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2
6화
푹 푹 푹 푹 푸학!
왕귀진의 지척에서 땅거죽이 터지며 열 줄기의 검은 그림자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늘 끝까지 멈추지 않고 치솟아오를 것만 같던 검은 그림자는 마법사들 사이사이로 빠르게 떨어졌다.
쿵!
그리고는 안광을 번쩍이며 흉소를 터트렸다.
―크하아아아!
―캬카카카카!
“히익!”
대지, 듀락 탑 소속 마법사들은 너무 놀라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서걱!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크나이트들은 순간 만들어진 허점을 놓치지 않고 눈앞에 서 있는 적들을 빠르게 베어 넘겼다.
“으아아악!”
한순간 마법사들의 진영이 무너졌다.
지척에서 마구 날뛰는 다크나이트들의 무위에 마법사들은 제대로 손을 쓰지도 못했다. 그렇게 바닥은 마법사들의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무시무시한 다크나이트들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빛의 힘이었다.
“정화마법을 펼쳐라. 대지의 빛을 뿌려라!”
몬텔레의 다급한 명이 떨어졌다.
몬텔레는 순간 몹시 당황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판단은 상당히 냉철하고 시기적절했다.
후우우우웅!
그 명에 따라 마법사들은 일제히 땅으로 마나를 뿌려댔다.
그러자 메마른 흙이 황금으로 변한 것처럼 눈부신 빛을 발산했다. 그러자 다크나이트들의 마기도 흐려지고 움직임도 급속히 느려졌다.
―크, 크, 크하아!
확연히 느려진 다크나이트들의 검은 허약한 마법사들도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큭!”
다크나이트들이 받은 충격은 고스란히 왕귀진의 몸으로 전해졌다.
크그극, 콰직!
그런 다크나이트 한 기의 복부를 대지의 창, 얼쓰 오브 랜스(Earth of lance)가 땅에서 불쑥 튀어 올라와 꿰뚫었다.
대지의 창에 꽂힌 다크나이트의 몸이 바르르 떨렸다.
“커헉!”
하지만 고통에 찬 신음은 다크나이트가 아닌 왕귀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창백해진 왕귀진의 입가로 가느다란 핏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곤 한쪽 무릎을 바닥에 찧었다.
퍼석!
상처를 입은 다크나이트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처럼 땅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몬텔레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수습하자 지척에서 그를 보살피던 티모시가 움직인 것이다.
티모시는 몬텔레의 대제자라 부탑주 자리에 오른 것이기도 하지만, 현재 대지, 듀락의 탑에서 몬텔레 다음으로 최고 경지에 오른 마법사이기도 했다.
티모시는 극한의 마나를 일으켜 다크나이트들을 향해 폭사시켰다.
“대지가 분노하나니 모든 것을 파멸하리라, 디스트럭슨 오브 얼쓰(Destruction of earth)!”
티모시의 마나는 그의 발 지근에 뿌려졌지만 그 결과는 다크나이트들이 서 있는 발밑에서 일어났다.
콰그그그극 콰과과곽!
다섯 기의 다크나이트의 발아래서 수십 자루의 창이 치솟아 올랐다. 그리고 그 창들은 다크나이트들의 몸을 여지없이 꿰뚫어버렸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비명이 이어졌다.
그 비명의 주인은 다름 아닌 왕귀진이었다.
그의 입가에 연이어 흥건한 핏물이 흘러내렸다.
이어 다섯 기의 다크나이트도 어둠으로 사라졌다.
단지 네크로 계열의 흑마법사라면, 단지 네크로나이트라면 다크나이트가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그 시전자까지 충격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왕귀진은 단순한 네크로나이트가 아니다.
하나의 마나를 공유한다.
그렇기에 다크나이트들과 왕귀진은 하나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그로 인해 다크나이트는 기존 다크나이트들보다 적어도 두 배 이상 강하다.
하지만 하나이기에 다크나이트들의 충격은 고스란히 왕귀진에게 전이가 된다.
“푸학!”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왕귀진의 입에서 한 바가지 분량의 검은 핏물이 울컥울컥 쏟아졌다.
땅을 짚고 있는 한쪽 팔은 힘겹게 떨리고 있었다.
“대, 대장님!”
마법사들의 살기가 다시 왕귀진에 집중될 때였다. 주점 안에 있던 아그논이 몸을 날려 왕귀진 앞에 섰다.
챙!
아그논의 검이 힘차게 뽑혔다.
“쳐라!”
낭랑한 명이 하늘을 흔들었다.
“와아아아!”
“죽여라!”
그러자 주점 안에서 수십의 용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마법사들 틈으로 뛰어들었다.
용병들의 기세는 가히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는 수비식이 없었다. 마치 목숨을 내던지고 동귀어진을 노리는 이들처럼 오로지 검 하나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왕귀진 곁에 있던 덩컨과 바드였다.
“……바, 바람…… 식당으…….”
“바람 식당?”
다행히 아는 곳이었다.
덩컨과 바드, 그리고 아그논은 눈빛을 교환한 후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아악!”
“커허억!”
동시에 터져 나온 죽음의 단발마.
그 비명을 듣자 왕귀진을 등에 업은 덩컨이나, 그 옆으로 호위를 서려던 아그논과 바드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허공에 자욱하게 뿌려지는 피는 모두 용병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용병들은 허무하게도 마법사들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죽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익!”
아그논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그의 하얀 입술은 금세 피로 물들었다.
제법 많은 수가 죽을 것은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이대로는 전멸이다.
“어디로 도망가려는 것이냐!”
어찌할 수 없어 망설이는 그들 앞으로 몬텔레의 신형이 내려섰다.
“덩컨, 바드! 여기는 내가 막겠다!”
“아그논!”
“부대장!”
덩컨과 바드는 동시에 아그논을 불렀다.
“어서!”
“하하하하! 웃기는 종자들이로구나!”
용병들의 모습에 몬텔레는 대소를 터트렸다.
“나를 앞에 두고 도망갈 수 있을 것 같더냐?”
웃음 뒤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살기마저 더해지니 저 북쪽 아이스랜드의 거친 설풍을 맨몸으로 맞이하는 듯했다.
“샌드 프리즌(Sand prison)!”
그르르륵!
아그논, 덩컨, 바드의 주위로 흙더미가 불룩 솟아올랐다. 흙더미, 물기가 없는 모래는 옹기종기 얽혀 굵은 창살처럼 변했고, 나무의 줄기처럼 자라난 모래 창살들은 허공까지 치솟아 오르더니 그들의 머리 위로 모래 장막을 쳐버렸다.
순식간에 그들은 모래로 만들어진 간이감옥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네놈들의 목은 가장 나중에 따주마! 그러니 똑똑히 보거라. 마탑에 대항하는 존재들이 어떻게 죽어나가는지!”
그 사이에도 용병들은 마법사들의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구석에 몰린 쥐들처럼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 하나둘 죽어나가고 있었다.
처참한 비명을 내지르며.
벌써 늑대왕 용병대의 대원들 중 삼분의 일에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금도 한 명, 두 명 마법사들의 손에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아그논의 눈에 핏발이 섰다. 금세라도 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나올 듯 붉었다.
아그논은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캉!
모래로 만들어진 창살이건만 오히려 아그논의 검날이 상할 정도로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충격은 고스란히 아그논의 손으로 되돌아왔고, 결국 손아귀가 찢어졌다.
캉캉캉캉― 캉!
아그논은 손이 피범벅으로 변해갔지만 멈추지 않았다.
저마다 살아온 삶은 다르지만 늑대왕 용병대란 이름 아래서 몇 년을 동고동락하며 살아온 이들이다.
늑대왕 용병대는 용병대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해 용병대는 아니다. 늑대왕 용병대의 이름으로 이제껏 활동해온 이는 아그논 자신을 포함해 열 명 안팎에 불과했다.
그들의 대부분은 늑대왕 가이진의 무위에 반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개중에는 다른 용병대에 가입되어 있는 이들도 있었고, 홀로 움직이는 개인 용병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늑대왕 용병대의 이름으로 모여드는 용병들의 정확한 수는 아그논 자신도 모른다. 매번 모이는 이들의 얼굴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이 늑대왕 용병대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으아아아!”
아그논은 발악하듯 기합성을 내지르며 검으로 모래 창살을 내리쳤다.
까깡, 후드득!
결국 창살의 견고함을 이기지 못한 검이 유리처럼 산산이 조각나 땅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그논은 탈진하여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쥐새끼가 발악해 봐야 쥐새끼지. 크하하하!”
“죽어도 널 잊지 않겠다!”
아그논은 원독 가득한 눈으로 몬텔레를 노려보았다.
“무섭구나. 무서워! 크하하하!”
몬텔레는 조롱 어린 몸짓으로 몸을 와르르 떨더니 득의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본좌가 더 무섭게 해줄까?”
* * *
그때 낯선 목소리가 몬텔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그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한 상태였기에 몬텔레의 얼굴은 급속히 굳어졌다.
쿵 쿵 쿵 쿵!
몬텔레가 당황하여 머뭇거리고 있을 때, 탈진해 쓰러진 아그논과 그 앞을 가로막은 창살 사이로 검은 그림자 넷이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삼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돌려 창살 너머로 축 늘어진 왕귀진을 업고 있는 덩컨을 쳐다보았다.
“아이야. 네가 업고 있는 놈이 거……, 그래 가이진. 그놈 맞느냐?”
나이에 맞지 않는 하대였다.
“그,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컨은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순순히 대답했다.
“그럼 네가 늑대왕 용병대 부대장이고?”
“……그렇습니다.”
탈진한 아그논 역시 육중은 위압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존대했다.
자연스럽게 위압감을 드러낸 이는 다름 아닌 흑권이었다.
그런 흑권 곁으로 흑창이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리고는 아그논을 비롯해 왕귀진과 용병들을 가두고 있는 모래 감옥 앞에 섰다.
흑창은 등에 메고 있던 장창을 꺼내들고는 다른 한 손으로 휘휘 내저었다. 뒤로 물러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아그논과 덩컨, 바드는 경황이 없는지라 바로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뒤로 물러나라.”
결국 흑검이 한 걸음 나서며 흑창의 뜻을 대신 전했다.
아그논과 덩컨, 바드가 용병들과 함께 일제히 뒤로 물러나자 흑창이 장창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회전시켰다.
후웅 후웅―
바람을 가르는 파음에 대기가 진동했다.
공기마저 갈기갈기 찢던 장창의 창대가 모래 창살을 갈랐다.
……!
그 어떤 소리도 없었다.
마치 장창의 그림자가 그저 창살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래 창살은 바람에 흩어지는 모래성처럼 땅바닥으로 우수수 무너지며 흘러내렸다.
그러는 사이 흑도가 몬텔레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니까 네가 가이진을 죽이겠다고?”
푸하아악!
걸음을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주위로 거센 바람이 일었다. 흑도가 일으키는 바람은 바로 마력에 의한 마나의 고통스런 몸부림이었다.
“꺼억!”
폭풍과도 같은 무형의 기운이 몬텔레의 목을 쥐어틀자 그의 안색은 파리하게 변했다.
“네, 네놈들은 누구…….”
하지만 몬텔레는 생각한 바를 모두 입으로 꺼내지 못했다.
털썩!
오히려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는 것도 모자라 두려움에 뒷걸음치다 그만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