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5화
“후후후.”
네이폴의 입술이 모아지며 차가운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네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지. 그래 중요하지 않아.”
네이폴의 입술 끝이 살짝 말려 올라갔다.
“그냥 다시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을.”
네이폴의 몸에서 바람의 기운이 담긴 빛의 마나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거기에 맞춰 그 옆에 포진하고 있는 여섯의 6서클 마법사의 몸에서도 마나가 내뿜어졌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마현의 웃음은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흑풍대!”
마현이 고개를 살짝 틀며 소리쳤다.
“명!”
“명!”
마현의 짧은 호명에 마법병단 주위 공간에서 대기를 가르며 복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열 개의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헉!”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모습을 드러낸 흑풍대의 모습에 네이폴과 마법병단의 마법사들은 기겁성을 터트렸다. 이곳이 비록 테누타 왕국의 본진 한복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변을 기사들이 삼엄하게 보호하고 있는 본진이었다.
자신들의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기사들과 정예 병사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철통 수비를 하고 있는 곳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자신들 주위에 열 명의 낯선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너희들의 죽음으로 나, 카칸의 부활을 알릴 것이다!”
차분하고 담담하던 마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 소리는 시퍼런 비수가 되어 네이폴의 심장을 찔렀다.
후우우우웅!
마현의 말이 떨어지자 마법병단을 에워싸고 있는 흑풍대의 몸에서 엄청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칠흑같이 어둡고 끈적끈적한 마기는 마법병단을 강하게 압박했다.
푹 푹 푹!
땅거죽이 터지며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땅속에서 나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크크크크!
―캬캬캬캬!
검은 투구의 뻥 뚫린 동공에서 검푸른 인광이 터져 나왔다. 흑풍대가 다크스켈레톤을 대신해 새로이 권속시킨 다크나이트들이었다.
열 명의 흑풍대, 그리고 백 기의 다크나이트.
“다, 다크나이…….”
마법병단 소속의 한 마법사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다크나이트의 흉흉한 안광에 경악성을 터트렸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서걱!
다크나이트의 손에서 펼쳐진 검은 검광이 단숨에 그 마법사의 몸을 양단해 버린 것이다.
푸학!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후두둑!
핏물은 그 주위에 있던 마법사들을 덮쳤다.
수백의 기사와 병사들이 철통 수비를 하는 곳으로 연이어 사람들이 나타나고, 다크나이들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넋을 잃고 바라만보고 있던 마법사들이 동료의 피를 뒤집어쓰자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다, 다크나이트다!”
마법병단을 에워싸듯 모습을 드러낸 다크나이트들의 존재로 인해 주변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뭣들 하나? 어서 정화 마법과 빛의 마나를 뿌려라!”
가장 먼저 평정을 되찾은 네이폴이 주변을 둘러보며 냉철하게 명을 내렸다.
정화 마법을 펼치기 위해 6서클의 여섯 마법사가 빠르게 빛의 마나를 끌어올렸다.
“내가 누구인지 잊은 모양이군.”
마현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네이폴 지척에 위치한 6서클의 여섯 마법사의 중앙이었다.
쐐애애애―
마현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팽그르르 돌며 6서클의 여섯 백마법사 중 둘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서걱!
머리 두 개가 툭 바닥으로 떨어지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눈앞에서 동료 둘이 죽었다.
그 죽음은 정화 마법을 준비하던 나머지 네 명의 6서클 마법사의 평정심을 깨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로 인해 그들의 머릿속에는 잠시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소드마스터 카칸.
제아무리 날고 기는 6서클 마법사라고 해도 근접전에서 소드마스터를 이기기는 힘들다.
“블링크!”
“히익!”
네 명의 6서클 마법사는 마나를 돌려 순간이동 마법을 이용해 마현에게서 좀 더 멀어지기 위해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등 뒤에서 다크나이트가 불쑥 솟아오르며 퇴로를 가로막았다.
―크하아아아!
다크나이트들은 괴성을 터트리며 6서클의 백마법사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렀다.
“시, 실드!”
캉!
간신히 다크나이트의 검을 막아내는 이도 있었다.
서걱!
“으아악!”
하지만 미처 실드를 펼치지 못해 다크나이트의 검에 죽어나가는 이도 있었다.
“이,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6서클의 백마법사들은 살기 위해 발악했다.
그 광경에 네이폴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나마 믿고 있던 6서클의 백마법사들이 맥없이 당하고 있는데 다른 마법사들은 오죽하겠는가?
“사, 살려줘!”
“내가 먼저야!”
하위 서클의 백마법사들은 살고자 도망을 치는가 하면 제 한 목숨 간수하기 위해 동료들이 뻔히 있는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마법을 마구 난사했다. 그 무분별한 마법 공격에 기겁하며 서로 먼저 몸을 빼려고 하다가 뒤엉켜 땅바닥을 구르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으아아악!”
“크악!”
상황은 더욱 나쁘게 전개됐다. 무자비한 다크나이트들의 손속과 무작정 난사하는 동료의 마법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백마법사들도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마구 난사하기 시작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결국 이렇게 가다간 모두 죽는다.’
네이폴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야 한다! 반드시!’
네이폴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적어도 나만이라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여기서 벗어나기는 요원해 보였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
네이폴은 암암리에 빛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마나를 새로이 조합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입을 달싹거리며 시동어를 읊었다.
‘됐다!’
마현이 6서클 마법사들에게 잠시 눈을 돌린 사이 네이폴은 토네이도 어택 마법 구현에 성공한 것이다.
그 순간 네이폴과 마현의 눈이 마주쳤다.
네이폴은 처음으로 그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죽어라, 카칸!”
네이폴은 양손을 하늘 위로 번쩍 올렸다.
쿠오오오오!
엄청난 양의 마나가 바람을 몰고 그의 양손으로 모여들었다. 네이폴은 득의양양한 웃음을 머금은 채 양손을 아래로 내려트렸다.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리라, 토네이도 어택!”
쏴아아아아!
네이폴을 중심으로 거친 바람이 만들어졌다.
거친 바람은 무형의 날카롭기 그지없는 칼날을 품은 채 그 크기를 키워갔다.
대기는 공기가 찢기는 소리로 가득했다. 그리고 바람은 조금씩 주위의 사물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으아악!”
네이폴이 만든 거대한 토네이도 어택 마법은 마법병단의 마법사와 다크나이트를 가리지 않고 마구 집어삼키며 더욱 커져갔다.
바람은 마현까지 단숨에 집어삼켰다.
“크하하하하!”
토네이도의 중심에서 네이폴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현은 옅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보호했다. 동시에 재빨리 단전에서 마력을 전신으로 돌려 천근추 수법을 펼쳤다.
꾸우욱!
마현의 발이 땅속으로 무릎까지 묻혀 들어갔다.
『흑풍대는 서둘러 다크나이드를 소환하여 본진으로 회군하라!』
토네이도 어택 마법 때문에 흑풍대의 복명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거센 회오리바람에 휘말린 다크나이트가 검은 연기로 화하며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 토네이도 어택 마법에 의해 용솟음치는 회오리바람이 흑풍대가 서 있던 자리까지 남김없이 집어삼켰다. 그것은 곧 마법병단 소속의 마법사들까지 모조리 집어삼켰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현은 마법사들의 몸이 갈기갈기 찢겨 흘러나온 피로 점점 붉어지는 거센 회오리바람을 올려다보며 호신강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후우.
은은한 묵색 강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현은 한없이 시린 눈동자로 토네이도의 중심, 네이폴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흐르자 토네이도의 색은 완전히 붉어졌다.
간간히 들리던 단발마도 사라진 지 오래다.
토네이도가 만든 바람 안에는 사람의 것이라 여겨지는 살 조각조차 더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분쇄기에 완전히 갈린 것처럼 바람에 휩쓸려 치솟아 오르는 것들은 피와 잘게 다져진 듯한 살점들뿐이었다.
쿵!
허공에서 마치 북소리가 울린 것처럼 격한 파장이 퍼져 나가더니 토네이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후두두두두둑!
그리고 비가 쏟아졌다.
그 비는 붉었다.
그것은 완전히 분쇄되어 시신의 형태조차 가지지 못한 백마법사들의 피였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
붉어진 땅.
그 중심만이 누군가 작은 원을 그려놓은 것처럼 흙이 황토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네이폴이 서 있었다.
그는 광오한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과연 네놈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다.”
그런 네이폴의 귀에 섬뜩할 정도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이폴은 흠칫하며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는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 오연하게 서 있는 마현의 모습이 가득 들어찼다.
“어, 어떻게?”
네이폴은 말을 더듬으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네이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과거 7서클의 카칸이라고 해도 토네이도 어택 마법 안에서는 살아날 수가 없다. 실드를 쳐도, 아니 그보다 상위의 방어 마법을 펼쳐도 토네이도 어택 마법 안에서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네놈에게는 흑마법도 아깝다.”
마현은 블링크 마법을 이용해 단숨에 네이폴 앞으로 다가섰다.
“어, 어떻게?”
지금의 현상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네이폴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겁에 질린 눈으로 다시금 뒷걸음쳤다.
그 뒷걸음질로 적당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네놈을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네놈만큼은 살아서 지옥을 똑똑히 경험하거라!”
마현은 마기를 폭사시키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사방으로 풀풀 날리던 마기가 마현의 오른손 장심으로 모여들었다.
퍼벙!
마현은 오른손으로 빠르고 무겁게 네이폴의 왼쪽 심장을 후려쳤다.
쩌정!
장력이 만든 폭음에 묻혀 그 소리가 미약했지만 네이폴의 왼쪽 심장 부근에서 마치 두터운 유리잔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현의 내가중수법에 일곱 개의 서클이 완전히 부서진 것이다.
“커헉!”
네이폴은 입으로 피를 토해내며 그 자리에서 썩은 고목처럼 풀썩 허물어졌다.
“……아, 안 돼!”
네이폴은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손으로 움켜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결국 다시 양 무릎을 바닥에 꿇어야 했다.
“안 돼!”
네이폴은 양손으로 왼쪽 가슴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뒤늦게 상당수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마현의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