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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21화 (321/351)

# 321

20화

“손님, 무엇으로 드릴까요?”

어린 티가 풍기는 점원의 말에 흑도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소리쳤다.

“가장 독한 술!”

그 모습에 흑권은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다면 럼주로 드릴까요?”

술 말고도 간단한 안주거리를 몇 가지 곁들여 시켰다.

어차피 몇 안 되는 요리를 팔고 있어서인지 럼주와 안주거리는 금방 나왔다.

“으흐흐흐흐!”

흑도는 음침한 웃음을 터트리며 럼주 뚜껑을 땄다.

그리고는 코를 내밀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좋구나!”

흑도는 혼자 추임새까지 넣은 후 흑사신들에게 술 한 잔씩 따른 후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그리고는 단숨에 쭉 들이켰다.

“크흐으으! 좋다, 좋아!”

흑도는 몸을 부르르 떨며 감격 어린 감탄사를 연신 터트렸다. 그리고는 흡족하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시라도 빨리 주군을 뵈어야 할 이 시간에 술이라니……, 쯧쯧쯧.”

흑검이 그런 흑도를 보며 오만가지 인상을 쓰는 것도 모자라 들으라는 듯 혀까지 찼다.

“놔 두거라. 그래도 몇 년 만에 마셔 보는 술이지 않나? 그러지 말고 흑검, 자네도 한 잔 하게.”

흑권이 럼주병을 들어 흑검에게 권했다.

흑검의 술잔이 채워지자 이번에는 흑창이 조용히 흑권 앞에 놓인 술잔에 럼주를 채웠다. 흑창은 조용히 술잔을 들어 허공에 치켜든 후 술을 쭉 들이켰다.

그 모습에 흑검은 고집을 그만 접기로 했는지 결국 술잔을 들었다.

“크크크.”

그 모습에 흑도가 노골적으로 음침한 소리로 비웃었고, 그 소리에 흑검이 다시 발끈하려는 때였다.

“허어, 사실인가?”

옆자리에 용병으로 보이는 자들이 우르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니까.”

“십좌왕들이 설마 반마탑을 선언할 줄이야.”

“십좌왕들뿐인가? 케이슨 용병기사단도 반마탑에 동참했다고 하더군.”

“휘유, 이거 대륙에 또 한 번 피바람이 부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

흑사신들은 마현과 관련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잠시 술잔을 내려놓고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말이야.”

한 사내가 목소리를 슬쩍 낮췄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들었는가?”

“재미난 소문이라도 있는 겐가?”

사내의 동료들 역시 몸을 앞으로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카칸이라는 이가 있었지 않은가? 원래 십좌왕이 그의 수하였다는구먼.”

“에이. 그건 이미 소문날 대로 소문이 난…….”

“어허, 내가 다 아는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는 줄 아는가?”

사내는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자연스레 용병들은 더욱 몸을 숙였고, 흑사신들도 그 사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케이슨 용병기사단과 십좌왕이 반마탑을 선언한 배경이 말일세.”

사내는 한 박자 쉬며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트로켄 대 테누타 왕국 전에 마탑주들이 은밀히 움직여 카칸을 죽였다고 하더군.”

“뭐라……?”

놀란 음성이 탁자에서 터지기도 전이었다.

퍼석!

술잔이 부서지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우당탕탕탕!

의자가 거칠게 넘어지는 소리가 뒤이어 흘러나왔다.

대화를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사내들이 인상을 찌푸리며 흑사신이 앉아 있는 탁자로 고개를 막 돌리려는 때였다.

흐릿한 검은 그림자가 소문을 이야기하던 사내 앞에 불쑥 솟아났다.

바로 흑도였다.

흑도는 험악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손을 뻗어 사내의 목을 움켜쥐고는 눈앞까지 번쩍 들어올렸다.

“너, 다시 말해 봐!”

흑도의 눈에서는 시퍼런 살기가 폭사되었다.

“이 무슨 짓이냐!”

“이 새끼들이?”

사내의 동료들이 저마다 병기에 손을 얹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무형의 기운에 눌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흑도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들을 쳐다보는 흑도의 눈에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살기가 폭사되고 있었다.

“죽고 싶나?”

단 한 마디에 사내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흑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보았다.

“다시 말해 봐.”

“끄으으……. 뭐, 뭐를 말입니까?”

하지만 목이 잡힌 탓에 사내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카칸이 죽었다니?”

“사, 사실이…… 커헉!”

흑도가 분기를 참지 못해 손에 힘이 더 들어갔고, 그로 인해 사내는 목이 졸려 기절하기 일보직전까지 몰렸다.

“흑도.”

흑권이 흑도 곁으로 다가와 어깨를 가볍게 쳤다.

“크헉! 헉헉헉!”

흑도의 손에서 풀려난 사내는 그동안 막혔던 숨을 허겁지겁 몰아쉬었다.

“저, 정말이오. 오늘, 오늘 흑마법사 카칸의 장례식이 치러졌소. 정말이오.”

흑권의 눈동자가 파르르 요동쳤다.

그의 눈은 금세 충혈되었다.

“그 말이 사실이오?”

“용병길드 본부 앞에서 장례식이 있었소. 그 자리에서 십좌왕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반마탑을 공식적으로 선언을 했었소. 저, 정말이오.”

그 순간 흑권의 몸에서도 항거할 수 없는 기운이 폭사되었다. 그 역시 평정심이 잠시 흐트러진 것이다.

“어, 어떻게?”

흑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비틀거렸다.

“마탑주들이 죽였다고 그랬나?”

“그, 그렇게 소문이 돌고 있소. 그 부, 부분에 대해서는 두 와, 왕국과 십좌왕, 케, 케이슨 용병기사단 모두 함구하고 있기에 아, 아마도 사실일……. 크으으으!”

흑도의 몸에서 서서히 마력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사내의 말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살기에 무형의 마력까지 가해지자 엄청난 마력이 순식간에 식당을 뒤덮었다.

저벅 저벅 저벅.

흑도는 아무 말 없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식당을 벗어났다. 이미 그의 얼굴에서 취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어 나머지 세 흑사신도 서둘러 흑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흑도는 대로 한가운데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흑도의 몸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흑도야.”

흑권은 조용히 흑도에게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짚었다.

“대장.”

흑도가 고개를 돌려 흑권을 쳐다보았다.

“아니지?”

“…….”

흑도의 물음에 흑권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일단 왕 대주부터 찾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흑검이 흑창과 함께 다가왔다.

흑권은 그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깊은 생각에 잠긴 것이다.

“아니다. 우리는 왕 대주를 찾아가지 않는다.”

“……?”

흑검이 놀란 눈으로 흑권을 쳐다보았다.

흑창도, 흑도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정면으로 마탑과 싸울 것이다. 우리는 어둠이 된다. 실체가 없는 어둠의 사신이 되는 거다.”

흑권의 눈은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살심으로 번뜩였다.

“어둠의 사신…….”

그 뜻은 살수가 되자는 뜻이다.

“우리의 손으로 주군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흑권은 고개를 돌려 흑도, 흑검, 그리고 흑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일단 알랜을 찾자. 그라면 주군의 죽음에 대한 전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어둠의 사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흑풍대에게 전하면 된다.”

* * *

늦은 밤.

알랜은 용병길드 본부 자신의 사무실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책상에는 위스키 한 병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휴우.”

짙은 주향이 배인 무거운 한숨을 내쉬는 그의 얼굴은 매우 지쳐 보였다. 또한 그의 표정에는 언뜻 슬픔이 내비쳐졌다.

복잡한 상념들을 털어내려는 듯 그는 옆에 놓인 비어 있는 커다란 잔에 술을 콸콸 따랐다. 그리고는 냉수를 들이키듯 벌컥벌컥 위스키를 목에 퍼부었다.

“크윽!”

술이 독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일까.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응?’

알랜은 책상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미간을 좁혔다.

“아직 퇴근 안 했…….”

알랜은 취기로 흐려진 눈을 하고서 고개를 들었다.

“……!”

책상 앞에 서 있는 그림자를 보자 그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다, 당신은?”

“다행이군. 나를 알아봐서.”

그의 앞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흑권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흑검과 흑도, 흑창이 서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알랜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 왔소.”

알랜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알아차리고는 무슨 일로 왔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탁자와 소파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알랜은 책상 위에 있던 위스키 병을 들고는 약간 비틀거리며 응접탁자로 걸어가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으시오.”

알랜의 맞은편에 흑사신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알고 싶은 것이 카칸 경에 관한 것이지요?”

“그에 관해 모든 것을 말해주시오.”

“확실한 것 말고 심증의 것까지도?”

알랜의 물음에 흑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칸 경이 전쟁 중에 사망했다고는 허나……, 지금 내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오.”

알랜은 쓴웃음을 지었다.

“카칸 경을 죽인 건 네 마탑주가 틀림없소. 왜냐하면…….”

* * *

―너의 근원이 나임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나를 찾지 않은 것이냐?

‘아이벤!’

마현은 군신 아이벤의 목소리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보이는 건 칠흑 같은 어둠뿐.

분명 강렬한 마법에 휘말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에 휩싸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내가 지금 서 있는 건가? 아니면 누워 있는 건가?’

몸을 허우적거려 보았지만 몸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분명 손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왔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의 근원이 나임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나를 찾지 않은 것이냐?

다시 한 번 똑같은 말이 들려왔다.

목소리는 들리는데 실체는 보이지 않았다.

또한 아이벤의 목소리도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머릿속에서 울리는 공명음과도 같았다.

“군신 아이벤이시여.”

마현은 군신 아이벤을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마현은 의미 없는 부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군신 아이벤이 자신에게 원하는 건 대화가 아니었다. 마현을 통해 세상에 현신하길 바라는 게 분명했다.

잠시의 망설임은 있었지만 마현에게 다른 것을 선택할 기회는 처음부터 없었다.

군신 아이벤의 권능으로 인해 자신의 몸에서 스승 허진의 흔적은 옅어지겠지만, 어쨌거나 살아남아야 다시 그를 볼 것이 아닌가? 또한 자신에게는 허진 외에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인물이 둘이나 더 있었다.

설린, 그리고 손정.

한 사람은 사랑하는 이고, 또 한 사람은 마음이 통하는 친우였다.

‘가리라, 반드시 나의 땅으로.’

마현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결심을 굳히고 엄지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붉은 피로 아이벤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오방성 마법진을 그렸다.

“군신 아이벤의 권능을 받아들이겠나이다. 그로 인해 미천한 종은 이 땅에 당신의 위엄을 알리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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