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51화 (완결) (351/351)

# 351

25화

청해성.

그리고 그 서쪽자락에 위치한 곤륜산.

사방으로 늘어뜨린 줄기가 팔백(八百) 리요,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솟아오른 높이가 무려 만(萬) 길.

어디 그뿐인가?

마치 아홉 개의 성을 층층이 쌓아놓은 듯한 광활한 산채는 또 어떠한가.

무릉도원이 있다면, 그 선경의 모습이 바로 곤륜산의 모습이리라.

하지만 마치 거인의 날카로운 거검을 인간들의 땅에 거꾸로 꽂아놓은 듯한 곤륜의 거산들은 애초에 인간들의 발길을 거부하려는 듯 험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민초들은 곤륜산을 신선들의 산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싶다.

곤륜산의 위치는 중원에서 서쪽 끝.

하지만 무림에서의 위치는 중앙이다.

그 이유는 바로 작금 황제의 의동생이자, 황제가 직접 흑풍마황(黑風魔皇)이라는 별호를 하사한 마현의 은거처가 바로 곤륜산이기 때문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를 가르는 한 도인이 있었다.

그 도인은 창공을 누비는 한 마리 매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 산봉우리에 내려앉았다.

“후.”

가볍게 숨을 토해내는 도인은 바로 학성이었다.

그는 넒은 소매를 가볍게 말아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산경을 바라보며 학성은 감탄했다.

“이 장대한 산세라니…… 무당의 것에 전혀 뒤지지 않음이야.”

학성은 땀에 젖은 몸을 잠시 바람에 맡겨둔 채 풍광을 감상했다.

‘5년 만인가? 무심하다 타박하겠군.’

학성은 마현을 떠올리며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학성은 5년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스승인 청명진인의 명에 의해 2년의 폐관 수련, 이어 학방으로부터 이어받은 태극수검의 자리.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빠르면 1년, 늦어도 2,3년 사이 학방이 차기 장문직에 오를 것이다. 그에 맞춰 학성도 스승님의 자리인 진무각주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쉬이 움직이지 못하니 앞으로 몇 년을 더 눈코 뜰 새 없이 보내야 할지 모른다.

그렇기에 학성은 어렵게 시간을 내 마현이 있는 곤륜산으로 온 것이었다.

‘응?’

그때 예리한 기운이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팽팽하게 당겨져 끊어질 듯한 기세가 피부에 와 닿았다.

학성은 내력을 돋아 안력을 높였다.

은밀히 움직이는 그림자들.

포위하려는 무리와 도망치는 자.

학성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학성이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몸을 찌를 듯한 사기가 숲 속에서 끓어올랐다.

콰과광!

산을 뒤흔들며 화염이 용솟음쳤다.

* * *

『목표가 포착되었다!』

은밀히 날아온 전음.

『목표는 전방 10장.』

전음의 주인공은 바로 철용.

왕귀진은 그 전음에 은밀히 전방을 살폈다.

사사삭!

키가 낮은 관목이 검은 그림자에 쓸리며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귀진의 입술 한쪽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2대는 후미를 맡으라.』

그 명에 철용을 따르는 15명의 흑풍대원이 은밀하게 숲을 돌았다.

약 일다경 후.

『준비 완료!』

『셋에 목표를 사로잡는다! 하나, 두…….』

왕귀진은 셋까지 세지 못하고 입을 닫아야했다.

흔들리던 관목 사이에서 목표가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는 왕귀진을 향해 비릿한 미소를 드러낸 것이다.

‘아, 알고 있었다!’

곧 왕귀진의 눈이 부릅떠졌다.

빠르게 투시 마법을 일으켜 자신과 흑풍대가 서 있는 땅 속을 살폈다.

‘젠장!’

왕귀진의 얼굴이 화락 일그러졌다.

자신들이 서 있는 땅 아래 무수히 깔린 마법 스크롤, 즉 마법 트랩이 깔려있었던 것이다.

『하, 함정이다! 피, 피해……!』

전음이 채 전달되기도 전에.

콰과광!

흑풍대가 서 있는 자리에서 화염이 용솟음 쳤다.

“까르르르르!”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졌다.

“메롱!”

대략 10살이나 되었을까 보이는 아이는 불길에 휘말려 그을림이 가득한 왕귀진과 흑풍대를 향해 손가락으로 눈두덩을 밑으로 내리며 혀를 날름 내밀었다.

“이익! 잡아라!”

왕귀진의 명에 흑풍대가 아이가 떠있는 허공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그에 맞춰 아이의 신형도 허공으로 빛살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 아이가 향한 곳은 바로 학성이 올라서있는 산정이었다.

“허허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아이를 보며 학성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끌어올렸던 내력을 갈무리하는 동시에 검자루에 얹었던 손을 풀었다.

일단 그들에게서 살기가 없었고, 꼬마를 쫓는 이들이 바로 흑풍대였기 때문이다.

학성이 알기에 흑풍대가 쩔쩔매며 쫓을 아이는 단 한 명.

‘많이 컸구나.’

아이의 이름은 마성(魔星).

바로 마현과 설린의 아이였다.

마현과 설린을 쏙 빼어 닮은 마성은 흑풍대의 손에서 신나게 도망치다가 뚝 멈춰 섰다.

“어?”

마성은 학성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앙증맞은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던 아이가 손바닥을 딱 쳤다.

“학성 아저씨!”

그때였다.

왕귀진이 마성의 뒤를 덮친 것이다.

“아악!”

자신이 흑풍대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마성은 발버둥치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왕귀진은 한 치의 용서도 없이 마성에게 점혈을 하는 동시에 마나동결 마법이 담긴 마법스크롤을 몸에 붙였다.

“흐흐흐. 그만 포기하십시오, 소주군.”

왕귀진은 음침한 웃음을 터트리며 마성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학성 앞으로 뚝 떨어졌다. 이어 흑풍대가 학성이 서있는 산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꽤나 고생을 한 흔적이 몸 곳곳에 보였다.

“놔 줘! 놔 줘! 가기 싫단 말이야!”

“안 됩니다, 소주군. 소주군을 모시지 못하면 저희가 주모께 죽습니다.”

“치!”

그 말 때문인지, 아니면 어차피 왕귀진의 손에서 이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때문인지 마성은 발버둥치는 것을 곧 그만두었다.

“감사합니다, 학성 도인님.”

왕귀진은 뒤늦게 학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빈도가 한 게 그 무엇이 있다고?”

담담한 미소.

“주군을 찾아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무량수불.”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흑풍대가 산정으로 몸을 날렸고, 학성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향한 곳은 곤륜산 깊은 곳에 위치한 거산의 상정 봉우리. 말이 봉우리이지 거산의 산정은 반경 100여 장이 훌쩍 넘는 평지였다.

그 평지 중앙에 아담한 장원이 한 채 지어져 있었다.

바로 마현과 설린의 보금자리였다.

“스승님, 자꾸 자리를 비워도 되는 것입니까?”

사랑채 앞 평상에 허진과 설관악이 유유자적하게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고, 마현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서 있었다.

“괜찮다. 사공찬, 그 녀석이 생각보다 능력이 꽤 출중하단 말이야.”

마현은 마교 소교주 자리를 다시 이어받지 않고 설린과 함께 반쯤은 은거한 상태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문제는 허진이 사공찬에게 마교의 업무 태반을 모두 떠넘기고는 대부분의 날을 이곳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문제는 설관악도 그런 허진과 죽이 맞아 닮아간다는 것이다.

“아빠! 또 왔어요?”

설린이 마현 곁으로 다가와 삐딱하게 서며 설관악을 쳐다보았다.

“냉천휘, 그 녀석도 능력이 출중해서 이 아비가 딱히 할 게 없더구나.”

“그래도 자꾸 궁을 비우면 어떡해요?”

“거 뭐시기냐…….”

설관악이 장원 한쪽 구석에 그려진 워프게이트진을 쳐다보았다.

“사돈, 섬광마지요.”

허진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워프게이트진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래, 저게 있는데 무슨 걱정이더냐?”

설관악도 허진처럼 능글맞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고 못살아!”

설린은 이마를 딱 짚었다.

탁!

그 사이 허진의 손이 반상(盤上)을 갈랐다.

“외통수로구나!”

허진이 희희낙락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이구야! 사돈! 한 수만 물립시다!”

“허허허, 안 됩니다!”

허진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느긋하게 허리를 편 반면, 설관악은 얼굴을 화락 찌푸렸다. 그러더니 설린을 째려보았다.

“흥!”

설린이 고개를 팽 돌렸다.

“주모, 소주군을 모셔왔습니다.”

그때 장원 정문으로 흑풍대가 들어섰다.

“어!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마성이 왕귀진의 어깨에서 내려와 허진과 설관악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성이, 이 녀석!”

설린이 쌍심지를 켰고, 마성은 그런 설린을 피해 설관악과 허진의 등 뒤에 쏙 숨어버렸다.

“아이고, 우리 새끼!”

설관악은 마성을 품에 안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녀석 또 도망을 친 모양이로구나.”

설관악의 가벼운 꾸중에 마성은 혀를 살짝 내밀고는 헤헤 웃음을 터트렸다.

“이 대사부랑 숨바꼭질하고 놀까?”

허진이 설관악과 마성 사이에 끼어들었다.

“대사부님. 그 전에 점혈이랑…….”

“허허허!”

허진은 귀여운 마성의 표정에 웃음을 터트리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건 이 외할아버지가 해주마.”

설관악이 마성의 몸에 손을 데려고 할 때였다.

설린이 그들에게 성큼성큼 걸어가 마성의 귀를 움켜잡았다.

“아얏!”

“따라와!”

설린이 마성의 귀를 가차없이 잡아당겼다.

“어, 엄마! 아앗! 오늘은 진짜 공부하기 싫단 말이야! 할아버지, 대사부!”

마성은 설린의 손에 끌려가며 허진과 설관악을 애타게 불렀다.

“린아, 오늘 하루쯤은…….”

“아가, 오랜만에 성이를 보는데…….”

허진과 설관악이 말을 하는 순간,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설린의 눈빛이 둘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헙!”

“크흠!”

허진과 설관악은 그 눈빛에 단숨에 입을 닫아 버렸다.

설린이 마성을 데리고 안채로 들어가고.

“저런 아이가 아니었는데…….”

“참한 아이였는데…….”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둘에게 흑풍대를 따라 들어온 학성이 다가왔다.

“그간 평안들 하셨는지요.”

학성은 예를 갖춰 허리를 숙였다.

“학성 도인이 아니신가. 그간 평안하셨는가?”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청명진인은 무고하시고?”

“예.”

짧은 안부가 오간 후 학성은 공손하게 예를 취한 후 마현에게로 몸을 돌렸다.

“들어가서 차나 한 잔 할까?”

몇 해 만에 보는 사이였지만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둘의 대화는 편했다.

“좋지.”

“들어가자. 밀린 이야기도 좀 하고.”

마현은 학성을 데리고 사랑채에 있는 서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흑사신 분들은 안 보이는구나?”

“심심하다고 해서 본교로 보냈다. 아이들이나 좀 가르쳐보라고.”

“그렇군.”

둘이 서실로 들어가자, 따뜻한 한 줄기의 바람이 날아와 장원을 보드랍게 쓰다듬어주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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