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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11화 (311/351)

# 311

10화

“카칸 경.”

풍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는 마현 곁으로 총사령관 버드런트 공작이 다가왔다.

“말씀하십시오.”

“어제…… 새로이 합류했다는 두 용병 말이오.”

버드런트 공작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카일과 노빅 말입니까?”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물론 이 전쟁에 한해 임시로 붙여준 것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카일과 노빅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마현은 아무것도 모른 척 반문했다.

“아, 아니오. 그냥 오늘 아침 그 둘을 본 수하들 중 하나가 왠지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를 닮은 것 같다는 이상한 보고를 해서 말입니다.”

“그 둘은 어제 전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 같소만.”

“이 넓은 대륙에 그 둘을 닮은 사람이 없겠습니까? 아마도 우연의 일치일 거 같습니다.”

그다지 마현의 말을 신뢰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버드런트 공작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례를 저질렀다면 용서를…….”

“아닙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마현은 미소로 그를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주군.”

그때 카이샨 메일을 입은 왕귀진과 철용이 다가왔다.

그들이 입고 있는 카이샨 메일은 트로켄 왕국의 문양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 둘 뿐만 아니라 다른 흑풍대도 카이샨 메일을 입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단 삼 일뿐이겠지만 흑풍대원 2인이 1조가 되어 트로켄 왕국 기사단을 이끌기로 어젯밤 작전회의에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기사인데 용병들에게 지휘를 받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왕국 기사들에게 수치가 될 법도 하건만 그들은 기꺼이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최약소국이기에, 그 최약소국의 기사였기에 순순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것은 기사로서의 자존심보다 오로지 나라를 지키는 것을 최우선 당면과제로 여겼기에 가능했으리라.

마현이 고개를 돌려 버드런트 공작을 쳐다보았다. 그는 승낙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나의 명은 없다. 각자 역량에 맞춰 알아서 출전하도록.”

“명!”

“명!”

왕귀진과 철용은 짧게 복명하고는 임시로 편성된 기사단을 향해 흩어졌다.

“저도 실례하겠습니다.”

마현은 말머리를 돌려 밀러와 함께 트로켄 왕국의 마법병단이 모여 있는 후방으로 향했다.

* * *

콰과과광!

달리고 있던 케이슨 용병기사단 앞에 불덩이가 툭 떨어졌다. 단순한 불덩이가 아니라 마법으로 만들어진 지극히 파괴적인 불덩이였다.

그로 인해 피어난 화마는 순식간에 전장을 집어삼켰다.

‘주군!’

케이슨은 이 마법을 시전한 이가 마현임을 알아차렸다.

마현의 마법으로 인해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어렵지 않게 검은여우 용병대 지척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두두두두두!

그때 검은여우 용병대 양옆에서 두 무리의 기사단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검은여우 용병대 사이에서 미겔과 그의 측근들이 하나의 기사단처럼 뭉쳐 튀어나왔다.

케이슨 용병기시단은 아차 하는 사이에 테누타 왕국의 2개 기사단과 검은여우 용병대에 둘러싸인 것이다.

후퇴하기에도 이미 시간이 늦어버렸다.

그 짧은 시간에 테누타 왕국 측 보병들이 후미를 장악한 것이다.

“단장!”

아이작이 굳은 표정으로 케이슨을 불렀다.

하지만 케이슨은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홀로라면 마음 편히 미겔을 향해 돌진했겠지만 그러기에는 단원들의 목숨이 더 소중한 까닭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위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었다.

“감히 나에게!”

미겔이 흉흉한 살기를 머금은 채 케이슨을 향해 바스타드소드를 겨누었다.

그때였다.

“으아악!”

“적이다!”

포위망 한쪽에서 갑자기 소란이 일며 죽음의 단발마가 터져 나왔다.

케이슨이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트로켄 왕국 측 2개의 기사단이 양옆으로 달려와 테누타 왕국 측 2개의 기사단을 급습한 것이었다.

‘……가이진.’

기사단 선두에는 한 마리 사자처럼 용맹을 떨치는 왕귀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검세옥이 보였다.

‘세이크!’

서걱!

“으아아악!”

왕귀진과 검세옥은 월등한 무력을 앞세워 단단하게 구축된 포위를 단숨에 무너트렸다.

“어이어이, 거기서 그렇게 미적거려서 미겔이라는 그 간사한 자의 목을 딸 수 있겠소?”

왕귀진이 씩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케이슨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소.”

“뭘 이런 걸 가지고.”

왕귀진은 그 인사를 쑥스럽게 받아들이며 다시 검을 들었다.

“가자!”

왕귀진은 말고삐를 꽉 말아 쥐며 군마의 아랫배를 힘차게 걷어찼다.

두두두두!

그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드리치와 히메네스가 케이슨을 지나쳐 검은여우 용병대로 뛰어 들어갔다.

후우웅!

안드리치의 할버드가 거센 바람소리와 함께 공기를 찢어발겼다.

쐐애액!

히메네스의 롱소드가 가로막는 이들을 가차 없이 베어 넘기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수비조차 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격일변도.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났지만 개의치 않는 듯 두 사람은 더욱 매섭게 할버드와 롱소드를 휘두르고 베어나갈 뿐이었다. 마치 이것이 생애 마지막 싸움이라고 마음을 먹은 듯.

“죽지 않았던가?”

미겔은 갑옷 곳곳이 찌그러져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안드리치와 히메네스를 보며 뺨을 씰룩거렸다.

“너를 죽이기 전까지는 못 죽지.”

안드리치가 미겔을 보며 이죽거렸다.

그 소리에 송충이처럼 굵은 미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후우웅!

미겔의 몸에서 흉흉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살기는 바스타드소드에 오러를 만들어냈다.

“죽어라!”

히메네스가 먼저 튀어나왔다.

그는 일갈을 내지르며 미겔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그의 군마가 힘차게 뒷발을 찼다.

쐐애애액!

그런 그의 앞을 막아서는 용병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히메네스는 롱소드에 오러를 담아 막아서는 용병을 베어갔다. 하지만 그를 가로막는 용병의 검에도 오러가 담겨 있었다.

‘오러?’

검은여우 용병대에 소드마스터는 미겔밖에 없었다. 그런데 검은여우 용병대 속에서 또 다른 소드마스터가 나온 것이다.

놀라움으로 의해 히메네스의 눈이 커졌고 두 검에 실린 오러와 오러가 부딪혔다.

쾅!

폭음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큭!”

뜻하지 않은 일격에 히메네스는 내부가 진탕되며 미약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런 히메네스를 향해 낯선 용병이 투핸드소드를 휘둘러왔다.

짙은 오러를 머금은 채.

그런 용병의 얼굴이 히메네스의 눈에 들어왔다.

한 번 본 적이 있다.

바로 테누타 왕국의 지휘실에서.

그가 앉아 있던 자리는 테누타 왕국 측 지휘관석이었다.

테누타 왕국 측 소드마스터가 용병으로 위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젠장!’

히메네스는 속에서 기어 나오려는 욕지거리를 애써 삼키며 그의 검을 맞이했다.

쾅 쾅 쾅!

응수가 한 발 늦어진 히메네스는 용병으로 가장한 소드마스터의 공격을 고스란히 막기에도 힘에 버거웠다. 그러다 보니 진탕된 내부는 더욱 뒤틀렸다.

그로 인해 비릿한 피가 목에서 울컥 나왔지만 히메네스는 꿀꺽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위급한 상황은 안드리치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용병으로 가장한 소드마스터에게 가로막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브라, 아이작!”

케이슨은 서둘러 둘을 불렀다.

“둘을 도와줘, 어서!”

“알겠습니다.”

가장 먼저 튀어나간 것은 아이작이었다.

별로 마음에 드는 명령은 아니지만 두 사람은 군말 없이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주위를 빠르게 살핀 케이슨은 미겔을 노려보며 바스타드소드를 뽑아들었다.

아이작은 말고삐를 살짝 당겨 안드리치를 몰아치는 테누타 왕국 측의 소드마스터의 후미로 군마를 몰았다. 그리고는 그의 등을 향해 투핸드소드를 휘둘렀다.

후우우웅!

“헙!”

아이작의 오러가 담긴 일검에 적국 소드마스터는 헛바람을 들이마시며 재빨리 몸을 숙였다.

사삭!

아이작의 투핸드소드는 아슬아슬하게 그의 등을 놓쳤다.

군마의 등에 바싹 엎드린 테누타 왕국 측 소드마스터의 눈에는 당황함이 역력했다. 정보에 의하면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소드마스터의 수는 셋이었고, 거기에 맞춰 전술을 짜서 나왔기 때문이다.

아이작의 공격으로 인해 바싹 엎드린 테누타 왕국 측 소드마스터. 그의 훤히 드러난 등은 안드리치에게 있어 맛좋은 먹이나 다름없었다.

“하압!”

안드리치는 그의 몸집에 걸맞은 걸걸한 기합성을 터트리며 치켜든 할버드를 적의 등판에 그대로 내리찍었다.

후웅!

공기가 갈기갈기 찢겨지며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들은 테누타 왕국 측 소드마스터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안드리치의 공격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던 것이다.

테누타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군마를 버려야만 했다. 미끄러지듯 군마의 등에서 뛰어내린 테누타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등으로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쿵!

상당한 충격이 있을 법한데도 테누타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몸을 몇 바퀴 구른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히이잉!

그런 그의 얼굴을 향해 앞발을 치켜든 아이작의 군마가 내려찍고 있었다.

“힉!”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목을 향해 안드리치의 할버드가 휘둘러졌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테누타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재빨리 검을 들어 할버드를 막아섰다.

콰광!

하지만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인해 테누타 왕국의 소드마스터는 휘청거리며 또다시 뒤로 몇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은 그런 그의 등을 노렸다.

쐐애애액!

온몸에 휘도는 마나를 폭발시키듯 투핸드소드를 빛살처럼 찔렀다.

푹!

북의 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만들어지며 흉측하게 찌그러진 카이샨 메일 사이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꺼억!”

이어 한껏 억눌린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걱!

안드리치는 그런 그의 목을 단숨에 쳐냈다.

머리가 잘려나간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안드리치의 몸을 흥건하게 적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리치는 그 피를 피하지 않았다.

안드리치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할버드를 비스듬히 내리며 아이작을 쳐다보았다.

“빚은 갚았다.”

안드리치의 무뚝뚝 목소리에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왠지 모를 불길함이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나온 것이다.

안드리치의 시선이 아이작의 어깨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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