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37화 (337/351)

# 337

11화

“이제부터다. 하르센 대륙에 보여주는 것이다. 마탑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마이런.”

이베른이 마이런을 불렀다.

“예, 마탑주님.”

마이런은 이베른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서 고개를 숙였다.

“용병 마법사들 중 흑마법을 익힌 자들이 있다.”

그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까지는 애교로 봐주었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안 된다. 흑마법을 익힌 모든 용병 마법사들을 찾아내 주살하라! 그리고 다른 자들에게 분명히 보여주고 느끼게 하라! 마탑 앞에선 숨도 쉬지 못하도록.”

“명!”

마이런은 자신이 지목되었다는 것에 감동해 우렁찬 목소리로 복명했다.

마이런은 곧장 대전을 빠져나갔다.

“카뮈, 카네티.”

마이런이 나가자마자 이베른은 남은 두 탑주를 불렀다.

“예, 마탑주님.”

“하명하십시오.”

“두 탑은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본거지를 찾는데 주력하라. 그리고 반드시 케이슨 용병기사단 소속의 밀러라는 흑마법사를 사로잡아라!”

잠시 말을 멈춘 이베른이 두 사람의 눈을 강하게 직시하며 말했다.

“놈은…… 모든 용병 마법사가 보는 앞에서 참수할 것이다.”

싸늘한 목소리가 대전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 * *

별채의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늑대왕 용병대원들의 장례도 치루기 전에 마탑의 손에 다시 용병들의 피가 뿌려진 것이다.

“이대로 있을 참입니까?”

제이든이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한 듯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오.”

철용이었다.

“일단 알랜 지부장을 통해 각 용병대에 서신을 보내놨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

케이슨이 제이든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뭘 그리 고민해? 그냥 가서 확 부숴 버리면 될 것을.”

한 걸음 물러나 있던 흑도의 목소리에는 살심이 풀풀 풍겼다.

“케이슨 대장과 흑풍부대주의 말이 옳다. 지금의 전력으로 못 싸울 것도 없지만 그러기에는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야.”

흑도를 달래는 흑권 역시 살기가 맴돌기는 매한가지였다.

그 역시 당장이라도 마탑으로 뛰어가고 싶은 마음일 터. 하지만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기고 또 새기며 힘겹게 참고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졌을 때 별채 문이 열리며 한스가 안으로 쪼르르 달려 들어왔다.

“이 녀석. 여기는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밀러가 한스를 품에 번쩍 안아들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꾸중했다.

“그게 아니라…….”

한스는 자그만 손으로 한 장의 서신을 밀러에게 내밀었다.

“알랜 지부장님이 보내오셨어요.”

본거지를 기습당한 이후 알랜은 케이슨 용병기사단과 직접적인 접촉을 삼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심부름꾼을 이용해 서신으로 서로의 소식과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알랜 지부장이?”

다른 용병대에 대한 정보를 보내오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도 빨랐기에 케이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신을 읽던 케이슨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이런 미친 새끼들!”

케이슨은 그답지 않게 목소리가 매우 거칠었다.

알랜의 서신은 꽉 움켜쥔 그의 양손에서 구겨져 있었다.

“무슨 일이오?”

왕귀진이 알랜에게서 구겨진 서신을 넘겨받았다.

푸학!

한순간 왕귀진의 몸에서 살기가 내뻗쳤다.

“가이진 대주.”

밀러가 급히 한스를 품에 안으며 마나를 일으켰다. 그의 살기로부터 한스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왕귀진은 서둘러 살기를 거둬들였고, 밀러는 한스를 재빨리 별채 밖으로 내보냈다. 심상치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대주?”

아이작과 철용이 동시에 물었다.

“마탑이 흑마법사 사냥에 나섰다.”

“흑마법사라고 하시면…….”

“용병 마법사들이오.”

왕귀진의 짧은 대답에 이어 케이슨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용병들의 거리에 또다시 무차별적으로 피가 뿌려지고 있다고 하오.”

“히익!”

“이 찢어죽일 놈들!”

당연히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원들은 그들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다.

늑대왕 용병대가 동료들의 장례를 치루고 다시 복수의 칼날을 갈며 대열을 정비하는 사이 마탑은 한 발 빠르게 빌더 시를 장악하며 공포에 떨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좀 더 힘을 모으고 싶지만…….”

케이슨의 움켜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소. 일단 우리의 힘만으로 막아야 할 것 같소.”

이대로 계속 현 상황을 방치하면 용병들의 원한은 마탑에 대한 공포로 바뀌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대주, 일단 저희들을 따르는 용병대만이라도 모아 보겠습니다.”

철용은 비교적 차분한 얼굴로 냉정함을 유지했다.

“일단 우리가 먼저 가겠다.”

흑권이었다.

그가 일어서자 흑도, 흑검, 흑창이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가겠소.”

밀러였다.

밀러의 힘과 실력이라면 큰 힘이 될 것이다. 흑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불타버린 저택.

그 앞에 서 있는 한 사내.

여행자 로브를 입고 있는 사내가 로브에 달린 후드를 벗었다.

이윽고 드러난 흑발에 흑안.

그는 바로 마현이었다.

불에 타 무너진 저택은 다름 아닌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본부였다.

‘마탑 네놈들이냐?’

마현의 눈에서는 살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내 욕심 때문에…….’

마현은 왼쪽 가슴을 움켜잡았다.

기연이라면 일종의 기연이었다. 군신 아이벤과 사신 키디악과의 계약으로 목숨을 건진데다 더 나아가 8서클의 장벽에도 진입했다. 하지만 깨달음 없이 올라간 8서클은 온전한 8서클이 아니었다.

벨로에게 처절한 응징을 통해 원한에 대한 복수를 했지만 그 와중에 마현은 자신이 온전한 8서클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기가 절묘해 벨로를 홀로 꾀어낼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되리란 보장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이베른을 비롯한 마탑주들이 자신을 죽은 걸로 알고 있을 때 완벽하게 8서클로 올라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바로 빌더 시로 오지 않고 몸을 잠시 숨기고 8개의 서클을 온전히 재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시일이 더 걸렸다. 그리고 돌아와서 본 것은 이처럼 잿더미로 변해버린 케이슨 용병기사단 본부였던 것이다.

마현은 입술 안쪽을 슬며시 깨물었다.

주체할 수 없는 살기를 애써 억누르며 마현은 몸을 돌렸다.

아직은 분노할 때가 아니었다.

‘바람 식당. 일단 그곳으로 가야겠다.’

바람 식당은 병을 앓던 제이든의 누이와 그의 홀어머니를 위해 마현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차려준 식당이었다. 아울러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 어린 한스를 맡겨 놓은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곳의 존재는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만 아는 곳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 제이든도 거의 발걸음을 하지 않았으니 그곳만은 여전히 안전할 것이라 믿으며 마현은 몸을 돌렸다.

바람 식당으로 가기 위해 용병들의 거리로 들어선 마현은 주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바로 깨달았다.

거리 곳곳에서 확연하게 느껴지는 냉기와 분노, 그리고 살기.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하지만 그 이유는 몇 걸음 채 걷지 않고도 알게 되었다.

용병들의 거리 중앙에 살벌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걸어오는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들이 용병들의 거리에 나타나자 삭막하던 공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

그들이 입은 로브의 왼쪽 가슴에 붙어 있는 것은 마현도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붉은 오망성.

오망성은 백마법사를 상징하는 문양이지 마탑을 상징하는 문양이 아니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고갯짓을 하자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흩어지며 주점, 식당 등을 가리지 않고 문을 밀고 들이닥쳤다.

“시팔, 정말 못 봐주겠군!”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근처에 있는 몇몇 용병들에게서 분노가 느껴졌다.

“이보쇼.”

그중 용병 한 명이 마현에게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용병 마법사 같은데, 여기 있다가 저놈들한테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어서 피하쇼. 내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러는 거요.”

마현은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허어.”

지금 빌더 시에서 일어나는 이 난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용병들에게는 황당한 모양이었다.

“당신을 보니 초짜는 아닌 듯한데……, 어디 타국에 오래 머문 모양이오?”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기에 마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터에서 언제 죽어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흑마법 하나 둘쯤 익힌 게 그 무슨 대수라고. 마신이니 어쩌니 해도 그건 지들 이야기지, 말은 바르게 하라고 했다고, 사실 주신 아래 어둠의 신들이거늘.”

용병 하나가 요 며칠 동안 있었던 일들을 마현에게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마탑에 의해 하르센 대륙에서 흑마법의 사용이 금기시되긴 했지만 용병 마법사들 중 상당수가 구명절초로 흑마법을 하나 둘쯤은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사실상 흑마법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는 후예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태생적 이유로 마탑의 마법사가 아닌 용병 마법사가 된 경우였다.

두 번째로는 마법의 재능을 발견하고 마법사의 길을 걸었지만 선천적으로 빛의 마나보다 어둠의 마나에 적합한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들 역시 빛의 마나를 사용하는 마탑에 소속될 수 없어 자연스럽게 용병 마법사가 되었고 흑마법을 계승해 오고 있는 것이다.

흑마법의 명맥을 이은 은둔자들은 대부분 죽을 때까지 자신이 흑마법사임을 숨겼다. 그런 이유로 하르센 대륙에서 흑마법의 명맥이 거의 끊겼지만, 개중에는 실낱같은 명맥이라도 이어보고자 인연이 닿은 용병 마법사들에게 흑마법 한두 가지 정도를 전수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용병 마법계에는 암암리에 흑마법이 지속적으로 전수되었고 시간이 점점 흐르자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놓고 봤을 때 밀러는 조금은 특이한 용병 마법사였던 셈이다.

용병 마법사들이 흑마법을 익히고 있는 것을 마탑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과거에는 모른 척 그냥 눈을 감아주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사실에 적지 않게 긴장했지만 그 실상을 파악해 보고는 굳이 통제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이다. 용병 마법계에서 통용되는 흑마법들은 대부분 저서클의 마법이었고 간혹 상당한 위력의 흑마법이 있다 치더라도 마탑에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마탑은 철저하게 흑마법을 하르센 대륙에서 지운 것이다.

마탑의 입장에서는 대외적으로 흑마법이 사라졌음을 공표한 이유도 있거니와, 쥐도 구석까지 몰면 고양이를 문다고, 사사로운 일로 공연히 일을 키워 자존심을 구기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흑마법을 완전히 말살시키기 위해 흑마법사 같지도 않은 용병 마법사들이 한두 가지 흑마법을 익힌 것을 알고도 묵과한 것이다.

그래봐야 온전한 어둠의 마나도 사용하지 못하는 잡다한 저스클의 흑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마탑이 칼을 빼어든 것이다.

천년의 통합 마탑 재건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헉헉헉!”

용병들의 설명이 끝날 무렵 한 용병 마법사가 부상을 입은 채 마현 쪽으로 도망쳐 오고 있었다. 그는 마탑 마법사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뒤로 마탑 마법사들이 살기를 풀풀 풍기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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