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94화 (294/351)

# 294

18화

“크크크!”

검은여우 용병대에서 얼마 전까지 제1조장이었다가 기사단이 만들어지며 부단장이 된 카르비안이었다. 그는 음흉한 웃음을 터트리며 자브라를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그 재수 없는 웃음도 여전하네.”

살포시 웃음 짓는 자브라와 달리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카르비안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

“뭐라? 이년이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걸쭉한 욕설을 내뱉는 수하의 입을 카르비안이 서둘러 손을 들어 막았다.

“왜 그러슈, 부단장?”

카르비안은 수하의 목소리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눈살을 찌푸리며 케이슨 용병기사단 앞으로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섰다.

“……오랜만이오.”

카르비안은 시선을 돌려 케이슨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내려.”

아이작이 입꼬리를 올리며 히쭉 웃었다.

“……?”

“목 아프다. 그만 내리지?”

아이작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자브라의 어깨에 팔꿈치를 살짝 걸쳤다.

“아름다운 레이디께서 네놈들 말 타고 있는 거 꼴 보기 싫다잖아.”

당연히 카르비안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도 모자라 뺨에 경련이 일었다.

“이 새끼,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결국 참지 못한 수하 하나가 끼어들었다.

“호오. 한 판 뜨자고? 나야 좋지.”

스르릉.

아이작은 부드럽게 투핸드소드를 뽑아들었다.

챙 챙 챙!

그 모습에 검은여우 기사단의 단원들 몇이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우우우웅!

아이작의 검이 파르르 떨리며 거센 울음을 토해냈다.

“소, 소드마스터?”

순간 검은여우 기사단원들 모두 긴장어린 표정을 지었다.

“내릴까? 죽을까?”

그극, 크그극!

아이작은 오러가 담긴 투핸드소드를 아래로 내려 바닥을 긁었다.

소름이 돋는 소리에 카르비안이 오른손을 들며 소리쳤다.

“자, 잠깐!”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너무 크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일까? 소리를 지른 카르비안과 그 수하들이 오히려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내리겠소.”

카르비안이 말에서 내리자 아이작은 조용히 투핸드소드를 거둬 착검했다.

“어때, 부단장?”

아이작이 마현을 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쓸데없는 것만 배웠군.”

케이슨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현은 그런 케이슨을 지나 아이작에게 바투 다가서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러.”

“……?”

마현은 고개를 돌려 카르비안과 그 뒤에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검은여우 기사단원들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같으면 한 놈 죽이고 시작하겠다.”

“힉!”

마현의 눈빛과 정면으로 마주친 검은여우 기사단원 하나가 파리해진 얼굴로 딸꾹질을 삼켰다.

그 소리에 마현은 피식 웃고는 아이작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더니 용병길드 본부로 걸음을 내딛었다.

“호호호, 아이작. 아직 멀었네요.”

자브라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며 마현의 뒤를 따랐다.

“이것 참.”

아이작은 어색하게 어깨를 들어올렸다.

그때였다.

“케이슨 용병기사단이다! 소문의 소드마스터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확실히 환영의 의미가 담긴 술렁거림이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훗!”

케이슨도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싫지 않은지 고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용병길드 본부로 향했다.

“이익!”

그제야 카르비안은 깨달았다.

검술로는 검은여우 기사단에서 2인자인 자신이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꼬리를 말았음을.

그것도 수많은 인파가 보고 듣고 있는 용병길드 본부 앞에서.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었다.

카르비안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고, 으스러져라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용병길드 본부 1층은 생각보다 수수하고 깨끗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한 젊은 직원이 재빨리 뛰어왔다.

“케이슨 용병기사단 맞습니까?”

“그렇소만?”

케이슨이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신설된 케이슨 용병기사단 전담부서에서 일하는 벤디스라고 합니다.”

“케이슨 용병기사단 전담부서?”

몇몇 특별한 용병대는 본부에 전담부서를 두고 관리를 한다는 것을 케이슨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야, 알랜 부지부장이 상당히 보고를 잘 올린 모양이네.”

말을 꺼낸 아이작도, 그리고 다른 단원들도 이런 환대가 싫지 않은 모양이었다.

“따라오시지요.”

벤디스를 따라 일행은 2층으로 올라갔다.

“혹시 본부에 찾아오실 일이 생긴다면 앞으로는 지금처럼 이 계단을 이용하셔서 바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알겠소. 그리하리다.”

“여깁니다.”

나무로 된 문 앞에는 ‘케이슨 용병기사단 전담부서’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안에 부장님이 계십니다.”

벤디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응접용 소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뒤로 크고 작은 두 개의 책상과 서랍, 캐비닛 등이 보였다.

생각보다 단출한 사무실이었다.

아무래도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특급대우를 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아 배정된 사무실이나 직원의 수가 적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떠들썩하게 등장할 줄은 몰랐습니다.”

누군가가 환한 목소리로 케이슨 용병기사단원들을 맞이했다.

“응?”

아는 얼굴이었다.

마현을 비롯해 단원들을 반갑게 맞이한 이는 바로 알랜이었다.

“용병길드의 본부 케이슨 용병기사단 전담부서의 부장 알랜입니다.”

“어떻게?”

“사실 본부에 대고 땡깡을 조금 부려봤습니다. 그랬더니 용병길드 본부로 자리를 옮겨주더군요. 직책이야 내려갔지만 내부적으로는 승진이나 매한가지입니다. 벤디스, 가서 차 좀 내와. 자자, 다들 앉으십시오.”

알랜은 살짝 들떴는지 평소보다 조금 더 수다스러웠다.

“안 그래도 떠날 때 인사를 하지 못해 조금 섭섭했었소.”

마현의 말에 알랜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이거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소?”

마현은 그런 알랜의 반색에 담담히 웃어주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이구,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케이슨의 말에 알랜이 넙죽 고개를 숙였다.

* * *

퍽!

강한 발길질에 카르비안은 힘없이 뒤로 나뒹굴었다.

“그러고도 네놈이 검은여우 기사단의 부단장이란 말이냐?”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미겔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카르비안의 배를 다시 걷어찼다.

“컥!”

카르비안은 몸을 바르르 떨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고분고분히 말에서 내려? 내가 네놈이라면 차라리 말에서 죽었겠다.”

미겔은 벽에 걸린 장식용 검을 빼들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카르비안의 몸을 마구 후려갈겼다.

카르비안이 피투성이가 되어 혼절을 하고서야 미겔의 폭력은 끝이 났다.

짝짝짝.

그때 방 한구석에 조용하게 앉아 있던 그라스가 손바닥을 몇 번 쳤다. 그러자 방문이 열리고 용병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피 비린내가 좋지 않군요. 치우세요.”

그라스의 명에 용병은 미겔의 눈치를 살폈다.

“가서 치료를 해줘라.”

미겔이 손수건을 꺼내 손에 묻은 피를 닦으며 허락하자 용병은 서둘러 카르비안을 안아들고는 방에서 빠져나갔다.

“저런 놈을 믿고 기사단을 창설한 내가 바보지.”

미겔은 그라스 맞은편으로 다가가 앉았다.

“하지만 그때는 달리 방법이 없었지 않습니까.”

“지금은 무슨 방도라도 있다는 건가?”

미겔은 한껏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현재 용병계는 겉은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키려는 지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라스는 현재 용병계를 뒤흔들고 있는 열 명의 신진 소드마스터, 그러니까 흑풍대를 가리켜 은유적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흠…….”

미겔의 표정은 당연히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들은 용병임에도 불구하고 빌더 시는 둘째 치고, 카스텔로 연방국 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여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과의 접촉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보다 큰 문제는 그들을 추종하는 용병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다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만약 그들이 지금과 달리 용병대를 창설하게 된다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단숨에 검은여우 용병대를 위협하는 용병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골치 아프군. 가뜩이나 케이슨 용병기사단 때문에 뒤숭숭한데 말이야.”

미겔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전에 제가 말씀을 드린 거 기억하시는지……?”

그라스의 말에 미겔이 잔뜩 찌푸린 눈을 하고서 대답했다.

“물론 기억하네.”

“아직까지는 유효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필요합니다.”

“흠……!”

미겔은 팔짱을 끼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라스, 그대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다른 수가 없다는 뜻이겠지?”

“그거 말고 달리 뾰족한 수가…….”

그라스가 너무도 간단히 수긍했다.

“어쩔 수 없지.”

미겔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라스.”

“말씀하세요.”

“자네의 현혹, 그걸로는 어떻게 안 되겠지?”

“후후.”

그라스는 미겔의 말에 그저 옅은 웃음을 보였다.

“만일 그게 가능했다면…… 아마도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렇군.”

“어떻게 해서든 영입을 해보겠습니다.”

그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트로켄은 하르센 대륙에서는 최약체의 왕국이었다.

사실 길고도 혹독했던 100년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도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나마 트로켄 왕국이 지금껏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외교적 줄타기를 잘 이용해 몬테팔코 왕국과 테누타 왕국의 완충지 역할을 해온 것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로는 두 명의 소드마스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그라스는 두 명의 소드마스터 중 한 사람인 안드리치 백작의 저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악!”

안드리치 백작의 집무실에서 터져 나온 비명소리에 그라스는 음침한 웃음을 머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라스는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 안드리치 백작의 집무실 문을 열었다.

열린 문 사이로 지독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집무실 문 앞에는 트로켄 왕국의 테오르치 공작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고, 그 주검 앞에는 피를 잔뜩 뒤집어쓴 안드리치 백작이 피 묻은 할버드를 들고 서 있었다.

“이런.”

그라스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절명한 공작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가 시간을 잘못 맞춘 건 아닌지…….”

의외인 것은 그의 집무실 소파에 트로켄 왕국의 또 다른 소드마스터인 히메네스 백작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는 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