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29화 (329/351)

# 329

3화

이베른의 목소리는 서서히 커져갔다.

그리고 그 정점에 도달했다.

“마탑은 이 순간부터 하나다. 이 땅에 아레스의 찬란한 빛이 넘쳐 흐르는 그때까지!”

화르르륵― 쏴아아아― 쿠그그그극!

이베른의 몸 주위로 화마와 거센 물줄기, 그리고 흙벽이 솟아났다.

“영면에 드신 셰이머스 마탑주님의 뜻을 이어받아, 이 땅에서 마신과 그 추종자들을 몰아내자!”

카네티 부탑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격앙된 목소리를 지르며 한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몰아내자! 몰아내자!”

카네티 부탑주의 선동에 바다, 샤메일 마탑의 제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울부짖었다.

“아레스의 빛이 영원하길!”

그러자 이번에는 몬텔레 부탑주가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아레스의 품으로 돌아간 벨로 마탑주의 염원을 담아!”

이에 뒤지지 않겠다는 듯 카뮈 부탑주가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

“통합 마탑, 만세, 만세!”

“이베른 만세, 만세!”

환호가 대전을 휩쓸었다.

그 환호를 들으며 이베른의 슬프면서도 굳건한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의 입술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대전의 마법사들은 아무도 그 웃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후우―, 피곤하군.”

이베른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가락으로 찍어내며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소파로 다가가 몸을 파묻자 그를 따라 몇몇의 마법사들이 그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바로 그의 대제자 사크스와 부탑주 마이런, 그리고 세 마탑의 부탑주들인 카네티, 몬텔레, 카뮈였다.

“약속은 꼭 지켜주실 거라 믿겠습니다.”

카네티였다.

조금 전 격분에 찬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차분하면서도 지독하게 냉철한 눈빛으로 이베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베른은 시선을 돌려 그 뒤에 나란히 서 있는 몬텔로와 카뮈를 쳐다보았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몸 곳곳에 상처투성이였고, 안색들은 창백했다.

어쩌면 굴욕적인 항복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자신들에게 내려진 황금 동아줄을 놓치지 않고 움켜잡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이베른이 수족으로 삼은 것이다.

“당연히 지킨다. 나 역시 그대들이 없으면 곤란하니까.”

“약속만 지켜주신다면야 기꺼이 이베른 마탑주님의 손발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카네티가 얇은 입술을 일그러트리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 같아서는 며칠 몸조리할 시간을 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괜찮습니다. 마탑주님.”

카네티가 몬텔레와 카뮈를 대신해 허리를 숙였다.

“당분간 혼선을 막기 위해 체계는 지금처럼 유지한다. 다만 마탑의 이름으로 통일하고, 기존 마탑은 탑으로 격하한다.”

어차피 그 정도는 예상한 바였기에 모두들 수긍하는 바였다.

“통합된 마탑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베른은 말끝을 살짝 흐리며 마이런을 포함한 네 명의 부탑주, 아니 이제 마탑의 이름 아래 각 탑을 책임지는 탑주들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마이런은 순간 눈가를 살짝 찌푸렸고, 나머지 세 탑주는 눈을 반짝 빛냈다.

이베른이 시선.

그것은 단순한 시선이 아니었다.

무한경쟁의 시작을 알리는 눈빛이다.

물론 이베른의 대제자 사크스가 있어 영원히 일인자 자리에는 올라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세상에는 왕만이 권력을 모두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왕 아래 실질적인 제후이자 지배자인 공작도 있다.

하나가 된 마탑.

그건 곧 새로운 제국의 탄생을 의미한다.

새로운 제국의 이인자 자리.

탑주들의 눈빛이 서로 오갔다.

전처럼 의견을 주고받는 시선이 아니다. 서로를 견제하는 눈빛이다.

“마탑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마탑에 반하는 그 모든 것을 이 땅에서 지우는 일이다.”

“흑검탑…….”

누군가의 입에서 케이슨 용병기사단과 흑풍대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검탑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또 하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있다.”

흑사신이다.

특별한 반응은 없었지만 세 탑주의 눈빛을 보건데 그들도 대략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흑사신으로 인해 반파된 마탑 내의 상황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뺨에 새겨져 있는 선명한 상처까지.

“자세한 상황은 마이런 탑주가 설명해주도록.”

이베른의 입에서는 역시 끝까지 힘을 합쳐 일을 해결하라는 명은 없었다.

“그리고 사크스. 너는 최대한 빨리 마탑을 복구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드르륵.

이베른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일주일 후, 마탑이 통합됐음을 세상에 선포할 것이다. 그때까지 성과를 보이도록.”

그 말에 마이런을 비롯한 네 탑주의 눈빛이 변했다.

* * *

빌더 시 남쪽.

시내 외곽에 위치한 자그만 정원을 가진 3층 저택.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임시로 흑검탑 본부로 사용하고 있었다.

“흑풍대주는 어디 계시오?”

케이슨이 다급히 왕귀진을 찾았다.

“늑대왕 용병대와 병합하는 일을 추진하기 위해 아그논 부대장을 만나러 갔습니다만……. 무슨 일로 대주님을 찾으시는지…….”

케이슨은 철용의 말을 들으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 보니 흑풍대가 사용하는 3층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다른 대원들도 모두 다른 용병대의 부대장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철용의 설명을 들은 케이슨은 잠시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게요?”

“알랜이 다녀갔소.”

케이슨은 자신이 왕귀진을 찾은 이유를 이야기했다.

어차피 철용을 통해 전달해도 무방하다 여긴 탓이다.

“흠…….”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흑검탑의 이름으로 반마탑을 선포한 게 불과 삼 일 전이다. 당연히 현재 흑검탑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알랜의 소식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부로 태양의 마탑을 중심으로, 아니 이베른의 주도로 마탑이 통합되었다고 하오.”

“빠르군…….”

생각지도 못한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철용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잡혔다.

“과연 마탑주들의 수장이라 이건가?”

하긴, 마탑주의 수장이라면 중원으로 치자면 구대문파의 수장격인 소림사의 방장과 비견되는 자리일 것이다.

“너무 상대를 얕봤어.”

철용은 조용히 자신을 질책했다.

“일이 어려워지겠군요.”

“그럴 것 같소. 하지만 그보다 더 안 좋은 소식이 있소.”

케이슨의 낯은 몹시 굳어져 있었다.

“통합 마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하오.”

“심상치 않다?”

“알랜 부장의 말에 의하면 마탑이 내부적 불안과 흔들리는 마탑의 지위를 다시 굳건히 세우기 위해 반마탑의 세력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군데군데 포착되고…….”

그때였다.

콰과과과광!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와르르르르―

그 여파로 건물이 지진에라도 휩쓸린 듯 격렬히 몸부림쳤다.

와장창창창!

그 몸부림을 이기지 못하고 창문 몇 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졌다. 산산이 조각난 유리창 너머로 화염이 치솟아 오르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버, 벌써? 어떻게?”

케이슨은 당황한 얼굴로 망연히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알랜 부장의 뒤를 은밀히 뒤따른 모양이오.”

철용은 차분히 상황을 파악하며 거리낌 없이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콰과광, 콰르르르르!

그 와중에도 대규모 살상 마법이 저택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나마 밀러가 공격 방어 마법진을 세워놓았기에 숱하게 쏟아지는 공격 마법에 저택이 힘겹게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대규모 공격 마법을 막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하필 이때!”

철용은 입술을 깨물었다.

흑풍대 전원이라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돌파하겠지만 현재 흑검탑 본부로 사용하고 있는 저택에는 철용 말고 흑풍대는 한 명도 없었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무력이 하르센 대륙에서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해도 무자비한 이 대규모 공격 마법을 뚫고 마법사들을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은 아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다면 못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면 필시 사상자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이제 시작하는 흑검탑의 입장에서는 아니 될 말이다.

콰당.

“케이슨 대장!”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아이작이 들어왔다.

“이곳을 버려야겠소.”

지금의 급박한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케이슨도 아이작의 말에 동의했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겁도 없이 쳐들어왔구나!”

그들이 저택에서 몸을 피신하려는 그때, 밖에서 대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밀러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케이슨의 얼굴이 구겨졌다.

‘광란의 신, 블로흐!’

밀러가 받아들인 어둠의 신이다.

“안 되겠소. 밀러 님은 내가 호위하리다. 케이슨 단장은 단원들을 수습해 이곳을 빠져나가시오. 다음 접선 장소는…… 바람 식당이오.”

철용의 말에 케이슨은 아이작과 눈을 마주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리다.”

“내가 밀러 님과 더불어 남들의 이목을 끌겠소. 그사이 빠져나가시오.”

철용은 말을 끝냄과 동시에 유리창이 깨져 창틀만 남은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정원은 석양이 물드는 저녁 초입처럼 어두컴컴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묵빛을 띤 투명한 막이 저택 위에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엄청난 마력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 방어 마법진 중심을 보니 밀러가 마력을 폭출시키면서 마법진을 지탱하고 있었다.

콰광!

마법진 위로 공격 마법이 떨어질 때마다 흡사 실드처럼 보이는 방어진이 출렁거렸다.

찌지지직― 콰과과광!

결국 대규모 공격 마법을 이기지 못한 방어 마법진 일부가 찢어지며 고서클의 공격 마법 하나가 정원으로 떨어졌다.

“헛!”

철용은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쫘자자자자작!

붉다 못해 오히려 검게 보이는 적색 마나가 정원에 떨어지자 화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열기를 이기지 못한 풀과 나무들은 금세 누렇게 말라갔고, 그 뒤를 이글거리는 화마가 집어삼켰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화마는 정원을 다 잡아먹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저택 벽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불이 아님을 철용은 알았다. 그렇기에 발등을 밟으며 재차 허공으로 몸을 날렸고 힘겹게 지붕 끄트머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 철용은 한 번 숨을 고른 후 다시 잽싸게 지붕으로 올라섰다.

“밀러 님.”

“키키키키키!”

밀러는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호라, 왔구나! 키키키키키키!”

밀러가 한 곳을 쳐다보며 눈빛을 희번덕거렸다.

“잘 보거라, 내 잡놈들을 어떻게 때려잡는지. 키하아아아!”

밀러의 눈동자에서는 짙은 마기가 넘실거렸다.

철용은 밀러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허공에 오연하게 떠 팔짱을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년의 마법사가 있었다.

바로 태양의 탑주, 마이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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