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49화 (349/351)

# 349

23화

“예, 아버지.”

“사내란 자고로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몸을 바짝 엎드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 훈계에도 제갈문의 찌푸린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중원이 좁다 하며 마음껏 활개를 치고 다녀도 성이 안 찰 나이에 이렇게 숨어 있게 한 것이 마음에 걸린 건지, 아니면 미워도 자식이라고 모든 면에서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는 게 아비의 마음인지, 그건 모를 일이었다. 제갈묘는 더 훈계를 늘어놓는 대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문아, 모레다. 모레만 지나면 천하가 우리 가문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정말입니까?”

그 말에 제갈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렇다. 그러니 다들 한 잔씩 들자구나. 천하를 굽어볼 세가를 위해서!”

제갈묘는 단숨에 술잔을 털어 넣었다.

“크으, 좋구나, 좋아!”

제갈묘는 무릎까지 탁 치며 흥겨워했다.

남들은 비겁하다고 뒤에서 욕을 하겠지만 그런 평판 따위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것이 아닌가. 어쨌든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승자다. 제갈묘의 눈은 강렬한 의지와 더불어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술잔을 들던 제갈묘의 손이 문득 멈추었다.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기의 파장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콰광!

그때 정문이 부서지는 파음이 들려왔다.

“주, 주인 어르신. 웬 괴한들이…….”

곧이어 한 노비가 사색이 된 얼굴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 * *

크그그극!

흑풍대의 다크나이트와 다크스켈레톤들이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조용하고 은밀하게 제갈묘의 아담한 장원을 완전히 에워쌌다.

“완벽히 포위했습니다.”

왕귀진의 명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흑사신은 사방을 지켜라. 워낙 여우같은 놈이니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

“명!”

흑사신은 허공답보의 수로 허공을 격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제 들어갈까요?”

마현은 장원의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냅다 정문을 발로 걷어찼다.

콰광!

굵고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정문이 마치 수수깡처럼 힘없이 부서졌다.

정문의 전재만 남은 기둥 사이로 마현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괴, 괴한이다!”

느긋하게 장원 안으로 들어서자 하인들과 하녀들이 혼비백산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몇 걸음 내딛을 때 찌르는 듯한 살기가 마현과 걸왕을 덮쳤다.

바로 제갈세가의 직계로 꾸려진 전투부대인 대천대(大天隊)였다.

열다섯 명으로 구성된 대천대는 아무런 기척도 없이 마현을 향해 검을 뿌렸다.

“훗!”

마현은 나직하게 비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의 존재는 이미 간파한 마현이었다.

마현은 뒷짐도 풀지 않은 채 자신을 덮쳐오는 대천대를 향해 마기를 폭사시켰다.

“홀드!”

저서클의 가벼운 마법.

하지만 8서클의 마기가 담기자 무시할 수 없는 상위 마법으로 변했다.

“큭!”

“컥!”

마현의 머리 위에서 짧은 신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쿵 쿵 쿵 쿵 쿵!

열다섯 명의 대천대원들이 마치 석상처럼 굳어져 떨어졌다.

‘이, 이놈!’

그 모습에 정작 눈빛이 흔들린 이는 걸왕이었다.

이제는 도무지 끝이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강해져서 돌아온 것이다.

마현은 그들을 지나쳐 안채로 향했다.

콰직― 퍼벙!

장원 마당에서 안채로 향하는 문이 저절로 폭발하듯 부서졌다. 마현은 그 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섰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드는군.”

마현은 잔뜩 굳어 있는 제갈묘를 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네, 네놈은?”

제갈묘의 목소리가 몹시 흔들렸다.

“대천대, 대천대는 어디 있느냐?”

제갈묘는 고개를 젖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마현에게 제압당한 뒤였다. 제갈묘의 호출은 무의미한 외침일 뿐이었다.

곧 제갈묘는 마현의 싸늘한 웃음을 듣고 대천대가 이미 그의 손에 꺾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정문이 부서지고, 안채로 들어서는 작은 문이 부서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 아무리 마현이 강해도 대천대는 제갈세가의 정예들을 모아 만든 전투부대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형님, 피하십시오!”

제갈휘가 검을 뽑아들며 앞으로 나섰다.

“영영아, 문아. 어서 가주님을 뫼시고 이 자리를 피하거라! 어서!”

제갈휘는 이를 악물며 마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흐아압!”

일갈을 터트리며 날아온 제갈휘의 검이 검은 빛살처럼 마현을 엄습했다.

‘느려!’

하지만 마현의 눈에는 너무나도 느린 모습.

마현의 손을 통해 뻗어나간 마기는 제갈휘의 몸통을 감싸고, 팔다리와 목을 움켜잡았다.

염력 마법이었다.

“크으으!”

제갈휘는 염력 마법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지만 그의 뜻을 이루기에는 마현의 마력이 너무나도 강했다.

마현은 제갈휘를 향해 뻗어 있는 손을 오므렸다.

그러자 그 손에 제갈휘의 몸통과 목, 팔다리를 포박하고 있는 마기가 그의 몸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커헉!”

감당할 수 없는 압력에 제갈휘는 몸을 부르르 떨며 신음을 흘렸다.

창그랑.

이어 강하게 움켜잡고 있던 검마저 힘없이 떨어뜨려야 했다.

처음에는 죽이려 했지만 마현은 순간 생각을 바꿨다.

피가 흥건한 수급을 가지고 황제를 찾아가는 건 불경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현은 팔을 옆으로 휘저었다.

휘이익.

그 움직임에 따라 제갈휘의 신형이 옆으로 밀리듯 날아가 안채를 감싸고 있는 벽과 부딪혔다.

콰르르르!

결국 짐짝처럼 날아간 제갈휘는 벽을 무너트리며 바닥에 쓰러졌고,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히익!”

제갈묘는 그 모습에 기겁성을 터트리며 자신의 검을 안채 바닥 중앙에 내리꽂았다.

우우우웅.

상당한 파동과 함께 안채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런!”

그 광경에 뒷손 놓고 구경만 하던 걸왕이 얼굴을 구기며 빠르게 다가갔다.

“진법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니.”

걸왕은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자책했다.

“괜찮습니다.”

마현은 걸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뒤 앞으로 나섰다.

그의 눈은 마기로 가득 차 있었다.

투시 마법에 의해 제갈묘의 진법으로 생긴 허상은 사라지고 안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마현은 가볍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상 속에 살상력을 갖춘 기문이 안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아마 이 진법 속에 발을 들였다가는 허상에 이끌려 죽음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진법에 휘말렸을 때의 문제다.

마현은 굳이 진법을 파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마현이 잠시 진법에 감탄하고 있을 때 진법 안의 제갈묘는 상당히 분주하게 움직였다. 제갈묘가 벽의 몇몇 물건들을 건드리자 탁자가 돌아가며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제갈묘는 빠르게 제갈영영과 제갈문을 이끌고 지하로 통하는 계단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 다시 탁자가 감쪽같이 제자리를 찾았다.

‘후후, 재미있군. 재미있어!’

마현은 진법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지금 들어가 봐야 소용없었다.

“걸왕 어르신.”

“어서 진법을 파훼하지 않고 왜 나를 부르는 것이냐?”

“들어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

“저를 따라오십시오.”

마현은 걸왕에게 그리 말하고는 허공으로 몸을 훌쩍 날렸다.

그리고는 지하 토굴을 따라 움직이는 제갈묘와 제갈영영, 제갈문을 내려다보며 느긋하게 그들의 뒤를 따랐다.

급히 지하 토굴을 만들어서인지 그들은 구부정한 모습으로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투시마법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땅속에서 살아가는 두더지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걸왕은 허공에 떠서 움직이는 마현에게 보조를 맞춰 이동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마현이 아무런 이유 없이 움직일 위인이 아니니까.

마현과 걸왕의 움직임에 맞춰 흑풍대와 흑사신도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허리를 곧게 펴기도 어려울 정도로 낮게 만들어진 토굴.

“헉헉헉!”

그 토굴을 따라 급히 뛰어가는 제갈묘와 제갈영영, 제갈문의 얼굴은 땀과 흙으로 지저분하게 변해 있었다. 그마나 흙만 파낸 토굴인지라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천장에서 흙더미가 우수수 떨어졌기 때문이다.

앞서 뛰던 제갈영영이 어느 순간 걸음을 멈췄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그녀의 얼굴을 가득 덮고 있었다.

“뭐 하느냐? 어서 뛰지 않고!”

가장 후미에 있던 제갈묘가 호통쳤다.

“흐흑, 아버지.”

제갈영영은 울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급박한 시기에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울음을 터트리다니! 어서 달리지 못할까.”

“누나! 어서 달려. 살아야지. 나는 여기서 죽기 싫어. 적어도 나는 살아야 해! 어서 달려, 달리란 말이야!”

제갈문은 제갈영영의 등과 엉덩이를 강제로 밀었다.

제갈묘가 호통을 치고 제갈문이 보채자 제갈영영은 다시 입술을 깨물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한식경쯤 달리자 토굴이 끝났다.

제갈영영은 토굴 끝을 가리고 있는 각목과 그 위를 덮고 있는 거적을 밀어젖혔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멍으로 셋은 땅 위로 올라섰다.

토굴이 끝난 곳은 다름 아닌 빈민촌 구석에 위치한 허름하기 짝이 없는 민가 안이었다.

“어서 서두르자!”

제갈묘는 제갈영영과 제갈민을 데리고 민가 밖으로 나갔다.

“헉!”

제갈묘는 자신들이 빠져나온 민가 앞에 서 있는 마현을 본 순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놀랐다.

“꺄악!”

“으헉!”

뒤이어 민가를 뛰쳐나온 제갈영영과 제갈문도 마현을 본 순간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고,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도망가거라, 어서!”

제길묘가 이를 악물며 허리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검은 진법을 발동시키느라 안가(安家)에 두고 온 상황. 제갈묘는 뺨을 씰룩거리더니 이내 양 주먹을 말아 쥐며 마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아버지!”

제갈영영은 얼굴을 감쌌고, 제갈문은 살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제갈묘는 빠르게 마현에게로 다가서며 매섭게 주먹을 내질렀다.

마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부우웅!

그러자 제갈묘의 주먹은 애꿎은 허공만을 두둘겼다.

제갈묘의 머리 위에 모습을 드러낸 마현은 양손을 아래로 내렸다.

“세상의 모든 짐을 지우리라, 헤비 그래피티(Heavy gravity)!”

쿠웅!

대기의 중력이 강하게 제갈묘의 몸을 짓눌렀다.

“컥!”

제갈묘는 충격을 이기지 못했고, 그의 양 무릎은 형편없이 꺾이며 바닥에 무릅을 꿇었다.

“디그!”

이어진 마현의 마법.

제갈묘가 무릎을 꿇은 땅이 아래로 푹 꺼졌다.

그로 인해 제갈묘의 몸이 땅 속으로 파묻혔다.

마현은 다시 땅을 메웠다.

제갈묘는 머리만 내놓은 채 땅에 파묻혔다.

“소일 투 스톤(Soil to stone)!”

마기가 제갈묘를 파묻은 흙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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