도 있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네.”
어째서인지 화물열차에 대해 잘 아는 눈치더니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10대 꼬맹이들이 경찰을 보고 숨바꼭질 게임이라도 하는 것마냥 움직이는 걸까?
아니, 이쯤 되면 아예 경찰의 추격을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와중에 바깥에서 들려오는 스피커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셋을 센다! 당장 무장을 해제하고 투항하지 않으면…….”
“아저씨, 저희도 빨리 나가요.”
“…그래.”
태일은 곧 화물차 문을 열고는 양손을 들어 올린 채 밖으로 나갔다.
애당초 무기를 들고 탑승하지도 않았기에 딱히 무장해제랄 것도 없었다.
곧이어 드론들이 태일과 앨리스의 주변을 둘러쌌고, 경찰들이 다가왔다.
다가오는 두 명의 경찰 중 하나는 익숙한 얼굴이다.
상대편 역시 태일의 얼굴을 알아보았는지, 손가락질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다, 당신!”
“음? 요한 경위, 자네가 아는 사람이야?”
제인의 약혼자이자 제인의 아버지에게 고자질해서 상황을 꼬이게 만든 남자, 요한이 열차 포위 병력을 지휘하고 있던 것이다.
“예, 반장님. 그렇게 잘 아는 사이는 아니고, 그냥 우연히 알게 된…….”
“테러를 저지른 놈일 가능성은?”
그제야 태일은 어째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했던가. 바로 몇 시간 전에 벌어진 열차 테러 사건에 이어 또다시 화물열차 침입 건이 보고되자 이렇게 경찰들이 몰려온 것이었다.
그러나 요한은 테러의 맥락을 대강 짐작했고, 태일이 범인일 리 없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아닐 겁니다. 이 사람은…….”
그러나 정작 요한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하긴 요한 역시 태일의 신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한 노릇이었다.
태일은 슬며시 손을 내리며 반장의 물음에 대신 대답했다.
“테러를 당한 건 이쪽이야. 철도 회사 측에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 줄 거요.”
“…여하튼 테러범일 확률은 없다는 거지?”
“네, 반장님.”
요한의 대답을 들은 반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태일과 앨리스를 번갈아 보더니, 김이 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쯧, 대체 얼마나 간 큰 인간이 드림 사 화물을 건드렸나 했더니.”
반장은 곧 구식 무전기를 들고는 피로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상황 종료. 용의자 확보했다. 현 시간부로 철수한다.”
곧이어 드론을 비롯한 경찰 병력들이 포위를 풀고 몰려들었다.
무전을 마친 반장이 태일을 보며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일단 서로 가서 왜 화물차에 숨어들었는지 설명해 줘야겠어. 감히 드림 재산에 손을 대? 잘못 걸렸어, 당신들.”
그 와중에 경찰들의 등 뒤로 시선을 피해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는 꼬마, 지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