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8
2화
화드드드득!
활활 타오르는 불덩이들이 순식간에 만들어진 붉은 구름에서 지상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벨로를 덮치던 다크메이지들의 몸은 화마를 이기지 못하고 녹아 흘러내렸다.
하지만 다크메이지들은 언데드.
팔다리가 녹아 흘러내리며 떨어져 나갔어도, 심지어는 머리가 반쯤 녹아 사라졌어도 그들은 흉흉한 괴성을 멈추지 않은 채 벨로를 향해 더욱 적의를 드러내며 쉴 새 없이 공격 마법을 퍼부었다.
벨로가 진땀을 흘리며 다크메이지들의 숱한 공격 마법을 막아낼 때였다.
우우우웅!
상당한 마나가 주변 공기를 뒤흔들었다.
벨로는 안색을 굳히며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벨로의 안색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마나의 주인이 바로 오셀로였던 까닭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벨로는 섬뜩한 눈빛으로 오셀로의 뒤쪽 허공에 떠 있는 마현을 올려다보았다.
마현을 죽여야 이 일이 끝난다는 것을 벨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증오감이 들끓어 올랐지만 마현을 죽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셀로의 얼굴을 지나쳐 마현을 올라다보는 벨로의 눈동자에서는 서슬 퍼런 독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으리라. 하지만 네놈 역시 기필코 죽일 것이다!’
오셀로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한없는 자애.
마탑주들 사이에서도, 조화, 스플린 마탑 내에서도 그의 그런 내리사랑은 유명했다.
평생 마법과 권력에 미쳐 살았던 벨로였다.
벨로가 오셀로를 제자로 받아들였을 때 그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갓난아이였다. 그런 오셀로가 벨로에게 처음 했던 말이 바로 ‘아빠’였다.
물론 사고력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오셀로가 그 단어의 의미를 알고 말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벨로의 가슴은 뭉클했고 삶의 희열로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날 이후, 오셀로는 벨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자식이 되었다.
비록 양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는 오셀로를 자신의 지식으로 내내 마음속에 담아온 것이다. 어차피 그에게 양자나 제자나 거기서 거기였기 때문이다.
벨로에게 있어 오셀로는 바로 그런 존재였다.
그런 오셀로가 눈앞에서 죽었다.
그리고 마현의 손에 의해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언데드가 되어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
벨로에게는 삶의 마지막 끈이 끊어진 셈이다.
‘사랑한다, ……아들아!’
그동안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내 하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오셀로에게 해 줄 수 있는 벨로의 마지막 사랑은 영원한 안식을 갖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그것을 위해서 지금 자신의 목숨마저 던지려는 것이다.
미안함과 사랑, 그 복잡한 심경이 담긴 벨로의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다.
결심을 굳힌 벨로의 신형이 오셀로를 훌쩍 뛰어넘어 마현 앞으로 날아갔다.
그런 벨로의 주위로 흡사 돌풍이 부는 것처럼 거친 바람이 휘몰아쳤다. 순수한 마나에 의한 상황이었다.
조소를 머금고 있던 마현의 표정이 어느새 싸늘하게 바뀌어 있었다. 오셀로를 바라보는 벨로의 눈빛을 읽은 탓이다.
“여흥은 끝이다!”
마현의 몸에서 무섭게 폭사된 마기가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했다.
“큭!”
공명하던 마나가 동결되자 벨로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듯 신음을 토해냈다.
“대기가 힘을 가지니 모든 것을 짓밟는다, 헤비 그래피티(Heavy gravity)!”
쿵!
주위의 마나를 순식간에 장악한 마현의 마기는 감당할 수 없는 중력이 되어 허공에 떠 있는 벨로를 가차 없이 아래로 짓눌렀다.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벨로는 빠르게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크허억!”
그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떠는 벨로의 입에서 한 사발의 피가 토해졌다.
“윈드 커터, 리터레이트!”
마현의 주위에서 마나가 허공의 공기를 모아 날카로운 검날로 만들었다.
쑤아아악!
그렇게 만들어진 네 개의 바람의 검날은 벨로의 양팔과 양다리를 가차 없이 잘라버렸다.
서걱!
팔과 다리가 절단된 벨로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한 차례 몸을 바르르 떨더니 고통에 찬 신음을 토해냈다.
그런 벨로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뚝 떨어졌다.
―크하아아!
바로 오셀로였다.
오셀로는 벨로를 내려다보며 적의에 찬 흉소를 터트렸다.
“오, 오셀로야…….”
벨로는 오셀로를 향해 반 이상 잘린 오른팔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마치 그의 뺨을 어루만지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셀로의 눈동자에는 적의에 찬 살기, 그 이상도 그 이하의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오셀로의 양손에서 다시금 붉은 기운을 토해내는 불덩이가 만들어졌다.
화르르륵!
피부를 태워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에 벨로의 머리카락이 조금씩 그을렸다.
“카, 카칸! 네놈은……, 끄으으! 죽어서도 저주를 퍼부을 것이…….”
콰과광!
원독에 찬 마지막 유언을 끝맺기도 전에 벨로의 머리는 불덩이에 휩싸여 활활 타올랐다. 그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꼼지락거리던 마지막 몸부림을 끝으로 벨로의 신형이 물먹은 솜처럼 바닥에 축 쳐졌을 때였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한 줄기 바람이 오셀로의 목을 스쳤다.
툭!
그리고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오셀로의 머리가 벨로의 배 위로 툭 떨어졌다가 바닥을 뒹굴었다.
털썩, 우당탕탕탕!
곧이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던 다크메이지들이 끈 떨어진 꼭두각시들처럼 바닥으로 툭툭 쓰러졌고, 그 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벨로가 죽고, 그의 대제자 오셀로가 죽었다. 그리고 마기가 끊어지며 다른 마법사들도 비로소 영원한 죽음의 안식에 들어갔다.
속 시원한 복수.
하지만 마현의 입술은 뒤틀어져 있었다.
“젠장!”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기분이 나빴다.
원인은 오셀로를 향해 한없는 자애를 보여준 벨로의 모습 때문이리라.
* * *
태양, 스피네타 마탑 3층.
3층은 하나의 공간으로 마치 광장처럼 보일 정도로 상당한 규모의 대전이었다.
그 대전 중앙에 족히 백여 명은 될 법한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절반가량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그런 그들을 단단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때 3층 대전의 문이 열리며 이베른이 굳은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대전 중앙으로 걸음을 내딛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마법사들을 에워싼 태양 마탑의 마법사들이 물러나며 길을 터주었다.
“어,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이베른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갑이 지났을 법한 노년의 마법사가 검게 그을린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본 마탑의 마탑주는 어디 계시오?”
다른 장년의 마법사도 분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장 마탑주께서 돌아오시면 이 상황을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또 다른 장년의 마법사가 몸을 일으키며 격분에 찬 일갈을 내질렀다.
“카네티 부탑주.”
이베른은 잔잔하면서도 서글픈 목소리로 처음 소리를 지른 노년의 마법사, 바다, 샤메일 마탑의 부탑주인 카네티의 이름을 불렀다.
“몬텔레 부탑주, 그리고 카뮈 부탑주.”
이어 대지, 듀락의 부탑주와 조화, 스플린의 부탑주를 차례로 불렀다.
털썩.
이베른이 갑자기 그 셋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밖에 일을 처리하지 못해 내 너무 미안하네. 정말로 미안하이.”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상체를 깊게 숙인 이베른의 얼굴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
“……!”
예상치 못한 이베른의 행동에 세 부탑주는 당황한 눈빛을 띠었다.
“하, 하지만…….”
그중 가장 젊어 나름 패기가 살아 있는 조화, 스플린 마탑의 부탑주인 카뮈가 반기 어린 목소리를 내뱉으려 했다.
“카뮈 부탑주. 먼저 내 말을 들어주지 않겠나? 모든 걸 듣고도 내가 용서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 내 목을 쳐도 원망하지 않겠네. 진심일세.”
카뮈는 의혹이 가득 찬 눈을 한껏 부릅떴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베른의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눈물이 한가득 맺혀 있었다.
“……크, 크흐음!”
어느새 카뮈도 더 이상은 문제를 거론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카뮈 부탑주.”
“마, 말씀하…… 하시지요.”
“먼저 비보를 전해 미안하네. 지금쯤 벨로 마탑주, 그 친구…… 그 친구는 명을 달리했을 것일……, 큭!”
이베른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어렵게 참는 모습이었다.
“뭐, 뭐라고요? 마, 마탑주께서…….”
“함정일세. 함정에 빠졌어.”
결국 이베른은 고개를 아래로 힘없이 떨어뜨렸다.
“카칸, 마신을 섬기는 그 흑마법사의 사악한 함정에 빠졌네, 벨로 마탑주가…….”
너무 놀란 나머지 카뮈는 입을 벌렸지만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저 눈만 끔뻑거릴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늦어버렸네. 미안하네, 정말로 미안하이.”
이베른은 마치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카뮈를 향해 고개를 깊게 숙였다. 카뮈는 너무나도 큰 충격에 빠져 엉덩이에서 철퍽 소리가 날 만큼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베른은 고개를 돌려 카네티 부탑주와 몬텔레 부탑주를 쳐다보았다.
“그 비통한 소식을 셰이머스와 카밀로와 함께 들었네. 20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마신의 추종자가 살아 있을 줄은 우리도 몰랐었어. 그 간악한 자가 마신의 힘을 이용해 설마 다시 살아났을 줄은…….”
절절하기 이를 데 없는 이베른의 목소리에 대전에 있는 마법사들은 모두 무엇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그래도 주신의 은총과 부신 아레스의 가호가 있어서……. 그분들의 살핌에 이 세상을 지옥에 빠트릴 마신의 추종자, 카칸이 8서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
“헉!”
“8, 8서클?”
참담함이 담긴 경악성이 대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우리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레스가 주신 시련이 아니겠는가? 우리 셋은 아레스가 주신 시련이기에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지. 아레스의 영광을 위해…….”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습니까?”
누군가의 재촉이었다.
“있었네. 방법이…….”
이베른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대답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또 다른 재촉이 터져 나왔다.
이베른은 그런 마법사들의 다급한 재촉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닫았다. 그의 감긴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각자의 종신에서 떠나 아레스의 품으로 모이는 것.”
“……?”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베른은 곧이어 그 말을 풀이했다.
“하여 평생을 동고동락해 온 친우들이 나에게……, 이 못난 나에게…… 마나를 주고…… 아레스의 품으로 갔다네.”
이베른은 부탑주들을 향해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끄으으.”
그런 이베른의 몸은 가늘게 떨렸고, 입에서는 서러움 가득한 울음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미약하게 흘러나왔다.
“그, 그 말씀은…….”
간단하지만 너무나도 명료한 설명이 아닌가.
그렇지만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기에 대전 안은 침묵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함께한 친우들이 이 못난 몸에게 준 죄, 살아 있는 동안 평생 갚아 나가겠네. 하지만…….”
이베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 땅에서 마신과 마신의 종자들을 모두 지우고 난 후 스스로 죄를 갚을 것일세. 그러니 모여 주시게, 나를 중심으로. 마신과 그 종자들을 추종하는 이들이 감히 찬란한 아레스의 땅을 넘볼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