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
23화
“어떻게 할까요, 마탑주님?”
“크흠!”
“마탑의 일도 있으니 거절할까요?”
요즘 가뜩이나 마탑의 일로 머리 아팠다.
그러던 차에 이 기회에 적당히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아니야, 가지. 자네가 적당한 인물들로 선발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은 언제로 잡을까요?”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마탑주님.”
* * *
흑도와 흑창은 태양, 스피네타 마탑이 훤히 보이는 골목길 어귀에 모여 있었다.
“이것들이 더 이상 밖으로 나돌아다니지 않는다 이거지?”
흑도는 마탑을 올려다보며 냉소를 터트렸다.
첫 복수행 이후 마탑 소속 마법사들은 마탑 밖으로 일체 외출을 하지 않았다. 꼭 거북이가 등껍질 안에 몸을 꽁꽁 숨긴 것처럼.
“이봐, 흑창.”
흑도는 고개를 돌려 흑창을 쳐다보았다.
흑창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쳐들어가야 잘 쳐들어갔다고 주군께서 기뻐하실까?”
흑도의 질문에 흑창이 빠르게 8층 높이의 마탑을 훑었다. 그러더니 손을 뻗어 태양, 스피네타 마탑 2층의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비단 2층뿐만 아니라 마탑 벽면에는 듬성듬성 창문들이 열려 있었다.
“2층 창문이라……. 음트트트트.”
흑도는 흑창의 의견이 마음에 들었는지 괴이한 웃음을 터트렸다.
2층이면 빠르게 치고 빠지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럼 갈까?”
흑도가 먼저 걸음을 내딛으려는 그때 흑창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왜?”
흑창이 차가워진 눈빛으로 8층 꼭대기 층 창문을 가리켰다. 흑도도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8층 창문으로 옮겼다.
“음?”
잠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가 이내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8층 창문으로 이베른의 얼굴이 잠깐 보인 것이다.
“인사나 하고 쳐들어가자고?”
흑도의 말에 흑창이 씨익 웃더니 근처 바닥에서 자그만 돌멩이 두 개를 집어들었다.
“크크크크크.”
흑도는 흑창이 무얼 하려는지 알아차리자 짓궂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맞춰 흑창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더욱 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퉁! 퉁!
흑창의 손에 들린 자그만 돌멩이 두 개는 약간의 시간차를 둔 채 강기를 머금고 빛살처럼 8층 창문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흑도와 흑창의 신형은 마탑 2층의 창문으로 쏘아져나갔다.
* * *
“마탑 외출을 금한 뒤로 더 이상의 피해는 없습니다, 스승님.”
이베른은 사크스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더냐?”
“면목 없습니다, 스승님.”
“십좌왕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아니란 말이지.”
이베른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십좌왕도 아니고 케이슨 용병기사단도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란 말이냐?’
이베른은 내심 그들이 관여했을 거라 짐작했었다.
사크스의 조사에 의하면 그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제3의 세력이 또 있다는 뜻이다.
카칸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친분을 쌓은 이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이 일로 세 마탑주와 회동을 갖고 논의를 해봤지만 뾰족한 답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회동 이후 마법사들의 외출을 금했고, 그 뒤로 더 이상의 피해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임시 조치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무작정, 그리고 언제까지나 마탑 제자들의 외출을 금할 수는 없었다.
또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마탑을 향한 외부의 시선들이다.
지금은 조용히 사태를 주시한다고 받아들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도 해결을 하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은 마탑이 적이 무서워 웅크리고 있다고 떠들어댈 게 분명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흐르게 되면 대륙에 뿌리 깊게 심어놓은 마탑의 권위가 흔들린다.
‘답답하구나, 답답해!’
분명 마현의 망령임에 틀림없는데 그 이상 알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이베른은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해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베른은 창틀을 강하게 움켜잡았다.
“사크스.”
“하명하십시오, 스승님.”
“지금부터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흉수를 찾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이거라. 이 일에 너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게다.”
이베른의 단호한 명령에 사크스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곧 그의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알겠습니다.”
“나가 보거라.”
사크스가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리고 이베른이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틀었을 때였다.
핑.
미약한 파공음이 이베른의 귓가를 때렸다.
이어 응집된 마나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머리털이 곤두섰다.
‘암습!’
이베른은 서둘러 마나를 일으켰다.
“실드!”
그리고 창문에서 물어나며 빠르게 방어막을 쳤다.
와장창창창!
하지만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이베른의 실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암기에 부서졌다.
소드마스터의 혼신이 실린 오러가 아닌 이상에야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 실드였다.
그런데 마치 돌멩이에 유리창이 힘없이 깨지는 것처럼 실드가 부서졌다.
핑-
‘이, 이런!’
이베른의 얼굴빛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귓가를 스치는 파음과 서슬 퍼렇게 날이 선 오감에 걸려드는 섬뜩한 살기.
암기는 하나가 아니었다.
이베른은 재빨리 창문 아래로 몸을 웅크렸다.
치직!
몸을 완전히 숙이기도 전에 이베른의 뺨이 뜨거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큭!”
이베른은 벽에 몸을 숨기며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얹었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자 이베른의 얼굴도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축축했다.
뺨에 얹었던 손바닥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스, 스승님!”
밖으로 나가려던 사크스가 놀라 허겁지겁 이베른에게로 달려왔다.
그때였다.
콰과과과광!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마탑이 지진에라도 휩쓸린 것처럼 몸부림치는 진동이 느껴졌다.
“마, 마탑주님. 적이 쳐들어왔습니다!”
부마탑주 마이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베른의 집무실로 뛰어 들어왔다.
* * *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인 본좌가 주군의 복수를 위해 친히 나섰노라! 으음화화화화홧!”
흑창이 창을 바닥에 강하게 쿵 찍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미친!”
흑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흑창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강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 누가 본좌를 막을 것이냐!”
흑창은 창을 들어 올려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한 마법사를 가리켰다.
“너냐?”
흑창의 시선을 대하자 마법사는 고개를 요란하게 좌우로 흔들어댔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마법사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너로구나!”
흑창은 그 마법사 앞으로 훌쩍 몸을 날려 창을 휘둘렀다.
후우우웅!
창의 궤적이 반월을 그리더니 마법사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퍽!
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창과 배 사이에서 터졌다.
“으아악!”
마법사는 비명을 지르며 허공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바닥에 쿵 떨어져 그대로 혼절하고 말았다.
그때 흑도와 흑창의 시선이 동시에 한 곳으로 모아졌다.
상당한 마나를 가진 이들이 2층으로 빠르게 내려오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둘은 시선을 교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쩝, 아쉽군!”
흑도가 난장판이 된 마탑 2층을 눈으로 쓱 훑으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창문으로 몸을 돌렸다.
“흑도, 본좌가 누구던가? 바로 진우주천상천하유아독존고금제일천하무쌍우내무적창이 본좌가 아니던가! 아쉬움마저 날려주지!”
흑창이 창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후우우우웅!
흑창의 몸에서 엄청난 마력이 폭사되었다. 그리고 그 마력은 창에 가득 담겼다.
“너, 너 설마!”
흑도가 입을 쩍 벌렸다.
“우움, 화화화화홧!”
흑창은 창을 휘둘러 바닥을 찍었다.
콰광!
엄청난 충격에 바닥이 뒤틀렸다.
쩌적, 쩌저저적!
창이 내리꽂힌 곳을 중심으로 바닥에 금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크크크크크. 그래 네가 진우주…… 에, 뭐시기. 하여튼 그거다!”
“본좌는 한다면 한다!”
흑도와 흑창은 동시에 창문 밖으로 모습을 감췄다.
우르르르 콰과광!
2층 바닥이 고스란히 1층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
“살려줘!”
수많은 마법사들의 비명이 그 안에 묻혔다.
번쩍!
동시에 2층 바닥이 있던 위치에 이베른을 비롯해 부마탑주 마이런, 대제자 사크스와 마탑의 중추를 이루는 수뇌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바닥이 없어 그들은 일시 당황했다. 마법사들은 간신히 플라이 마법을 시전해 바닥에 나뒹구는 꼴사나운 모습만은 겨우 모면했다.
“이, 이…….”
허공에 뜬 이베른의 얼굴은 그야말로 야차와도 같았다. 완전히 부서진 2층을 내려다보는 그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결국 분노를 가누지 못한 이베른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로 인해 힐링 마법으로 겨우 응급 치료만 했던 뺨의 상처가 다시 터지며 핏물이 1층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태양의 마탑이 흑도와 흑창의 손에 아수라장이 되고 있던 그 시각.
테누타 왕궁 외성에 위치한 워프게이트진에 페로스 공작과 왕실수석마법사인 엘프레터가 서 있었다.
“뜬금없이 워프게이트진 설치와 정비라니요?”
엘프레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로스 공작에게 물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본 이유는 현재 테누타 왕국에서 손보거나 새로이 설치할 워프게이트진은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가 알기로는 그랬다.
왕국 내 워프게이트진의 운용을 담당하는 왕실수석마법사이기에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질문에 페로스 공작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조만간 알게 될 걸세.”
엘프레터는 자신이 모르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엘프레터는 자신의 직분을 잘 알고 있었고, 페로스 공작이 곧 알게 될 거라는 말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우웅.
잠시 후 워프게이트진 옆에 설치된 수정구에서 수신음이 울렸다.
“엘프레터 님. 조화, 스플린 마탑에서 좌표 승인을 요청해왔습니다.”
왕실마법사가 다가와 보고했다.
“승인하게.”
“알겠습니다.”
엘프레터의 허락에 왕실마법사는 워프게이트진으로 돌아가 순간이동을 위한 좌표를 열어 승인했다. 잠시 후 두 워프게이트진이 공명하며 은은한 마나가 흘러나왔다.
저벅 저벅 저벅!
워프게이트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양이 증폭되었을 무렵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엘프레터는 무심결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너는?”
엘프레터는 너무 놀라 그만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뒤에 나타난 이는 바로 마현이었다.
“수고했소, 페로스 공작.”
페로스 공작은 굳은 얼굴로 엘프레터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