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08화 (308/351)

# 308

7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죽어도 내가 먼저 죽겠다는 그 말뿐이다.”

말을 끝내고는 마현 또한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였다.

“쳇. 주군이 수하들에게 허리를 숙이면 어쩌라는 거야?”

역시나 깐죽거림의 주인은 제이든이었다.

“그 말투도 오늘까지만 봐주지.”

“쳇!”

살짝 이마를 찌푸리는 마현과 그것에 투덜거리는 제이든의 눈에는 웃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나저나 밀러 님이 안 보이는군.”

케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진 곳에 놓여 있는 야전 침상으로 마현을 안내했다. 그 야전 침상에는 밀러뿐만 아니라 안드리치와 히메네스도 함께 누워 있었다.

밀러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이니 그렇다고 쳐도 안드리치와 히메네스는 의외였다. 더욱이 그 둘은 트로켄 왕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장 참수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배신자였으니 말이다.

“차마 전장에서 죽는 것을 볼 수 없어 데려왔습니다.”

“흠…….”

마현은 안드리치와 히메네스를 내려다보며 침음했다.

“누가 오지랖 넓은 단장이 아니랄……, 흡, 음음, 음.”

제이든이 다시 이죽거리려 하자 그레오가 솥뚜껑만한 손바닥으로 급히 입을 막아버렸다.

“어떻게 하고 싶은가?”

마현은 케이슨에게 자연스레 하대했다.

“주군의 뜻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케이슨의 모습도 자연스러웠다.

적어도 그 두 사람은 이미 마음속으로 서로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뜻이리라.

“일단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지.”

마현은 시선을 돌려 밀러를 쳐다보았다.

마나 고갈로 인해 혼절해서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은 것이다. 아마 두어 시간 후에는 정신을 차릴 것이다.

‘역시 광란의 신 블로흐는 과연 다르군.’

밀러는 마나를 고갈시키면서까지 흑마법을 펼친 것이다. 즉, 밀러는 앞뒤 가리지 않고 자신의 한계까지 마법을 펼친 까닭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힘을 드러냈다.

마현은 그 덕분에 좀 더 쉽게 마법병단에게로 다가갈 수 있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싶군.’

마현은 그 셋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렸다.

“일단 자리하지.”

마현을 중심으로 흑풍대와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

“다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지.”

이베른의 목소리는 공기마저 바닥으로 끌어내려 앉힐 정도로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 무거운 목소리에 눌려 다급히 모인 셰이머스와 카밀로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베른은 눈을 감은 채 침묵을 지켰다.

셰이머스와 카밀로는 차마 그 침묵을 깨트리지 못한 채 침음을 삼켰다.

딸깍.

방문이 열리고 벨로가 안으로 들어왔다.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가 안으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이베른은 눈을 뜨지 않았다.

벨로는 비어 있는 의자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게 되었나?”

더는 침묵을 참지 못하고 카밀로가 급히 물었다.

그 목소리에 내내 눈을 감고 있던 이베른이 조용히 눈을 떠 벨로를 쳐다보았다.

“마법병단……, 전원 ……사망.”

벨로의 말에 셰이머스와 카밀로는 울분이라도 감추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두 사람의 감긴 눈동자는 똑같이 가늘게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네이폴은……, 서클을 잃고 ……폐인이 되었네.”

“네이폴까지…….”

이윽고 굳게 닫혀 있던 카밀로의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이베른.”

셰이머스가 한껏 긴장한 목소리로 검지로 미간을 문지르고 있는 이베른을 불렀다.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묻고 있는 셰이머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진정하게.”

이베른이 눈동자만 움직여 셰이머스를 쳐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이베른의 말에 셰이머스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흥분을 터트렸다.

그러자 이베른이 분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셰이머스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으며 허리를 낮추고 낮게 윽박질렀다.

“진정하라는 내 말 못 들었나?”

이베른의 눈에서 살심이 쏟아져 나와 셰이머스의 눈을 뒤덮었다.

그 살심에 셰이머스의 입술은 파랗게 질리며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흥분해 봐야 우리 목숨만 갉아먹을 뿐이야. 내 말 알아듣겠나?”

이베른은 비록 셰이머스를 향해 말했지만 벨로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비단 셰이머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님을. 이베른의 경고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마현의 생존을 안 이후 잠시 흥분에 빠져 냉철함을 잃었던 이베론이 점차 평정심을 회복하고 있었다.

‘다행이군.’

벨로는 다시 냉철해진 이베른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든 싫든 암묵적으로 이베른은 이 자리에 모인 마탑주들의 우두머리였다. 그리고 어느 마탑주들보다 냉정하고 결단력이 있었다.

그 상황을 모르는 셰이머스만이 죽자 살자 머리를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좋아.”

이베른은 셰이머스의 어깨를 꽉 쥔 후 그의 뺨을 가볍게 두들겼다.

“벨로.”

“말하게.”

“실시간으로 전장의 상황을 보고받게. 그리고 여차하면 전장으로 갈 수 있는 워프게이트진을 확보해 놓고.”

벨로의 대답은 당연히 바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는 이베른이 다시 당부했다.

“그러니까 일단 준비만이라도 해놓으라는 것이야.”

“알겠네. 준비해 놓겠네.”

벨로도 상황의 심각함을 알기에 순순히 대답했다. 제아무리 각 왕국과의 협정서가 중요하다지만 그것도 자신이 살아야 유효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인가?”

이베른의 차가운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분명 틈이 있을 것이야! 틈이!’

이베른은 입술을 깨물었다.

* * *

병사들에게 저녁이 배급될 시각.

일찌감치 식사를 마친 지휘부는 중앙지휘실에 모여 작전회의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 주체는 총사령관인 버드런트 공작이 아닌 마현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작전의 개요는 아주 간단합니다.”

마현은 탁자 옆에 세워진 커다란 지도에 지휘봉을 가져다댔다.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테누타 왕실을 볼모로 잡아 전쟁을 끝낸다, 이것입니다.”

마현의 말이 가져온 파장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한 지휘관의 입에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첫 전쟁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지만 솔직히 너무 황당한 작전이 아닌가.

당연한 반응이다.

“소수 정예로 단숨에 테누타 왕국의 수도, 왕궁으로 향할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작전이오. 어떻게 소수만으로…….”

마현은 그 지휘관을 향해 몸을 틀었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누구나 실천할 수 없는 작전. 그 이유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오.”

지휘관의 말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할 수 없는 이유는?”

거듭된 질문에 지휘관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제아무리 소수 정예라고는 하지만 왕실까지 뚫고 갈 가망이 없다고 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만약…….”

마현은 탁자에 손을 얹으며 버드런트 공작을 비롯해 다른 지휘관을 둘러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7서클의 흑마법사, 10명의 소드마스터가 그 전제조건이라면?”

마현의 입술에는 당당한 웃음이 걸렸다.

“아! 거기에 트로켄 왕국의 최정예 기사 10명이 포함된 구성이라면?”

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렇게 도합 21명이 움직이지만, 최대 병력은 21명 외에도 어둠에서 몸을 일으키는 100기의 다크나이트가 존재한다면?”

지휘관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로서도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 무력인 까닭이었다.

과거 하르센 대륙을 좌지우지했던 두 제국, 아니 더 나아가 역사상 어느 국가도 그 정도 무력을 가진 경우는 없었을 것이다. 굳이 역사책을 펼쳐보지 않아도 그 답은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했다.

“그대의 이름은?”

“월코트 자작이오.”

마현의 물음에 지휘관은 이마에 흥건히 맺힌 땀을 닦으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애매한 경지군. 굳이 표현하자면 소드익스퍼트 최상급 초입?”

마현의 말에 월코트 자작은 흠칫했다. 마현이 정확하게 자신의 경지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이 작전에 월코트 자작을 넣고 싶습니다.”

마현은 고개를 돌려 버드런트 공작을 쳐다보았다.

“휴우.”

버드런트 공작은 고뇌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고심은 하고 있으나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전반적으로 양국의 전력 차이는 너무도 컸다. 앞으로 계속될 전쟁을 매번 승리로 이끈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달리 그 방법 외에는 현재 일말의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분히 현실적이지 못한 작전이나 그 작전만이 트로켄 왕국을 살릴 유일한 희망이었다.

“허락하겠소.”

마현은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월코트 자작. 나머지 9명은 그대가 선별하시오. 기한은 3일 후까지.”

일방적인 명령이었다.

월코트 자작은 고개를 돌려 버드런트 공작을 쳐다보았다. 버드런트 공작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알겠소. 부족함이 없는 기사들로 모으겠소.”

“좋습니다.”

마현은 탁자에서 몸을 뗐다.

“이 작전이 반드시 성공하려면 버드런트 공작과 케이슨 용병기사단의 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조국이 승리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소.”

어차피 모 아니면 도다.

도박과도 같은 작전이었다.

성공할 확률은 지극히 희박해 보였지만 그건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작전이지만 버드런트 공작은 어쩌면 성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렬한 예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나와 흑풍대가 전력에서 빠지면 테누타 왕국과의 전력 차이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 그것을 절감하고 있을 줄 압니다.”

마현이 무얼 말하려는지 버드런트 공작은 알아차렸다.

“어차피 열세였던 우리였소. 반드시 현 전선을 지켜내겠소.”

그 말에 마현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러면 피해가 너무 큽니다.”

마현은 몸을 돌려 지휘봉을 지도 위에 얹었다.

그곳은 현 전선으로부터 약 20~30킬로미터 뒤쪽이었다.

“이곳까지는 내줘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이 이상은 위험하다는 건 누구보다 총사령관께서 더 잘 알 것이라 봅니다.”

“그리하리다. 꼭 카칸 경의 말대로 하리다. 그러니…….”

버드런트 공작은 눈동자에 굳은 결의를 담았다. 그리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우리는 사흘 후, 출전할 겁니다. 그날부터 열흘에서 보름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전선을 지켜야합니다.”

“알겠소이다.”

버드런트 공작은 마현의 말에 주먹을 억세게 말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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