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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무림에 가다-304화 (304/351)

# 304

3화

와작!

히메네스는 뽑아낸 눈알을 한입에 넣고 몇 번 씹더니 꿀꺽 삼켜 버렸다.

“미겔! 넌 상대를 잘못 건드렸어.”

히메네스는 품에서 최상급 포션을 꺼내 왼쪽 눈에 반쯤 쏟아 부었다.

“이거나 발라, 안드리치. 과다출혈로 죽기 싫으면.”

히메네스는 반쯤 남은 최상급 포션을 안드리치에게 건넸다.

“훗!”

히메네스는 구덩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보며 쓴웃음을 터트렸다.

“이 싸움은 뒤로 늦추지.”

히메네스는 땅바닥에 깊숙하게 꽂혀 있는 자신의 롱소드를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용병대를 이끌고 달려오고 있는 미겔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반드시 죽여주지.”

안드리치 역시 할버드를 움켜잡으며 살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이폴의 토네이도 어택 마법에 군마마저 잃어버린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였다.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풀메일 형식의 카이샨 메일은 오히려 그 둘에게는 거추장스러웠다.

촤르륵!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는 마나를 일부 제어해 투구를 벗었다.

“우스운 인생이군.”

히메네스는 자조적인 말을 내뱉으며 핏물 구덩이에서 걸어 나오는 안드리치를 쳐다보았다.

“그러게 나처럼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았잖아.”

안드리치는 그답게 호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죽는 마당에 양심고백 하나 할까?”

히메네스는 자욱한 먼지를 만들어내며 달려오는 미겔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말 해.”

“나는 한 번도 너를 내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다.”

“알아.”

안드리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너무나도 쉽게 대답했다.

“그렇군.”

히메네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몸을 돌려 롱소드를 치켜세웠다.

롱소드의 끝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선 케이슨을 향해 있었다.

“미겔에게 원한이 있든 말든 나는 관심 없다. 다만 한 가지, 미겔은 내가 죽인다. 방해하면 죽여 버리겠다.”

“후우.”

그런 히메네스를 지그시 바라보며 케이슨은 가늘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놈의 눈엔 내가 우습게 보이겠지.”

“…….”

원한이 서린 히메네스의 지독한 눈빛을 대하자 케이슨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달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 이 히메네스가.”

“이봐, 배신당한 거는 알겠지만 단장은 10년을 기다려 온…….”

제이든이 나섰지만 이내 케이슨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그런 케이슨을 보며 히메네스는 뜻을 알 수 없는 웃음을 피식 내보이고는 몸을 돌렸다.

“가자, 안드리치.”

“누가 먼저 개새끼의 목을 치나 내기할까?”

“그것도 좋지. 하지만 내가 이겨. 나는 갚아야 할 빚이 너보다 많거든.”

히메네스는 죽은 수하들을 떠올리며 먼저 몸을 날렸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안드리치도 거구를 날렸다.

“어차피 저 둘은 미겔을 죽이지 못합니다.”

마현이 미겔을 향해 달려 나가는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를 보며 말했다.

“알고 있네.”

“아시면 따라가야죠.”

그 말에 케이슨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다! 죽여라!”

“와아아아!”

케이슨 용병기사단 후미에서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던 바쿠 용병대, 해골 용병대, 붉은늑대 용병대가 일제히 케이슨 용병기사단을 덮쳤다.

“여기서 그만 헤어지죠. 이제부터 모든 결정은 케이슨 단장의 몫입니다.”

마현은 고개를 돌려 단원들을 쳐다보았다.

“죽지 마라. 이깟 하찮은 전쟁에서.”

마현의 미소에 단원들도 미소로 답했다.

“그럼 나도 시작해볼까?”

마현은 몸을 뒤로 돌렸다.

마현에 대한 강한 믿음에 케이슨 용병기사단은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의 뒤를 쫓아 미겔과 검은여우 용병대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마현은 뒤에서 덮쳐오는 세 용병대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파이어 플레임!”

마현의 손에서 가차 없이 지옥의 불길이 쏘아져나갔다.

화마는 단숨에 세 용병대를 덮쳤다.

동시에 풍 위에 앉아 있던 마현의 신형이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세 용병대의 중앙이었다.

서걱!

가장 먼저 바쿠 용병대의 대장 바쿠의 목이 떨어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세 용병대를 향한 마현의 무자비한 학살이.

* * *

두두두두두!

흙먼지를 휘날리며 광포하게 질주하는 검은여우 용병대의 선두에는 미겔이 있었다.

‘응?’

자신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두 그림자을 발견하고 미겔의 눈이 살짝 커졌다가 이내 찌푸려졌다.

“훗!”

그들의 정체를 확인한 미겔의 입에서는 가소롭다는 듯 차가운 실소가 터졌다.

스르릉!

미겔은 바스타드소드를 빼들었다.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라 이건가?”

네이폴의 토네이도 어택 마법에서 살아남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래봐야 미겔의 눈에는 죽을 목숨, 구차하게 연명해나가는 패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미겔은 상처 입은 몸으로 야차처럼 달려드는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를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그래봐야 변변히 전쟁 한 번 치루지 못한 약소국 출신이지.”

미겔은 군마 위에서 훌쩍 뛰어오르며 바스타드소드에 오러를 담았다.

후우웅!

미겔은 강렬한 기파를 흘리며 안드리치를 덮쳤다.

콰광!

“큭!”

제아무리 힘이 장사라고 해도 안드리치는 미겔의 일격에 강한 충격을 받고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양손이 아닌 한 손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만큼 미겔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하압!”

그사이 히메네스가 미겔의 옆을 기습했다.

쑤아앙!

히메네스의 롱소드에도 처음부터 오러가 담겨 있었다.

“훗!”

미겔은 비웃음을 머금으려 히메네스의 롱소드를 피해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는 가차 없이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다.

서걱!

“큭!”

히메네스의 허벅지가 미겔의 바스타드소드에 얕게 베어지며 피를 뿌렸다.

그 고통에 뒤로 물러날 법도 한데 히메네스는 오히려 한 걸음 더 내딛으며 일어서는 미겔을 향해 롱소드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었다.

미겔은 서둘러 바스타드소드를 들어 히메네스의 롱소드를 힘겹게 막아내는 듯 보였지만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차갑고 섬뜩한 비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히메네스는 그러한 미겔의 비웃음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하압!”

기합성과 함께 한 자루의 검이 그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서걱!

“커억!”

등에서 피가 뿌려지며 히메네스의 몸은 휘청거렸다.

“비, 비겁한…….”

“그래서 네놈은 안 되는 거다!”

미겔은 힘 빠진 히메네스의 롱소드를 위로 튕겨 올리며 바스타드소드를 휘둘렀다.

쾅!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히메네스는 비틀거리며 뒤로 크게 물러났다.

쐐애애액!

그때 히메네스의 좌측에서 화살 하나가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히메네스는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는 들었지만 왼쪽 눈을 잃어 볼 수가 없었다. 화살이 막 그의 목을 꿰뚫으려는 때, 거대한 그림자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바로 안드리치였다.

푹!

그의 왼쪽 어깨에 화살이 깊게 박혔다.

일반 화살이라면 안드리치가 입고 있는 카이샨 메일에 튕겨나갔겠지만 화살촉부터 대까지 강철로 만들어진 철시에 마나까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너?”

히메네스는 안색을 굳히며 안드리치를 쳐다보았다.

“젠장.”

그 상황에서 안드리치는 히메네스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쐐애애액!

그때 다시 화살 하나가 안드리치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젠장, 젠장!”

히메네스는 안드리치의 멱살을 잡아 아래로 잡아당기며 롱소드를 휘둘렀다.

캉!

어렵사리 화살을 쳐낼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전방에서는 미겔이, 양옆과 뒤에서는 검은여우 용병대의 최고 실력자인 각조 조장들이 일순간 그 둘을 덮친 것이다.

히메네스가 죽음의 위기를 느낀 순간이었다.

쑤아아앙!

한 줄기 반달 모양의 오러가 미겔 앞으로 떨어졌다.

콰과과과광!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고, 히메네스와 안드리치를 덮치던 각 조장들은 깜짝 놀라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로 인해 잠시의 소강상태가 만들어졌고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헉헉헉, 에고고고. 역시 플라잉 오러소드는 힘드네.”

하르센 대륙의 검술을 뒤집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기술을 아이작이 대륙에서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이다.

아이작 역시 철용이 펼치는 이 검술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미겔의 얼굴도 무참히 일그러져 있었다.

“뭐야?”

히메네스가 케이슨과 아이작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거 살려줘도 말이 많네. 어차피 적의 적은 아군 아닌가?”

아이작이 숨을 고른 후 허리를 펴며 그를 향해 씨익 웃음을 날렸다.

“일단 적부터 죽이고 보자고.”

아이작은 앞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투핸드소드를 어깨에 걸쳐 멨다.

“아,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은 우리 단장에게 해. 보다시피 오지랖이 조금 넓거든.”

아이작 뒤로 케이슨이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빠드득!

미겔이 케이슨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미겔.”

“훗, 제 목숨 아까워 꼬리 말고 도망친 놈이 말이 많군.”

미겔은 히메네스와 안드리치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케이슨을 향해 몸을 틀었다.

“너의 죽음이 내게 아픔으로 다가오겠지만 나는 너의 목을 베어야겠다.”

“네가 할 수 있을까?”

케이슨은 투핸드소드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후우웅!

검명이 잔잔하게 울리며 푸르른 오러가 투핸드소드의 검신을 둘러쌌다.

“어, 어떻게?”

그 모습에 잠시 놀라 눈을 치켜뜬 미겔이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렇군. 역시나 그랬어. 크크크크크.”

미겔은 왼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키득거렸다.

“너와 자브라의 감쪽같은 연기에 내가 속았군. 속았어. 그러면 그렇지, 너희 둘을 끔찍이도 아끼던 베르장이 상승검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리가 없겠지.”

가늘게 뜬 미겔의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독기와 살심이 흘러나왔다.

“뚫린 입이라고 잘도 내뱉는군요, 미겔.”

자브라였다.

“닥쳐!”

미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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