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마법사 무림에 가다-290화 (290/351)

# 290

14화

‘아직 이르지만 힐링포션을 나눠줘야겠군.’

마현은 밀러와 함께 몇 날 며칠 힐링포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연구를 해보았지만 독기를 따로 빼내거나 중화시킬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힘은 들겠지만 손수 힐링포션에 들어 있는 마나를 흡수시키고, 독기를 뽑아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마현의 시선은 흑풍대에게로 향했다.

‘업그레이드라…….’

하르센 대륙으로 넘어오며 흑풍대에 권속되어 있던 다크스켈레톤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마현은 다크 나이트를 떠올렸다.

어둠과 상반되는 백마법사들을 상대하기에는 스켈레톤은 너무 약했다.

오랜 전쟁으로 이 땅에 묻힌 한 많은 기사들이야 넘치고 넘칠 터였다.

흑풍대에게 다크 나이트를 권속시키는 것이 중원이라면 어렵겠지만 하르센 대륙에서는 가능하다. 단지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문제될 것이 없었다.

“카칸 아저씨.”

어느 정도 생각이 마무리될 때쯤 방문이 살짝 열리며 한스가 머리를 빠끔히 내밀었다.

“이런.”

생각에 깊이 잠겨 있는 동안 밀러와의 약속시간이 그만 지나간 것을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현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제법 넓은 밀러의 방 중앙.

마현과 밀러는 서로 마주한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일취월장, 괄목상대란 말은 딱 밀러를 두고 만들어진 것 같았다.

마현이 밀러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주자 솜이 물을 흡수하듯 밀러는 무섭게 성장했다. 보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밀러는 그동안 정체됐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4서클 마스터에 올라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흠…….”

마현은 밀러를 보며 나직하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밀러가 눈을 떴다.

“밀러 님.”

“……?”

“한계인 것 같습니다.”

“한계라…….”

밀러는 마현의 말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알았기에 무거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과거 마도시대에는 신의 권능 없이도 9서클에 오른 대마도사들이 있었다는데…….”

밀러는 이제는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인 판타리아 대륙이라 불리던 마도시대를 입에 담았다.

마현도 그 마도시대에 관한 몇 가지 짧은 지식은 있었다.

현재 케이슨 용병기사단이 사용하는 카이샨 메일을 만든 이가 카이샨 마도사라든가, 인간 최초로 9서클에 오른 이가 미드란 대마도사라는 정도의 몇 안 되는 지식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확실히 과거 마도시대에는 흑마법사들 중 네크로맨서 등과 같이 특이한 힘을 구사하는 몇몇 마법사 이외에는 신의 권능을 내려 받지 않았다고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편적인 지식과 밀러의 푸념에 마현은 고소를 지었다.

따지고 보면 밀러의 푸념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마현의 능력에 대해서 그가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는 점. 마현 역시 과거 마도시대의 마법사처럼 신의 권능을 이어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밀러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하지만 밀러를 바라보는 마현의 눈동자는 확고했다.

설령 한계에 부딪쳐 이대로 정체된다고 해도 마현은 밀러에게 마공심법을 전수해 줄 생각이 없었다.

자신 이외의 흑마법사들은 현재처럼 어둠의 신들의 권능을 이어받게 할 생각이었다.

물론 흑마법사들에게 마공심법을 전수하면 복수의 길은 쉬워진다.

하지만 그 후에 닥쳐올 마법의 불균형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마현이 원하는 것은 백마법사와 흑마법사의 동등한 지위이지 흑마법만의 독주가 아니었다.

“내게도 한계에 부딪칠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네. 그동안 내내 눈부시게 실력이 늘다 보니 그걸 깜빡 잊고 있었네.”

다시 이어진 밀러의 목소리에 마현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밀러의 눈빛에서는 상당한 갈등이 엿보였다.

“마음의 준비가 되시면 그때 말씀해주십시오.”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걸세.”

이미 선택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밀러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현도 그 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흑마법사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보다 그가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태양, 스피네타의 마탑, 최상층.

마탑을 상징하는 심벌을 새겨 넣은 하얀 로브를 입은 다섯 명의 늙은 마법사가 원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대장장이의 마탑, 샤토 마탑주를 제외한 다섯 마탑의 마탑주들이었다.

“샤토 마탑주의 자리는 게오르게가 잇는 걸로 결정하지.”

이들 백마법사들의 사실상 수장이나 다름없는 이베른의 말에 모두들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겠군.”

바람, 로쉴드의 마탑주 네이폴이 죽은 체스와프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여섯 마탑 중 가장 수익이 높은 곳이 바로 대장장이, 샤토 마탑이었다.

그 샤토 마탑주인 체스와프와 두 수제자가 죽자 재정난에 시달리던 다섯 마탑주들이 냉큼 집어삼킨 것이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대장장이, 샤토 마탑의 수석마법사 중 한 명인 게오르게가 마탑주에 오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말이다.

“그럼 앞으로 게오르게도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는 건가?”

조화, 스플린 마탑주 벨로가 물었다.

“그럴 리가……, 어찌 꼭두각시가 주인과 함께 자리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는 다섯 마탑 체계로 가도록 하지. 물론 외부적으로는 여섯 마탑 체계이겠지만.”

이베른은 노안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살짝 지었다.

그런 그의 의견에 반대할 이는 없었다.

그의 말은 곧, 앞으로 샤토 마탑은 나머지 다섯 마탑의 자금줄이 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외부의 시선이 있으니 체스와프의 죽음에 대해 조사할 필요는 있지 않겠나?”

“느낌이 좋지 않아 내가 조금 알아보았네만…….”

벨로 마탑주의 말에 대지, 듀락 마탑주 카밀로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조사가 필요할 것 같다고 여겨지네.”

“이유는?”

이베른의 물음에 카밀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체스와프가 죽던 날 그를 경호했던 케이슨 용병기사단에 소드마스터가 한 명 있었네. 그는 전장에서 브루넬로 왕국의 하인히르 후작과 동귀어진한 체스와프의 시신을 수습한 자이기도 하지.”

나머지 네 명의 마탑주는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카밀로의 입술만 쳐다보았다.

“그자의 이름이 카칸이라고 하더군.”

순간 네 명의 마탑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 누구라고?”

벨로가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케이슨 용병기사단 최고의 검사이자 소드마스터의 이름이 카칸이라고 하네.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이야기한 건 모두 그자가 진술한 내용이라네. 결국 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진실을 아는 자는 없다는 말이지. 그자 말고는.”

카밀로가 입을 닫자 방 안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분명 카칸은 죽었어. 우리가 몇 번이나 확인하지 않았나?”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을 참지 못하고 네이폴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런 그의 모습은 왠지 불안해 보였다.

네이폴은 과거 마법을 가르칠 때부터 카칸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였다.

“네이폴, 진정하게. 그가 죽은 것은 확실해.”

이베른이 흥분으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네이폴을 진정시켰다.

“하필 체스와프가 죽는 자리에 카칸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있다니…….”

찜찜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연일 거야…….”

이베른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지만 워낙 조용한 터라 모두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당혹스러운 건 사실이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그의 중얼거림을 수긍했다.

죽은 카칸은 고아였고, 결혼을 한 적도 없었다. 물론 여인에 대한 경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당시 철저하게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분명 후손은 없었다.

그들은 지금껏 그것을 굳게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카칸의 이름을 들으니 그런 확신에 미묘한 틈이 벌어지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사람은 의심의 동물이다. 아무리 믿음이 굳건하다고 해도 한 번 그 틈이 벌어지면 의심은 점점 커지는 법이다.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들이 모르는 여인과의 접촉이 있었을 수도 있고, 그 여인이 카칸의 아이를 가졌다면? 아니 그와 관계를 가졌던 여인들 중 임신한 사실을 카칸에게조차 숨겼다면?

의심이 한 번 꼬리를 물자 그 뒤로 수많은 의심들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카밀로, 그 카칸이라는 소드마스터의 나이는 어떻게 되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고, 대략 20대 초반이라고 하더군.”

이베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기도, 나이도 묘하게 들어맞았다.

하르센 대륙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는 일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유복자나 사생아일 경우 그렇게 이름을 짓는 일이 많았다.

“우연일 거다. 하지만 좀 더 알아볼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직접 나서는 건…….”

벨로의 말에 이베른이 다시 은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연히 샤토 마탑에서 움직여야겠지.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른 패가 하나 더 있지 않나?”

이베른의 말에 다섯 마탑주의 머릿속에 한 명의 인물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는 바로 검은여우 용병대의 부대장이며, 흑마법사인 그라스였다.

* * *

“그러니까, 요 거무칙칙한 붉은 용액이 마심단에 버금가는 마나를 담고 있다는 말이지?”

흑도의 얼굴은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아이처럼 싱글벙글거리고 있었다.

마현은 흑사신에게 각각 최상급 힐링포션을 6병씩 나눠주었다. 그 6병이면 족히 2갑자의 내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전생에 비하면 부족하겠지만 그 정도면 적어도 하르센 대륙에서는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각자 스스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의 수하가 되었지만 어쨌거나 전생에서는 당대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이들이 아니던가.

“특별히 주의를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겠지?”

“크크크. 걱정하지 말라고, 주인. 눈물겹게 다시 얻은 육체인데 허망하게 폐인이 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흑도는 힐링포션을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연무장에서 수련하고 있는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음트트트트트!”

흑도의 입에서 다시 기괴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단 과거의 힘을 찾는데 주력하도록.”

마현은 몸을 돌려 흑풍대를 불렀다.

“너희들도 복용하라.”

마현은 흑풍대원들에게도 각기 2병씩 최상급 힐링포션을 건넸다.

마현의 명이니 왕귀진을 비롯해 흑풍대원들은 공손하게 최상급 힐링포션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서는 의아심이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흑사신들이야 새로운 육체를 얻으면서 모든 무공을 잃었다.

그 때문에 흑사신들은 특별한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케이슨 용병기사단원들도 부족한 무력을 단기간에 키워야 하니 힐링포션이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흑풍대원들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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