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
10화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실드는 소드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선 용병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결국 실드의 일부분이 깨져나갔다.
와장창창!
결국 용병들의 힘을 이기지 못한 실드는 완전히 부서졌고 마치 유리 파편이 바닥으로 떨어지듯 실드 조각들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흐아압!”
완전히 무방비 상태가 된 갈리오에게 용병들의 철퇴와 도끼가 작렬했다.
“으아아악!”
갈리오는 정육점의 고기처럼 순식간에 잘게 짓이겨지며 목숨을 잃었다.
* * *
용병들의 거리에 짙은 살기가 내려앉았다.
그로 인해 용병들의 거리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밤거리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자박 자박 자박!
그때 용병들의 거리에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대략 3백여 명.
바로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용병들의 거리로 들어선 마탑의 마법사들 중 일부가 빠르게 거리 곳곳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용병들의 거리 중앙을 관통하는 대로 끝에서 한 마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입니다!”
그 소리에 마탑 마법사들을 이끌고 온 사크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잠시 멈췄던 걸음을 그곳으로 옮겼다.
대로 한 중앙에 그나마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는 마탑 마법사 시신 세 구와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하게 다져진 시신 한 구가 눈에 들어왔다.
네 구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사크스의 뺨에 경련이 일며 빠드득 이가 갈렸다.
“본 마탑이 이토록 우스운 존재로 보였단 말인가!”
나직했지만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사크스의 중얼거림.
사크스와 함께 온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 한 마디에 사크스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분노에 함께 온 탑주들과 휘하 마법사들이 숨소리조차 죽일 정도였다.
“흑마법의 기운!”
사크스는 몸을 숙이며 바닥에 손을 짚었다.
“통일되지 않은 마나 동결 마법에 당했군.”
“직접적인 사인은 철퇴류 같은 무기로 보입니다.”
태양의 탑주 마이런이었다.
사크스는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갈리오의 시신에서 그의 신분을 알리는 로브의 소맷자락 일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손안에 꽉 움켜잡았다.
“마이런 탑주, 그리고 카네티 탑주.”
사크스는 굴곡 없는 어조로 두 탑주를 불렀다.
“예, 부마탑주님.”
“하명하십시오.”
“용병들의 거리를 봉쇄하세요.”
“알겠습니다.”
마이런은 허리를 숙인 후 몸을 돌렸다.
“태양의 제자들은 당장 용병들의 거리를 봉쇄하라.”
“바다의 제자들은 외부로 통하는 길목을 모두 막아라!”
둘의 명으로 인해 2백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카뮈 탑주.”
“분부 내리십시오.”
“감히 마탑을 향해 반기를 든 자들을 찾아내세요. 반항하면 죽여도 무방합니다!”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카뮈는 자신의 휘하 수석 마법사들을 불러보았다.
“분명 본 마탑의 제자들을 죽인 장면을 목격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 살생이 뒤따라도 좋다. 무조건 찾아라!”
“명!”
“명!”
열 명의 조화, 스플린 탑의 수석 마법사들은 저마다 10명 안팎의 마법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우지끈! 와당탕탕탕!
대로 주변에 있던 한 주점 문이 부서지며 장년의 사내가 튕겨져 나왔다.
“바로 이 앞에서 벌어진 일을 너는 모른다고 발뺌하는 것이냐?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카뮈의 명에 흩어졌던 수석 마법사들 중 하나가 주점의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장년의 사내에게 다가가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모릅니다. 정말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은…….”
장년의 사내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용서를 빌었다.
“마지막이다. 너 아니라도 대답해 줄 자는 많다. 누구냐? 감히 마탑의 마법사를 죽인 놈들이…… 크악!”
조화, 스플린의 수석 마법사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파이어 에로우로 그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그처럼 사람들을 협박하고 살해하는 광경이 용병들의 거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잔악한 광경이었지만 사크스는 태연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곧 그것이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용병들의 거리에 자리 잡은 상점의 주인들은 알게 되었다.
핏빛 공포가 지배하는 거리.
결국 공포를 이기지 못한 이들의 입에서 하나 둘씩 용병들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런 정보는 카뮈를 통해 취합되어 사크스에게로 전달되었다.
적지 않은 수다.
갈리오를 비롯해 마탑 마법사들을 죽인 용병들을 모두 찾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반수 이상의 신원은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죽인다!”
사크스는 살생부가 되어버린 용병들의 명단이 적힌 종이를 움켜잡으며 살기를 드러냈다.
* * *
“자자, 술이나 마시자고!”
철퇴를 등에 메고 있는 거구의 용병이 양손으로 맥주가 가득 담긴 잔을 들고 와 탁자에 내려놓았다.
근심이 가득해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매의 용병은 좀처럼 상념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쯧!”
그러자 거구의 용병이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용병 마법사의 등을 후려쳤다.
“아얏!”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강한 타격이었기에 용병 마법사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활처럼 등을 굽히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걱정을 사서 해요, 사서 해! 그냥 술이나 마셔.”
거구의 용병은 왼손으로 맥주잔을 건네며 오른손으로는 맥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크으! 죄다 뿔뿔이 흩어졌는데 누가 누군지 어떻게 알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술이나 마셔. 정 무서우면 이거 마시고 얼른 뜨든지.”
“하긴 그렇겠지? 에라, 모르겠다.”
용병 마법사도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은 골치가 아팠는지 맥주잔을 들어 호리호리한 모습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게 벌컥벌컥 맥주를 들이켰다.
“좋구나!”
용병 마법사는 단숨에 반쯤 맥주를 비우고는 소매로 입가에 묻은 맥주거품을 닦았다.
“로렌스, 노빅. 맞나?”
그때 검은 그림자가 그들을 덮었고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거구의 용병, 노빅의 얼굴이 구겨졌다.
낯선 목소리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있던 용병 마법사, 로렌스는 노빅의 경직된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치는 순간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주점 밖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 둘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마이런이었다.
“윈드 커터!”
태양의 탑주라고 화염계 마법만 사용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바람의 탑 출신 마법사보다야 위력이 약하겠지만 윈드 커터 마법쯤이야 그의 서클로 위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쐐애액!
바닥을 스치듯 낮게 깔린 바람의 칼날은 로렌스와 노빅의 발목을 하나씩 잘라버렸다.
“으악!”
“크악!”
둘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우당탕탕탕!
그때 탁자가 넘어가며 용병 셋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
“플레임 토네이도!”
마이런의 마법 주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자를 뒤엎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세 명의 용병들 위로 용암이 치솟았다. 그리고는 뱀처럼 그 셋을 휘감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용병은 비명은커녕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재로 변해 버렸다.
마이런은 그런 그들의 죽음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바닥에 쓰러진 로렌스와 노빅에게로 걸어갔다.
“본 마탑의 복수다.”
서걱!
싱거울 정도로 너무나도 간단한 죽음이었다.
마이런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두 명의 수급을 들어올렸다.
“이 시각 이후로 마탑에 반하는 자, 그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살기가 가득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용병들의 거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 * *
광활한 빌더 시가 석양으로 붉게 물들어가고 있을 무렵.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5층 웰즐리 용병대 본부가 갑자기 흔들렸다.
콰과과과광!
그곳에 어마어마한 폭음과 불기둥이 치솟아 오른 것이다. 화염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는 붉은 하늘을 더 빨리 어둠으로 몰고 가는 듯 보였다.
퍼벙!
폭음이 살가죽을 터트리고 있었다.
“으아아악!”
고통에 찬 신음으로 하늘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화염이 을씨년스럽게 번지며 빌더 시내 서쪽 지구에 한 폭의 참혹한 지옥도가 펼쳐진 것이다.
“크으! 도, 도대체 ……커헉! 무, 무슨 악감정이 있다고……!”
무너지는 웰즐리 용병대 건물 앞에 웰즐리 용병대장이 불길에 그을리고, 피범벅이 된 처참한 모습으로 무릎이 꺾인 채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절망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를 피와 함께 토해냈다.
“똑똑히 보고 기억하라!”
나직했지만 차갑고 섬뜩한 사크스의 목소리가 마나의 힘에 실려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마탑에 반하면 그 누구든 오로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크아아악!”
웰즐리 용병대장의 몸에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마치 화형을 당하는 것처럼 불덩이는 그의 몸을 아주 조금씩, 야금야금 집어삼켰다.
그로 인해 불길 속에서 웰즐리 용병대장은 고통에 찬 몸짓으로 발버둥 치며 죽어갔다.
콰과과광!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났다.
콰르르르르―!
화염에 휩싸인 5층 건물이 웰즐리 용병대장의 죽음과 동시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 * *
마탑 내 새로이 지어진 7층의 대전.
푹신한 태사의에 앉아 있는 이베른은 사크스의 간략한 보고를 듣고 오랜만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구나.”
그래서일까. 사크스를 비롯해 마이런과 카네티, 그리고 카뮈에게 건네는 이베른의 목소리는 한없이 자애로웠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탑주들을 대신해 사크스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지는 마라.”
이베른이 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었다.
“분명 용병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 보지 않았지만 이베른은 용병계의 분위기를 정확히 짚어냈다.
“인간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언지 아느냐?”
이베른은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이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
“…….”
사크스와 탑주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바로 오르지 못하는 절벽 위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절벽이 주는 공포다.”
이베른의 눈에 힘이 담겼다.
그 말에 사크스의 눈에서는 이채가, 탑주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