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27화 (327/351)

# 327

1화

인간의 몸에는 하나의 마나만 흐른다.

그 말인즉슨 몸에 흐르는 마나의 색도 하나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베른의 심장 주위엔 붉은 마나, 푸른 마나, 그리고 황토빛 마나가 새끼줄처럼 배배 꼬여 있었다. 서로의 마나가 섞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하나가 되지도 않은 묘하게 공생하는 형색이었다.

화르르륵.

붉은 마나가 활성화 되자 이베른의 동공이 붉게 변했다.

익숙한 느낌.

그건 바로 자신이 평생을 함께한 태양의 신 스피네타 고유의 마나였다.

이베른은 붉은 마나를 살짝 죽이며 푸른 마나를 일으켰다.

쏴아아아―

거대한 해일처럼 푸른 마나가 이베른의 몸을 휘감았다. 동시에 이베른의 눈동자는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것은 바다의 신 샤메일의 푸른 마나였다.

바다는 거세지만 한편으로 청명하다.

하지만 이베른은 슬쩍 낯을 찌푸렸다.

그에게 있어 이런 청명함이 오히려 불쾌하게 느껴진 까닭이다. 아무리 같은 빛의 부신, 아레스의 종신들의 마나라고는 하지만 종신들 사이에서도 상생과 상극을 의미하는 각자의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종신들 중에서는 바로 태양의 신, 스피네타와 바다의 신, 샤메일이 상극을 대표하는 두 종신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포용해야 할 마나가 아닌가.’

이베른으로선 아무리 상극의 성질을 띤 마나라 해도 조심스럽게 융화를 시켜야 했다. 그것은 장차 익숙해져야 할 느낌이고, 힘이었다.

이베른의 눈동자 색이 다시 황갈색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대지의 신, 듀락의 황토빛 마나를 일으킨 것이다.

웅장한 대지의 힘이 발에서부터 머리까지 가득 차올랐다. 마치 광야를 내달리는 듯한 중후하고 충만한 힘이 느껴졌다.

붉은색, 푸른색, 그리고 황갈색으로 변했던 이베른의 눈동자가 잠시 후 본래의 녹색으로 되돌아왔다.

꾸욱.

마나를 일곱 개의 서클로 갈무리한 이베른은 강렬해진 힘에 도취되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한일(一) 자로 굳게 다물어져있던 입술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크하하하하하!”

짙어진 미소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은지 이베른은 결국 광소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렸다.

‘네놈이 제아무리 8서클이라고 해도…….’

이베른의 눈동자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쿵쿵쿵!

그때 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승님, 사크스입니다.”

“무슨 일이냐?”

“샤메일 마탑에서 셰이머스 마탑주를 찾고 있습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이베른은 문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딸깍, 하고 잠긴 문이 열리자 사크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셰이머…….”

셰이머스 마탑주를 찾던 사크스는 방 안에 이베른밖에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님, 다른 마탑주 분들께서는…….”

사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베른은 사크스를 쳐다보며 강렬한 눈빛을 뿌렸다.

“사크스, 지금 가서 부탑주를 불러오너라. 당장!”

이베른의 단호한 명령에 사크스는 일체의 의문을 접고 허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사크스는 서둘러 나간 후, 곧 부탑주 마이런과 함께 이베른의 연구실로 되돌아왔다.

“부르셨습니까, 마탑주님.”

마이런이 이베른 곁으로 다가왔다.

“이 시각 이후 셰이머스, 카밀로 마탑을 우선으로 해서 모든 마탑들을 차례로 접수한다.”

“그, 그 무슨…….”

마이런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고개를 번쩍 들고 이베른을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태양의 마탑은 이제 마이런, 부탑주 자네의 것이다.”

의문이 가득한 명이었지만 그보다 이베른이 던진 제안은 너무나도 달콤한 꿀과 같았다.

평생 태양의 마탑에 몸을 담아온 마이런이었다.

젊은 시절 그 역시 마탑주 자리를 원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이베른 밑에서 그는 승승장구하며 젊은 나이에 부탑주 자리에 올랐었다.

그리고 훗날 이베른이 은퇴하면 마탑주 자리도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적어도 사크스라는 아이가 이베른의 대제자가 되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하지만 대제자 사크스가 마흔 살에 접어들며 6서클에 오르자 그는 한동안 암울한 나날들을 보냈다.

사크스는 자신보다 10여 년이나 빨리 마법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였으니까.

마이런는 그때 마탑주가 되겠다는 꿈을 버렸다.

부탑주의 지위가 그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점이자 더는 올라갈 수 없는 한계라 여겼다. 그렇다고 회한이 남지 않은 건 아니었다. 체념했다고는 하지만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마탑주의 자리는 가슴 한구석에 앙금처럼 남아 평생의 한이 되어 굳게 틀어박혀 있었다.

그에게 마탑주는 죽어서야 단념할 수 있는 평생의 염원인 것이다. 마침내 지금 그 기회가 온 것이다.

마이런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당장 모든 제자들을 소집하겠습니다.”

“마이런 부탑주. 그대는 바다, 샤메일 마탑을 맡으라. 그리고 사크스. 너는 대지, 듀락 마탑을 맡아라.”

“명!”

마이런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젊은이들처럼 걸걸한 목소리로 복명했다.

자신의 자리일 줄 알았던 마탑주의 자리가 날아갔건만 사크스는 싱글벙글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사크스는 눈치가 빨랐다.

그리고 총명했다.

그렇기에 이베른이 그린 그림의 전체 윤곽을 본 것이다.

“최선을 다해 접수하겠습니다, 스승님.”

사크스와 마이런이 다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카칸!’

모두 나간 후 이베른은 마현의 모습을 떠올렸다.

‘고맙다! 너로 인해 망설임 없이 더 강한 힘을 취할 수 있게 해줘서. 나는 다시 너를 밟고 전설을 이룰 것이다!’

그 순간 이베른의 눈동자에서는 붉은빛, 푸른빛, 황토빛이 교묘하게 어울리며 빛을 발했다.

* * *

사신 카디악.

그는 죽음을 관장하는 어둠의 신이다.

그렇기에 죽은 언데드들의 부활에 그 어떤 신보다 더 깊게 관여한다.

―크하아악!

언데드로 다루기 힘든 자들은 살아 있을 때 보통 신을 섬기는 직종에 몸담고 있었을 경우이다.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신관이나 성기사, 그리고 일종의 신성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종신들의 권능을 이어받은 백마법사들이 거기에 속했다.

과거에는 조화, 스플린 마탑의 제자들을 언데드의 일종인 다크메이지로 감히 부활시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로 사신 카디악의 권능이 마현의 마력 속에서 힘을 발휘한 것이다.

비록 그들이 조화의 종신, 스플린의 권능을 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 이상 죽는 순간, 사신 카디악의 죽음에 권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다시 그들을 언데드로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크하하하!

벨로의 수제자인 오셀로가 섬뜩한 사기를 풀풀 풍기며 언데드 특유의 음산한 괴성을 다시금 내질렀다. 그런 오셀로의 양손 위에 검붉은 불덩이가 피어올랐다.

순수한 사기와 마기로 재탄생되었기 때문이었다.

쿠오오오!

얼굴을 굳힌 오셀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벨로를 향해 불덩이를 날렸다.

“헙!”

사색이 된 벨로는 반격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급히 몸 주위에 실드를 쳤다.

콰과광!

실드 위를 가득 덮는 화마 위로 몇 개의 불덩이가 더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로는 실드 안에 몸을 웅크린 채 반격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에게 있어 오셀로는 자식과도 같은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찢어죽일 놈! 너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결국 벨로는 실드에서 튀어나와 광기 어린 살심을 드러냈다. 그리고는 플라이 마법과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 마현 앞으로 튀어나가 마력을 폭사시켰다.

“광풍이 대지의 모든 것을 파괴하리라, 토네이도 어택. 화염의 근원인 순수한 불이 뒤를 이를 것이리라, 퓨어 파이어(Pure fire)!”

조화를 상징하는 스플린의 권능을 사용하는 벨로답게 그는 그 어떤 속성에 편중되지 않은 채 자유자재로 마현을 향해 마법공격을 퍼부었다.

조화 스플린의 권능은 그 장점만 놓고 본다면 최강의 마탑이 되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이 같은 파격적인 장점이 있으면 그 반대급부로 일어나는 단점도 있는 법.

그건 똑같은 7서클의 대인살상마법을 펼쳐도, 아니 다른 그 어떤 마법을 펼쳐도 그 위력은 절반을 약간 상회할 정도라는 것이다.

쏴아아아― 화르륵―

거대한 토네이도, 회오리바람이 마현을 덮쳤고 그와 동시에 바람과 상생이 잘 어울리는 불이 더해졌다. 하지만 마현이 거기서 느끼는 압박감은 네이폴의 토네이도 어택 마법을 받을 때보다도 덜했다.

그나마 상생 작용을 이용한 중첩 마법으로 인해 약점을 간신히 덮었을 뿐이었다.

“훗!”

마현은 가소롭다는 듯 씩 웃으며 마치 빙판에서 미끄러지듯 허공에서 뒤로 주르르 물러났다.

파밧!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튀어 올라왔다.

그것은 바로 벨로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대제자 오셀로였다.

―크하아아!

오셀로는 안광을 번뜩이며 흉소와 함께 다시 불덩이를 만들었다.

그 모습에 벨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비록 죽어 언데드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차마 소멸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아슬아슬한 위기에 처하자 그로선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벨로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조금 전 시전한 것은 마력을 최대한 일으킨 대인살상 마법이었다.

그걸 회수하기 위해 마나 공명을 끊는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반발력은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벨로는 가차 없이 토네이도 마법과 퓨어 파이어 마법 사이의 공명을 끊어버렸다.

빠직!

마치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파음이 벨로의 심장에서 들려왔다. 이어 벨로의 입가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그 순간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에 떠 있던 그의 몸이 휘청거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콰과광!

그러는 사이에도 벨로는 아쿠아볼로 오셀로가 날린 두 불덩이를 무력화시켰다.

그 여파로 벨로는 처박히듯 바닥에 내려섰다.

―크하하하!

―크하아아!

힘겹게 몸을 바로세운 벨로의 뒤로 또 다른 흉소가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온 조화, 스플린 마탑의 마법사들이었다.

비록 서클은 떨어졌지만 그들은 일제히 벨로를 향해 공격 마법을 날렸다.

숱한 불덩이와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들, 창처럼 예기를 드러낸 물화살들이 벨로를 향해 퍼부어졌다.

“바람이 분노하나니, 레이지 오브 토네이도(Rage of tornado)!”

그의 목소리에도 그의 마법처럼 분노가 담겨 있었다.

쿠아아아아앙!

바람이 만들어낸 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거친 굉음이 그의 몸 주위에서 솟구쳤다.

그 바람은 하나의 방어막이 되어 그의 몸에 떨어지는 숱한 살상 공격 마법을 분쇄시키고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거친 회오리바람 사이에서 몸을 드러낸 벨로의 표정은 흡사 악마처럼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모든 땅을 뒤흔들지어다, 사이즈 트레머(seismic tremor)!”

거센 회오리바람이 땅으로 스며들자 이번에는 땅거죽이 요동쳤다.

그그극, 콰그그극!

거친 힘을 이기지 못한 땅바닥은 육중한 울음을 토해내며 갈라졌다.

―크하아악!

일제히 공격 마법을 퍼붓던 다크메이지들은 벨로가 만들어낸 지진 마법에 휩쓸렸다. 하지만 이미 인성이 사라진 존재들이라 더욱 짙은 흉성을 터트리며 어떻게든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할 뿐이었다.

“화마가 지상을 덮치니, 파이어 레인!”

오셀로와 달리 벨로는 다크메이지로 변한 다른 제자들을 상대할 때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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