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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10화 (310/351)

# 310

9화

‘이 정도면 제아무리…….’

특급 어쌔신은 문득 든 상념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암살 대상자가 소드마스터인지 마법사인지 구별이 묘해서였다.

‘뭐 상관없겠지. 천하의 그 누구라도 이 정도면 깊은 잠에 빠졌을 거야.’

조용히 눈을 뜬 특급 어쌔신은 다시 검게 칠한 단검을 꺼내 여전히 천천히 소리를 죽여 군막 지붕의 천을 길게 잘랐다. 하지만 특급 어쌔신은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적당한 공간을 만든 특급 어쌔신은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처럼 군막 안으로 스르륵 스며들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인 특급 어쌔씬에게 유일하게 빛이 드러난 것은 눈동자뿐이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어둠 속에 묻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 터였다.

특급 어쌔신의 눈동자가 빠르게 여러 개의 침상을 훑었다.

‘저기다!’

깊게 잠든 마현의 얼굴을 확인한 특급 어쌔신은 소리 없이 마현의 침상 위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마현의 가슴을 향해 빠르게 단검을 내리꽂았다.

그 순간이었다.

깊게 잠든 줄 알았던 마현이 눈을 번쩍 뜬 것이다.

‘헙!’

특급 어쌔신은 너무도 놀라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늦었어!’

어떻게 잠에 빠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단검은 마현의 심장을 노리고 있었다.

푹!

‘느, 느낌이 없다!’

특급 어쌔신의 눈은 화등잔처럼 커졌다.

단검이 심장에 꽂히는 순간 침상에 누워 있던 마현의 신형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것이다.

‘어, 어떻게?’

특급 어쌔신이 재빨리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려는 순간이었다.

부웅!

군막 안 광경이 뒤집어졌다.

천장은 아래로, 바닥은 위로.

쿵!

이어 등에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컥!”

처음으로 특급 어쌔신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운신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이 아니었기에 특급 어쌔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묵직한 발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특급 어쌔신은 가슴을 짓누르는 발을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쌔액―

하지만 단검은 허공만 베었을 뿐이었다.

쾅!

조금 전보다 강한 충격이 특급 어쌔신의 가슴을 강타했다.

“크억!”

극심한 고통에 특급 어쌔신의 몸이 활처럼 휘며 바르르 떨렸다. 부릅떠진 눈은 고통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 눈을 보라!”

기이한 검은 기운, 마기가 특급 어쌔신의 눈으로 스며든 것은 한순간이었다.

그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군막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단원들은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바로 특급 어쌔신이 대롱으로 흘려보낸 독성이 강한 수면 연기 때문이었다.

마현은 특급 어쌔신의 가슴에서 발을 떼며 침상에 앉았고, 특급 어쌔신은 그런 마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름?”

“없습니다.”

“소속은?”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백야.”

“이곳에 투입된 인원수는?”

“일곱.”

“일곱이라…….”

생각보다 많은 수가 투입되었다.

“백야의 특급 어쌔신은 모두 투입된 것인가?”

“그렇습니다.”

마현의 질문에 특급 어쌔신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십좌왕 중 육인을 암살하기 위해 저와 동시에 살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곧 소식이 들려올 것이다.

“피와 달은?”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대략 열 명의 특급 어쌔신이 투입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열 명?”

“…….”

아마도 특급 어쌔신의 수는 백야보다 피와 달이 더 많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피와 달과 백야, 두 어쌔신 길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평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질적으로는 백야의 특급 어쌔신이 더 뛰어난 모양이었다.

‘하긴 일곱 중 여섯만 성공해도 이 내기가 걸린 의뢰를 이기는 셈이기는 하군.’

수적으로 열세이다 보니 백야에서 먼저 선수를 치고 나온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마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고개를 군막 천장으로 올린 마현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마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마현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케이슨 용병기사단 군막이 내려다보이는 허공이었다.

백야의 특급 어쌔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둠 속에 한 그림자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마현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그 그림자 옆으로 다가갔다.

“피와 달인가?”

“헉!”

마현의 속삭이는 듯한 질문에 피와 달 소속 특급 어쌔신은 기겁성을 터트렸다.

마현이 가볍게 마나탄을 이용해 그의 수혈을 짚자 피와 달 소속 특급 어쌔신의 신형은 힘없이 허물어졌다. 마현은 그를 어깨에 메고는 다시 군막 안으로 돌아왔다.

백야 소속 특급 어쌔신처럼 마현은 피와 달 소속 특급 어쌔신을 깨우며 섭혼술로 혼을 쥐어틀었다.

“피와 달인가?”

“그렇습니다.”

백야 소속 특급 어쌔신처럼 그 역시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살행이었나?”

“아닙니다.”

“아니다?”

“백야의 움직임이 포착되어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백야는 모두 움직였다.

조만간 흑풍대에게 제압되어 이곳으로 올 것이다.

“백야와 피와 달이라…….”

생각에 잠긴 마현의 입언저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

‘후후.’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군막으로 모여드는 흑풍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1시간 후, 모든 피와 달의 특급 어쌔신들을 소집시켜라. 접선 장소는 네가 선택한 후 통보하도록.”

“알겠습니다.”

피와 달 소속 특급 어쌔신은 마현의 명에 대답하고는 신기루처럼 허공에서 모습을 감췄다.

“주군.”

그가 사라진 것과 동시에 군막 안으로 왕귀진이 한 사내를 어깨에 맨 채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다섯 명의 흑풍대가 왕귀진처럼 각자 한 명씩 백야의 특급 어쌔신들을 제압한 상태로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흑풍대는 왕귀진의 명에 따라 그들을 일렬로 눕혔다.

마현은 그들을 깨워 모조리 섭혼술을 걸었다.

“마탑주들을 암살하라!”

마현은 이들을 이용해 역으로 마탑주들에게 잠 못 드는 밤을 선사한 것이다.

* * *

히메네스의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 색, 그리고 눈매가 달라져 있었다. 자신의 바뀐 얼굴이 너무 이상한지 히메네스는 거울을 보며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전체적으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미묘하게 얼굴 모양세가 변해 있었고, 전과 달리 애꾸눈이 된 터라 쉽게 자신의 신분을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이다.

히메네스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살피다가 마현의 뒷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흑마법사.’

흑마법사라고 했고, 모두 그렇다고 하니 분명 흑마법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젯밤 본 그 검술은 무어란 말인가?’

소드크리에이터는 아닐지 몰라도 여타 소드마스터와는 확실히 그 경지가 달랐다.

그 정도 경지면 마검사일 텐데 분명 흑마법사라고 했고, 다른 이들도 흑마법사라고 했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해?”

자신처럼 얼굴 생김새가 달라진 안드리치가 다가왔다.

“아니야, 아무것도…….”

히메네스는 마현에게서 눈을 뗐다.

어차피 어제의 내기로 인해 좋든 싫든 2년 10개월 동안 그를 따라다녀야 한다.

‘같이 있다 보면 곧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히메네스는 무거운 마음을 털어내듯 한숨을 내쉬며 거울에서 시선을 뗐다.

“준비 다 했나?”

그런 히메네스와 안드리치 뒤로 아이작이 다가왔다.

“받아.”

아이작은 손에 들린 미스릴 용병패를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에게 던졌다.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용병패를 살짝 손을 본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히메네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미스릴 용병패를 품에 넣었다.

“맞아.”

아이작은 자신의 본심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아이작은 용병이기 이전에 뼛속까지 기사다.

그렇다 보니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에 대해 은근히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둘도 아이작의 신분을 알았기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2년 10개월 동안 함께해야 하며 자신의 등을 맡겨야할 동료라는 사실을 아이작은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잘 부탁하지.”

“나도.”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의 말을 들은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렸다.

“집합하라는 주군의 명이다.”

아이작이 먼저 군막을 빠져나가고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는 자신의 병기를 챙겼다.

“후우.”

그들은 서로 약속이나 한듯 무거운 숨을 내쉬더니 아이작을 따라 군막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에는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마현 앞에 집결해 있었다.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는 케이슨 용병기사단 소속으로 편입되었기에 케이슨 옆으로 다가가 섰다.

“앞으로 선두는 무조건 너희 둘이다. 알았나?”

마현의 말에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는 고개를 숙였다.

“알았습니다.”

“좋아. 오늘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목표는 검은여우 용병대다.”

마현의 짧은 명에 안드리치와 히메네스의 눈빛이 반짝였다.

“케이슨 단장.”

“예, 주군.”

“히메네스, 그리고 안드리치.”

“하명하십시오.”

“셋 중 누구라도 상관없다. 오늘 무조건 검은여우 용병대의 대장 미겔을 제거하라.”

마현의 명에 케이슨의 눈빛은 날카로워졌고, 안드리치와 히메네스는 주먹을 억세게 말아 쥐고 눈을 빛냈다.

“명!”

“명!”

셋은 짧게 복명했다.

“그리고 나머지 단원들은 셋의 뒤를 충분히 받쳐 주도록.”

마현의 명에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절도 있게 군례를 취하며 복명을 대신했다.

“가라!”

출전 명이 떨어지자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일제히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검은여우 용병대의 깃발이 휘날리는 적진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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