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12화 (13/220)

12화 드림 코퍼레이션 (1)

“또 메타휴먼인가…….”

운전사마저 붉은 눈동자를 가진 것을 본 태일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운전사는 기계적으로 카드를 확인한 뒤에 리무진의 시동을 걸었다.

메타휴먼들에게 느끼는 본능적 혐오감은 인간과 비슷한 존재를 볼 때 느끼는 불쾌한 골짜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보다는 야만인과 마주한 문명인이 느낄 법한 이질감 혹은 적대감에 가까웠다.

메타휴먼을 사용하는 쪽이 야만인인지, 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일 쪽이 야만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왜요? 편하잖아요?”

지우는 리무진의 쿠션감을 느끼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태일을 바라보았다.

“편하다고?”

“메타휴먼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끝내주게 해내잖아요. 저도 메타휴먼 한 대만 생기면 배당금이나 받아먹으면서 편하게 지낼 거라구요.”

“배당금이라…….”

메타휴먼이라는 존재 자체를 이쪽 세계에 넘어와 처음 접하는 태일이지만, ‘배당금’이라는 표현을 듣는 순간 메타휴먼이 어떻게 역할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메타휴먼은 인간을 대신해 일을 한다. 그렇다면 그 노동의 대가를 가져가는 누군가가 있을 터였다. ‘임금’이 아닌 ‘배당금’의 형식으로 말이다.

지우를 비롯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메타휴먼은 푹신함을 선물하는 쿠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면, 앨리스는 처음 상자에서 나왔을 때부터 지금껏 메타휴먼들로부터 의도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저도 메타휴먼이 싫어요.”

당연히 예외는 있는 법이다.

앨리스는 메타휴먼을 어째서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태일 역시 굳이 묻지 않았다.

한편, 리무진 기사는 태일 일행이 나누는 대화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운전해 허름한 역 앞에 정차했다.

“도착했습니다.”

“고맙군.”

지우는 메타휴먼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태일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앨리스 역시 붉은 운전기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차에서 내렸다.

한편, 차에서 세 사람이 내리는 것을 확인한 기사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행운을 빕니다.”

레이의 명령에 의한 것인지, 그렇게 말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본인의 마음에서 우러난 인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역 안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열차표를 예매할 수 있는 키오스크와 역내 매점 가판대를 지키는 메타휴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전광판에는 출발 예정 열차의 리스트가 속속 올라왔지만, 대부분의 열차 옆에는 ‘운행 중지’라는 글자들이 떠올라 있었다. 다만, 약 5분 뒤에 출발하는 열차 한 대가 ‘출발 예정’이었다.

열차가 서는 플랫폼으로 들어갔을 때에도 역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기계를 이용해 열차에 화물을 싣는 이들은 전부 메타휴먼들이다.

화물 열차답게 열차는 객실 대신 화물칸만으로 이어져 있고, 칸마다 대륙을 오가는 각종 화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앨리스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열차를 바라보았다.

“이거… 어디로 어떻게 타야 하죠?”

화물칸들에는 사람이 타고 내릴 수 있는 출입문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가장 뒤쪽에서 기계를 이용해 일괄적으로 화물을 채워 넣고 있지만, 한눈에 보아도 태일 일행을 위해 준비된 출입문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붕에라도 올라야 하나?”

“예에?!”

태일이 슬쩍 열차 천장 부분을 바라보자, 앨리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도 참 애다. 당연히 농담이겠지. 형이 설마 정말 지붕에 올라탈 생각이겠어?”

지우는 당황하는 앨리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열차 앞쪽을 가리켰다.

“맨 앞쪽 칸에 비상구가 있어. 거기로 들어가면 된다구. 그죠, 형?”

“…그래.”

지우는 자신만만하게 앞장섰고, 앨리스는 내심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굳이 지금에 와서 농담이 아니었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우의 말처럼 열차의 맨 앞쪽 칸에는 사람이 타고 내릴 수 있을 만한 작은 출입구가 있었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꾸익, 꾸익.

꼬꼬꼬!

앞쪽 칸은 생물들을 싣는 칸이었다.

돼지나 닭 따위의 동물들은 제 몸뚱어리 크기의 통속에 갇혀 사료만 먹을 수 있도록 목만 내민 상태였다.

하지만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장치, 분뇨를 처리하는 장치에 이르기까지 동물의 육질 상태를 위한 갖가지 조치가 되어 있어 화물칸 안의 공기는 마치 고지대 초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올 때 탄 여객 일반실보다 훨씬 공기의 질이 좋았다.

“나름 특실이구만.”

“그야 비싼 녀석들이니까요. 돼지고기가 그렇게나 맛있다던데…….”

지우가 침을 삼키며 돼지를 바라보았다.

“훔칠 생각일랑 하지 마라.”

값싼 대체육이 생육을 대체하면서 농장 대부분이 문을 닫아 버렸지만, 희소해진 가축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했다.

태일이 살던 세계에서도 가축 한 마리, 한 마리의 몸값은 이미 같은 무게의 금값에 버금갔을 정도이니, 여기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여하튼 화물칸에 실린 고기를 섭취할 놈들은 분명 돈을 물처럼 쓰는 거물급일 게 분명했고, 굳이 그들의 재산을 건드려 주의를 끌 필요는 없었다.

“다른 칸으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앨리스는 다른 의미에서 이 공간이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고개를 숙인 채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래.”

태일은 다른 화물칸으로 이동하면서 닭과 눈싸움을 벌이는 지우의 뒷목을 잡아끌었다.

“빨리 따라와.”

바로 그즈음, 열차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물들로 들어찬 첫 번째 화물칸을 지나치자 이후에는 일정한 크기의 화물 상자만이 칸마다 적재되어 있었다.

태일은 잘 쌓아 올린 화물들 사이를 지나쳐 가면서 적어도 푸른색 로고 하나만큼은 확실히 기억할 수 있었다.

‘드림 코퍼레이션’.

크고 작은 상자들마다 그 회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첫 칸, 동물들의 몸을 가두고 있던 상자에도 드림 코퍼레이션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드림이 이렇게 큰 회사였던가?”

태일이 있던 세계에서 드림 코퍼레이션은 전신주를 설치하고 관리하는 전력 회사였다.

혁명군이 50구역을 장악한 직후, 드림 측이 50구역 전기를 끊은 일이 있기에 그 이름만큼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드림 코퍼레이션은 공공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기에 별달리 상품 생산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만한 규모의 화물을 유통할 일도 거의 없었다.

심지어 고급 육류까지 운반한다는 것은 상식 밖이었다.

그러나 태일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 도리어 자신이 이쪽 세계의 상식과 괴리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질문을 들은 지우가 마치 외계인이라도 본 것마냥 태일을 바라본 것이다.

“형, 설마 진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죠?”

“…….”

“메타휴먼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니까 당연히 엄청 크죠.”

“드림 코퍼레이션이 메타휴먼을 공급한다고?”

“아니, 대체 형은 어디서 왔길래…….”

태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자, 앨리스가 태일의 옷자락을 잡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안해요, 아저씨. 지우는 아저씨가 어디서 왔는지 몰라서 저러는 거예요.”

앨리스 역시 태일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앨리스는 태일이 드림 코퍼레이션에 대해 모르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조용히 자신이 아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드림은행도 있고, 농장도 있어요.”

“금융에 식품까지 다 장악했단 말이지?”

각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운용하던 전력 회사들을 합병하여 만들어진 드림 코퍼레이션은 태일의 세계에서도 그 규모가 작진 않았다. 하지만 이쪽 세계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비대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차이의 원인은 메타휴먼 보급에 있었다.

“그런데 형, 그냥 열차 칸 아무 곳에나 숨어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50구역까지 도착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여기 있고 싶으면 그렇게 해. 억지로 따라올 필요 없어.”

지우가 걸어 다니기 귀찮다는 듯 징징거리자, 태일은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무심히 대꾸했다.

지우는 불만스러운 듯 입을 불쑥 내밀었지만, 혼자 화물칸에 버려지기는 싫은지 태일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한편, 태일은 레이에게 건네받은 카드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열차에는 꽤 많은 것들이 실려 있죠. 부디 조심하시길.”

레이의 의미심장한 말과 카드에 적힌 숫자.

레이는 분명 태일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려 했다. 그저 단순히 50구역까지 이동할 용도로 이 열차를 소개해 준 것은 아닐 터였다.

‘06’.

마침 태일 일행은 현재 5번 화물칸에 있었다.

그때, 슬쩍 문을 열고 뒤쪽 복도를 살피던 앨리스가 고개를 돌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 바로 앞에 경비가…….”

열차는 철저하게 무인(無人)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물론 열차 곳곳에는 CCTV를 비롯해 각종 영상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고, 화물마다 단단히 밀봉되어 보안 조치가 되어 있었다.

자칫 화물에 피해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철도 회사와 유통사 등 관계 업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배상액을 물어야 할 테니, 나름의 조치를 취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조치들은 어디까지나 사후 대비를 위한 조치였다. 무인 열차가 불의의 사고나 테러로 전복될 경우, 화물에 피해가 야기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없다. 만약 실시간 조치가 필요하다면 좀 더 비용을 들여서라도 대응 가능한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 것이다.

6번 화물칸에는 유일하게 그런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체 뭐가 실려 있기에…….”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메타휴먼 경비병들의 팔에는 응당 있어야 할 손가락들 대신 머신 건이 장착되어 있었다.

총과 같이 복잡한 기계까지 개조해 끼울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 태일이 짧게 혀를 찼다.

그럴수록 군용 무기까지 장착시킨 채 지켜야 할 화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혀, 형?!”

“아저씨, 어쩌려구요!”

문을 열고 나가려는 태일의 뒤로 두 꼬맹이가 매달렸다.

“총이라구요. 그것도 머신 건!”

“위험해요!”

장승처럼 가만히 문을 지키고 선 경비병은 두 기.

놈들을 보니 화장실을 가겠답시고 화물칸 입구를 비우거나 하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지나가고자 한다면 충돌은 불가피했다. 반면, 지나가기를 포기한다면 녀석들이 굳이 순찰을 다니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50구역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할 터였다.

그러나 태일에게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물건이 눈앞 화물칸에 실려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확인을 해 봐야지.”

“자, 잠깐만요!”

두 꼬맹이를 떨치고 서둘러 경비를 해치우려던 태일은 문득 앨리스의 손을 보고는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태일뿐만이 아니었다. 지우 역시 넋이 나간 얼굴로 앨리스의 손을 바라보았다.

츠츠츠―

스파크.

그것도 태일의 것과 아주 닮은, 붉은 스파크가 앨리스의 손아귀에서 맴돌고 있었다.

자그마한 불꽃놀이라도 벌어지듯 앨리스의 손바닥 위에서 통통 튀고 있지만, 태일의 것과 달리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어 스파크가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날아가더니, 공중에 매달려 있던 CCTV 카메라의 렌즈를 관통해 버렸다.

팟!

소리 없이 CCTV 렌즈에 금이 가며 연기가 피어올랐다. 분명 방금 한 방으로 내부 회로가 타 버렸을 것이다.

위력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어쩌면 제가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태일은 그제야 앨리스가 어째서 자신을 따라왔는지 알 수 있었다.

혁명가, 세상을 박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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